문태훈의 도넛 | ⑤ 질적 발전과 정치 개혁이 이끄는, 더 나은 삶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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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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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2 문태훈
100년 안에 지구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다. 한계를 피할 유일한 방법은 흐르는 물처럼 앞의 물을 새로운 물로 끊임없이 교체하는 역동적인 상태 곧, ‘정상상태’의 경제이다. 질적 발전을 추구하는 경제시스템으로 변화를 이끌 동력은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좋은 정치에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과연 그리하고 있을까?

문태훈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 캠퍼스에서 1992년 행정 및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정연구원에서 1994년 1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95년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로 부임해 2023년까지 재직했다. 정년 퇴직 후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로 대통령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UN SDSN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생태전환지원재단 이사, 환경정의 공동대표, 산과자연의 친구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지역개발학회장(2016), 한국환경정책학회장(2020), 한국시스템다이내믹스 학회장(2003), 서울시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2015), 환경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2018)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지방자치』(2022, 공저), 『시스템 사고로 본 지속가능한 도시』(2007), 『환경정책론』(1997)이 있으며, 「도시별 지속가능성 비교연구」, 「지방정부의 환경행정 역량 평가모델」, 「기후정책과 부문별 영향 분석」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정량적 분석과 시스템 사고를 바탕으로 한 환경정책 이론은 지역 정책 수립과 학술적 토대에 모두 기여하고 있다.
규모가 적정한 크기에 달하면, 내적으로 성숙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야
성장은 양이나 덩치가 커지는 것이고 발전은 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경제성장은 경제 크기가 커지는 것이고 경제발전은 경제규모가 적정한 크기에 도달한 다음 삶과 생활, 사회, 정치, 경제 등이 내적으로 성숙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을 비롯한 세상의 삼라만상이 일정한 덩치에 도달하면 성장을 멈추고 내외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것과 같다. 사람이 성장을 멈추지 않고 계속 커지기만 한다면 괴물이 될 것이다. 경제도 그렇다.
100년 안에 지구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다
로마클럽이 1972년에 발간한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의 급속한 산업 성장이 계속된다면 100년 이내에 지구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는 요지의 보고서였다. 시나리오 기반의 시스템다이내믹스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으로 진행된 이 보고서는 성장의 한계는 자원의 고갈, 환경오염, 식량의 부족으로 초래될 것이며, 어떤 기술적 해법도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 결론 내린다.
성장의 한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성장지향적인 가치관을 바꾸고, 일정한 성장 수준을 달성하면 질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소위 “동태적 균형상태”로 전환하는 것이라 제안한다.
존엄을 지키며 풍요를 지속하는, 질적 발전을 향한 경제시스템
<성장의 한계> 논자들의 이러한 결론은 생태경제학자 허만 달리(Herman Daly)의 정상상태의 경제(Steady State Economy) 주장과도 일치한다. 정상상태란 시스템의 물리량이나 상태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는 역동적인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면, 흐르는 강이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면서도 뒤에서 밀려오는 새로운 물이 앞선 물을 끊임없이 교체하면서 지속적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정상상태의 경제는 같은 경제규모를 유지하되 그 내용물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는 경제, 도넛빵의 안쪽과 바깥쪽 영역 사이의 어느 적정한 수준에서 양적 성장 대신 삶의 질과 행복 수준이 높아지는 질적인 경제발전을 지속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면서도 충분한 수준의 풍요로운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질적 발전을 추구하는 경제시스템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다.
정상상태의 경제를 지지하고 조율과 합의를 이끌 좋은 정치
이러한 변화를 총체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동력은 모든 사람의 동의에 기반한 정치적 결정 외에는 다른 결정 방식에서 나올 수 없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다수의 사람들이 정상상태의 경제를 지지해야 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의사를 적절히 조율하면서, 대립되는 생각과 이해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이끌어 내는 좋은 정치가 필수적이다.
좋은 정치와 위대한 정치 등 수준 높은 정치란 어떤 정치일까?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은 좋은 정치란 개개인의 자유를 크게 하여 사람들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완성하는 정치, 프랑스의 알렉시 드 토크빌은 사익 추구가 판치는 세상에서 인간정신을 고상하게 하는 정치, 공공선에 대한 헌신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치라 하였다(서병훈, 2017).
우리 정치가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고 공익을 우선하는가
우리나라 정치가 개인의 자유를 확장시키는 정치, 정치적 이익보다 공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 정치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키기보다 갈등을 양극화하여 심화시키고 있고,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최대 다수의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창조적인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이름을 빌려 주장하면서도 국민이 더 큰 걱정을 하도록 하는 정치가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를 보면 어떤 때에는 국회의사당 위의 둥근 돔이 쓰레기통 뚜껑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의원들 개개인을 보면 대부분 훌륭한 분들이다. 그런데 국회 안에만 들어가면 모두 쓰레기처럼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것은 새것이어도 쓰레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정치, 좋은 정치까지는 못 가더라도 현재의 정치적 틀과 정치 방식을 혁신하지 못하면 우리는 더 이상의 발전도 행복한 삶도 기대할 수 없다.
민의의 대변인이라는 정치인은 민의가 아니라 정치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누구 말처럼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는 관료화된 정당이 공직을 두고 투쟁하는 정치로 변질되었다. 민의의 대변인이라 해도 그것은 선거 기간에만 그렇다. 정파의 대변인일 뿐 진정한 국민의 생각을 읽고, 국민의 생각을 선도하는 창조적 정치인들은 멸종 위기종이 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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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우리 앞에 기후위기, 좋은 일자리 감소,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사회정치적 갈등 심화, 초저출산 등 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다. 필자인 문태훈 교수는 이 문제들이 시장경제 시스템의 무한경쟁에 원인이 있으며, 이런 시장근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의 전환은 어렵다고 말한다.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을 잘 설명해 주는 도넛 경제학에서는,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 간 균형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다양한 정책이 시도될 모양이다. 이 칼럼은 정책학의 관점에서 새 정부의 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학문 성과, 사회 핫이슈, 생활 변화 등 자유롭게 글감으로 골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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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오랜만에 들어 보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