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후국가 대한민국은 바다에서 길을 찾는다
- sungmi park
- 5월 2일
- 3분 분량
기후위기 시대, 잠들어 있는 우리 안의 해양 DNA를 깨워야 할 때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바다가 우리 관심에서 멀어진 건 중국의 영향이 크다. 명나라를 사대(事大)하던 조선은 왕조가 지속하던 500년 내내 바다를 걸어 잠갔다. 명나라 황제 영락제는 무슬림 출신 환관 정화(鄭和)로 하여금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 함대를 편성하여 대양 원정을 감행했다. 콜럼버스나 바스코 다 가마보다 수십 년 앞섰다. 영락제 사후 명나라는 바다 길을 막았고 조선도 이에 따랐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자급자족 농업 중심의 유교적 경제관을 가진 지배세력이 바다의 가치를 간과한 것이 근본 이유다. 조선 이전 고려 때만 해도 서해(西海)는 ‘해상 고속도로’였다. 그나마 바다가 우리 눈에 들어온 건 1970년대 조선 산업이 본격화되면서부터다.
세계사를 보면 어떤 국가가 제국이 되는 건 바다를 도모할 때였다. 로마제국이 그랬고, 명나라가 포기한 바다를 두고 다투었던 유럽 열강이 그랬다. 바다는 물류의 주요 수송로여서 이를 장악한 국가가 국제경제를 주도하고 세계 정치를 좌우하게 된다. 이른바 ‘해상 실크 로드’를 확보하기 위해 해군력 증강은 필수다. 지금의 미국이 일극 패권국이 된 것도 막강한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다. 바다가 우리 눈과 귀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항상 치열한 곳이었다. 산업 문명을 떠받쳐 왔던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면서 이곳은 더욱 뜨거워졌다.
식량인 어로자원, 해상 운송로, 화석 에너지원을 제공하는 바다는 다른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 받는다. 기후 이상 변화가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존속을 심대하게 위협하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상 기후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대기 중 농도가 짙어졌음에 기인한다. 바다는 지구 표면적의 71%에 달하며 지구 전체 탄소 가운데 약 90%를 저장한다.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30% 정도를 흡수한다. 인류가 벌이는 이상 기후와의 전쟁에서 바다는 져버릴 수 없는 요충지다. 일부 해양 전문가나 정부 관료의 관심을 넘어 지구촌 일반 시민의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해양 쓰레기 문제는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한반도 몇 배가 되는 쓰레기 섬이 태평양 한가운데 버젓이 존재하는 사진이 언론에 노출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수온의 급격한 상승은 어류의 서식지 변경을 가져오고 미처 이동을 하지 못한 어류는 폐사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탄소 흡수량이 일정치를 넘어가면 바다는 산성화된다. 산성화는 산업화 이전 대비 25% 가까이 더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바다의 자연 댐인 산호초가 하얗게 말라 죽어가고 있다. 산호초 백화현상은 바다 생태계에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 우리에게 직관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바다는 육지 이상으로 기후 이상 변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위기에 맞서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하는 바다가 병들고 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진단이 필요하다.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야 원인이 파악되고 처방을 할 수 있다. 바다 속을 들여다보고 현황 파악을 하는 건 육지보다 어렵기 마련이다. 그렇다 해도 바다에 대한 조사는 걸음마 단계이고 수집된 데이터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공해(空海)는 말할 것 없고 영토 안에 있는 연안생태계도 사정은 나을 게 없다. 우선 연안생태계만이라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해야 한다. 정리된 구체적 데이터가 있어야 계획과 정책이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토'는 육지를 뜻한다. 헌법상 영토는 한반도 전체와 그 주변 섬들을 포함할 뿐, 영해(바다)나 영공(하늘)은 직접 언급이 없다. 하위법인 국토기본법에서 영해와 영공을 영토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시대가 변했다. 기후위기, 해양자원 확보, 해양안보 문제가 국토의 개념을 재정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 제3조를 시대에 맞게 재규정 할 필요가 있겠다. 미래 세대를 위한 대한민국은 '육지와 바다 위의 국가'여야 한다. 바다도 국토다.
바다의 64%는 공해(空海)다. 주인이 없다는 말이다. 각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라 자원 남획 등으로 파괴가 심각하다. 최근 심해채굴 움직임까지 더해져 공해를 보호 관리할 주체 확립이 시급한 현실이다. 현재 공해 해양보호구역은 전체의 약 2%에 불과하며 우리나라의 해양보호구역 비율은 1.84% 수준이다. 국제 해양 협약인 ‘공해 해양생물 다양성 협정(BBNJ)’은 2030년까지 공해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한다. 우리는 지난 3월 비준서에 서명했다. 조약이 발효되려면 60개국 이상의 비준이 필요한데 비준국은 아직 21개국에 그친다. 해양국가로의 비전을 가진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그동안 탄소 흡수원으로 육상 식물인 ‘그린카본(Green Carbon)’이 주목을 받아 왔다. 그린카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블루카본(Blue Carbon)’에도 신경을 써야 할 때다. 블루카본은 해양식물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저장하는 능력을 말한다. 해조류의 탄소 흡수력은 육상식물의 10배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탄소 흡수 정도가 자산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탄소배출권 또는 카본 크레딧(Carbon Credit) 말이다. 올해 해조류와 갯벌의 국제인증 여부가 결정된다. 반도국가로서 갯벌과 해조류가 풍부한 우리나라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양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었다.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육지 중심적 사고를 넘어 해양을 국운 상승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우리 국토의 절반은 바다이고 세계에서 열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다. 바다가 미래다. 기후위기 시대, 이 말은 더욱 절실해 보이고 와 닿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해양철학과 대양 국가 비전을 환기해 본다. 이제는 5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우리 안의 해양 DNA를 깨워야 할 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해양강국 전략에 대해 곱씹을 때 입니다
해양이 중요한 시대인데 인식의 틀과 정책 도구(예산까지)가 모두 육지 중심이니 이런 글들이 많이 생산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