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한민국에서도 기후 이주는 시작되었다
- sungmi park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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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영구히 떠나는 현실은 더 이상 타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통째로 마을이 사라졌다. 올해 3월 산불이 휩쓸고 간 경상남도 산청은 지난 달 ‘괴물 호우’로 다시 큰 피해를 입었다. 산사태로 쓸려 내려온 흙더미가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복구 대신 결국 이주를 선택했다. 산청군은 마을에서 800미터 떨어진 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로 했다. 13가구 16명의 주민들은 새로운 주민등록 주소를 갖게 된다. 온전하게 이전하기까지는 2~3년은 걸릴 거라고 한다.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산능마을 주민들 이야기다. 그들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후이상변화’ 때문이다.
지난 봄 경상북도 지역에 발생한 대형 산불은 기후재난의 전형이다. 어느 봄철 기온보다 높은 이상 고온이었다. 숲과 토양의 수분이 빠르게 증발되어 있었다. 겨울부터 봄에 이르는 동안 강수량이 평년 대비 현저히 적어서 낙엽, 풀, 수목이 몹시 말라 있었다. 봄철 편서풍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이번 경북 산불은 단순 봄철 산불이 아니라 기후변화가 만든 조건에서 대규모, 고강도로 발생한 기후재난이었다. IPCC 보고서에도 이상 고온, 장기 건조, 강풍의 결합을 기후재난형 대형 산불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7월에 내린 호우는 단순 국지성 폭우가 아니었다. 기후변화가 만든 대기, 해양 조건에서 발생했고, 피해 양상과 강도가 기존 재해의 범위를 넘어선 뚜렷한 기후재난이었다. 같은 지역에 불과 4개월 동안 과거 경험해 보지 못한 규모와 강도로 재난이 연속해서 발생했다. 그것도 성격이 다르게 말이다. 사람들은 재해나 재난이 닥쳤을 때, 가능한 빨리 복구해 자신들이 살아 온 터전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이주를 선택하는 건 아주 낯선 일이다. 복합적, 연쇄적 기후재난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런 이례적 선택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기후 이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 여겨 왔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사건이지만 주로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잠기는 태평양 어느 섬나라 국민들, 물과 식량 부족으로 무작정 배에 몸을 맡기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좀 더 확대해도 동남아, 남미 일부 국가에 국한되었다.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좀처럼 상상하지 못했다. 착각이고 오만이다. 눈을 감는다 하여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당면한 일이다. 사실 지구상 어떤 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 기후 이주 유형과 사례는 이미 다양하다. 산불형 기후 이주는 경남 산청, 강원 고성, 경북 울진 등이 있다. 집중 호우형은 충북 충주, 강원 횡성, 전북 남원 등이 있다. 해안 침식 해수면 상승형은 전남 신안, 전북 부안, 제주 구좌 등이 있다. 가뭄 폭염형은 경북 의성, 전남 곡성 등이 있다. 해외 난민과는 달리 국경을 넘지 않은 내부 이주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 높은 나라에서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국경을 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암울하지만 배제할 수 없는 미래다.
심각성을 더하는 건 기후 이주가 지역 소멸과 직접 또는 간접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지역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기후 이주는 지역 인구 기반을 직접 깎아내려 소멸 시계를 앞당긴다. 지역 소멸은 재난 대응·복구 능력을 떨어뜨려, 다음 기후재난에서 이주를 더 가속한다. 서로를 증폭시키는 셈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 소멸 대응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다.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지역 소멸도 우리나라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 많은 나라가 직면한 난제다. 뾰족한 해결책이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도시가 커져 가는 현대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대가라고도 한다. 그러니 모든 지역을 살리기보다 살릴 수 있는 지역을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누가 선택하는지 결정하는 건 현실적으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데 어렵다. 기후위기 대응을 지역 선택적으로 하진 않는다. 기후위기와 지역 소멸의 상관관계를 볼 때, 그 둘의 대응 전략은 연결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이주의 기억이 없는 건 아니다.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농촌, 어촌, 산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했다. 전기 생산을 수력발전에 의존해야 할 때, 댐 건설로 수몰되는 고향을 떠났던 애환의 역사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주가 당연시되는 건 아니다. 지금의 기후 이주는 완전한 보상만 이루어진다면 불필요한 것이다. 제대로 된 보상체계가 준비되어 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건 보상체계를 구축하는 데 시장 논리에 기반한 개인책임주의를 중심으로 사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후재난을 감당하고 책임질 곳은 국가다.
산불 피해 지역 복원 방법을 두고 논의가 뜨겁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니 토의 주제가 조림, 임도 등 산림정책 전반으로 넓어지고 있다. 산림청장 인선이 늦어지고 있는 건 산림청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긍정적이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다. 이 순위는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다. 이유에 대한 분석은 차치하고 우리 국민의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건 분명하다. 여기에 ‘기후 우울’까지 겹친다면 큰일이다. 기후변화가 ‘기후 질병’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건 많은 의학 보고서가 증명하고 있다. 기후 이주가 기후 우울을 만연시키는 또 다른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자.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이상에 따른 이주가 생길 수 밖에 없슴을 알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