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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기요금 뒤에 숨은 탄소 비용

  • 20시간 전
  • 3분 분량

누가 오염하고 있는지,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기후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김용만  편집인
김용만  편집인

탄소배출권은 시장을 통해 오염 비용을 명확히 드러내고, 이를 통해 기업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졌다. ‘오염자 부담 원칙’이 배출권 거래제의 핵심인 이유다. 하지만 대한민국 전력 부문에서는 이 원칙이 무색해진다. 발전사가 지출한 배출권 구매 비용을 한국전력이 전액 보전하고, 이를 다시 ‘기후환경요금’이라는 이름으로 전기요금에 전가해 버린다.


발전사는 이런 구조에서 탄소를 줄일 동기부여를 거의 받지 못한다. 배출권 가격이 오르든, 유상할당 비율이 확대되든, 최종 비용은 모두 한전을 거쳐 소비자에게 이전되기 때문이다. 탄소 감축을 유도해야 하는데 오히려 감축을 방해하는 꼴이다. 비용을 느끼지 않는 오염자는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반면 국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탄소 비용을 대리 납부하고 있다.


문제는 비용 전가 방식의 불투명성에 있다. 전기요금 고지서에 포함된 기후환경요금은 기후 대응을 위한 공공 기여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발전사의 탄소 비용을 대신 지불하는 항목에 가깝다. 일종의 착시다. 소비자는 자신이 어떤 발전원에서 생산된 전기를 쓰는지, 그 전기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는지 알지 못한 채 비용만 부담한다.


더욱 심각한건 사회적 합의 없이 비용을 이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탄소 가격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부는 직접적인 ‘탄소세’나 전기요금 인상을 회피해 왔다. 대신 기후환경요금이라는 완충 수단을 통해 비용을 은폐했고, 그 결과 탄소 가격 체계는 왜곡되었다. 투명하지 않은 비용 구조는 정책 신뢰를 약화시키고, 기후 정책 전반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키우기 쉽다.


수혜자는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사다. 석탄과 LNG 발전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지만, 그 비용을 직접 부담하지 않는다. 배출권 구매 비용은 한전의 비용으로 처리되고, 한전은 다시 이를 요금에 반영한다. 결과적으로 발전사는 탄소 가격 상승에 따른 재무적 압박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설비 효율을 개선하거나, 연료 전환을 서두를 이유도 별로 없다.


반면 국민과 산업용 전력 소비자는 영문도 모르고 비용을 떠안는다. 전력 소비를 줄이는 노력과 상관없이, 전력 믹스 개선과 무관하게 동일한 요금제가 적용된다. 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인 소비자와 그렇지 않은 소비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감축 행동에 대한 보상 또한 미흡한 실정이다. 결국 탄소 감축의 책임은 흐릿해지고, 비용만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국제적 흐름과도 어긋난다. 유럽연합(EU)은 배출권 거래제(EU ETS)를 통해 발전 부문에 대해 원칙적으로 무상할당을 폐지했고, 발전사는 배출권 비용을 스스로 감당한다. 이 비용 압박은 재생에너지 확대, 석탄 퇴출, 전력 믹스 전환을 가속화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탄소 가격이 실제 경영 의사결정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표면상으로는 유상할당을 확대하면서도, 실제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이중 구조를 취하고 있다.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실질적 감축 노력’과 괴리가 크다. 특히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된 상황에서, 국내 전력 부문의 왜곡된 탄소 가격 구조는 산업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탄소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전력 시스템 위에서 생산된 제품은 결국 국경에서 비용을 치르게 된다.


정부는 전기요금 안정과 물가 관리라는 이유로 현행 구조를 정당화해 왔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정치 논리에 불과하다. 왜곡된 가격 신호는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탄소 감축이 지연될수록, 재생에너지 전환이 늦어질수록,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지금의 요금 안정은 미래의 요금 폭탄을 유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탄소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면서도, 그 재원이 에너지 전환과 취약계층 보호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기후환경요금이 진정한 기후 대응 재원이라면, 그 사용처와 효과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단순한 비용 이전일 뿐이다.


전력 부문에서 ‘오염자 부담 원칙’을 회복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발전사가 배출한 탄소 비용은 발전사가 부담해야 하며, 그 부담이 전력 믹스 전환과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배출권 비용의 자동 보전 구조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탄소 비용이 발전사의 재무제표에 직접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함께 소비자에게는 투명한 정보와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전력 요금에 포함된 탄소 비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발전원에서 발생했는지 알 수 있어야 하며, 저탄소 전력을 선택할수록 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것이 시장을 통한 감축 유도의 시작이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탄소 비용을 숨기고, 책임을 흐리는 정책은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가 오염하고 있는지,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기후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전기요금 뒤에 숨은 탄소 비용을 더 이상 국민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오염자 부담 원칙’은 선언이 아니라 작동하는 규칙이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책임 있는 국가는 원칙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염 비용을 발생 주체에게 명확히 귀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탄소 감축과 산업 전환을 동시에 이루는 최소한의 출발선이다.


한국남부발전에서 운영하는 하동화력발전소 야경. 사진_황기모, 공유마당
한국남부발전에서 운영하는 하동화력발전소 야경. 사진_황기모,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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