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특별법 | 기후 재난 대책인가, 난개발 특혜인가—산불특별법의 엇갈린 두 얼굴
- Dhandh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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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1 김복연 기자
산불특별법은 기후변화로 대형화된 산불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제정됐지만, 실제 조문은 개발 특례와 행정 권한 이양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피해자 지원 조항은 대부분 시행령으로 위임된 반면,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인허가 간주·환경영향평가 단축 등은 법률에 직접 명시됐다.이로 인해 법이 복구보다 개발을 제도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환경단체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만든 새로운 유형의 재난
2025년 3월 21일, 경북 울진에서 시작된 산불은 청송과 밀양, 울산으로 번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월 30일 “주불이 완전히 진화됐다”고 발표했다. 약 열흘 동안 이어진 불길은 산림 2만ha 이상을 태웠고, 피해 규모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이었다. 산림청은 「2025 산불 피해 및 복구 보고서」에서 “고온·건조한 기후와 단일수종 위주의 산림 구조가 대형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산불은 더 이상 일시적 사고가 아니었다. 기후변화가 상시적인 위험을 만들어 내면서 산불은 ‘사회 재난’을 넘어선 기후 재난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법체계는 여전히 1990년대식 재난 대응 틀에 머물러 있었다. 피해는 광역적이지만, 보상은 주택과 인명 중심의 단기 지원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 제도적 공백이 산불특별법 제정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피해 주민들은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피해가 더 크다”며 실질적인 구제 법안을 요구했다.
입법의 출발 — 피해 회복에서 지역 재건으로

국회는 2025년 상반기 ‘산불피해지원대책특별위원회(이하 산불특위)’를 구성했다. 위원회에는 여야 의원 18명이 참여했고, 피해 지역 의원들이 중심에 섰다. 특위의 공식 목표는 ‘피해자 구제’였지만, 초기부터 ‘지역 재건과 경제 활성화’가 병행 의제로 설정됐다.
특위는 7월부터 9월까지 다섯 차례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총 다섯 건의 의원 발의안을 병합 심사했다. 9월 18일 전체회의에서 대안을 의결했고, 9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법은 공포 즉시 시행되며, 일부 조항은 시행령 제정 후 3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이 특별법은 산불 피해만을 다룬 첫 단일법이다. 그러나 법의 구조 속에는 ‘피해자 구제’와 함께 ‘산림을 통한 지역 개발’의 틀이 동시에 자리했다.
법의 구조 — 선언된 구제, 제도화된 개발
법 제9조는 “국가 등은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재산상 피해를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제10조는 “피해자 등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부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문구로 위임되어 있다. 반면 개발·투자 관련 조항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제33조: 자연휴양림 조성 기준 완화
제41조: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 근거 신설
제48조: 인·허가 의제 규정
제56조: 보전산지 행위 제한 완화 및 경사도·표고 기준 변경 가능
제60조: 환경영향평가 협의 기간 45일, 미통보 시 협의 완료 간주
피해자 구제 조항이 ‘방향과 원칙’을 제시한다면, 개발 관련 조항은 ‘절차와 방법’을 세밀하게 규정한다. 법률 구조상 실행 가능한 조항은 개발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권한 이동 — 산림청에서 지자체로
법은 권한 배분에서도 이전과 다른 방식을 취했다. 제32조는 산림청장의 일부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위임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복구 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한 ‘지방분권형 구조’로 제시됐다. 그러나 권한 이양은 곧 규제 완화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린피스 법무팀은 분석서에서 “지자체가 산림보호구역 해제, 산지 전용, 개발계획 승인 권한을 직접 갖게 되면 중앙정부의 환경 통제 장치가 약화된다”고 지적했다. 산림청과 경상북도는 “피해 지역 여건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복구를 추진해야 한다”며 행정 효율성을 강조했다. 즉, 중앙의 ‘규제 체계’를 지방의 ‘복구 속도’로 대체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주민 간담회와 절차적 논란
입법 과정에서 피해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가 참여한 간담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 주민들은 주택·산림 복구와 생계 회복 지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부 단체는 “간담회 당시 설명되지 않았던 개발특례 조항이 최종안에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언론 인터뷰와 단체 성명에서 확인되지만, 공식 회의록에서는 해당 발언이 명확히 기록되지는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병합 심사 과정에서 여러 안이 통합되며 조항이 추가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절차적 논란은 여전히 검증이 필요한 상태다.
법 통과 이후 — 복구보다 개발이 먼저 움직였다
법 통과 직후 경상북도는 ‘산불 피해 지역 재창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청송·영덕 등지를 중심으로 리조트, 골프장, 산림휴양단지, 스마트팜 단지 등을 조성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산불 피해를 지역 성장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 보상 기준과 지원 절차가 마련되기 전 대규모 개발 구상이 먼저 공개되면서 비판이 이어졌다. 환경단체는 “법의 첫 적용이 피해자 구제가 아니라 개발 로드맵이라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상황은 법의 우선순위가 ‘피해 회복’보다 ‘지역 개발’에 맞춰진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았다.
위험목 제거와 복구 절차 — 법이 규정한 행정의 폭
법 제30조는 ‘위험목 제거사업 지원’을 규정하며, 산림 소유자 동의 없이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되 사업 시행 후 즉시 통지하면 동의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했다. 즉, 법적으로는 사전 동의가 면제되고, 사후 통지로 ‘동의 간주’되는 구조다.
정부는 “산사태 위험목이나 화재 잔존목을 신속히 제거하기 위한 행정 절차”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법문에는 ‘위험목’의 정의나 판단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단서도 없기 때문에, 지자체나 시행 기관이 자체 판단으로 위험목을 지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환경단체는 이 점을 가장 우려한다. “위험목 지정 기준이 불분명하면, 사실상 벌채의 근거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산불 피해 이후 복구 과정에서 ‘위험목 제거’ 명목으로 넓은 산림 구역이 일괄 벌채되는 사례가 과거에도 반복되어 왔다. 그린피스 법무팀은 법률 검토서에서 “위험목 기준이 법률상 비어 있어 임의적 지정이 가능하며, 이는 대규모 벌채와 산림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 조항은 산사태 예방이나 복구의 명분으로 시행되더라도, ‘어디까지가 위험목인가’를 정하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사유림 내 강제적 벌채를 정당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복구 절차와 관련한 행정 권한은 넓게 설정된 반면, 피해자 참여 절차나 보상 기준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시민사회의 반발 — “재난을 기회로 둔갑시켰다”
10월 10일, 80여 개 환경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촉구했으나, 21일 대통령실은 “국무회의에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의 공포안이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자, 환경단체들은 즉각 집단행동에 나섰다.
그린피스, 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를 비롯한 전국 116개 시민·환경단체는 22일 오전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성명에서 “산불특별법이 보호구역 해제 및 민간 개발을 허용하는 독소 조항을 그대로 안고 있다”며 대통령 거부권 미행사를 비판하고 난개발을 차단할 시행령 제정과 법 개정을 촉구했다. 산불 피해 복원이 아닌 산림 난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여론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제도적 구조 — 피해자 구제는 선언, 개발은 실행
법 전체를 보면, 피해자 구제(제9~21조)는 대부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되어 있어 시행령 단계에서 구체화될 사항이 많다. 반면 개발 관련 조항(제33~61조)은 사업 지정, 인허가 간주, 환경 절차 단축 등 즉시 집행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분 | 피해자 구제 조항 | 개발·특례 조항 |
조문 수 | 9~21조 (13개 조항) | 33~61조 (29개 조항) |
세부 내용 | 지원 원칙·의견 수렴·보상 방향 | 투자선도지구 지정, 인허가 의제, 평가 단축 등 |
집행 수준 | 시행령 위임 | 법률 직접 규정 |
이 구조는 ‘피해 구제보다 개발의 실행을 더 충실히 제도화했다’는 평가의 근거가 된다. 법이 균형을 잃었다기보다, 시행 가능한 조항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다.
재난 이후, 법은 누구의 복구를 우선하는가
산불특별법은 이제 대통령 공포만을 남겨 두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피해 구제를 내세웠던 명분과 달리, 법의 실행 틀은 개발과 투자를 정밀히 설계해 놓았다. 정부는 법을 수용했지만, 시민사회는 이 법을 여전히 “막개발법”이라 부른다. 법이 피해자 복구의 도구로 남을지, 아니면 산림을 경제 자원화하는 통로로 작동할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산불특별법은 통과됐지만, 재난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법이 누구의 복구를 우선할 지는 이제 시행령 과 집행 현장에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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