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현의 무방비 생태계 | ③ 농업생물다양성 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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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3 오충현
농업생물다양성 보전 정책, 농업생물다양성 보전의 중요성과 관련 국가 정책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농업생태계의 균형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다양한 생물종 보전이 필요하며, 국가농업유산제도를 통해 이를 보호하고자 한다.

오충현 교수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환경생태학자로, 도시와 자연의 접점을 회복하는 생태복원 전문가이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에서 환경 보전 업무를 수행한 뒤 2004년부터 동국대학교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도시생태계 복원, 보호지역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생태계서비스 증진이며, 생태복원공학, 환경영향평가, 환경계획학 등 실천적 과목을 강의한다. 국립공원위원회, 생물권보전지역 한국위원회, 산림복지위원회 등 공공 위원회 활동도 활발히 해 왔다. 2021년 한국환경생태학회 제18대 회장, 2022년 한국사찰림연구소 제6대 소장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환경생태학』, 『자연자원의 이해』, 『산림과학 개론』, 『숲과 삶』 등이 있다. 「새만금 농생명용지 생태계서비스 연구」 등 다수의 정책·계획형 논문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태 기반 도시를 제시하고 있다.
생물다양성과 그 보전의 의미
생물다양성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그들이 서식하는 생태계, 그리고 그들이 지닌 유전자의 다양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한 생물 종의 수를 넘어, 종 내 개체들의 유전적 차이, 다양한 종들이 이루는 복잡한 생태계, 그리고 이러한 생태계들이 지구 전체에 걸쳐 나타내는 다양함을 의미한다.
생물다양성 개념은 1980년대 E. Wison과 같은 생태학자들이 발표한 개념이다. 하지만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 환경 개발 회의(UNCED)에서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이 채택되면서 생물다양성은 국제적인 주요 환경 이슈로 부각되었다. 생물다양성은 지구 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자산이다.
농업생물다양성
농업생물다양성이란 생물다양성의 한 종류로서 식량 및 농업 생산과 관련된 생물 종과 그들의 유전적 변이, 그리고 이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재배되는 작물이나 사육되는 가축의 종류뿐만 아니라, 토양 미생물, 꽃가루 전달 곤충, 천적, 그리고 농경지 주변의 야생 생물까지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
농업생물다양성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작물 다양성은 다양한 품종의 작물, 전통 품종, 야생 친척종 등을 의미한다. 가축 다양성은 다양한 품종의 가축, 해당 지역의 고유종 가축 등을 의미한다 농업과 관련된 생물다양성은 이외에도 유기물 분해, 영양분 순환에 기여하는 미생물, 곰팡이, 지렁이 등과 같은 토양생물, 꽃가루 전달에 필수적인 꿀벌, 나비, 새 등과 같은 수분(꽃가루받이) 매개자, 해충 방제에 도움을 주는 곤충, 조류 등의 천적, 생태계 균형 유지에 기여하는 다양한 식물이나 동물과 같은 농경지 주변 야생 생물을 의미한다.
농업생물다양성 보전의 의미
농업생물다양성 보전은 지속가능한 농업과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식량 안보 확보, 생태계 서비스 유지,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 등의 측면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식량 안보 강화 차원에서 다양한 작물과 가축 품종은 특정 환경 조건이나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농업생물다양성의 확보는 기후변화와 같이 예측 불가능한 환경 변화에 대한 농업 시스템의 회복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생태계 서비스 유지 및 증진 차원에서 농업생물다양성 확보는 토양 비옥도 유지, 수질 정화, 병충해의 자연 방제, 꽃가루 전달 등 중요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 측면에서 농업생물다양성 증진은 다양한 작물들이 각기 다양한 기후 환경 조건에 적응하면서, 특정 작물(예: 콩과 작물)은 토양 내 탄소 격리에 기여하여 기후변화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
농업생물다양성 증진을 통해 다양한 생물 종이 존재하는 농업 생태계는 외부 충격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고, 특정 종의 감소나 소실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어, 농업 생태계의 안정성 증진시킬 수 있다. 또한 전통적인 작물과 가축 품종은 지역 사회의 문화, 전통, 지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 문화적 가치 보존에도 큰 도움을 준다.
아울러 농업생물다양성 보전은 현재는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야생종이나 전통 품종이 미래에는 중요한 식량 자원이나 유전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미래 세대를 위한 자원 확보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또한 특색 있는 전통 품종이나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 농촌 관광 활성화 등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농업생물다양성 보전은 단순히 생물 종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식량 안보, 건강, 환경, 문화, 그리고 미래까지 보장하는 중요한 대책이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농업 생태계 내 다양한 생물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들을 보호하고 현명하게 이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업유산' 지정의 의미와 역사
세계농업유산(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 제도는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진행된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 10주년을 기념하여,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세계환경경회의에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농업 시스템과 그와 관련된 생물다양성, 독특한 농업 경관, 그리고 문화적 유산을 보전하고 이를 미래 세대에 계승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세계농업유산 제도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제도와 유사하지만, 자연 및 문화 유산이 원형 보존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농업유산은 사회적·생태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살아있는 유산'인 농업유산을 발굴하고, 지속가능한 개발과 활용을 통한 '동적 보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제도 도입 이후, FAO는 각국의 추천을 받아 서류 심사와 현장 조사를 거쳐 세계적으로 중요하고 독특한 농업 시스템을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2005년 중국의 '벼-물고기 복합 농업 시스템'이 세계 최초로 지정된 이후,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농업 시스템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2014년에 완도군 청산도 구들장논과 제주 밭담이 최초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하동 전통 차 농업 시스템, 금산 전통 인삼 농업 시스템, 담양 대나무밭 농업 시스템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는 세계농업유산제도외에도 국가농업유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가농업유산 제도는 2012년에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주도로 도입되었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해당 지역의 환경, 사회, 풍습 등에 적응하며 형성되어 온 고유한 농업 시스템과 관련된 유·무형의 농업자원 중 보전할 가치가 있는 자원을 국가 차원에서 지정·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 농업유산 지정제도 도입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작용했다.
먼저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제도의 영향이 있었다. 2002년 FAO에서 시작된 세계농업유산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고, 우리나라의 가치 있는 농업유산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보전·활용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다음으로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 증진이 필요하였다. 식량 생산 기능 외에도 환경 보전, 경관 유지, 전통문화 계승 등 농업·농촌이 가지는 다양한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농촌 공동체 활성화가 필요하였다. 국가농업유산 지정을 통해 지역 주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관련 산업 육성 및 관광 자원화 등을 통해 농촌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국가농업유산은 2015년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지역 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농업유산의 보전 및 활용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제도 운영의 안정성이 확보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국가농업유산 지정은 2013년에 이루어졌으며, 완도 청산도 구들장논과 제주 밭담이 각각 제1, 2호로 지정되었다. 2025년 현재까지 지정된 우리나라의 국가농업유산은 총 19개소이다. 이는 각 지역의 독특한 농업 시스템과 농업생물다양성성, 전통 농업 기술, 아름다운 농업 경관,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역사 및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산이다. 지정된 국가농업유산은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통 작물 재배 및 특산물 생산: 구례 산수유 농업, 담양 대나무밭, 금산 인삼 농업, 하동 전통 차 농업, 보성 전통 차 농업, 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 완주 생강 전통 농업, 상주 전통 곶감 농업, 부안 유유동 양잠 농업, 창원 단감농업 등
독특한 농업 시설 및 환경: 완도 청산도 구들장논, 제주 밭담, 의성 전통 수리 농업, 고성 해안지역 둠벙 관개 시스템 등
지역 고유의 농업 방식: 울진 금강송 산지 농업, 울릉 화산섬 밭 농업 등
특히 국가농업유산 중 완도 청산도 구들장논, 제주 밭담, 담양 대나무밭, 하동 전통 차 농업, 금산 전통 인삼 농업 5개소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되어 국제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농업유산과 같은 농업유산 지정은 단순히 특정 농업 시스템을 목록에 올리는 것을 넘어 생물다양성 보전, 전통지식의 계승,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 식량안보 유진 등에 있어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먼저, 유산의 가치 인정 및 보존 측면에서 수 세대에 걸쳐 지역의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며 발전해 온 전통 농업 시스템의 역사적, 문화적, 생태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이를 보존하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생물다양성 보전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농업 방식은 높은 수준의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다양한 작물 품종, 가축 품종, 그리고 농경지 주변의 야생 생물들을 보호함으로써 농업 생태계의 건강성과 회복력을 증진한다. 또한 오랜 경험과 지혜가 담긴 전통 농업 기술과 지식을 기록하고 보존하며, 이를 현대 농업에 접목하고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전통 지식 및 기술의 계승을 기대할 수 있다.
농업유산 지정은 전 세계적으로 농촌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과 지역소멸문제를 극복하는 방안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농업유산 지정은 해당 지역의 관광 활성화, 농산물 브랜드 가치 향상 등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고,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여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한다. 전통 농업 시스템은 지역의 특성에 맞춰 개발되어 왔기 때문에,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높고 안정적인 식량 생산과 지역 주민들의 생계 유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화적으로 농업유산 지정은 농업유산이 가지는 농업,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중요한 가치를 발굴하고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농업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국내외 협력 측면에서 농업유산은 국내외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다른 유산 지역과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며 협력을 강화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농업유산 지정은 이와 같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농업의 길을 모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한 농업 방식을 넘어, 인류의 지혜와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보여준다고 하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 농업유산제도의 한계
우리나라 농업유산제도는 세계농업유산 5개소, 국가농업유산 19개소 등 외형적으로는 짧은 기간 내 큰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실제 제도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아직도 많은 개선 및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 국가 및 세계농업유산은 다른 국가유산과는 달리 이를 보호하는 데 법률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해당 지역 농민이 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다른 농업활동을 해도 이를 강제할 수 없는 법적 한계가 있다. 또한 다른 유산에 비해 예산 및 조직, 인력 등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우리나라 농업유산 제도는 농업 생물다양성 보전을 기본으로 하는 농업유산 보전 목적보다는 이를 통한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지역 개발 촉진이라고 하는 부차적인 목적이 더욱 강하게 추진되고 있다. 농업유산 지정의 근거 법률이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지역 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하는 점이 이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정부의 조직과 예산도 이에 준하여 집행되다 보니, 농업유산 보전을 통한 농업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본래 목적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법률과 정책은 우리나라 농촌의 특징을 잘 반영한 대안일 수는 있지만, 농업유산 보전이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부수적인 효과를 더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와 아쉬움을 가진다.
농업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미래 방향
현재 우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업유산제도는 전세계적으로 추진 중인 생물다양성 보전활동에 있어 매우 시의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 중요한 정책이다. 다만, 이 제도의 당초 목적인 농업 생물다양성 보전보다, 농업유산 지정을 통한 농업인의 삶의질 향상과 지역개발이라고 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우선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먼저 농업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다음으로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발전이 진행될 수 있도록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정부의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농업유산 지정 후 한시적인 지원보다는 실제 농업유산에 해당하는 영농행위를 하는 농민들에게 직불금 등을 통해 경제적인 손실 없이 해당 농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유산(문화재)의 경우 해당 문화유산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경우에만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농업유산과 농업생물다양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인간문화재)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과 같이 농업유산을 유지하고 진행하는 농민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해당 농업유산을 지역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발전의 동기로 사용하는 것은 해당 지자체를 포함한 지역 농민들의 또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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