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⑥ 4대강 재자연화 | 자연복원, 인류가 공유해야 할 새로운 시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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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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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31 최민욱 기자
2024년 6월, 유럽연합 27개국이 역사적인 자연복원법을 통과시켰다. 2만5000㎞의 하천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겠다는 이 법안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진 않았다. 1970년대 독일어권에서 시작된 '근자연형 하천공법'이라는 철학적 혁명이 반세기를 거쳐 대륙 전체의 공통 가치로 승화된 결과다. 독일 이자르강 복원에 40년, 네덜란드 '강을 위한 공간' 프로그램에 20년이 걸렸듯이, 진정한 변화는 시민사회의 끈질긴 요구와 과학적 근거, 정치적 리더십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유럽 27개국이 선택한 새로운 시대정신
2024년 6월 17일은 환경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할 날이다. 유럽연합 이사회가 『자연복원법(Nature Restoration Law)』을 최종 승인했다. 27개 회원국 가운데 20개국이 찬성하고 7개국이 기권과 반대를 했지만, 법안은 결국 통과됐다. 이는 단순한 환경 법률 제정을 넘어, 인류와 자연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EU 차원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자연복원법은 2030년까지 유럽의 육상과 해양 면적 중 최소 20%를 복원하고, 2050년까지는 복원이 필요한 모든 생태계를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2만5000㎞에 달하는 하천을 ‘자유 흐름’ 상태로 복원하겠다는 구체적 조항은, 수십 년간 이어진 유럽의 하천 복원 철학이 제도화된 결과로 평가된다. 유럽 생태계의 80% 이상이 열악한 상태에 놓인 현실에서, 27개국이 생태계 복원을 법적 의무로 수용했다는 점은 전례 없는 전환이다.
법안 통과 과정은 쉽지 않았다. 농업계의 반발,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 그리고 표결 연기 등 여러 난관이 있었다. 특히 오스트리아 환경부 장관 레오노어 게베슬러가 막판에 입장을 바꾸며 찬성으로 돌아선 결정은 법안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과정은 환경정책에서 사회 합의가 얼마나 복잡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과학적 근거, 시민사회의 압력, 그리고 정치 리더십이 결합될 경우 제도 전환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자연복원법의 제정은 20세기의 성장 중심 패러다임에서 21세기의 생태적 지속가능성 중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대륙 규모의 자연복원법으로는 세계 최초이며, 향후 다른 지역과 국가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각 회원국이 2026년까지 국가별 복원 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조항은, 법적 구속력을 넘어 실질 이행을 담보하는 핵심 기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1970년대 독일어권에서 시작된 철학적 혁명
유럽의 하천 복원 철학은 1970년대 독일어권 국가들에서 시작된 ‘근자연형 하천공법(Naturnaher Wasserbau)’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난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서 출발했다. 전통적인 하천공학이 콘크리트와 금속 등 인공 자재를 통해 하천을 통제하려 했던 데 비해, 근자연형 하천공법은 자연 재료와 생물학적 기법을 활용해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스위스에서는 이 흐름을 ‘철학적 전환(Philosophiewandel)’으로 규정했다. 1970년대까지 기술관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스위스의 홍수 방어 정책은, 이후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통합 접근으로 변화했다. 이 전환의 핵심은 홍수 방어와 생태 보전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데 있었고, 하천을 ‘이용’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어졌다.
근자연형 하천공법의 기술은 단계적으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개비온(gabion), 나무 말뚝, 나무 다발 등을 활용한 호안공사와 식생 도입에 중점을 두었다. 이후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돌 붓기 방식과 같은 유연한 호안공법이 도입되었고, 하천의 교란 주기를 반영한 다양한 식생 배치로 자연성을 더욱 높였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자연의 자기조절 능력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했다.
기존의 인위적 통제 방식이 되레 하천의 기능을 저해하고 부작용을 낳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하천의 자연 역학과 자기형성 능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과 기술의 흐름이 전환됐다. 철학적 전환의 본질은, 자연을 지배 가능한 대상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 자연과 협력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는 데 있다. 독일어권에서 출발한 이러한 변화는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며 유럽 하천 복원의 근간이 되었다.
시민사회가 만들어 낸 40년의 변화
하천 복원 운동은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구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부터 1985년까지 시민단체와 환경 로비스트들은 자연형 하천 복원을 지속해서 요구하며 정치권에 압력을 가했다. 초기에는 뚜렷한 성과가 없었지만, 1985년 이후 점차 정치적 수용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하천 복원이 단지 기술 과제가 아니라 사회 합의의 결과임을 보여 준다.
독일 뮌헨의 이자르강 복원 사례는 이러한 과정을 대표하는 상징 사례다. 1970년에 최초의 복원 계획이 수립됐지만, 실제 시행까지는 40년 이상이 걸렸다. 이 긴 시간 동안 핵심 역할을 한 것은 ‘이자르 동맹(Isar-Alliance)’이라는 시민사회 연대체였다. 이자르강 복원 프로젝트는 △홍수 방지 △생태 복원 △시민의 여가 공간 확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며,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약 11년에 걸쳐 추진됐다. 총 3500만 유로의 예산이 투입되어 약 8㎞의 하천이 복원되었다.
이 사업의 핵심 성공 요인은 시민 참여와 이해관계자 간의 협의였다. 수십 년에 걸쳐 시민사회가 지속해 온 요구, 전문가들이 제공한 과학 근거, 그리고 이를 점진적으로 수용한 정치권의 조합이 합의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협의 과정을 통해, 홍수 방지와 자연 보전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복원 방안이 도출되었다.
1970년대 환경 운동의 성장과 함께 시민들의 환경 인식이 급격히 높아졌고, 이것이 정책 변화를 견인하는 동력이 되었다. 당시 독일 내 하천의 98%가 직강화된 인공 구조물로 변형된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연 상태의 하천을 회복하기를 강하게 희망했다. 이처럼 시민사회의 끈질긴 요구는 결국 정치권을 움직였고, 전문가 집단은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이자르강 복원 사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환경 변화가 시민의 참여와 요구에서 비롯된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물관리지침 WFD, 유럽 통합의 제도적 기반
Water is not a commercial product like any other but, rather, a heritage which must be protected, defended and treated as such. (Directive 2000/60/EC, Recital 1)
1970년대 시작된 하천 관리의 철학적 전환은, 2000년 유럽연합(EU)의 『물관리지침(Water Framework Directive)』을 통해 유럽 전체의 제도적 기반으로 확장되었다. 이 지침은 “물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생명과 공공 이익의 기반이다”이라는 선언으로 시작되며, 물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공공재로 간주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상징한다. 지침의 핵심은 유역 단위의 통합 접근과 생태계 기반 하천 관리로, 이는 인간 중심의 하천 정책에서 생태계 중심 정책으로의 구조 전환이다.
지침 이행 과정에서 EU 회원국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 모델을 발전시켰다. 독일은 지역사회 기반 접근, 유역협회 모델, 주정부 주도 방식 등 복수의 실행 구조를 실험했다. 특히 주목할 사례는 ‘엠셔 퓨처 마스터플랜(Emscher Future Master Plan)’이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이 계획은 엠셔강 유역에서 부문 간·지자체 간 협력을 바탕으로 하천 복원을 통합해서 추진한 것이다. 이 마스터플랜은 상향식 접근으로 설계되었으며, 2년에 걸쳐 진행된 지역 간 대화와 이해관계자 참여를 통해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광범위한 사회적 협의와 조정 과정은 계획의 수용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네덜란드의 ‘강을 위한 공간(Room for the River)’ 프로그램 역시 물관리지침의 철학을 반영한 대표 사례다. 1993년과 1995년 대홍수 이후 시작되어,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총 23억 유로가 투입된 이 프로그램은 34개 프로젝트를 통해 홍수 방지와 생태 복원을 통합한 복합적 접근을 실현했다.
이처럼 물관리지침은 EU 차원의 하천 정책을 조화롭게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틀이 되었으며, 국가 간 경험과 노하우가 상호 공유되고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과학적 데이터, 시민 참여, 정치적 리더십이 결합된 이 경험은 2024년 제정된 『자연복원법』의 정책적 기반이자 실행 역량의 축적이기도 했다.
과학과 경제가 뒷받침한 자연복원의 논리

2024년 『자연복원법(Nature Restoration Law)』의 통과는 반세기 동안 축적된 과학적 근거와 정책 경험의 결과다. 유럽위원회는 자연 복원에 1유로를 투자할 때 4~38유로의 편익이 발생한다는 분석을 통해 생태 논리뿐 아니라 경제적 타당성도 입증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위기가 상호 연관된 복합 위기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연 복원은 더 이상 단순한 환경 보호 차원이 아닌, 기후 대응과 인류 생존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하천 재자연화의 경제 효과는 다양한 사례에서 확인되었다. 독일의 이자르강 복원은 3500만 유로의 투자로 △홍수 방지 △생태계 복원 △시민 여가 공간 확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했다. 네덜란드의 ‘강을 위한 공간(Room for the River)’ 프로그램은 23억 유로 규모의 투자로 홍수 위험을 실제로 줄이면서도 생태계 회복을 병행했다. 이러한 복합적 편익은 하천 복원이 단일 목적 사업이 아니라 다기능 기반의 공공 투자임을 보여 준다.
과학적 연구는 하천 재자연화가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를 정량화해서 제시해 왔다. 자연 상태의 하천은 탄소 저장, 수질 정화, 생물서식지 제공, 미기후 조절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한 기상 현상이 빈발하는 오늘날, 인공 구조물보다 자연 범람원이 더 효과가 있고 지속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의 정책 우선순위가 급상승했다.
경제학의 분석 역시 자연복원을 단순 비용이 아닌 ‘수익성 있는 투자’로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생태계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경제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확산되면서, 자연 복원은 재정 지출이 아닌 미래 수익의 창출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과학과 경제가 결합된 이 새로운 인식 구조는 자연복원을 이상주의적 슬로건이 아닌, 정책 실행 가능한 현실 전략으로 전환시켰다. 이것이 바로 유럽 27개국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한국이 참고해야 할 유럽의 합의된 가치
유럽의 경험은 한국의 하천 정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4대강 사업 이후 하천 복원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 유럽이 50년에 걸쳐 축적해 온 사회적 합의의 과정과 과학적 근거 기반의 정책 추진은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시민 참여에 기반한 투명한 의사결정, 홍수 방지와 생태 복원을 통합한 전략,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 실행은 한국에도 적용 가능한 핵심 교훈이다.
한국의 하천 정책은 여전히 단기적 관점과 중앙집중 결정 구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유럽의 사례는 실질적 전환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과학적 자료, 시민사회의 지속적 참여, 정치적 리더십의 조화로운 결합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독일 이자르강 복원에 걸린 40년, 네덜란드 ‘강을 위한 공간’ 프로그램의 20년은 인내를 바탕으로 한 사회 합의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2024년 제정된 『자연복원법』은 이제 21세기 인류가 공유해야 할 새로운 시대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라는 전 지구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 자연 복원은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정책 과제다. 유럽의 경험은 이러한 전환이 가능하다는 실증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 과정이 결코 단순하거나 빠르지 않다는 현실도 함께 보여 준다.
세계 각국이 하천을 재자연화하려는 이유는 단지 환경 보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의 일환이다. 한국 역시 이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단기 성과를 넘어선 장기 전략, 그리고 사회 전체의 참여와 책임을 전제로 한 제도 재설계가 필요하다.








강을 복원하는 데는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군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