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훈의 도넛 | ①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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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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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8 문태훈
[편집자 주] 우리 앞에 기후위기, 좋은 일자리 감소,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사회정치적 갈등 심화, 초저출산 등 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다. 필자인 문태훈 교수는 이 문제들이 시장경제 시스템의 무한경쟁에 원인이 있으며, 이런 시장근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의 전환은 어렵다고 말한다.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을 잘 설명해 주는 도넛 경제학에서는,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 간 균형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다양한 정책이 시도될 모양이다. 이 칼럼은 정책학의 관점에서 새 정부의 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학문 성과, 사회 핫이슈, 생활 변화 등 자유롭게 글감으로 골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문태훈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 캠퍼스에서 1992년 행정 및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정연구원에서 1994년 1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95년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로 부임해 2023년까지 재직했다. 정년 퇴직 후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로 대통령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UN SDSN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생태전환지원재단 이사, 환경정의 공동대표, 산과자연의 친구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지역개발학회장(2016), 한국환경정책학회장(2020), 한국시스템다이내믹스 학회장(2003), 서울시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2015), 환경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2018)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지방자치』(2022, 공저), 『시스템 사고로 본 지속가능한 도시』(2007), 『환경정책론』(1997)이 있으며, 「도시별 지속가능성 비교연구」, 「지방정부의 환경행정 역량 평가모델」, 「기후정책과 부문별 영향 분석」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정량적 분석과 시스템 사고를 바탕으로 한 환경정책 이론은 지역 정책 수립과 학술적 토대에 모두 기여하고 있다.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기술 혁신은 소득과 자산 격차를 더 크게 한다
하루 8시간 일하면 사람들이 필요한 핀을 모두 만들던 사회가 기술 발전으로 4시간만 일하면 필요한 핀을 다 만들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4시간 일하고 4시간 늘어난 여가 시간에 자신과 가족과 지인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역량을 계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것이다. 개개인의 역량이 늘어난 사회는 집단적 역량의 발전으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치열한 경쟁으로 공장들 반은 파산하고, 나머지 남은 공장에서 필요한 핀을 모두 생산하게 될 것이다. 핀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반은 과잉 노동에 시달리고, 나머지 반은 비자발적인 여유시간을 가지는 실업 상태가 될 것이다. 현재의 경제성장 모델과 시장구조 하에서 무한 성장은 무한 경쟁을 낳는다.
현재의 시장경제 시스템은 소비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생산과 소비가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고,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소비에 기반한 지위 경쟁은 계속 더 새로운, 더 차별화된 상품 소비로 확대 재생산된다. 기술 혁신은 거대 자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소득 분배는 노동 분배율이 자본 분배율보다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양자 간의 소득과 자산 격차는 점차 더 커지고 있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1주일이 걸리던 일을 1시간에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일은 더 많아지고 여유시간은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은 발전하고, GDP는 올라가고, 수출은 증가하고 있는데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가고, 삶은 왜 이리 점점 더 바빠지고 팍팍해지는지 묻는다.
시장근본주의, 소비와 생산방식을 그대로 둔 채, 기후위기조차 경제성장의 기회로 본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시스템은 과연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이 시스템을 위해 있는 것인가? 가난과 불평등을 해소한다고 믿었던 경제성장이 이제는 문제를 만들고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변하고 있다. 시장근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고전경제학에서 신고전경제학으로,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역자유화를 기반으로 하는 승자 독식과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유무역이라는 무한경쟁에 직면한 생산자들은 최고의 생산성을 가진 다국적 기업이나 거대 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다. 그 틈에서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삶은 더 팍팍해지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성장방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는 여러 문제들—기후위기, 좋은 일자리 감소, 소득/자산 격차의 확대, 사회정치적 갈등의 심화, 초저출산율 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시장근본주의, 소비와 생산방식은 그대로 둔 채 기후위기 완화,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기후위기조차 또 다른 경제성장의 기회로 본다. “집에 불이 났는데도 어른들은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돈 벌 생각만 한다”는 그레타 툰베리의 말은 촌철살인의 말이다. 기후변화와 자연 생태계의 훼손이 만들어 내는 악순환의 고리는 생명과 자산과 문명에 대한 위험도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지속가능발전, 동태적 균형, 정상상태의 경제로 거대한 전환을 시작해야
이런 문제들을 완화시키려면 무한 경제성장 모델은 이제 지속가능발전, 동태적 균형, 정상상태의 경제로 거대한 전환을 시작하여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을 지켜 주는 기본수요 이상의 발전, 그러나 생태적 한계의 범위 내에서 적정한 발전을 위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안전하고도 풍요로운 세계를 만들자는 “도넛 경제학”도 주장되고 있다.
소비자는 지위경쟁과 소비에 중독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수단가치로 보는 성장이라면,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희미해진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성장하고 발전하는가?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은 어떤 나라와 세상인가? 신자유주의 성장모델은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해 왔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 부족, 소득과 자산구조의 양극화, 저출산, 사회적 정치적 갈등의 심화 등 현재의 여러 난제들은 그간의 경제성장 모델과는 다른 발전모델로의 변화가 필요함을 지속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새 정부 출범, K-지속가능발전으로 전환할 기회의 창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안적 발전모델로 제시된 것이 바로 유엔이 1987년부터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는 “환경적으로 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ESSD)” 모델이다.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은 2015년 유엔에서 국제사회의 의결로 더 구체화되어 사람, 지구, 번영, 평화, 협력에 기반하는 발전모델로 17개의 목표와 169개의 세부목표로 제시되었다. 우리나라도 유엔의 새로운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용하여 2018년 12월 K-지속가능발전모델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과 성장 우선 정책으로 한국의 지속가능발전 수준은 매우 취약하다. 2024년 UN 지속가능발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유엔 회원국 167개 국가 중 77.3점으로 33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정부의 의지와 노력 평가부문에서는 55.1점으로 54위였다. 세계 6대 무역대국이라는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비교하여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였다. K-지속가능발전으로 전환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에 대통령의 정책적 관심을 높이고 새로운 국정 운영의 기회로 삼아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난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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