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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의 지구와 정치 | 산업혁명은 누구를 위한 진보였는가

2025-05-23 윤효원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와 오늘의 계급문제를 다시 읽다. 산업혁명 시대 영국 북부 맨체스터의 노동자 고통을 기록한 엥겔스의 저작을 소개하고, 현대 AI 시대의 '열악 원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진보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글이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문명의 도시, 맨체스터의 골목길에서


1842년, 한 젊은 독일인이 영국 북부 맨체스터에 도착했다. 그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엥겔스. 그는 공장주 아버지의 사업차 영국에 머물게 되었지만, 곧 기계의 속도와 돈의 흐름보다 더 빠른 한 가지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이었다.

도시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연과 기계음으로 가득했고, 하늘은 늘 회색빛이었다. 그러나 엥겔스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공장도 아니고, 자본가의 저택도 아니었다.

그가 바라본 곳은 슬럼가였다. 아이들은 신발 없이 쓰레기 더미에서 놀고 있었고, 노동자 가족은 곰팡이 핀 지하방에서 뒹굴며 기침을 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인간이 짐승처럼 살고 있다는 말은 이곳에서 진실이 된다.”

그는 이 현실을 이론의 언어가 아닌, 목격자의 언어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845년에 출간된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였다. 이 책은 단지 사회의 그림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계급 구조의 고통이 어떻게 제도와 사상으로 반복되는가를 보여 준 보고서였다.


신구빈법: 가난한 사람을 벌주는 국가


그가 본 참혹한 현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1834년, 영국은 신구빈법(New Poor Law)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한 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가난한 실업자는 일하는 노동자보다 더 고통스러워야만 국가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른바 ‘열악 원칙(less eligibility)’이라 불린 이 원칙은 단순하지만 잔인했다.

이제 가난한 이들은 집에서 보조금을 받는 재택 구제(outdoor relief)를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국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선 구빈원(workhouse)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그곳은 보호시설이 아니라 공장 없는 감옥이었다. 하루 12~14시간의 중노동, 공동 침상, 빵죽 한 그릇, 가족과의 분리, 외부와의 단절. 그곳은 가난이 죄가 되는 제도적 지옥이었다.

엥겔스는 이 제도를 “노동자를 굶주림과 수치심을 통해 자본에 복종시키는 통치 장치”라고 규정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한 자에게 죄수처럼 살도록 강요한다”고 썼다.


멜서스 인구론과 ‘복지는 도덕적 타락’이라는 거짓말


그런 법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이면에는 토머스 멜서스(Thomas Malthus)라는 경제학자의 이론이 있었다. 그는 1798년에 출판된 『인구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번식하지만, 식량은 그렇게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기근과 질병, 전쟁은 불가피하며, 이는 신이 부여한 자연적 억제 수단이다.”

멜서스는 복지를 위험한 유혹으로 보았다. “빈민에게 자비를 베풀면, 그들은 번식하고, 사회는 붕괴한다.” 그의 이론은 당시 지배계급에게 너무나 쓸모 있는 도구였다. 복지를 축소하면서도 도덕과 과학을 들먹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이 사상을 “자본주의의 통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멜서스는 빈곤을 구조가 아닌 개인의 도덕성 탓으로 돌리며, 체제의 폭력을 정당화한 자”였다. 복지는 선택이 아니라, 계급을 관리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이름으로


1842년, 영국 의회는 어린이 고용위원회(Children’s Employment Commission)를 구성해, 광산과 공장에서 일하는 아동과 여성의 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6살 아이가 14시간 동안 갱도를 기어 다니며 석탄을 끌고, 바짓가랑이만 입은 소녀가 남자들 틈에서 일하며 성적 농담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글도 읽을 줄 몰랐고,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엥겔스는 이 보고서를 읽고 썼다. “이 고통은 통계가 아니라 사람의 이름으로 남아야 한다.”

그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서 노동자의 집 내부 구조, 음식 냄새, 먼지 쌓인 이불까지 묘사했다. 단지 비참함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 고통이 예외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조건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석탄을 가득 실은 차를 밀고 가는 어린이와 여성 노동자들. 1853년. 사진_위키커먼즈
석탄을 가득 실은 차를 밀고 가는 어린이와 여성 노동자들. 1853년. 사진_위키커먼즈

러다이트: 기계를 부수며 인간을 지키려 했던 이들


엥겔스가 영국에 도착하기 전, 이미 노동자들의 저항은 시작되고 있었다. 1810년대부터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전개되었다. 이들은 기계 도입으로 일자리를 빼앗긴 방직공 장인들이었고, 밤마다 공장을 습격해 기계를 부쉈다.

지배계급은 이들을 ‘무지한 파괴자’로 매도했지만, 그들의 외침은 단순한 기술 공포가 아니었다. “우리를 자르고, 우리를 대체하고, 우리를 기계처럼 만드는 자들에 대한 절규”였다.

엥겔스는 러다이트를 통해 기술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임을 파악하게 된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체제와 구조에 있었다.


자유무역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1830~40년대 또 하나의 큰 논쟁은 곡물법(Corn Laws)이었다. 보수 지주들은 고율의 관세로 외국 곡물 수입을 막아 이익을 지켰고, 자본가 계급은 빵값을 낮추자며 자유무역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반곡물법동맹(Anti-Corn Law League)이다.

겉으로는 서민의 빵값을 낮추겠다는 운동이었지만, 엥겔스는 그 속을 꿰뚫었다. “곡물값을 낮추면 노동자의 임금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은 착취를 재구성할 뿐이다.”

이에 반해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은 노동자들이 주도한 정치 운동이었다. 보통선거권, 비밀투표, 국회의원 보수 지급을 요구한 그들의 외침은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통제할 권리를 되찾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엥겔스는 그 둘을 똑똑히 구분했다. 부르주아의 개혁은 이윤을 위한 것이고,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는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엥겔스와 마르크스: 혁명적 우정의 탄생


엥겔스는 1844년, 파리에서 카를 마르크스를 다시 만난다. 그들은 함께 담배를 피우며, 자신이 본 맨체스터의 골목과 아이들, 공장 안의 노동자들을 이야기했다. 마르크스는 경청했고, 둘은 곧 『독일 이데올로기』를 함께 쓰기 시작했다(이 책은 엥겔스와 마르크스 생전에는 출간되지 못했다. 1932년 소련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그리고 1848년 『공산당 선언』이 세상에 등장했다.

엥겔스는 현장의 증언자였고, 마르크스는 역사의 분석자였다. 그들의 만남은 ‘계급’이라는 단어에 살아 있는 인간의 몸과 언어를 입혔다.


AI 시대에도 반복되는 ‘열악 원칙’


오늘 우리는 더 이상 강제노동수용소 같은 구빈원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구빈원의 원칙은 여전히 살아 있다. '조건부 복지', '성과연동', '노동유연성', '알고리즘 계약' …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너는 충분히 고통받아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이 작동 중이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고, 자동화가 인간을 압박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 기계와 기술을 공포스러워하는 러다이트가 되었고, 다시 실업자와 구직자를 무능력자로 취급해도 된다는 ‘열악 원칙’을 강요받는 구빈원에 서 있다.

노동자는 플랫폼의 '사용자'로 자영업자나 소사장으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데이터와 평점, 비인격화된 프로그래밍에 묶인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 계급이다. 드러나는 형식과 현상은 엥겔스의 시대와 다른 듯 보이지만, 체제와 구조가 작동하는 내용과 본질은 엥겔스의 시대와 사실상 동일하다.


다시 엥겔스를 읽는다는 것


엥겔스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서 "나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처럼 일했다"는 아이의 말을 인용한다. 그 아이는 1842년에 말했지만, 우리는 지금도 비슷한 고백을 듣는다.

“내 하루는 앱이 정한다.”, “나보다 알고리즘이 더 높은 급이다.”

엥겔스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고통을 구조로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는 동정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말했고,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당당한 권리를 말했다.

진보란 무엇인가? 기술과 시장이 우리를 진보시킨다면, 왜 여전히 우리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가? 오는 6.3 대선에서 이른바 ‘진보’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하지만, 우리는 다시금 엥겔스의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진보는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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