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의 전쟁과 기후ㅣ이재명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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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7 정욱식
이번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에 폭탄을 투하한 '한밤의 망치' 작전으로 내연차 2200~2500대가 1년간 배출한 탄소량에 맞먹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GDP 대비 방위비 5%'로 군비 경쟁이 막을 올렸다. 한국이 나서야 한다. 올해 유엔총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써 보았다. '군비 축소를 통해 평화와 기후정의의 실현에 나서자'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전쟁과 학살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어느덧 ‘전쟁과 기후’ 마지막 편에 이르렀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전쟁과 군비경쟁이 기후 환경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전쟁 종식과 군비통제·군축이 기후위기 대응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다. 이 소망은 앞으로도 여전하겠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 종식’을 내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휴전이나 종전에 다다를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휴전 조건과 목표를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극명한 입장 차이만 확인될 뿐, 언제 전쟁이 끝날지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도 한때 휴전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이스라엘의 가지 지구 학살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 협상보다는 무력으로
최근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은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6월 13일에는 이스라엘이 수백기의 전투기와 ‘모사드’ 등 비밀 요원을 동원해 이란의 여러 핵시설을 타격하고 주요 사령관과 핵과학자를 암살했다. 6월 15일에 오만에서 미국과 이란의 협상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권이 협상보다는 무력으로 이란의 핵무장을 저지하겠다며 벌인 만행이다. 기습 공격을 당한 이란도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6월 22일에는 미국이 B-2 전략폭격기에 장착한 14발의 ‘벙커 버스터’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동원해 세 곳의 이란 핵시설을 폭격했다. 트럼프가 이란에 “2주간의 시한”을 주겠다고 말한 다음날 벌인 또 하나의 만행이다. 보복을 다짐한 이란도 여러 발의 미사일을 카타르 미군 기지를 향해 발사했다. 하지만 이는 ‘약속 대련’이었다. 이란이 미사일을 발사하기에 앞서 카타르와 미국에 이를 전달함으로써 요격할 기회를 준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이란은 체면치레를 하면서도 확전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고, 미국도 “감사하다”며 추가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그 직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카타르는 이란을 집중적으로 설득해 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휴전은 ‘깨지기 쉬운 유리알’과도 같다. ‘중동의 앙숙’인 이란과 이스라엘이 언제 또다시 충돌할지 모를 일이다. 또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타결될지도 불분명하다.
'한밤의 망치' 작전이 내뿜은 탄소량, 내연차 2200~2500대가 1년간 배출하는 양
이러한 군사 작전이 내뿜은 탄소량도 어마어마하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한밤의 망치(Midnight hammer)’ 작전에 투입된 B-2 전폭기는 7대로 공중 급유를 받으면서 37시간 동안 미국 본토를 오갔다. 이 작전만으로도 6000~7000톤의 탄소를 배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연자동차 약 2200~2500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분량이다. 이에 더해 이스라엘과 이란이 교전 중에 내뿜은 탄소량과 파괴된 시설과 인프라를 복구하고 군사력을 재건·강화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도 상당할 것이다.
'GDP 대비 방위비 5%' 합의가 가져올 부작용
힘을 통해 휴전을 이끌어 냈다고 한껏 고무된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향했다. 정상회의의 최대 쟁점은 트럼프가 줄곧 요구해 온 ‘GDP 대비 방위비 5% 합의’이다. 트럼프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토의 집단방위 의무를 재고할 수 있다고 압박을 가해왔다. 이 압박과 자주국방의 열망이 강해진 유럽의 분위기가 맞물려 나토 회원국들은 10년 동안 방위비를 국내총생산 대비 5%로 인상하는 데에 대체적인 합의를 이뤘다. 5%라는 수치는 무기·장비와 병력 확충 등 직접적인 군사력 증강에 3.5%를, 사이버안보와 송유관 보호, 그리고 각종 군사 인프라 구축 등 포괄적인 방위 대책에 1.5%를 책정하면서 나온 것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강한 결속을 다진다지만, 주목할 만한 팩트와 부작용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토 정상회의 합의는 군비경쟁 시대의 개막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24년 세계 군사비 현황’에 따르면, 2024년 나토 회원국 전체 방위비는 1조5060억 달러로 전 세계 군비의 55%를 차지했다. 약 1500억 달러를 지출한 러시아의 10배가 넘는다. 나토 비회원국이자 러시아와 전쟁 중에 있는 우크라이나도 약 650억 달러를 군사비로 지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토가 앞으로 10년간 방위비를 GDP 대비 5%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2035년 나토의 방위비는 얼마나 될까?
나토의 2024년 방위비가 GDP 대비 2.2%였고, 향후 10년간 연평균 GDP 성장률을 2%로 가정해서 계산해봤다. 결과는 4조25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왔다. 물론 나토 회원국 모두가 이 정도 수준으로 방위비를 늘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 나토 정상회의의 합의는 전 세계를 향해 본격적인 군비경쟁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동맹국들을 상대로도 GDP 대비 방위비를 5%로 올리라고 압박하고 있고, 중국·러시아·조선 등과 중동의 산유국들 대부분도 군사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부디, 한국이 나서길
유럽연합은 기후위기 대처에 선두에 있었다. 일부 국가와 여러 연구기관들은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군사 분야의 축소가 매우 중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나토를 우습게 아는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을 계기로 유럽 전체가 군비 증강의 열기에 휩싸여 있다. 이로 인해 군비 통제와 군축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뒷걸음질 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쓴 ‘6·25전쟁 75주년을 맞으며’라는 제목의 글을 봤다. 장문의 글에서 나의 ‘원픽’은 “군사력에만 의존해 국가를 지키는 시대는 지났다”라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평화가 곧 경제이자 최선의 안보’라는 취지로 글을 이어갔다. 민주든, 보수든 역대 정부는 ‘힘에 의한 안보’를 추구해 왔기에 이 대통령의 이 메시지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올해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여 달라는 소망을 담아 가상의 이 대통령 연설문을 써본다.
미리 써 본, 유엔총회 이재명 대통령의 연설문
“64년 전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바로 이곳에서 ‘핵무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제는 기후위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기후재앙을 막아야 합니다. 37년 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곳에서 ‘어떤 나라가 불안하다고 느끼면 다른 나라도 결코 안전해질 수 없다’는 취지로 연설하면서 이를 ”신사고“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기후환경이 안전해지지 않으면 인류도 결코 안전해질 수 없는 시대입니다.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기후변화를 그 중심에 둘 수 있는 지구적 차원의 신사고가 절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사고는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비롯한 지구촌의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지도자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바이기도 합니다.
나는 특히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여러 전쟁과 군비경쟁, 그리고 기후위기의 관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 활동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세계 군사비는 민생회복과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소중한 자원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강대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서로를 적이나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국제 협력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구에 있는 나라들이 서로 다투다가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모든 나라가 힘을 합쳐 외계인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의 ‘공동의 적’은 무엇일까요? 누구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기후위기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여 이 시대에 절박하게 요구되는 신사고는 군비 경쟁과 기후위기의 악순환을 끊고 군비 축소를 통해 평화 증진과 기후정의 실현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데 두어야 합니다. 갈수록 거주 불능의 땅이 되어가고 있는 지구를 둘러싼 허망하고도 위험한 경쟁을 멈추고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살리는 데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로 구성된 상임이사국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공식적인 핵보유국이라는 특권을 누려왔습니다. 동시에 상임이사국들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러한 특권과 책임이야말로 상임이사국들이 군비 축소를 통해 평화와 기후정의 실현에 솔선수범할 수 있는 현실적·도덕적 기반이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습니다.
올해 초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께서는 핵 강대국들이 먼저 핵군축을 단행하고 다른 핵보유국들의 동참도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군사강국들이 국방비를 크게 줄여 좋은 곳에 써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제안에 적극 동의하고 지지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께서 초심을 되새기고 이 곳에 계신 많은 지도자들이 호응한다면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나라가 출발 테이프를 끊겠습니다. 먼저 점차적으로 군사 훈련을 줄여 탄소 배출을 감축할 것입니다. 또 국방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해서 절약한 자원을 탄소 중립과 기후변화 적응에 사용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들의 탄소 중립화 노력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도 이에 적극 동참해 지구적 차원의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혹자는 군축이 기후위기 대처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저 역시 군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군축이 탄소 배출 저감, 기후위기 대응 재원 증대, 국제 협력의 본격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여는 바로 ‘희망 만들기’에 있습니다. 냉전 시대에 그나마 불안한 평화라도 지켰던 여러 군축 조약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또 거의 모든 나라가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군축은 불가능하다고들 합니다. 심지어 군축을 제안하거나 추진하는 지도자는 자국에서 여론의 지지도 받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군축의 종말’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절망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후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비관론이 지구촌을 배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가능해 보인다는 군축을 통해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연재를 마칩니다. 곧 새로운 연재 ‘리얼픽션: 더 체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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