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 전환금융과 GX…탈탄소 산업경제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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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0 김사름 기자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은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저탄소 구조로 바뀌는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이다. 일본은 전환국채로, EU는 엄격한 검증 기준으로, 싱가포르는 ‘황색 전환’ 분류로 탈탄소 산업경쟁에 대응하고 있다. 790조 원 기후금융 계획을 내놓은 한국도 이제 GX를 선언이 아닌 자금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790조 기후금융 공급 발표…420조에서 대폭 증가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2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2035년까지 총 790조 원 규모의 기후금융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한 것으로, 기존 2024~2030년 420조 원 계획보다 기간과 규모를 모두 늘린 것이다. 정부는 신규 공급 재원의 50% 이상을 지방에, 7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배분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790조 원 규모의 기후금융 공급과 전환금융 도입 계획을 정부가 내놓으면서, 고탄소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철강·시멘트·화학 같은 탄소 다배출 산업의 설비 효율화와 연료 전환, 기술 개발을 금융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GX(녹색전환)가 산업 전환의 방향이라면, 전환금융은 그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정책의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환금융은 탄소 배출 산업에도 자금을 공급한다는 점이 특징
전환금융은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저탄소 구조로 바뀌는 과정에 필요한 투자를 지원하는 금융을 말한다. 철강·시멘트·화학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이 주요 대상이다.
낡은 설비의 효율을 높이거나 수소·전기 기반 공정으로 전환하는 것, 석탄발전소를 조기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 탄소 감축 기술을 개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지원 분야다. 태양광·풍력처럼 이미 친환경적인 사업에 투자하는 녹색금융(Green Finance)과 달리, 탄소 배출 산업에도 자금을 공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탄소 배출 산업을 배제하기보다 배출을 줄이는 전환 과정에 필요한 설비 투자와 비용을 지원하는 금융이라는 개념이다.
일본, 유럽연합, 싱가포르 등 주요국도 전환금융 제도로 탈탄소 산업경쟁에 속도
한국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일본, 유럽연합, 싱가포르 등 주요국도 각자의 산업 구조와 금융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전환금융 제도를 설계하며 탈탄소 산업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같은 전환금융이라도 접근은 다르다.
일본은 국가가 먼저 실탄을 투입해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EU는 엄격한 기준으로 그린워싱을 차단하며, 싱가포르는 완전한 녹색과 화석연료 사이의 ‘전환’ 영역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현실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다.
일본의 전략, 국가가 먼저 돈을 대고, 시장 자금을 유도하는 구조
일본은 제조업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과 닮았다. 일본 정부는 2023년 2월 향후 10년간 20조 엔 규모의 ‘GX 전환국채’를 발행해 기업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투자를 마중물로 삼아 민간 금융과 기업 투자를 끌어내고, 이를 통해 10년간 총 150조 엔 규모의 민관 합동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본은 2024년 2월 세계 최초로 기후 전환국채를 발행했고, 두 차례 발행 규모는 총 1조 6000억 엔에 달한다. 올해 1월에도 재무성이 약 3000억 엔 규모의 전환국채 입찰을 실시하며 자금 조달을 이어갔다.
제도 정비도 병행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5년 12월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기업이 과학 기반 감축 경로를 따르고 있는지, 재무 계획과 연결된 전환 전략을 갖추고 있는지 등을 점검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전환금융의 신뢰를 높여 민간 투자를 더 끌어들이려는 목적이다. 일본식 모델은 국가가 먼저 돈을 대고, 제도를 보강해 시장 자금을 유도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EU, 세계 최초로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 도입, ‘유럽 그린딜 투자계획(EGDIP)’ 가동 중
EU는 전환금융을 가장 먼저 제도권에 올린 곳이지만, 방향은 일본과 다소 다르다. 핵심은 ‘전환’을 빙자한 그린워싱을 막는 데 있다. EU는 2020년 세계 최초로 녹색분류체계, 즉 택소노미를 도입해 전환 활동의 기준을 세웠고, 2023년 6월에는 기업이 과학 기반 감축 경로에 맞춘 전환 계획과 자본 지출 계획을 공개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내놨다.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까지 보겠다는 뜻이다.
투자 규모도 막대하다. EU 집행위원회는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최소 1조 유로 규모의 투자를 동원하는 ‘유럽 그린딜 투자계획(EGDIP)’을 가동 중이다. 2025년 글로벌 전환채권 발행 시장에서 유럽이 약 47%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제도적 기반과 무관하지 않다.
2025년 1월 EU 지속가능금융 플랫폼은 기업의 전환 계획이 실제 자본 지출과 지배구조로 이어지는지를 평가하는 기준도 제시했다. 전환금융의 신뢰성 자체를 제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방향이다.
싱가포르의 ‘황색(Amber 전환)', 전환금융을 아시아 에너지 전환을 연결하는 금융 허브 전략
싱가포르는 다른 길을 택했다. 2023년 12월 싱가포르-아시아 택소노미(SAT)에서 완전 친환경인 ‘녹색’과 화석연료인 ‘적색’ 사이에 ‘황색(Amber 전환)’ 범주를 공식화했다. 완전한 녹색은 아니더라도 감축 경로가 확인되는 활동에 별도의 전환 라벨을 부여해 자금 조달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즉, 탈탄소로 가는 중간 단계 자체를 금융의 대상으로 인정한 셈이다.
실제 사례도 나왔다. 2025년 10월 싱가포르 발전회사 YTL 파워세라야는 600MW급 수소 대응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며 5억 싱가포르달러 규모의 전환 대출을 조달했다. 이 거래는 SAT에 부합하는 첫 전환금융 사례로 소개됐다.
싱가포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전환금융을 아시아 에너지 전환을 연결하는 금융 허브 전략으로 키우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은 2023년 ‘FAST(Financing Asia’s Transition Partnership)’를 출범시켜, 동남아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와 재생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에 혼합금융을 공급하는 구조를 추진 중이다.
전환금융, 실제 자본을 이동시키는 새로운 금융 영역으로 자리 잡아
전환금융은 더 이상 개별 국가의 정책 실험이 아니다. 국제 금융 싱크탱크 OMFIF는 2026년 전망 보고서에서 전환금융이 단순한 개념을 넘어 실제 자본을 이동시키는 새로운 금융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가 2025년 전환채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탄소 다배출 산업의 탈탄소 투자에 자금을 공급하는 전환채권 시장이 별도의 투자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전환금융은 GX를 현실로 만드는 자금의 문제다.
GX가 산업과 에너지 구조를 바꾸는 방향이라면, 전환금융은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인 고탄소 산업의 변화 비용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해법이다. 일본은 국채로, EU는 엄격한 기준으로, 싱가포르는 ‘황색 전환’이라는 현실적 분류로 답을 내놓고 있다.
한국 역시 제조업 중심 경제 구조에 맞는 ‘한국형 전환금융 모델’을 어떻게 완성할지가 앞으로 GX의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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