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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⑤ 태풍 | 평등한 재난, 불평등한 피해

2025-07-17 김성희 기자

재난의 피해는 가난, 불안정 노동, 장애, 열악한 주거 등 구조적 취약성과 사회적 지위, 환경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타나고 피해를 키운다. 갑작스러운 재난 속 누구도 고립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 재설계가 필요하다.



포항 지하주차장 참사와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의 ‘피할 수 없었던 재난’

 기후재난에 내몰린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뉴스1
 기후재난에 내몰린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뉴스1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가장 큰 인명 피해가 난 곳은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었다. 인근 하천 범람으로 급격히 물이 불어난 상황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차량을 이동시키라'는 안내방송을 반복했고, 이를 믿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한 주민 7명이 고립된 채 숨졌다. 하천과 불과 150미터 거리였으며, 과거에도 반복된 침수 이력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와 관리 주체는 주민들에게 지상 대피를 유도하거나 주차 금지 등 사전 대응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불운이 아닌, 재난 대응 매뉴얼과 의사결정 체계의 실패로 읽힌다.


같은 날, 창원 도로 위 톨게이트에서 근무 중이던 요금 수납 여성 노동자들은 차량 통행이 급감하고 인근 도로가 침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요금 부스를 지켰다. 당시 노동자들은 “회사 지시가 없다면 제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근무를 지속했다. 이는 '업무 중단'이라는 기본적 안전 조치조차 자신들의 판단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노동 구조 속에서, 위험을 피할 권리 없이 업무를 이어가야만 했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신림동 반지하 참사와 재난 속 드러난 불평등


같은 해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 살던 한 가족이 기록적인 폭우로 희생됐다. 침수된 주택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들은 어머니와 두 딸로, 큰딸은 발달장애가 있었다. 폭우는 순식간에 반지하 주택의 창문과 출입구를 통해 들이쳤고, 가족은 외부와 고립된 채 탈출하지 못했다. 현장을 찾은 구조대는 이미 허리까지 물이 찬 방안에서 세 사람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보다 이틀 뒤인 10일에는 동작구의 또 다른 반지하 주택에서 시각장애인 남성이 역시 대피하지 못하고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폭우에 침수된 반지하 주택. 사진 건축공간연구원(재해에 취약한 (반)지하주택은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 - 데이터로 본 전국 재해 취약 지하층 주택 현황)
폭우에 침수된 반지하 주택. 사진 건축공간연구원(재해에 취약한 (반)지하주택은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 - 데이터로 본 전국 재해 취약 지하층 주택 현황)

이들 모두가 ‘침수 위험지’에 거주하며 재난 상황에서 이동이나 구조에 제한을 받는 사회적 약자였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재난 그 자체보다 재난 대응 시스템이 ‘누구를 지키고 누구를 놓치는가’를 드러낸 구조적 불평등의 현실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재난의 피해는 결코 무작위적이지 않다. 사회적 위치와 고용 형태, 거주 환경과 대응 방식에 따라 재난을 맞이하는 방식과 선택지는 달랐다. 이처럼 재난은 모두에게 닥치지만, 그 충격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고리에 집중된다.


재난은 약한 곳부터 무너뜨린다


재난은 모두에게 동일한 자연현상처럼 보이지만, 그 피해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은 침수 위험이 높은 저지대일 가능성이 크고, 장애인이나 고령층은 재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기 어렵고 대피도 쉽지 않다. 반면 고지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보험이나 자가 차량 등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같은 폭우 속에서 어떤 이는 불편을 걱정하지만, 어떤 이는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이 현실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구조화된 불평등의 결과다.


특히 여성 가구주는 생존을 위한 대응 외에도 돌봄 책임이 중첩되며 ‘이중 피해’를 겪는다. 2020년 여성 가구주의 빈곤율은 33.9%로 남성(14.5%)보다 두 배 이상 높았고, 모자가구의 평균 소득은 남성보다 32% 낮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여성은 피해자이자 돌봄 제공자이지만, 현재의 재난 대응 체계는 물리적 복구에 머무르며 이들의 회복 조건을 고려하지 못한다.


기후재난이 일상이 된 지금도, 노동자에게는 재난보다 ‘정시 출근’이 우선이다. 직장갑질119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4%가 기상재난 속에서도 정시에 출근한 경험이 있고, 15.9%는 지각 후 불이익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근로기준법에는 자연재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조항이 부재하며, 이에 따라 시민사회는 ‘기후 유급휴가’, 출퇴근 시간 유연조정, 재난 매뉴얼 내 노동자 보호조항 명문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를 ‘재난 취약성’이라 부른다. 낮은 소득, 열악한 주거, 이동의 어려움, 불안정 노동은 위기 상황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재난은 이 취약성을 증폭시켜 격차를 더욱 벌리고, 결국 사회의 가장 낮은 곳부터 덮친다. 재난은 자연현상이지만, 피해의 양상은 사회가 만든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다.


재난 후 회복의 격차, 사회의 내상을 보여 주다


재난으로부터 재해 회복 문항 응답 결과. 사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재난으로부터 재해 회복 문항 응답 결과. 사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태풍이나 홍수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퍼붓는 듯 보이지만, 피해의 깊이는 각자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2022 국민의 건강수준 제고를 위한 건강형평성 모니터링 및 사업 개발)에 따르면, 재난으로부터 피해 회복을 묻는 문항에 사회재난 이후 회복되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평균 24.1%에 달했으며, 스스로 ‘나는 사회의 하층이다’라고 여기는 사람들 중에서는 무려 38.8%가 여전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나타난다. 중상층 이상에서는 11.1%만이 회복하지 못했다고 했으니, 약 3.5배의 격차가 난 셈이다. 자연재난(태풍, 폭우 등)의 경우도 하층 응답자의 5명 중 1명(21.4%)은 자연재난 피해 이후 삶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응답했지만, 중간층에서는 그 비율이 7.7%에 불과했다.


고용 형태 역시 영향을 미쳤다. 정규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회복 불능률이 2배 가까이 높았다. 교육 수준 역시 주요 요인이었다. 중졸 이하의 경우 자연재난 회복 불능률이 21.8%로, 대졸 이상(8.4%)의 약 세 배에 달했다. 이 수치들은 재난이라는 비상 상황에서도 사회적 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어떤 이는 재난 뒤에도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지만, 누군가는 주거·생계·건강의 위기를 이중삼중으로 감당해야 한다.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찾아오지만, 결코 평등하게 지나가지 않는다”는 말은 수치로도 명백히 증명된다.


고립된 삶을 더욱 고립시키는 재난


재난 불평등은 단지 경제적 자원의 격차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재난 이후 정부의 지원 시스템이 여전히 ‘보편적이고 사후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이들에게 가장 늦게 닿는다. 특히 장애인, 노인, 이주노동자처럼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위험 상황에서 스스로 구조를 요청하거나 지원을 신청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행정 시스템의 그물망에 걸리지 못한다.


2022년 서울 신림동에서 폭우로 희생된 발달장애인 일가족은 그 단적인 사례다. 이들은 대피에 필요한 실시간 정보를 받을 수도, 도움을 요청할 사회적 연결망도 없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이들에게는 재난 대응 이전에, 일상부터가 이미 위기였다. 정부의 재난 지원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위험을 인식하고,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수혜받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지원 대상에서 누락되기 쉽다. 결국 재난은 단지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고립되어 있던 사람들을 더 깊은 고립으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재난이 약자를 덮칠 때, 복지는 어디에 있었나 


재난은 단지 피해를 발생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으며, 이후 이어지는 회복 과정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 한계 역시 불평등을 좌우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한국의 사회복지는 보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격한 선별 기준과 ‘자신의 약함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통해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조차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규직은 고용유지지원금이라는 방주에 오를 수 있었지만,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직, 프리랜서는 그 문턱조차 밟을 수 없다. 결국,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장애인, 노인, 이주민, 비정규직 등은 그 문턱에서 다시 배제된다.


이처럼 제도의 ‘보편성’은 오히려 불평등을 가리는 가면이 될 수 있다. 사회복지가 ‘누구나’를 말할 때, 실제로는 ‘일정 자격이 있는 사람만’을 뜻한다. 이는 재난 시기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며, 이러한 구조는 평등한 제도가 아니라 '증명된 불행'에만 작동하는 사후적 제도일 뿐이다. 우리는 이 복지가 과연 재난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면 오히려 그 불평등을 추인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재난은 사회가 만들어 낸 불평등의 결과를 드러내는 가장 극단적인 장면이며, 이러한 현상에서 복지는 더 이상 누군가의 불행을 측정하고 선별하는 기술이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존의 조건이 갖춰진 사회, 즉 ‘약자가 생기지 않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복지의 새로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사회복지는 시민이 ‘권리’의 감각을 깨닫고, 자신의 삶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자각하며, 함께 조직될 수 있도록 이끄는 실천이어야 한다. 이처럼 복지는 시혜나 심사의 언어가 아니라, 누구도 고립되지 않도록 설계된 공동체적 권리로 다시 써야 한다.


기후재난 앞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재난은 점점 더 자주, 더 깊게, 더 불공정하게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같은 재난이라도 누군가는 일시적 불편으로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삶의 터전 전체를 잃는다. 이 격차는 우연도, 불운도 아니며, 사회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구조, 제도, 무관심이 만들어 낸 결과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왜 늘 같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무너지는가? 왜 위험은 반복되는데, 대책은 늘 사후에야 작동하는가? 재난은 단지 기상이변이 아니라, 사회적 정의의 척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더 빠른 경보와 더 단단한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위험을 견디는 힘이 ‘개인의 몫’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설계한 공동체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누구도 구조되지 못한 채 고립되지 않도록’, 이제는 사회 전체가 응답해야 할 때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지만, 우리의 대응은 평등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향해야 할 최소한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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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28 de jul.

기후정의를 쉽게 말하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정의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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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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