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④ 폭염(2) | 폭염도,가뭄도, 폭우도 이제는 '뉴노멀', 기후위기와 '헤어질 결심'할 때
- planetssong03
-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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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7월 18일
2025-07-17 김성희 기자
뉴노멀(New Normal)은 '새로운 정상 상태'를 의미하는 용어로, 과거의 기준에 비정상으로 보이던 현상이 점차 일반 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일컫는다. 경제 위기 이후 변화된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 데 쓰였던 말인데, 최근 종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가 사회 전반의 큰 영향을 끼치면서 나타난 새로운 생활 패턴이나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쓰고 있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위험한 현상'이 아니라, '뉴노멀'이 되어버린 게 현실이다. 폭염, 가뭄, 폭우 등 예측 불가능한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강도 또한 심해지면서 기후이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겪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기상이변의 이중 타격, 경보 없이 찾아오는 재난
지난해 여름, 한국은 기록적 폭우와 극심한 가뭄을 동시에 경험했다. 장마철에는 한 시간에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하천이 범람하고 도로가 잠겼지만, 비가 그친 뒤 찾아온 폭염으로 저수지는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고, 증발산량은 평년의 1.4배까지 치솟았다. 농업용수는 빠르게 고갈됐지만, 이 급격한 변화는 어느 경보 체계에도 포착되지 않았다.
2025년 여름, 동일한 재난이 또다시 벌어졌다. 기상청이 집계한 6월 평균기온은 역대 최고치였고,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며 토양과 식생이 말라붙었다. 강릉 오봉저수지와 운문·영천댐의 저수율은 평년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고, 농가는 사실상 붕괴 직전이다. '급성가뭄(Flash Drought)'이라 불리는 이 조용한 재난은 한국 농업을 서서히 옥죄고 있다.
기록되지 않는 재난, ‘급성가뭄’
국제적으로 가뭄은 단순한 강수량 부족을 넘어 기상학, 농업, 수문학, 사회경제 측면에서 다양하게 정의한다. 기상학에서 가뭄은 강수 부족으로 대기 중 수분이 결핍된 상태이며, 농업에서 가뭄은 작물 생육에 필요한 토양 수분이 부족한 상황을 일컫는다. 수문학에서 가뭄은 하천 유량이나 저수지 수위가 낮아지는 수자원 고갈 현상을 포함하고, 사회경제적으로 가뭄은 이로 인해 나타나는 생산성 저하나 소득 손실 등 인간 생활 전반의 영향을 포함한다. 최근 기후변화로 폭염과 이상고온 현상이 증가하면서 단기간에 급격히 수자원이 고갈되는 ‘급성가뭄(Flash Drought)’이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급성가뭄(Flash Drought)은 짧은 시간에 급격히 악화되는 가뭄으로, 몇 주 이내에 증발산량이 급증해서 농작물 피해와 수자원 고갈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다. 특히 기온과 증발량의 증가가 핵심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폭염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자주 발생한다.

2024년 강원 영동에서 발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7월까지 평년보다 많은 강우가 있었지만, 8월 들어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의 30%, 강원 영동 지역은 66% 수준으로 급감했다. 같은 시기 폭염이 이어지며 전국 증발산량은 평년의 136.9%까지 증가했고, 강원 영동은 강수량 대비 증발량이 평년의 2.5배에 달했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수자원이 고갈되고 농업용 저수지가 급격히 말라가는 현상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급성가뭄은 단순한 강수 부족이 아닌, 고온과 증발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기후재난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새로운 감지 시스템과 긴급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기후재난에 흔들리는 농가, 농작물도 무너진다


급성가뭄은 폭염과 증발산량 증가로 인해 농업용 저수지가 빠르게 고갈되고, 일부 농경지에서는 급수 피해가 발생하여 특히 농업 부문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현장에서는 폭염이 농사 피해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많다.
올해, 강원 영동 지역에서는 극한 폭염으로 인해 강수 부족과 증발산 증가가 동시에 나타났고, 한 달 새 농업용 저수량이 급감해 실제 급수 피해와 경작지 피해가 발생했다. 강릉 오봉저수지를 포함한 도내 80개 저수지 저수율은 47.9%로 전국 최하위, 평년(69.5%) 대비 심각하게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운문댐, 영천댐 저수율은 각각 37.4%, 36.5%로 급감했고, 정부는 급수 경로를 낙동강 본류로 우회하는 비상 급수 조치에 나섰다.
강원·경북 지역 6개 시·군은 생활·공업용수 가뭄 ‘주의’ 단계로 격상됐으며, 강릉 등 일부 지역에서는 농작물 재해 발생 직전의 절박한 상황이라는 현장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은 단순한 농산물 생산량 감소를 넘어, 생계 기반을 직접 위협하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감자·옥수수 농가들이 농업용수 부족으로 사실상 무너지기 직전”이라며 재난지역 선포와 긴급재정 투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제자리에 머문 경보 체계, 사각지대에 놓여진 농가
현재 가뭄 예경보 체계는 ‘월 단위’로만 발령되며, 주로 SPI6(6개월 누적 표준강수지수)처럼 강수량 평균 중심의 장기 지표를 기준으로 발표되고 있다. 고온과 증발산 같은 기온 요인을 포함하지 못하며, 급성가뭄처럼 강수량이 평균 1개월 내 단기간에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
농업용수 가뭄 예보는 수요·공급 예측 모델에 의존하는데, 이 역시 고온으로 인한 급격한 수요 증가나 공급 감소(예: 증발량 증가)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태적 모델에 머무르고 있다. 그 결과, 예보 시스템은 실제 가뭄 발생 지역과 일치하지 않거나 피해 발생 이후에야 뒤늦게 반응하는 구조다.
예컨데, 전국적으로 급성가뭄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가뭄 예경보가 발생하지 않으면 해당 지역은 ‘정상 지역’으로 분류되고 설사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행정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특히 보상은 피해 면적과 정도가 일정 기준 이상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급성가뭄처럼 단기간에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피해는 누락되기 쉬우며, ‘기록되지 않은 재난’으로 남아, 결국 농가는 지원 체계 밖에 남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새로운 재난 앞에 무력한 과거에 멈춘 보험 제도
피해가 발생했을 때 농민들이 가장 먼저 기대는 대응 수단은 정부의 재해지원 대책과 농작물재해보험이다. 하지만 급성가뭄처럼 관측, 예보 체계에서 감지되기 어려운 재난에는 이 제도들이 사실상 무력하다.
현재 「농어업재해대책법」은 자연재해 발생 시, 농업용 시설·작물에 대한 복구와 지원을 명시하고 있고, 「농작물재해보험법」은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는 정책보험이 운영되고 있다. 최근 들어 폭염, 가뭄, 수해, 병해충 피해가 빈발하고 규모도 점차 대형화되고 있음에도, 보험 설계와 보장 체계는 여전히 과거의 기상 패턴과 피해 빈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현행 농작물재해보험 제도는 기후변화로 인해 급증하는 다양한 재해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금 지급의 기준이 되는 평년수확량이나 표준가격이 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생산비가 상승하거나 시장가격이 변동해도, 보험 약관에서 정한 기준가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보장 수준이 낮아진다. 이런 구조적인 한계는 보험에 가입한 농가조차 재해 발생 시 실제 손실을 충분히 보전받기 어렵게 만든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 일상화되면서 재해의 발생 빈도와 강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는데도, 보험상품과 보장 체계가 이를 앞서서 담아내지 못해 농가의 경영안정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게 제한되는 것이다. 보험 제도의 설계와 운영이 기후위기 시대에 맞춰 재정비될 필요성이 있다.
재난에 노출된 농촌, 재정적 지원이 절실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농업 경영에서 가장 큰 위협 요소로 ‘기상이변 및 재배 여건 변화’가 20%로 꼽히며 1위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6.7%p 증가한 수치로,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현장의 체감 위기감이 급격히 높아짐을 보인다. 특히, 지난 3~5년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농업인은 무려 88.4%에 달한다. ‘폭염·이상고온’, ‘폭우·홍수’, ‘가뭄’ 등 재해 유형이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그 영향으로 ‘생산량 변화’(68.2%), ‘영농활동의 어려움’(52.0%)이 주로 지목됐다.
위협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9.8%에 그쳤다. 전년보다 8.0%p 하락한 수치이며, ‘계획이 없다’(34.6%) 혹은 ‘잘 모르겠다’(34.8%)는 응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결과는 ‘경제적 여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의 농가는 영세한 규모에 머무르고 있고, 단기 수익에 민감한 구조로 인해 고온 대응 설비, 절수형 장비, 작물 전환 등 기후 적응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장기 수익성과 불확실성을 동반하는 투자는 현재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농가에게는 현실적인 선택지로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이 수치는, 기후위기 시대에 농민들이 단순한 ‘의식 제고’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버틸 수 있는 여력’, 즉 구조적·재정적 지원이 절실함을 시사한다.
예보를 넘어 선제 대응하는 시스템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폭염 피해가 점점 더 심화되면서 국내 농업의 생산기반이 위협받고 있지만, 이를 체계화해 예측·관리·지원할 통합 대응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 고해상도 기상 예측, 작물과 가축의 스트레스 평가, 작황 예측, 농업용수 관리 등 개별 기술 역량은 발전해 왔으나, 기관별·부처별로 정보가 분산되어 있어 연계성이 떨어지고 현장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서비스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축산시설 내부의 환기·냉방 시스템이나 건물 단열성과 같은 실제 사육 환경을 반영한 정밀 예측 체계가 미비하고, 농업 맞춤형 장기예측자료의 활용도 한계가 있어 폭염과 가뭄 피해를 사전에 경감할 실질 정보 제공이 부족하다. 지역별 기상·토지·수자원 정보를 통합해 분석해서 농업용수 수급을 효율 높게 조정할 가뭄 대응정보 시스템도 부재한 상황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고해상도 기상 예측모델 개발뿐 아니라 축산시설 내부 환경을 반영한 예측기술, 작물·가축의 스트레스 대응기술을 정교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나아가 농업용수 관리 체계에서도 사용자 참여형 접근을 통해 효율성과 현장성을 높이고, 농민들이 실제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정보제공 서비스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리빙랩(Living Lab)과 같은 주민 참여형 혁신 플랫폼을 도입해 농민들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안을 설계하도록 지원함으로써, 기후위기 시대의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기후위기 대응 역량을 높여야 한다.
급성가뭄, 이제는 기후 뉴노멀의 시대
급성가뭄은 더 이상 예외적인 이상기후가 아니다. 국제공동연구팀이 발표한 『사이언스』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가뭄은 느린 진행에서 급성 형태로 전환 중이며,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새로운 표준, ‘뉴노멀’이 되고 있다. 2024년, 이미 비가 온 후에도 물이 말라가는 현실을 경험했고, 2025년 강원·경북 농가들이 실제로 ‘농사 망치기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을 목격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더 이상 풍자의 표현이 아니다. 예보의 기술이 아니라, 위기의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이 필요하다. 빠르게 진행되는 급성가뭄에 적응하게 제도를 고치고, 기술을 도입하고, 농가와 지역이 주체가 되어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급성가뭄을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기후 리스크로 관리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유일한 방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