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사설] 저무는 복지국가, 다가오는 기후국가

기후국가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복지국가들이 가야 할 길이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평등한 복지국가 스웨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부의 양극화가 극에 달하던 1910년 미국에서 억만장자 록펠러가 가진 부는 자국 GDP의 1.5%였다고 한다. 2024년 스웨덴에서는 국내 GDP의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부자가 7명이라고 한다. 이들 재산의 70%는 상속받은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10억 크로네(한화 1조500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 수는 20배 이상 증가했고, 이들의 자산은 스웨덴 GDP의 70%에 달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서유럽 복지국가의 모범적 전형인 스웨덴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부의 편중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미국보다 그 정도가 2배 가까이 더하다고 하니 의아할 정도다. 이런 경향은 해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고 한다. 평등한 복지국가 스웨덴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시작은 1997년부터다. 상장 기업 25%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에게 매겨지는 부유세가 폐지되었다. 2003년에는 10% 이상 대주주가 보유한 배당금에 대해서 세금이 폐지된다. 2004년에는 상속세와 증여세마저 사라진다. 2008년이 되면 재산세도 없어진다. 자산소득세율은 18%인 반면 근로소득세율은 21%다. 그야말로 자산가의 천국이 되어 버렸다.


스웨덴이 도드라졌지만 서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 나타난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지난 30년 동안 해마다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부가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건 대다수 국민이 가난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만큼 사회는 불안정해지기 마련이다. 자본주의에 내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기대와는 다르게 작동되었다. 예전에도 그랬듯 자체 변신으로 자본주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미국과 유럽을 쓸고 간 신자유주의의 흔적은 뼈아프게 남아 있다.


복지국가 모델은 길고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화는 인류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다. 기계와 화석연료가 가져 온 엄청난 생산력 증대는 지상 낙원을 약속하는 듯 했으나 인간의 삶은 점점 비참해졌다. 산업화의 열매가 사회에 제대로 분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설계와 계획 없이 산업화의 문이 갑자기 열렸기 때문이다. 농지에서 강제로 떨어져 나온 도시 노동자들은 빈곤, 질병, 실업, 주거난 등 심각한 결핍에 시달렸다. 이에 문제가 개인 책임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등장한 게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 모델은 어느 정도 부를 재분배하는 것으로 폐기될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가 존속을 위해 선택한 일종의 타협이었다. 일찍이 산업화를 이룬 ‘선진국’들은 조금씩 모양이 달라도 거의 대부분 복지국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민의 참여와 합의, 고민이 녹아 있지 않은 ‘위에서 아래로’ 일방으로 내려오는 방식이었다. 복지국가 시스템은 ‘여유 있는 부의 축적’을 전제로 했다. 이를 위해선 제3 지역인 외부의 희생이 필요했다.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과 선진국이 모여 있는 유럽과의 ‘기괴한 동거’는 이런 이유로 시작되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동안 유럽은 국방비를 줄여 복지 예산에 쓸 수 있었다. 위험하고 사회적 환경적 부담이 큰 제조 시설과 공장을 외부로 이전해 사회 내 갈등을 완화시켰다. 미국 또한 단일 패권국의 지위를 십분 활용해 경찰 역할을 하는 대가를 챙겼다. 문제는 이러한 동거가 장기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떠안고 있는 부채는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에 의존하던 유럽은 자립 기반을 상실한 지 오래다. 궁여지책으로 도입한 신자유주의는 결국 복지국가 시스템의 파탄으로 귀결되고 있다.


오늘날 세상은 새로운 국가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복합위기인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초고령 사회, 부의 양극화, 지방 소멸은 지구 차원의 공통 의제다. 새롭게 등장하는 국가모델은 이런 난관에 대응해야 한다. 특히 기후위기에는 나머지 의제들이 응축되어 나타난다. ‘기후국가’는 기후위기를 국가 운영의 핵심 가치로 삼고, 지속가능성과 생태적 전환을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기본 원칙으로 삼는 국가를 의미한다.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 경제·안보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


기후국가는 기후위기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중심으로 헌법·경제·복지·참여의 모든 틀을 바꾸는, 국가 운영의 재설계를 포함하고 있다. 즉 단순한 탄소중립, 화석연료에서 ‘날씨연료’로 에너지 전환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의 변화를 말한다. 신자유주의 실패 이후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다. 이전과 다른 건 이번에 실패하면 회복이 불가하여 다음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기후국가 설계와 실행 전략을 수립하는 데에는 정부 엘리트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보장되어 인류의 온 지혜가 동원되어야 하는 이유다.


표면적으로 그동안 기후와 환경 의제를 유럽이 주도해 온 것처럼 보인다. 현 시점 실상은 유럽은 그럴 힘이 없다. 자립도생도 버거운 상황이다.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자국의 현실을 솔직하게 고백한 거라고 봐야 한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분란도 생기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기후 지도력이 부재한 탓에 기후국가 모델을 수입할 곳도 없다. 우리가 스스로 ‘한국형 기후국가’를 찾아가야 한다. 국민주권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의 5년은 기후국가로 가는 길에 막중한 시간이다. 그 무게를 이 정부가 각인하길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 잘못 길을 들면 돌아올 방법이 없다.


복지국가의 기후국가로의 전환, 스웨덴의 부의 양극화 심화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통해 복지국가 모델의 한계를 보여 주며, 이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후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진 참여연대  2016
복지국가의 기후국가로의 전환, 스웨덴의 부의 양극화 심화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통해 복지국가 모델의 한계를 보여 주며, 이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후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진 참여연대 2016

1 Comment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trokim
Jun 16

이른바 선진국 복지국가 모델은 새로운 상황에 맞게 전면적 수술이 필요해 보입니다

Like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이 기사를 읽은 회원

​로그인한 유저들에게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로그인 후에 이용 가능합니다.

이 기사를 읽은 회원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