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정 기자, 김동혁 영상기자 2024-03-27
홍수열 박사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부터 자원순환사회연대 플라스틱위원장, 2019년부터 경기도 업사이클 운영협의회 위원, 경기도 자원순환위원회 위원,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2021년부터 녹색서울시시민위원회 위원, 2018년~2022년 환경부 중앙환경정책위원회 자원순환분과 위원이었다. 현재는 서울환경연합 쓰레기위원장이자 1인 연구소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다. 서울환경연합 유튜브에서 “도와줘요 쓰레기박사!”를 4년째 진행 중이며,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2022, 공저),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2020)를 썼다. 다양한 방법으로 쓰레기와 우리 사회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보다 쓰레기 박사
환경 문제를 공부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역사가 재밌어서 동양사학과에 진학했는데 평생 공부할 정도로 흥미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환경 문제가 눈에 띄었다. 앞으로 이 문제가 심각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환경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다. 거기서 선배와 같이 공부하는 데 쓰레기 쪽을 접하게 됐고, 쓰레기를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됐다. 때마침 쓰레기 전문 시민단체가 있어 그 분야 활동가로 일했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직장 생활 하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고 쓰레기를 공부하게 됐는데, 딱히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재밌어서 계속하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알아가는 것이 재밌었다. 그 당시 쓰레기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없어,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쓰레기 문제는 생각보다 넓고 깊다
당시만 해도 쓰레기 문제는 하나의 독립된 연구 분야가 아니었다. 다른 환경문제나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하나 정도 걸쳐주는 식으로 쓰레기 문제를 다루다보니 깊은 고민들이 없었다. 특히 시민들과 정부, 지자체와 기업들을 연결시켜 주는 통합적인 전문가가 없었다. 서로 얘기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했다. 2019년 쓰레기 대란 이후로 쓰레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일반 시민들 중에도 쓰레기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전반적인 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쓰레기 문제는 파고들수록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비 생활 전체가 모두 쓰레기 문제와 연결된다. 페트병 문제라고 하더라도 음료 페트병 문제와 화장품 페트병 문제는 다르다. 음식물 쓰레기 문제도 마찬가지로 세분화해서 들어가면 끝이 없다. 석유화학, 철강, 섬유, 시멘트와 같은 산업 분야별로 생기는 쓰레기 문제도 모두 다르다. 이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또 하나의 통합된 주제로 어떻게 아우를 것인가 하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이런 역량을 가지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이 분야에서 연구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더 많아져야 하고, 우리의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순환경제는 아주 세심한 물질흐름에 대한 관리다
우리의 목표는 순환경제다. 물질소비는 두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자원소비량이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자원 고갈의 문제, 자원의 채굴과 소비로 인해 발생되는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의 문제다. 이 상태로 우리의 물질소비가 계속 진행되면 우리 인간의 문명 뿐만 아니라 지구 시스템 전체의 지속가능성이 훼손될 수 있다. 지구 시스템의 지속가능성과 인간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우리의 물질 소비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물질 이용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물질소비의 양을 줄이면서, 천연 자원의 채굴이 아닌 재생자원 중심의 자원 조달 순환 공급망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존의 자원순환이 단순히 쓰레기 관리 단계에서 재생자원의 공급을 좀 더 늘리자는 쪽에 치우쳐 있었다고 하면, 순환경제는 재생 자원의 공급을 늘릴 뿐만 아니라 물질을 소비하는 산업 분야별 시스템의 전반적인 개혁을 의미한다. 물질이 순환하는 경제 시스템 전체를 바꿔야 하는 매우 거대한 기획이 되는 것이다. 가능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순환경제는 우리가 가야 할 목표다. 탄소중립도 마찬가지다.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고 탄소중립으로 가지 않을 것인가? 순환경제는 이 지구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야 하는 목표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찾아가는 게 과정이다.
순환경제는 자연의 물질 흐름을 닮자는 것이다. 순환경제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연결이다. 그 연결을 잘 시켜줄 수 있는 건 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을 쓰자고 할 때, 카페에서 다회용 컵을 빌려주면 소비자들이 잘 쓰고, 그 컵을 반환해야 한다. 이때 그 컵을 수거해 오는 과정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연결시켜 통합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가 해야 될 플랫폼과 민간이 해야 할 플랫폼이 다르다. 국가는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열어주는 플랫폼, 국가 물질 수지 데이터를 올려주는 플랫폼 등이 있을 거고, 민간에서는 비즈니스라는 플랫폼이 있을 수 있다.
정부의 장기적인 목표와 규제가 필요하다
최종적으로는 정부의 규제 프레임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우리가 세운 목표는 적어도 10년 이상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가야 하니 기업들은 빨리 투자하세요, 투자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 될 겁니다.”라고 알려야 한다. 이런 식의 정부 규제 프레임이 작동해야 한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30년 동안 우리가 계속 인내하면서 투자해야 하는 문제다. 현 정부에서의 순환경제 접근법은 잘못됐다. 자꾸 순환경제를 환경부의 폐기물 관리 업무로 가둔다. 순환경제는 우리 사회 경제 시스템 전체의 문제다.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 농축부의, 해수부의, 산업부의, 국토교통부의 순환경제가 있다. 각자 맡은 영역에서 순환경제로 가기 위한 정책들을 펼쳐야 한다. 순환경제촉진법이 환경부의 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순환경제촉진법이 순환경제로 가기 위한 토대가 되는 법률로 역할을 하려면, 국무총리실이 관장하면서 순환경제를 위한 각 부서의 역할을 지정 및 조정해주는 법률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 장기목표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목표가 있어도 아무도 신뢰를 하지 않는 게 문제다. 정권이 바뀌면, 장관이 바뀌면 목표도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목표를 세우는 과정도 신중해야 한다. 플랫폼을 만들고 각 이해관계자들이 다 들어와서 치열하고 고민하고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목표를 도출해야 한다. 이렇게 도출된 목표는 적어도 10년은 흔들리면 안 된다. 그래야 기업들이 투자한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장기 투자를 했다간 바보가 된다. 일회용품 규제만 보더라도 종이 빨대 회사도 다 망하고 있고 다회용품에 투자했던 사람들도 지금 다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물리적 재활용보다 더 좋은 퀄리티의 재활용 물질을 만드는 화학적 재활용에 조 단위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게 그만큼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도 매우 불확실하다. 기업들이 투자를 해서 순환경제 차원에서 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국제적 쓰레기 이동은 악일까?
쓰레기 이동과 관련해서는 고전적인 편견을 버려야 한다. 쓰레기는 오염물질이니까 무조건 거래를 막아야 돼 이렇게 볼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폐지는 쓰레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랫동안 하나의 자원으로 거래된 품목들이다. 쓰레기가 하나의 자원으로 이동되는 성격이 강해질 것이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이 현상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순환경제나 탄소중립을 자꾸 일국 중심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 써야 하는 제품들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수출하면 원래는 그 나라 국민들이 그 땅에서 배출해야 할 탄소를 우리나라에서 배출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제조업에서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서 배출해야 할 탄소를 우리나라에서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제조업에서 발생되는 모든 탄소를 우리나라에서 다 상쇄시켜서 탄소중립으로 가야 한다는 말은 불가능한 얘기다. 지금과 같은 국제 분업 구조 속에서는 탄소감축도 국제 분업이 필요하다. 순환경제도 물질의 흐름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보는 거다. 추상적으로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고 자원 소비를 줄이는 게 아니다. 우리의 경제활동에서 어떤 자원이 들어오는데 이 자원은 어디서 들어오는 거고, 쓰레기로는 어떻게 가는데 이걸 줄이려면 어떻게 재활용을 하고 재생 자원으로 만드는지 구체적인 경로를 따져보는 거다. 그런 것들을 판단해서 구체적인 흐름들 속에서 결정할 문제지 추상적인, 너무 도덕적인 잣대로 따지면 현실적인 대안이 나올 수 없다.
생태적 앎의 즐거움
시민들의 생태적 앎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생태적 앎에 대한 추구의 과정이 우리의 실천 과정이고, 우리의 실천 과정 속에서 각성이 또 깊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정치적 활동도 나오게 될 것이다. 자꾸 세상을 바꾸겠다가 아니라, 내가 바뀌어 가면 된다. 그 과정에서 세상도 바뀌어 갈 수 있다. 그래야 덜 피곤하고 오래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대의 영혼을 돌보라.” 실천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영혼을 잘 간수하는 거다. 그러니 지구 걱정하지 말고 내 영혼이라도 잘 관리해 가면 세상이 바뀌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바뀔지, 안 바뀔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손 놓고 이대로 살다 죽는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변화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좌절하지 말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에 대해 재미를 느껴야 한다. 과정에서 내가 하나 깨달은 게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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