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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 권소희 수의사 | '비인간 도시 생물들'과 관계 맺기

최종 수정일: 5시간 전

2025-12-16 김복연 기자

한 마리 길고양이의 죽음이 도시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수의사였던 권소희는 치료 이후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생명 앞에서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 왜 도시는 어떤 존재에게는 살 수 없는 공간이 되는가. ‘15분 도시’처럼 깔끔한 해답은 무엇을 도시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가. 지렁이를 흙으로 옮기는 작은 행위에서 시작된 이 질문은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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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희는 수의사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도시계획학과 박사과정에 있다. 동네고양이 내 집 마련 협력보드게임 <우리 동네 고양이> 제작. 공저 『비인간 도시의 생물들』. 남의 집을 구경 가는 걸 좋아했다. 자취방을 이사할 때면 전봇대에 붙은 월세 전단지까지 죄다 연락해 최대한 많은 집을 보러 다녔다. 이 도시 전체가 수많은 비인간 동물의 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초대받지 않았지만 집들이를 가듯 도시를 걷는다. 그렇게 낮엔 도시를 걷고, 밤엔 동물을 돌본다. 


길고양이의 죽음에서 시작된 질문


구조된 아기 길고양이. 사진 권소희
구조된 아기 길고양이. 사진 권소희

처음부터 수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아니다. 수의대는 두 번째 대학이다. 자취하던 시절, 함께 살던 친구가 고양이를 자주 데려왔다. 그때는 구조라는 말도 몰랐다. 고양이가 안기면 데려오고, 안기면 함께 사는 줄 알았다.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것도 몰랐고, 어린 고양이가 계속 울다 방충망을 뚫고 나가버린 뒤에야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이후 임시보호(임보)를 알게 됐고,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맡아 돌봤다. 졸업 후 본가로 돌아가면서 더는 고양이를 데려올 수 없게 되자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밥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그 세계로 들어갔다. 그때 처음으로 수의사라는 직업을 떠올렸다. 고양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선택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보호소에서 데려온 어린 고양이의 죽음이었다. 두 달도 안 된 고양이에게 접종을 권유받았고, 그대로 따랐다. 결국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다. 이미 감염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분노와 무력감이 훨씬 컸다. 아무것도 몰랐고, 병원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고, 생명은 너무 쉽게 사라졌다. 잘 모르면서도 전문가의 말에 판단을 맡겼던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결국 고양이의 뜻하지 않은 죽음이 이 길로 오게 된 셈이다.


수의학의 한계, 병원이 아닌 도시를 바라보다


수의대에 들어가서도 고민은 이어졌다. 본과 1학년 때 해부학 실습 등을 하면서 동물은 너무 쉽게 실험의 대상이 됐다. 형식적인 묵념은 있었지만, 반복되는 해부와 실험 속에서 윤리는 점점 무뎌졌다. 동물을 좋아해서 온 친구들이 ‘내가 여기서 이런 걸 해야 한다’며 가장 힘들어 했다.


임상 현장에 나간 뒤에는 또 다른 한계를 느꼈다. 병원에 오는 동물은 이미 아픈 상태였다. 특히 길고양이는 치료를 마치더라도 다시 거리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이후의 삶을 담보할 수 없었다. 길고양이를 구조해 온 분이 입양할 의지가 없어 치료 후 재방사할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이었다. 이게 과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인지 계속 묻게 됐다. 아프지 않게 사는 조건은 개인의 돌봄이나 치료를 넘어, 덜 아플 수 있는 환경, 덜 위험한 환경이라는 인식으로 옮겨 갔다.


길고양이를 ‘관계’로 바라본 연구와의 만남


그러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종찬 선생님의 석사학위 논문을 읽게 됐다. 길고양이를 단순히 질병이나 개체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캣맘과 공무원, TNR을 수행하는 병원 관계자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행위자 연결망 이론(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은 인간과 비인간을 모두 행위자로 보고, 이들이 얽혀 만드는 네트워크가 사회적 결과를 형성한다고 설명하는 사회이론)’ 속에서 바라본 연구였다. 길고양이를 한 마리의 환자가 아니라, 도시 안에서 여러 주체와 얽혀 살아가는 존재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알게 됐다.


길고양이를 위해 필요한 건 병원에서 한 마리를 치료하는 일이 아니라, 도시라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의사로서 이러한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직접 임상 현장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미흡할 것 같았다. 결국 먼저 임상 경험을 쌓아 현장을 이해했고, 그 과정을 거친 뒤 질문의 초점은 비로소 개체 치료에서 도시 환경 구조로 완전히 옮겨갈 수 있었다.


‘경계동물’로서 길고양이를 기록하다

서울연구원 작은연구 좋은서울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경계동물의 서식처로서 서울의 도시 환경: 길고양이를 중심으로〉는 조담빈, 권소희, 박소영, 임한솔 4인의 연구진이 길고양이를 서울이라는 도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경계동물'로 정의하고 그 서식 조건을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둔 연구서다. 사진 서울연구원
서울연구원 작은연구 좋은서울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경계동물의 서식처로서 서울의 도시 환경: 길고양이를 중심으로〉는 조담빈, 권소희, 박소영, 임한솔 4인의 연구진이 길고양이를 서울이라는 도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경계동물'로 정의하고 그 서식 조건을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둔 연구서다. 사진 서울연구원

그 문제의식은 협력과 집단 지성으로 확장되어 서울연구원 연구로 이어졌다. 조경학과 박소영 선생님이 주도한 랩 모임에서 탐조 관련 발표를 듣고 인연을 맺었고, 길고양이 시선에서 바라본 도시를 연구했던 조담빈 선생님 그리고 임한솔 박사님과 함께 힘을 합쳤다. 우리는 길고양이를 주제로 서울에서의 모습을 연구하기 위해 ‘서울연구원 작은연구 좋은서울 지원 사업’ 과제를 진행했다. 연구 제목은 〈경계동물의 서식처로서 서울의 도시 환경: 길고양이를 중심으로〉였다.


이 연구는 길고양이를 민원이나 관리의 대상으로 전제하지 않고, 서울이라는 도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경계동물'로 정의하고 그 서식 조건을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특히 임한솔 박사님은 모두가 바쁜 상황에서도 회의를 할 때마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와 필요한 정보들을 항상 철저하게 준비해 오셨다. 이러한 조율 능력과 실질적인 플랜 덕분에 회의가 허둥지둥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착착 진행될 수 있었으며, 연구의 결과물인 보고서와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이 연구는 단순히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뜻깊은 협업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지렁이 되(돌리)기」, 타자의 조건을 묻는 글쓰기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을 11명의 필진이 각자의 언어로 기록한 책으로 권소희 수의사는 에세이 「지렁이 되(돌리)기」 로 참여했다. 사진 알라딘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을 11명의 필진이 각자의 언어로 기록한 책으로 권소희 수의사는 에세이 「지렁이 되(돌리)기」 로 참여했다. 사진 알라딘

연구를 마친 뒤, 이 문제를 연구보고서로만 남기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비인간 도시의 생물들』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도시를 인간만의 공간으로 상정해 온 기존의 시선을 벗어나,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을 11명의 필진이 각자의 언어로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서 맡은 기록은 「지렁이 되(돌리)기」라는 제목의 에세이다. 지렁이는 도시에서 가장 쉽게 무시되는 존재다. 비 오는 날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고, 대부분은 밟히거나 말라 죽는다.


지렁이를 흙으로 옮기는 경험은 구조라기보다 질문에 가까웠다. ‘서울환경연합 지렁이 구조단 꿈틀단’ 활동을 하면서, 지렁이를 맨손으로 옮길 때 ‘다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압력’이 어느 정도인지 계속 고민하게 됐다. 또 단지 아스팔트에서 옮기는 것만이 답이 아니었다. 사람이 밟아 잘 다져진 흙에는 빈틈이 없어 못 들어간다. 이 흙이 구조한 지렁이가 돌아갈 수 있는 상태인지, 돌아갈 수 있는 정도의 밀도는 또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했다.


지렁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선의가 아니라 조건이었다. 피부로 호흡하며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 그 존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한 뼘의 거리와 세계를 상상해 보려는 시도였다.


15분 도시, 무엇이 바깥으로 밀려나는가


요즘 도시계획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15분 도시는 인간의 편의를 최적화한 개념이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인간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다 넣는다는 개념인데, 이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 무엇이 도시 안에서 지워지는지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15분 안에 정돈된 일상이 가능해지려면, 그 질서에 맞지 않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폐기물, 비효율 그리고 관리하기 어려운 비인간 존재들이다. 이처럼 도시가 잘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다른 공간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도시가 이렇게 밀집된 공간이면 안 된다.


미래의 질문: '들개'와 도시의 경계를 묻다


들개는 대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반려, 식용 등의 목적으로 키워지다 유기 또는 탈출로 인해 재야생화된 '경계성'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사진 권소희
들개는 대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반려, 식용 등의 목적으로 키워지다 유기 또는 탈출로 인해 재야생화된 '경계성'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사진 권소희

연구와 에세이를 작업하면서 계속 남는 질문은 '우리는 누구인가'였다. 도시를 말할 때 쓰는 '우리'는 거의 언제나 인간만을 가리킨다. 그 바깥에 있는 존재들은 늘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난다.


앞으로의 연구는 길고양이나 지렁이와는 달리,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들개'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들개는 도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누군가는 정말 피해를 받고 있는 존재다.


특히 2027년 개식용 종식이 이루어지면, 식용견들이 사회화되지 않은 채로 풀려났을 때 예상하지 못한 행위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이나 작은 동물, 농장 동물을 향한 개 물림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문제를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당장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금껏 그래왔듯이 살처분의 수순을 밟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동물자유연대 동물과 미래포럼 연구 지원 사업에 '경계적 존재로서의 들개, 제비, 가로수'를 묶어 연구 계획을 제출했고, 내년에 진행이 확정되었다. 제주도는 중산간 지역에 들개 개체 수가 상당하고(2천 마리 정도 추정), 제비가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라는 생태적 특성도 있어 대상지로 선정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불완전한 소통을 인정하는 존재


'서울환경연합 지렁이 구조단 꿈틀단’ 활동에 참여하며 지렁이의 상태와 지렁이가 처한 환경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사진 권소희
'서울환경연합 지렁이 구조단 꿈틀단’ 활동에 참여하며 지렁이의 상태와 지렁이가 처한 환경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사진 권소희

길고양이의 죽음이 오래 남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지식과 윤리 의식 없는 전문가의 판단에 결정을 맡겼고, 그 맹목적인 선택이 결국 한 생명을 돌이킬 수 없는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이 가장 뼈아팠다. 지렁이를 흙으로 옮길 때도 같은 고민을 했다. 이 개입이 정말 도움이 되는지, 그 존재의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지렁이 되(돌리)기」 에세이에서 던졌던 마지막 물음이었다. 이 질문은 우리 자신을 하나의 완벽한 존재로 정의 내리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소통을 인정하고 관계를 계속 이어 나가고자 노력하는 존재로서, 그 과정에서 어떤 태도와 행동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도시를 구성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애초에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완전하지 않고 엇갈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각자의 위치를 인정하고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답을 내리기보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 느린 태도 자체가 도시를 구성하는 책임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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