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미 총괄 2024- 02-16
최병성은 초록별생명평화 연구소와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이다. 오마이뉴스 환경탐사 전문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2011), 『나는 시민기자다』(2013), 『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2015),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2023)를 저술했다.
위대한 유산
어릴 때 산 곳이 인천 부평이다. 봄이 오면 진달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노란 개나리가 100미터가 되고 배나무가 30그루가 되고 밤나무는 15그루가 있었다. 5월이 되면 은방울 꽃의 그 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부자였다. 이런 부를 누렸던 것은 아버지의 가난 덕분이었다. 우리집도 아니었고 땅 한평도 없어지만 집 뒤의 산이 다 정원이었다. 다들 담장 친 자기 집 뿐이었지만 어마어마 넓은 산의 아름다움을 누렸다. 부(富)는 소유가 아니라 누리는 자의 몫이다. 어릴 때 흙과 자연, 꽃, 곤충과 가까이 있었던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아버지의 가난이 가장 큰 위대한 유산이다. 뒷산 꼭대기가 거대한 공동묘지였다. 거기에는 큰 무덤도 있고 작은 무덤도 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다. 죽어서 오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랐다. 죽음과 친했다. 내가 무언가 남겨야 하고,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이유다. 생명에 대한 것을 그때 배웠다. 한의대를 가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항상 수석이었다. 서울대 법대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많은 것을 가진 친구였다. 그런데 병원에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신장 투석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죽었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이 울어 본 적이 없다. 생명과 죽음이 내 손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당시 양을 키우고 있었는데 문득 하나님을 위해 인생을 살아야겠다. 죽은 친구의 몫까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신대를 갔다. 어릴때 가톨릭의 영성과 개신교의 자유분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모두 안녕하신가요?
쓰레기 시멘트는 2006년부터 매달려왔다. 시멘트업계에서 정정 보도 소송을 걸어 왔다. 재판을 준비하면서 알게된 것이 있다. 하나는 '라돈'이다. 시멘트업계는 시멘트가 안전하다고 말한다. 환경부 기준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주장이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의 많은 논문과 실험 데이터에서 몰랐던 사실을 발견했다. 시멘트만으로 집을 짓는 곳은 없다. 시멘트에 물을 섞어 콘크리트로 만들면 전혀 새로운 물질이 된다. 라돈 방출량이 20~30배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전세계에서 시멘트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국민 1인 당 시멘트 소비량이 0.91톤이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전부 0.3톤밖에 안 된다. 심각한 생명에의 위협이다. 다른 하나는 시멘트 공장 주변의 주민들의 건강이다. 시멘트 공장에서 오염물질이 나오면 암모니아와 합성이 돼서 구름기둥이 만들어진다. 이 기둥이 흐르면서 아래쪽에 스모그를 만든다. 천식과 폐 질환을 가져 온다. 시멘트협회에서 소송을 걸어 온 덕분에 하나는 국민의 생명을 위한 재판, 또 하나는 시멘트 공장 주변의 사는 주민의 생명을 위한 재판, 두 개가 지금 진행 중이다. 매우 감사하다. 공부를 더 하게 되었고,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에 놓인 일들을 해결하려고 뛰어다니다 보니 월급대신 고소장만 받았다. 처음 1999년 영월에서 서강 쓰레기매립장 반대할때부터 이미 공무집행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등 여러가지를 겪었다. 시간을 걸렸지만 지금까지 다 승소했다. 아직 진행중인 재판이 두 건 있다.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전문가의 논문이 있고 데이타가 있다. 무엇보다 사진이 있다.
생명을 지키는 일
자연이 좋았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내가 가야 할 길을 미리 준비하셨다. 어릴 때 자연 가까이에서 생명을 보게 하셨고, 사물을 바라보는 카메라를 보내 주셨다. 고등학교 때 외국에 갔던 형님에게 받은 카메라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다. 매일 꽃과 곤충을 찍었고 어머니는 매일 같은 것만 찍냐고 하셨지만 모든것이 달라보였다. 그것이 인생을 바꿨다. 사진을 하면서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쓰레기 매립, 시멘트, 산불, 산림, 난개발, 기후위기 등 수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물을 보는 특별한 눈을 내게 주셨다. 내 글의 가장 큰 힘은 사진에 있다. 하나님은 가는 곳마다 해야 할 일을 주셨다. 교회를 바꾸러 간 영월에는 서강의 쓰레기매립장을 보게 하셨고, 시멘트공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을 보게 하셨다. 난개발로 산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하셨고, 산불로 사라지는 숲과 숲속의 생명체를 보게 하셨다. 환경을 알아 환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서강을 지키려 뛰어다녔고 쓰레기시멘트를 막기위해 뛰어다녔고 밤새 공부하고 밤새 글을 썼다. 가는 곳마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보였다. 하나님의 계획표에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환경 운동가라기 보다는 생명을 지키는 생명운동가다.
소중한 분과의 인터뷰, 그 미려한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