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9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한상훈 박사는 동물학자로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이다.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희대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도쿄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홋카이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환경부 자연보전국 생태조사단에서 일했으며,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국립생물자원관 척추동물연구과장, 한국자연환경과학정보연구센터 대표, 사단법인 한국환경정보연구센터 자연생태분과위원장, 야생동물연합 상임의장, 국제자연보존연맹 종보존위원회 두루미전문가그룹의 한국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지구상에 사라진 동물들』, 『한반도의 자연 환경과 야생동물』, 『한국의 개구리』(공저), 『한국의 포유류』(공저), 『백두고원』(공저) 등이 있다.
동물 감수성을 가지는 것이 필요해
나는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학자다. 1961년 부산 중심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낚시를 좋아하던 부친의 손에 이끌려 주말마다 1박 2일로 태종대와 다대포, 거제도 해안에서 비박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친은 동물을 좋아해 금붕어부터 잉꼬, 십자매 등 관상 조류와 개, 집토끼를 다락방과 좁은 마당에서 키웠다. 고양이는 고등학생 시절 집에서 자유롭게 풀어 키웠다. 그로부터 상당 기간 아침잠에서 깨어나면 머리맡에 고양이가 잡아 물어 놓고 간 쥐 사체(쥐 머리만 있는 경우도 종종)에 익숙해 갔다.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냥 우리 곁에 사는 동물로만 생각했다. 초등학교때 친구 집에 갔다가 부엌에서 솥에다 개고기를 삶는 걸 보고 '왜 개를 먹지? 개 말고도 먹을 것이 많은데…' 라는 정도로 생각했다. 자연과 동물 접촉이 자연스레 몸에 익숙해진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부산 사직동물원에서 전신이 검은 털의 진귀한 흑색 토종 승냥이(늑대)를 만나 한눈에 반해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날의 나를 있게 만든 운명적 만남이다. 무릇 나도 마찬가지지만 '동물권'은 동물에 대한 감수성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어린시절부터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자주 볼 수 있어야 이해하게 되고 권리에 대한 감수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 인간
50년 세월 동물을 관찰하고 지금도 현장에서 야생동물의 삶을 조사 연구하는 나에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 인간이다. 인간은 복잡한 감정을 가진 동물이다. 인간 이외의 야생동물은 서식 공간의 환경 특성 아래 더불어 사는 이웃 생명체와 생태적 지위(생존 생태계 내의 소비자-생산자-분해자의 구성원으로서의 위치), 소위 자연의 먹이사슬 법칙 아래 종족 유지라는 절대적 생존 목적을 위해 살아 간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인간을 포함해 동등한 생존 가치를 지니며 존재할 권리가 있다고 생명 권리사상은 당연한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인간이 지구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동물이다. 이상기후, 그로 인한 기후위기, 나아가 기후 붕괴와 생물다양성 손실은 모두 동물인 인간이 저지른 것이다. 지구 곳곳에서 이러한 이상 현상으로 기후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대량 산불과 계절을 잊은 집중 강우, 태풍, 지구온난화로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는 농작물, 인수공통 전염병의 창궐, 팬데믹 현상 등은 인간과 동물 등 온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생존목적이 아닌 허욕과 물질만능소비로 벌어진 것이고 '인간의 이기적 생존'이 가져온 결과물이다. 인간도 동물의 하나라는 것을 인지하고 모든 생태계를 좌지우지하려는 자세부터 고쳐야 '동물'이 생명체로 보이게 될 것이다.
동물의 습성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도시 사람들은 야생동물이 아니라 집 주변의 개와 고양이를 '동물'로 만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개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습성을 가진 동물이다. 그에 비해 고양이는 자유롭게 단독생활하는 습성을 가진 개성 강한 동물이다. 사회성이 서로 다른 개와 고양이의 행동 관찰을 해야만 개와 고양이의 반응을 이해 할 수 있고, '동물권'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반려동물이 되었지만 사실은 각기 지내 온 과정과 목적이 다르다. 개와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생활 습성이 다른 동물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출발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를 인간과 동등한 생명체로 여기고 그들의 복지와 생존권에 대한 법률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과정에서 개와 고양이를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부터 어렵다고 생각한다. 심리적으로, 감성적으로 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인간 스스로 개나 고양이을 대하는 자생적 내적 인격 형성 과정에 차이가 있고 태어나 성장한 지역(도시와 시골)과 사회, 성별, 세대, 현 생활환경(아파트와 독립주택, 개발 신도시와 구도심 등 거주환경과 거주지역) 의 차이가 영향을 준다.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은 다른가 같은가?
'동물권' 운동은 독일, 프랑스등 유럽 선진국과 일본이 지난 세기 후반부터 수십 년간 반복하면서 오고 있다. 지금도 생명 존중 중심 운동은 진행형이지만 쉽지 않은 숙제다. 실제로 서울 도심에 너구리와 같은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기자가 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신도시 개발이 된 곳인데, 새로 건축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철거된 주택가에서 살아 온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캣맘'이 생겼다. 이들은 너구리가 나타나 고양이밥을 다 빼앗아 먹는다고 너구리를 포획해 달라는 민원을 넣는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는 여우가 나타나 고양이 밥을 먹는다고 속상해하는 캣맘의 제보가 많다고 한다. 반려동물과 동물은 다른가?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혹시 반려동물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닌가?
동물 보호 선진국으로 가기 위하여
시민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동물보호법 제정등으로 변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중앙행정기관과 기초지자체 행정의 동물보호에 관한 제도적 개선은 무엇보다 절실하다. 과거 20년 전 이동성 야생조류와 서식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섬 지역의 길고양이 관리와 제도 개선에 대한 정책 변화를 시도하면서 모 동물보호단체로부터 항의 민원을 받은 적이 있다. 인식 전환을 통해 인간사이에서의 갈등도 해소해야 하고 제도도 개선되어야 하고 갈 길이 멀다.
아직 동물, 엄밀히 말하면 개와 고양이 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행정 제도 개선에 선진국형 법체계의 실효적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개선된 선진국형 동물보호법을 근거로 중앙 정부와 지방 행정 제도의 체계적인 관리 개선과 시설 설치가 이루어져야 하고, 동물보호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유도해야 동물보호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PNR의 국내 첫 '동물법' 컨퍼런스를 축하하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야생동물학자인 나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전력질주 해 온 변호사님들에게 부족한 '동물법'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었고 새롭게 공부할 동기도 얻었다. 발표해 주신 변호사님들의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중단 없는 활동을 기대하며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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