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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멈출 수 없는 노동, 멈추지 않는 위험…기후위기 시대에 기본소득을 묻다

  • 1일 전
  • 3분 분량

노동권에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위험할 때 멈출 권리’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보장하는 기반이 기본소득이다.



김용만  편집인
김용만  편집인

계절은 이제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기후 이상 변화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공평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멈출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멈출 수 없다. 이 차이가 생존을 좌우하기도 한다.


폭염 속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폭우 속 배달을 멈출 수 없는 플랫폼 노동자, 냉방조차 충분하지 않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에게 “위험하면 쉬라”는 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쉬는 순간 소득이 끊기고 소득의 단절은 생존의 위기로 이어진다.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은 개인의 의지나 용기가 아니라 소득 수준과 고용 형태에 의해 결정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영업자와 플랫폼 노동자 사이의 격차는 기후위기 속에서 ‘생명 격차’로까지 비화된다. 기후위기 시대의 노동권은 무엇인가. 일할 권리만으로 충분한가. 위험한 노동을 거부할 권리까지 포함되어야 하는가.


노동자는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고 아무리 위험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후위기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더위와 재난이 일상이 될수록 노동자는 더 자주 위험과 생존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일부 국가에서는 문제를 제도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도의 ‘폭염 보험’은 상징적인 사례다. 기온이 사전에 설정된 기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보험금이 지급된다. 노동자가 일하지 못하는 상황을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위험’으로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보상이 아니라 위험하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개별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위기는 특정 직종이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 구조를 흔들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 대안 중 하나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흔한 오해는 “일하지 않아도 돈을 주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기본소득의 본질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 기본소득은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을 ‘강요된 생존 수단’에서 ‘선택 가능한 활동’으로 전환시킨다.


기본소득 사회는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므로 위험한 조건에서 일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면서까지 일을 지속하지 않아도 되는, 즉 노동자가 ‘멈출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사회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 기본소득이 지향하는 핵심이다. 노동자가 “일하지 않으면 굶는다”는 압박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기본소득은 ‘공동의 자원’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토지, 데이터, 기술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사회적 자산과 자연 자원의 결합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 역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공유의 원칙을 제도화하는 방식이다.


탄소를 배출하며 성장해 온 산업,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로 인해 발생한 기후위기 비용 역시 개인에게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 폭염 속에서 일하다 쓰러지는 노동자의 위험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소득을 재분배하는 정책을 넘어 기후위기 비용과 책임을 사회 안에서 재조정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위험을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분담하는 체계는 기본소득이 갖는 진정한 의미다.


기본소득은 노동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협상력을 강화한다.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될 때, 노동자는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위험한 작업 환경을 거부할 수 있고 부당한 대우에 맞설 수 있다. 이는 노동의 질을 높이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일할 수 없는 날’은 늘어날 것이다. 폭염, 폭우, 산불, 미세먼지 등 다양한 형태의 기후 재난이 노동을 중단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 중단이 일부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재택근무로 대응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하루의 수입을 잃는다. 이 불균형을 그대로 둔다면 기후위기는 사회적 불평등을 증폭시킬 것이다.


올해 노동절은 근로자의 날에서 62년 만에 명칭이 바뀌었고 법정 공휴일이 되었다. 노동절은 그냥 기념일이 아니다. 노동의 의미와 권리를 다시 정의하는 날이다. 과거의 노동권이 ‘일할 권리’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위험할 때 멈출 권리’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권리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기본소득이다.

2026년 4월 14일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위원장 대통령, 부위원장 강남훈)가 출범식과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국가의 정책을 총괄, 조정, 점검하는 핵심 기구이다. 올해 안에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목표, 추진 전략 및 주요 정책 등을  실현 방향에 담아 구체화하고, 전문가 자문, 권역별 간담회 등을 거쳐 '기본사회 추진 실현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_ 행정안전부
2026년 4월 14일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위원장 대통령, 부위원장 강남훈)가 출범식과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국가의 정책을 총괄, 조정, 점검하는 핵심 기구이다. 올해 안에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목표, 추진 전략 및 주요 정책 등을 실현 방향에 담아 구체화하고, 전문가 자문, 권역별 간담회 등을 거쳐 '기본사회 추진 실현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_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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