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4대강사업이 남긴 것, 물의 정치
- Dhandhan Kim
-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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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8 김복연 기자
4대강사업은 자연을 도구화하고 강을 통제하려 했고,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생태계 파괴와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이제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강을 생명체로 인식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강을 다시 사유하다
기후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물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한 해에 몇 차례씩 반복되는 국지성 홍수와 극심한 가뭄은 더 이상 이례적인 재난이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물이 넘쳐 나거나 사라지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와 규모는 과거의 기후 체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연강수량의 총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특정 시기 집중 강수로 인한 재난 발생 빈도는 급증하고 있다. 댐과 제방, 수문과 펌프에 의존해온 기존의 물 관리 체계는 이런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물정책은 곧 생명 정책이다. 물을 어떻게 확보하고, 어떻게 저장하며,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따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이 좌우된다. 그런데 물정책의 기초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우리는 자연을 무엇이라 인식하고 있으며, 강을 어떤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가. 이 지점에서 4대강 사업은 기후위기 시대에 재조명되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잘된 정책이었느냐 실패한 개발이었느냐를 넘어서, 우리가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새롭게 맺을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가 된다.
인간을 위한 강, 인간에 의한 강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4대강 사업은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 한국의 주요 하천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수자원 개발 사업이었다. 정부는 홍수 예방, 가뭄 대응, 수질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총 22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사업은 단기간에 속도감 있게 추진되었고, 그 결과 전국의 주요 강에는 16개의 보(Weir)가 설치되었다. 준설이 이뤄졌고, 제방이 높아졌으며, 자전거길과 수변공간, 레저시설이 강을 따라 조성되었다.
이 사업은 처음부터 철저히 ‘인간 중심의 자연 이용 논리’에 기반했다. 흐르는 강을 조절 가능한 자원으로 만들고, 관리 가능한 공간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강은 더 이상 스스로 흐르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필요할 때 물을 저장하고, 넘칠 때는 차단하며, 휴식과 여가의 공간으로 소비되는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자연관과 맥을 같이한다. 자연은 인간이 정복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며, 그 효용성에 따라 가치를 부여받는다. 서구 근대의 사상적 기반을 이룬 데카르트적 이원론—‘자연은 기계이고 인간은 이 기계의 관리자다’라는 사고—가 21세기 한국의 국책사업에도 그대로 투영된 셈이다.
강이 멈췄을 때 생긴 일

그러나 자연은 결코 통제 가능한 기계가 아니었다. 보가 설치되면서 유속이 느려진 강에서는 녹조가 급증했다. 유기물이 고이고, 산소가 줄어들면서 수생태계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낙동강과 금강 일대에서 확인된 녹조는 해마다 그 면적과 밀도를 넓혔다. 식수원에 대한 불안이 커졌고, 독성 조류에 대한 경고도 이어졌다.
또한 강의 생태적 회복력이 약화되었다. 퇴적토를 대규모로 준설한 결과, 하상의 생태 환경이 파괴되었고, 모래톱과 여울, 갯벌 등 자연스럽게 형성되던 생물의 서식처가 사라졌다. 어류의 산란장소는 줄었고, 조류의 둥지 공간도 감소했다. 강은 물리적으로만 ‘정비’되었을 뿐, 생명력을 잃어갔다.
무엇보다 4대강사업은 사회적으로도 균열을 남겼다. 개발을 추진한 정부는 “살리기”라는 언어를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강의 흐름을 가두고, 자연의 자율성을 봉쇄한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이를 반대했던 시민단체, 환경운동가, 일부 지자체는 자연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다른 언어를 구사했다. 이 인식의 충돌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를 철거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이 논쟁은 단지 정책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강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갈라지는 가치의 질문이다.
기후위기와 물의 정치
기후위기 시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물정책을 요구한다. 예측 불가능한 폭우와 장기화되는 가뭄, 강수 패턴의 변화는 기존의 댐 중심, 구조물 중심의 치수 방식을 무력화시킨다. 이제는 물을 단순히 ‘가두고 저장하는 대상’으로 보기보다, 유역 단위에서 순환하고 공존해야 할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이미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을 기후위기 대응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이는 강과 하천, 습지, 산림 등을 기초 시설로 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전하고 회복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다. 하천 복원, 유역관리, 자연유량 확보, 생태통로 조성 등은 단지 생태 보호만이 아니라, 기후 회복력(climate resilience)을 높이는 전략이기도 하다.
4대강사업은 이러한 흐름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자연을 인공화하고, 강을 직선화하며, 흐름을 멈춘 것이 정책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수질, 생태계, 사회적 신뢰, 경제적 지속가능성 등 여러 지표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강에 대한 사유의 전환
이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강을 어떻게 인식해 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더 이상 강을 도구로만 바라볼 수 없다. 그것은 생명을 품는 존재이며, 생태계의 연결망이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부다.
‘살린다’는 말의 의미도 되돌아봐야 한다. 살린다는 것은 인간이 구조물을 만들어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강이 스스로 흐르고, 숨 쉬며, 되살아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 그리고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회복을 돕는 것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을 거두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회복의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4대강사업은 단순히 실패한 토목공사가 아니라, 인식의 실패, 더 나아가 자연관의 실패로 봐야 한다. 그리고 이 실패는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물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강은 더 이상 단순한 물길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조건이며, 회복의 출발점이며, 사회의 가치를 비추는 거울이다. 강을 다시 흐르게 하고, 그 흐름을 존중하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설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4대강 사업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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