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난 리포트12 | '기후 재난'의 최전선은 지방정부, 지휘권한이 있어야 한다
- planetssong03
-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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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7월 4일
2025-07-03 김성희 기자
기후위기 시대, 재난은 기술로만 막을 수 없다. 진짜 대응은 현장에서 시작되며, 지방정부의 실행 역량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기술과 정보가 지방정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수평적 협력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재난 대응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2023년 7월 15일 오전 8시 45분, 충북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는 순식간에 거대한 물의 덫으로 변했다. 미호강 임시제방이 무너지면서 거센 흙탕물이 지하차도를 덮쳤고, 차량 17대가 침수되며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현장엔 공사업체, 소방, 경찰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다. 수차례 경고와 신고가 있었지만, 대응은 없었다.
이 사고는 단순한 관리 소홀이나 일회성 부주의로 치부하기 어렵다. 구조적으로 무너진 재난 대응 시스템, 분절된 중앙과 지방 간 책임 체계, 무엇보다도 예상할 수 없는 홍수 재난 시대에 대한 인식 부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빚어진 참사다. 이제 재난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없다. 중앙과 지방, 공공과 민간, 기술과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응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 사고를 막지 못한다.
예고된 재난,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돌발적인 재난이 아니었다. 참사 발생 당일 오전 6시 31분부터 최소 10차례에 걸쳐 관련 기관에 경고와 신고가 접수됐다. 충북도, 청주시, 경찰, 행복청, 감리단장 등은 임시 제방 붕괴 위험과 도로 침수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통 통제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대응 조직 간의 정보 전달은 단절됐고, 재난 상황을 관리할 컨트롤 타워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너진 임시제방에서 지하차도까지, 물이 닿기까지 약 30분의 ‘골든타임’이 있었다. 이 시간 동안 차량은 계속해서 지하차도로 진입했고, 통행금지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법적으로도 통제 책임은 명확히 규정돼 있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재난 발생 시 주민 대피명령, 통행금지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지자체가 위험 상황을 감지했다면 차량 진입을 막고 지하차도를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는 뜻이다.
중앙정부 또한 현장과의 유기적 연결에 실패했다. 하천은 환경부, 도로는 국토부, 지하차도는 지자체, 재난은 행정안전부의 책임이라는 분절된 권한 구조 속에서 정보는 흩어졌고, 누구도 최종 판단을 내릴 ‘컨트롤타워’로서 행동하지 않았다. 법과 매뉴얼은 존재했지만, 실시간 상황 판단과 조치를 내릴 기동성 있는 체계는 없었다. “위험을 감지했으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후위기, 홍수의 양상을 바꾸다
홍수는 예전에도 있었다. 현재는 기후위기로 인해 홍수는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다. 비는 더 갑작스럽고, 더 강력해지고 있으며, 기존의 인프라와 대응 체계를 압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8월 서울 집중호우다. 서울 동작구에는 시간당 114.3㎜의 폭우가 쏟아졌는데, 이는 200년 빈도의 강우량으로 서울시의 배수 설계 기준(95㎜/hr)을 넘어선 수치였다. 단 이틀간의 비로 지하철역, 도로,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었고, 시민들은 도심 한가운데에서 수해를 피하지 못했다.
‘우심피해’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3~2022) 전국 184개 시군구에서 총 2조6480억 원의 수해가 발생했으며, 이 중 2020년 한 해에만 76개 지자체에서 1조1830억 원의 피해가 집중됐다. 가장 많은 피해를 유발한 원인은 태풍보다도 호우였다. 중부지방에선 4일간 600㎜ 이상의 비가 내리는 ‘정체전선’ 형태의 집중호우가 잦아지고 있고, 지방의 저지대 도심과 지하차도는 매번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기상청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1~2019) 평균기온은 이전 30년 대비 0.6℃ 상승했고, 폭염 일수는 2000년대 10일에서 2010년대 15.5일로 150% 이상 늘었다. 이는 대기 중 수증기 함량을 높여 극한 강수 발생 확률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문제는 기존 홍수 대응 체계가 이러한 변화에 맞춰 업데이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존의 댐·배수로 설계 기준, 통제 매뉴얼, 인력 배치 시스템은 과거의 강우 패턴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균이 아니라 극한을 기준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시대다.
제각각 움직이는 재난 대응 시스템
현재 우리나라의 물 재해 관리체계는 복수의 부처와 기관이 나눠 맡고 있다. 하천은 환경부, 재난 대응은 행정안전부, 도로는 국토교통부, 홍보는 기상청, 지방하천은 시·도지사, 소하천은 시·군·구청장이 관할한다. 실제로 전국에는 국가하천 62곳, 지방하천 3774곳, 소하천 2만2482곳이 있으며, 이를 담당하는 기관만 해도 중앙부처 5곳 이상이다. 컨트롤 타워 없이 다층적 구조만 존재하는 셈이다.
정부는 2018년,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물 관리 기능을 환경부로 일원화했지만, 여전히 농업용수는 농림축산식품부, 수력발전은 산업통상자원부, 홍수·태풍 등 재난 대응은 행안부가 각각 맡고 있다. 특히 재해 발생 시 지방정부가 통제권을 갖고 있음에도, 상위 지침을 기다리는 ‘눈치 행정’이 작동하면서 실시간 판단을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또한, 감사원 자료에 의하면 전국 159개 지하차도 중 외수 침수에 대한 통제 기준이 없는 곳이 대다수이며, 차량 차단 시스템이 설치된 비율은 23%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법은 있지만 이행하지 않고, 예산은 있지만 투입이 지연되고, 책임은 있지만 나눠 갖지 않는다. 중앙과 지방 간의 ‘역할 전가’는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재난 요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확한 책임 체계와 작동 가능한 협력 구조다.
재난의 최전선에 있는 지방정부, 하지만 권한은 없다

재난은 현장에서 발생한다. 침수위험지역 점검, 하수도 정비, 우회 안내, 경보 발령, 대피 유도까지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은 지방정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하천 2만6천여 개 중 99.8%가 지방하천 또는 소하천이며, 이들 대부분은 지방정부가 관리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중앙정부 중심의 관리 체계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어, 현장 대응의 실질 주체인 기초자치단체장은 위기 상황에서도 권한이 제한된다.
재난안전상황실 운영은 여전히 훈령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NDMS(국가재난안전관리시스템) 역시 제한적 접근만 가능해 정보 공유와 통합 대응이 어렵다. 전담 부서나 전문 인력이 부족해 상황실 근무를 당직 공무원이 겸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난 현장에서 필요한 민간 자원(중장비 등)도 법적 보상 기준이 없어 실질적인 활용이 제한된다. 이처럼 현장을 책임지는 기초지자체는 권한도, 자원도, 실행 체계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난 대응의 전면에 놓여 있다.
예측을 위한 기상정보와 홍수예보, 방재 인프라 구축을 위한 기술과 데이터, 대규모 예산과 인력이 모든 것은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서울 강남역·광화문 대심도 빗물터널 2개 구간 예산만 7769억 원에 달하는데, 군 단위 기초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21.3%에 불과하다. 재난 대응의 ‘실행’을 맡은 곳에 ‘실행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데이터를 행동으로, 협력이 필요한 순간

홍수 재난을 막기 위한 기술 개발은 분명 진전을 보이고 있다. 환경부는 인공지능(AI) 기반의 홍수예보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 75곳에 불과했던 홍수특보 발령 지점을 223곳까지 확대했고, 디지털트윈 기술을 활용한 3차원 가상 시뮬레이션도 본격 도입하고 있다. 또한 전국 주요 하천에 AI CCTV를 설치해 수위 상승 시 자동으로 사람과 차량을 인식하고 경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이와 함께 ‘홍수알리미’ 앱은 사용자 위치 기반으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며, 위험 지역 접근 시 카카오·티맵·네이버지도 등 민간 내비게이션 앱에서도 음성·화면 알림을 제공하는 기술이 도입되었다.
실제 2024년 장마기에는 예년보다 강우량이 32.5%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로나 지하차도 침수로 인한 사망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이 성과를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피 안내와 함께, AI 홍수예보 및 내비게이션 기반 경고 체계가 함께 작동한 결과로 평가했다. 중앙정부의 기술적 역량과 지방정부의 현장 대응이 연결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모든 지역에 균일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예보와 경고가 실제 조치로 전환되기 위한 기준과 책임 체계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경보가 울려도 ‘누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지역마다 다르고, 실행 여부는 결국 지방정부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기술이 경고만 제공하고, 그에 따른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실행 구조다. 중앙은 기술과 정보를 생산하고, 지방은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일관된 실행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과 매뉴얼, 책임의 법제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정보가 행동으로 전환되는 ‘실행의 골든타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데이터와 시스템이 있어도 재난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중앙-지방, 수평적 협력의 전환점
홍수 예보, AI 경보, 내비게이션 알림 등 첨단 기술이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재난 대응의 결정적 순간은 여전히 ‘현장’에서 벌어진다. 실제로 2024년 장마기, 지자체의 신속한 대피 안내는 침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는 중앙정부가 기술과 정보를 뒷받침하고, 지방정부가 판단과 실행을 주도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이 현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 예산, 운영 책임이 함께 이양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강우는 예측도, 대응도 쉽지 않은 ‘난제(wicked problem)’다. 다부처에 걸쳐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으며, 정답도 없다. 결국 해법은 ‘협력’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수직적인 지휘-복종 관계가 아니라, 역할을 나누는 수평적 파트너로 전환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예측과 정보 총괄, 과학기반의 기술적 조정 기능을 담당하고, 지방정부는 신속한 현장 대응과 시민 접점 강화를 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순히 책임만 넘기는 것이 아니라, 권한과 자원을 함께 이양하며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협력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다시 설계해야 할 재난 대응 체계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