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⑨ 대규모개발사업 | 댐, '인프라주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 Theodore
-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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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1일 최민욱 기자
2020년, 500년 빈도의 폭우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200년 빈도를 기준으로 설계된 하천 제방과 댐은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가하천의 설계 기준을 500년으로 상향하고, 홍수기 제한수위를 낮추는 등 일부 운영방식을 조정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인 2022년, 또다시 ‘500년 빈도’로 평가된 집중호우가 서울과 수도권을 강타했다. 2024년에도 같은 수준의 기록적 폭우가 이어졌고, 2025년 7월에는 충남 예산에 500년 빈도를 넘어서는 극한 호우가 쏟아졌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댐은 기후의 정상성(stationarity), 즉 기상이 일정한 통계 범위 안에서 반복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설계되는 인프라다. 현재는 예외적 기상이 오히려 일상화되는 시대다. 매년 기록을 경신하는 폭우와 극한 기온이 반복되며, 과거 통계가 더는 미래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강수량 증가에 맞춰 설계빈도를 200년에서 500년, 다시 그 이상으로 상향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과거 데이터를 기준으로 설계를 조정하는 대응은 결국 ‘홍수 설계치의 무력화’를 반복할 뿐이다.
기후위기는 과거와 같은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한 대응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불러왔다. 이처럼 예외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수동적 대비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특히 단일 거대 인프라에 의존하는 방식은 위험 분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이제는 ‘만능 인프라’ 건설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불확실성과 돌발 가능성을 전제로 한 유연하고 분산된 대응 체계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기후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된 토건사업
‘기후대응댐’이라는 명칭 자체부터 불명확하다.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포괄적 구호 아래 댐 사업을 재정비했지만, 이 명칭이 실제로 기존 댐과 어떤 기술적·기능적 차이를 갖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후보지의 입지 조건이나 제시된 효과 또한 ‘물 저장’, ‘홍수 저류’ 등 기존 다목적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기후대응’이라는 수식어는 새로운 전략이라기보다 기존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적 명분으로 기능한 측면이 크다. 이러한 개념적 모호성은 정책 추진의 타당성 평가를 어렵게 만들고, 공공과의 소통의 왜곡을 초래했다.

윤석열 정부는 잦아진 극한 호우와 가뭄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이른바 ‘기후대응댐’ 건설을 본격 추진했다. 환경부는 2023년 후보지 14곳을 공개했으며, 이는 2010년 보현산댐 이후 14년 만의 국가 주도 신규 댐 사업이었다. 정부는 “연간 2억5천만㎥의 추가 물 확보”와 “강우 80~220㎜ 저류 가능” 등을 내세워 기후대응 효과를 강조했다. 대규모 댐 건설 계획은 곧바로 논란을 불렀다. 특히 정부가 댐 건설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법정 절차인 ‘댐 사전검토협의회’의 폐지를 시도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환경단체들은 “댐은 기후위기 대응책이 될 수 없다”며, 국제적 추세인 댐 해체 흐름에 역행하는 토건 중심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정권 교체 이후 기후대응댐 정책은 전환점을 맞았다. 2025년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홍수·가뭄에 실질 도움이 되지 않거나 지역 주민이 원치 않는 댐은 백지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같은 해 7월 15일, 김성환 환경부 장관(후보자) 역시 인사청문회에서 기후대응댐에 대한 전면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 윤 정부 시절 추진된 14개 후보지 중 4곳(강원 양구, 충북 단양, 충남 청양, 전남 화순)은 2024년 말 주민 반대를 이유로 선정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환경부는 나머지 9곳은 “폐기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공약과 실행 간 괴리가 불거지고 있다.
기후대응의 탈을 쓴 재정 전략
기후대응댐 프로젝트의 추진 동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선 지자체들의 열망이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환경부가 2023년 신규 댐 후보지 선정을 위해 전국 지자체로부터 신청을 받았을 때 무려 17개 지자체에서 21곳을 건의했다. 이 가운데 경기 연천 아미천, 경북 김천 감천, 경남 거제 고현천 등 8곳이 최종 후보지로 채택되었다. 나머지 6곳은 정부가 자체 선정한 것으로, 사실상 ‘지역 희망 + 중앙 기획’이 결합된 사업이었다.
지자체 입장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국비가 투입되는 다목적댐을 유치하는 것은 지역 발전과 예산 확보의 기회였다. 특히 용수 확보를 위한 시설은 원칙적으로 지자체가 자체예산으로 추진해야 하는 반면, 홍수 예방 등 치수 목적의 사업은 국비 지원이 가능하다는 제도 구조는 댐 사업을 ‘치수 목적’으로 포장할 유인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용수 공급이 주된 목표인 사업도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비 사업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가뭄 해소, 지방 산업단지 용수 공급, 홍수 피해 경감 등은 지역 주민을 설득하기에도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이러한 지방의 추진 동인은 동시에 기후대응댐 사업의 맹점이기도 하다. 지역에 따라 실효성이나 필요성이 낮아도 일단 유치하고 보자는 식의 논리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북 김천의 감천댐 후보지는 불과 3㎞ 상류에 다목적 부항댐이 이미 있다. 그럼에도 김천시는 “부항댐의 홍수조절용량이 1200만 톤에 불과해 부족하며, 감천댐을 추가로 건설해야 홍수위험을 덜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지역 논리는 결국 추가 건설을 정당화하지만, 주민 설득 과정에서 갈등도 나타났다. 실제로 감천댐 추진 협의체에서 반대 주민들은 배제되고 찬성 측 의견만 반영되었다는 지적이 나왔고, 지역 시민단체는 “댐이 있어야 안전하다”는 논리가 홍수보다 이익에 초점을 맞춘 요식행위라고 비판했다.
중앙정부의 기후 정책 기조 변화와 별개로, 지자체들이 ‘기후대응’ 프레임을 활용해 토건 사업을 선호하는 제도적 유인과 재정 구조의 결합이 기후정책의 왜곡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뒤엉킨 물관리 계획 체계, 기후대응댐 추진의 제도적 모순
기후대응댐 추진 과정에서는 국내 물관리 계획체계의 불일치 문제가 뚜렷이 드러났다. 현재 물관리 분야의 최상위 법정계획은 2021년 수립된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2021~2030)’이다. 이는 물관리일원화 정책에 따라 기존의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을 대체하며 등장한 계획으로, 향후 신규 수자원 개발사업은 이 계획의 방향 아래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댐 건설의 법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이, 사실상 폐지된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의 하위계획이었다는 점이다. 상위 계획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위계획이 갱신되며 이를 기반으로 댐 건설이 추진되는 것은 법·제도상 정합성이 결여된 기형적 상황이다.
실제로 환경부는 2024년 10월, 14개 기후대응댐 후보지를 포함한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안을 마련해 각 광역 지자체에 하달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아닌, 통합 이전의 옛 수자원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 구조였다. 동일한 국가 물관리 정책 안에서 서로 다른 위원회 체계를 적용한 것이다. 제도 간 충돌이 드러난 대표 사례다.
윤석열 정부가 앞서 ‘댐건설·관리법’ 개정을 통해 댐 사전검토협의회 폐지를 추진한 것도, 이러한 복잡한 승인 구조를 우회하고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같은 절차 축소는 환경영향 평가, 대안 비교, 지역 수용성 검토 등 필수적 숙고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정책 결정의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낳았다.
전례 없는 폭우 앞에 설계빈도 상향식 대응은 한계가 있어
홍수 방어를 위한 인프라 설계 기준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발생한 기록적 폭우는 기존 통계에 기반한 ‘설계빈도’ 개념의 신뢰성을 크게 흔들었다. 예컨대 2020년 7~8월 중부지방에 쏟아진 집중호우는 ‘500년 빈도’ 수준으로 평가되었고, 2022년 8월 서울 동작구에서는 시간당 141㎜라는 관측사상 최고 강우가 기록됐다. 정부는 이에 따라 댐과 제방의 설계 기준을 500년 빈도로 상향 조정했지만, 불과 2년 뒤인 2024년 7월 전북 익산에서 또다시 ‘500년 빈도’에 해당하는 폭우가 발생하며 큰 피해가 반복됐다. 실제로 최근 3년(2021~2023)간 집중호우로 인한 재산피해는 1조6천억 원, 인명 피해는 85명에 달할 만큼, 기상 이변의 강도는 기존 인프라 설계 한계를 초과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예측을 넘어선 폭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더 큰 홍수에 맞춰 더 튼튼하게’ 설계 기준을 상향하는 방식은 대응 효과보다 비용 부담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뭄을 우려해 홍수기에도 댐 수위를 높게 유지했다가, 2020년 수해 당시 제때 방류하지 못해 피해를 키운 사례도 있었다. 이는 설계 기준이 높아져도 실시간 대응 여력이나 예측 정확도가 확보되지 않으면 인프라가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더불어 기후변화로 강우 패턴 자체가 변하면서, 일정 확률에 기반한 ‘설계빈도’ 개념은 점점 현실과 괴리되고 있다. 500년에 한 번 올 법한 폭우가 불과 몇 년 간격으로 반복된다면, 기존 개념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결국 ‘설계빈도 추격전’은 정책적 정당성 확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반복되는 초과빈도 재해를 방어하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치수 패러다임 전환 없이 기존 체계를 고수할 경우, 인프라가 반복적으로 무력화되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홍수 vs 가뭄, 댐 운영의 딜레마가 부각돼
극한 기후가 일상화되면서, 하나의 댐으로 홍수와 가뭄이라는 상반된 재난을 동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딜레마가 뚜렷해지고 있다. 댐 운영 원칙상, 홍수기를 대비해 사전에 수위를 낮추면(홍수조절용량 확보) 가뭄 시 활용 가능한 저수량이 줄어들고, 반대로 가뭄을 염려해 만수위에 가깝게 유지하면 갑작스러운 폭우에 홍수조절 여력이 부족해진다. 더욱이 기상 예보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물을 언제 얼마나 확보하거나 방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충돌은 국내에서도 현실로 나타났다. 2022년 8월, 충북 괴산댐은 집중호우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비상 방류를 단행했고, 이로 인해 하류 지역에 피해가 발생했다. 발전전용댐이던 괴산댐은 평소 홍수조절 기능을 고려하지 않아 만수에 가까운 수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원인이다. 이 사태 이후 환경부는 “국민 안전을 위해 발전댐이라도 홍수기에는 수위를 낮춰 운영하겠다”고 방침을 변경했고, 실제로 2023년 홍수기(6~9월)에는 괴산댐의 제한수위를 기존보다 3m 낮춰 예비 용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수위를 낮춘 상황에서 실제로 폭우가 오지 않고 가뭄이 지속된다면, 지역의 용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문제가 또다시 제기된다.
이 딜레마는 소양강댐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국내 최대 규모인 소양강댐은 홍수기 제한수위를 조정해 홍수 대응 여력을 높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평시 용수 공급 능력의 94%를 이미 소진하고 있어, 가뭄 시 추가적인 공급 여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기후위기로 인해 두 재난이 번갈아 반복되는 상황에서, 단일 저수지로 이들을 모두 대응하겠다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하나의 대형 인프라에 모든 기능을 집중시키는 방식은, 기후위기 시대의 복합재난 앞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는 기후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물관리 전략이 분산형·유연형 구조로 전환되어야 함을 강하게 시사한다.
댐 넘어 자연으로, 홍수 대응의 새로운 패러다임
치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자연에 답이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부상이다. 대형 댐이나 인공 제방 같은 전통적 구조물 대신,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을 통해 홍수 위험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각국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인공 개입을 줄이고, 하천·습지·범람원 등 자연 생태계의 복원력을 활용해 수해를 완충하는 방식이다.

특히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과도하게 구축된 하천 인프라를 철거하고 범람원 복원에 나서는 정책이 확산 중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제방을 후퇴시키거나 강 주변에 홍수터를 조성해 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분산시키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룸 포더 리버(Room for the River)’ 프로그램을 통해 강 주변 토지를 낮추고 유수 공간을 재편성해 초과홍수를 유도한다. 미국 또한 미시시피강 유역을 중심으로 습지·숲 복원에 투자하며, 기존 구조물 의존에서 점차 탈피하고 있다.
자연기반해법의 핵심 강점은 '생태계 복원과 재해 저감이라는 이중 효과'에 있다. 예컨대 하천 상류의 산림과 계곡 습지는 홍수 시 빗물을 일시적으로 흡수해 하류 유출을 지연시켜 주며, 도시 지역의 빗물정원·투수성 포장·도시 숲 등 그린 인프라도 단기 집중강우에 대한 완충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처럼 수많은 ‘작은 해법’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는, 대형 댐처럼 하나의 실패가 전체 실패로 직결되는 중앙집중형 인프라에 비해 훨씬 탄력적이다.
이미 유럽 각국은 지난 수십 년간 5000개 이상의 소하천 댐·보를 철거해 하천의 흐름을 회복시켰으며, 미국도 경제적·생태적 효용이 저하된 댐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기후대응을 명분으로 신규 댐 건설을 추진하는 한국의 정책 방향과 뚜렷이 대조된다.
분산 및 스마트 물관리, 가뭄 극복을 위한 대안
기후변화로 강수 패턴이 불규칙해지면서, 해외에서는 대형 댐에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가뭄 대응 전략이 부상하고 있다. 핵심은 ‘분산형 수자원 관리와 스마트 기술의 결합’이다. 분산형이란 단일 대형 저수지 대신 여러 수원을 복합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이며, 이를 스마트한 운영 체계로 통합해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대표 사례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에는 강이 거의 없지만, 17곳의 빗물 저수지, 해수담수화 플랜트, 하수 재이용 시설 등을 통합해 ‘4중 수자원 체계’를 구축했다. 확보된 물은 센서·AI 기반의 스마트 관리 시스템을 통해 수요에 따라 최적으로 배분된다. ‘큰 물그릇 하나’보다 ‘작은 물그릇 여러 개’를 똑똑하게 운영하는 접근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지하 대수층을 활용한 비전통적 수자원 관리’로 주목받고 있다. 강우 시 남는 물을 땅속에 주입해 저장하고, 가뭄 때 이를 펌프로 회수하는 ‘대수층 저장·회수(ASR, Aquifer Storage and Recovery)’ 기법이 핵심이다. 2023년 기록적 폭우 이후, 샤스타호 저수량에 필적하는 5억㎥ 규모의 물을 지하에 저장했다. 이는 별도의 댐 없이 지하수면을 높여 자연 저수지를 확대한 사례다. 유럽 일부 국가는 ‘지하수법’을 통해 평상시 인공 함양을 의무화하고 있다.
세 번째 대안은 ‘물 수요 절감 및 손실 최소화’다. 이스라엘은 세계적 수준의 해수담수화 인프라에 더해, 농업 부문에 정밀 관개 기술을 도입해 물 이용 효율을 극대화했다. 영국 등은 AI 기반 누수 탐지와 노후 상수도 교체를 통해 유수율을 개선, 추가 수원 확보 없이도 실질적인 가용량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처럼 가뭄 대응에서 핵심은 ‘많이 저장’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분산·관리’하는 데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시대의 물관리 핵심은 거대한 단일 인프라가 아니라, 수많은 분산형 해법의 조합”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리스크 분산과 회복탄력성 측면에서 특히 중요하다.
거대 댐, 하나의 만능 인프라 환상에서 벗어나 다층적 물관리 체계로
‘기후대응댐’ 구상은 기후위기의 본질을 오히려 외면한 자기모순적 대책이다. 기후위기가 무서운 점은 불확실성과 초과빈도의 일상화된다는 점이다. 이를 대응한다며 과거 통계에 기반한 거대 인프라에 집착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낡은 접근이다. 물론 댐과 보 같은 전통 인프라가 일정 부분 유효성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수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만능 인프라주의는 이제 근본적으로 한계에 직면했다.
이제 물관리는 거대한 설비 하나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다층적 대응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 하천 공간과 범람원 등 자연기반해법을 전면화하고, 기존 댐의 기능은 유연하게 조정하며, 위기 시 피해 완화를 위한 지역 대응과 지원 체계가 결합된 종합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댐은 물을 저장하고, 자연은 넘친 물을 흡수하고, 사회는 신속하게 대응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 같은 체계는 중앙정부의 기술적 설계만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지자체의 실질적 계획 권한, 주민 참여, 과학 기반 행정이 모두 맞물려야 한다.
가뭄도 마찬가지다. 대형 인프라 중심 공급 확충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빗물, 지하수, 재이용수 등 다양한 수원을 분산 확보하고, 누수·낭비를 줄이며, 스마트 시스템으로 수요를 조절하는 복합적 물순환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결국 사회 전체의 기후위기 대응 역량을 시험하는 문제이며, 더 이상 ‘토건 중심 국책사업’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는 공학이 아닌 거버넌스의 위기이기도 하다. ‘단일 인프라’에 의존하는 것은 무책임한 대응이며, 예측 불가의 재난 앞에서는 탄력적이고 분산된 구조, 과학적 판단과 공공의 감시,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을 중심에 둔 정책 철학이 우선돼야 한다. 우리의 대응체계가 ‘하드웨어’에서 ‘사회-자연 통합형 시스템’으로 전환될 때, 기후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생존 기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해답은 ‘분산형 수자원 관리와 스마트 기술의 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