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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⑤ 태풍 | 매년 오는 재난, 서 있는 보상 시스템

2025-07-17 김성희 기자

태풍과 같은 기후재난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제도는 여전히 이를 예외적인 상황으로 간주하며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피해자의 현실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느냐다. 작동하는 구조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의 진짜 안전망이다.


재난은 매년 오는데, 제도는 늘 늦다

2025년 7월 광주 북구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하수구가 막혀 물이 허벅지까지 찼다. 사진 광주북구청
2025년 7월 광주 북구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하수구가 막혀 물이 허벅지까지 찼다. 사진 광주북구청

2022년 태풍 ‘힌남노’가 경북 포항을 강타했고, 2023년 중부 집중호우로 충남에서만 농경지 2900여ha가 물에 잠겼다. 문제는 이런 재난이 한 해의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5년 7월, 충청과 호남을 중심으로 쏟아진 집중호우는 도로와 주택, 농지를 덮쳤다. 광주 북구에는 하루 동안 426의 폭우가 내렸고, 충남 서산과 홍성 등은 사흘 새 500가 넘는 강우를 기록했다. 도로 침수 499건, 공공시설 피해 729건, 농경지 침수는 1만3000ha에 달했다. 사망자 10명, 실종자 9명, 이재민은 1만2000명이 넘었다. 정부는 비상 3단계를 발령하고 교부세를 긴급 지원했지만, 피해의 폭과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우와 태풍은 이제 일상이 됐지만, 보상과 복구는 여전히 뒷북이다. 지금은 이 제도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원제도는 많지만, 피해자에겐 먼 이야기


자연재난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정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60조에 따라 해당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수 있으며, 국가 차원의 직접 개입과 책임을 의미한다. 피해 규모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선포되며,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복구비 중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받고, 피해 주민에게는 생계비·의료비·주거 지원·공공요금 감면·저금리 대출 등 12개의 실질적인 공적지원이 제공된다.


더불어, 행정안전부가 2006년 도입한 풍수해보험은 태풍, 홍수, 지진 등 8대 자연재난으로 인한 주택, 상가, 공장, 온실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마련된 정책보험이다. 보험료의 최대 92%까지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하며, 기상특보 이후 실제 피해 발생 시 복구비의 최대 90%를 실비로 보상받을 수 있어, 재난지원금이 최대 5천만 원으로 제한된 기존 구조의 한계를 보완하는 ‘선진국형 재난보상제도’로 평가된다.


이 밖에도 농작물재해보험, 가축재해보험, 수산물재해보험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보험이 국가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각 지자체 역시 주민등록만으로 자동 가입되는 시민안전보험을 통해 자연재해, 실종, 감염병 등으로 인한 사망·후유장애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제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로로 보상을 받는지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낮아, 제도의 복잡성과 분절성이 여전히 구조적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피해보다 기준이 먼저인 특별재난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피해액이 국고지원 기준의 2.5배를 넘어야 가능하다. 재정력지수가 0.6 이상인 지자체의 경우 약 110억 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해야 조건을 충족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재난의 양상은 복잡해지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는 수치만으로 환산되기 어렵다. 기준 미달이라는 이유로 선포 자체가 이뤄지지 않거나, 지자체가 애초에 선포 요청을 포기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2025년 7월 극한의 집중호우로 인해 서산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사진 서산시
2025년 7월 극한의 집중호우로 인해 서산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사진 서산시

선포까지의 절차도 간단하지 않아, 주민들에게는 기다림이 복구보다 먼저 찾아올 수밖에 없다. 피해 발생 후 지자체의 요청, 중앙합동조사단의 평가, 피해액 확정,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야 하는 이 과정은 행정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 간 형평성 문제도 제도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지원 여부가 주민의 피해가 아닌 지자체의 행정력에 따라 갈리는 구조로 작동되어 어떤 지역은 선포를 통해 국고지원을 받고, 어떤 지역은 동일한 피해를 입고도 행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배제되며 불신을 키우게 된다.


지원 항목 또한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적용되다 보니, 실제 피해에 비해 체감되는 복구 효과는 미미하다. 예컨대 생계비는 4인 가구 기준 134만 원, 의료비는 최대 100만 원 등으로 책정돼 있으나, 주민 입장에서는 “받는 것보다 복구비가 더 든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동한다. 이처럼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기준을 넘지 못하면 작동하지 않는다. 공적지원은 재난 대응의 핵심 장치이지만, 지금처럼 행정 기준 중심으로 설계된 구조에서는 피해자를 온전히 복구의 중심에 두기 어렵다.


보조율 92%, 하지만 재해보험을 가입하지 않는 이유


정부는 자연재난 피해에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풍수해보험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가입률은 여전히 정체 상태에 놓여 있다. 2024년 기준 전국 주택 풍수해보험 대상 가구는 약 195만5천여 가구에 달했지만, 실제 가입 가구는 65만6천여 건으로, 가입률은 약 33.6%에 그쳤다. 상가·공장의 경우 전체 85만여 건 중 가입은 5만5천 건으로, 가입률은 6.5%에 불과하다. 정부는 보조율을 앞세워 가입을 독려하고 있지만, 국민 10명 중 7명은 여전히 이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유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나를 보호해 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층, 농촌 거주자, 디지털 취약계층의 경우 제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접하기 어렵고, 민간 보험사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직접 가입 절차를 진행하기도 쉽지 않다. 가입 방식을 안내해 주거나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는 구조 속에서, 제도는 ‘존재하는 것’과 ‘실제로 쓰이는 것’ 사이의 간극에 머물러 있다. 풍수해보험은 일정 기간 피해가 없으면 납입한 보험료는 사라지는 ‘소멸형 보험’이며, 보상의 기준 역시 불명확하다. 실제 피해가 발생한 뒤에도 보험금 지급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어, 제도를 알고 가입했더라도 “막상 보상은 받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풍수해보험의 신뢰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전체 풍수해·지진재해 보험가입자 변동 현황. 사진 풍수해 보험관리지도 통합관리 시스템
전체 풍수해·지진재해 보험가입자 변동 현황. 사진 풍수해 보험관리지도 통합관리 시스템

이에 지역간 보험 가입의 격차는 크게 차이를 나타난다. 충청남도는 주택 대상 13만7천여 가구 중 5만7천여 가구가 가입해 가입률 41.8%를 기록했지만, 대구는 6만6천여 가구 중 3천여 건만 가입해 5.4%에 그쳤다. 농업용 온실 보험 역시 충북은 49.7%, 세종은 1.8%로 가입률 차이가 컸다. 이러한 격차는 지자체의 추가 보조율, 단체 가입 지원 여부, 오프라인 안내 시스템 등 행정의 개입 수준에 따라 좌우된다. 특히 2022년 태풍 힌남노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직후에는 가입률이 일시적으로 급등했지만, 2023년 이후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복되는 재난에 구조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재난 이후에만 반짝 반응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결국 정부 보조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도를 ‘전달해 주는 사람’의 존재다. ‘싸게 가입할 수 있다’는 말만으로는 참여를 끌어낼 수 없다. 제도가 생활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먼저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재난지원금과 보험금 동시에 받을 수 없어, 피해자 입장에서 재설계 필요해


현재 재난지원금과 풍수해보험은 동시에 받을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피해자가 풍수해보험금을 수령한 경우, 동일한 피해에 대해선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이는 중복 보상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실제 피해자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받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재난 상황에서 어떤 제도가 자신에게 적용되는지 사전에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험은 평소에 가입해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재난지원금은 실제 재난이 발생한 뒤에야 지급 여부가 결정된다. 지금의 제도는 피해자에게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식의 구조적 결정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풍수해보험의 가입 유인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정부는 보험 가입을 장려하면서도, 막상 보험금을 받으면 무상 지원은 받을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시민조차 “어차피 보험금 받으면 정부 지원을 못 받는다는데, 굳이 가입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일부 연구자들은 풍수해보험이 민간 계약에 가까운 구조를 갖는 만큼, 공적 지원과 보완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지원금은 기본적인 생계와 복구를 위한 공공적 장치이며, 보험은 사전적 위험 분산 수단인 만큼, 두 제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설계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하나를 고르라는 선택지가 아니라, 피해자 입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하나의 통합된 구조다.


'과거 재난' 기준 '풍수해보험', '신 기후재난'에 구실 못해


기후위기로 인해 재난의 양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풍수해보험의 보장 체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현재 풍수해보험이 보장하는 재난은 태풍, 호우, 홍수, 강풍, 풍랑, 해일, 대설, 지진 등 전통적인 8종의 자연재난에 한정돼 있다. 최근 재난의 양상은 전통 재난을 넘어선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염은 축산 농가의 집단 폐사와 작물 고사를 불러오고, 가뭄은 저수지를 마르게 하며 농업 기반을 위협한다.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고온에 더해 강수 패턴 변화까지 겹치며 대형화되고 있고, 도심에서는 열섬 현상이 취약계층의 생명과 건강을 직접 위협한다. 그럼에도 이런 재난의 피해들은 보험 보장 범위 밖에 있다.


이러한 보장 사각지대는 단순한 행정상의 미비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의 제도적 무감각을 보여 준다. 실제 피해는 반복되는데도, 폭염이나 산불, 가뭄과 같은 신기후 재난은 ‘재난’으로서 제도 안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보험은 물론, 공적 보상에서도 배제되기 쉽다.


제도는 재난을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작동한다. 지금의 풍수해보험은 과거의 재난을 기준 삼아 설계됐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 보험을 “국가가 보조하는 사전 예방형 안전장치”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변화한 재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 안전망은 필요한 순간 작동하지 않는다. 보장은 현실을 따라가야 하며, 변화한 재난에 대응하지 못하는 보장 체계는 결국 피해를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또 다른 구조적 배제다.


보장이 달라져야 안전망이 된다


태풍, 폭염, 집중호우가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지금의 제도는 여전히 ‘기준 충족’이라는 전제 아래에서만 작동한다. 피해자는 구조 밖에 있고, 제도는 문턱 안에서만 머문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도가 존재하는지를 넘어서, 구조 자체를 전환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우선 풍수해보험과 재난지원금의 중복 수령을 금지한 현행 규정은 재검토돼야 한다. 보험은 사전적 계약이고, 재난지원금은 사후적 생계지원이므로, 두 제도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구조는 오히려 보험 가입 유인을 떨어뜨리고, 정부의 무상 지원만을 기대하게 만든다. 보험이 보완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고, 두 제도를 병행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재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보험의 보장범위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재난만을 포함하는 현재의 구조는 폭염, 산불, 가뭄, 도시 열섬처럼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기후재난을 포착하지 못한다. 보험이 기후위기 시대의 안전망으로 작동하려면, 보장 재난 목록 또한 변화한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


행정의 개입 또한 필요하다. 실제로 경기도의 ‘보험 선물제’, 충북의 단체 가입 모델 등은 사람을 직접 만나 설명하고 가입을 유도한 결과, 가입률 상승이라는 실질적 성과를 냈다. 특히 고령층, 농촌 지역, 디지털 취약계층의 경우, 온라인 중심의 절차만으로는 제도에 접근하기 어려운 만큼, 오프라인 기반의 안내 체계를 병행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과 절차를 유연하게 개선하여 중앙과 지방의 행정절차를 간소화하여 신속 대응이 가능하도록 구조를 변화할 필요성도 있다.


재난은 날마다 현실이 되고 있지만, 제도는 여전히 발동 요건 앞에서 멈춰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제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달하고 작동하는 구조로 바꾸는 일이다.


기후재난 시대, 작동하는 구조가 진짜 안전망이다


재난은 더 이상 드물고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뉴노멀'이 되어버린 기후재난 앞에서, 제도는 여전히 ‘기준’과 ‘절차’라는 문턱에 머물러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피해자에게 도달하고 실질로 작동하는가의 여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를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제도들이 제때, 제자리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진짜 안전망은 행정 문서 속에 있지 않아야 하며 피해자의 손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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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7월 28일

기후재난에 대한 진짜 안정망이 되려면 피해보상이 완전하게 이루져야 합니다. 100% 보상이 되어야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형식과 절차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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