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⑪ 해양산성화 | 바다의 '생산성' 따지기보다 '생명'이라는 인식 가져야
- Dhandhan Kim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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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4 김복연 기자
한국 연근해 수산자원은 기후위기와 남획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지만, 정부 정책은 여전히 산업 지원과 단기 피해 보전에 집중돼 있다. 김 양식을 육상으로 옮기는 해법처럼 인간에게 유리한 기술적 대안이 등장하지만 이는 바다 생태계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는다. 멸치와 같은 대중적 수산물이 사라질 위기는 어획 제한과 복원 중심 정책을 요구하며, 소비자 역시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생태 공동체의 시민으로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 산업, 정책, 소비가 함께 전환될 때만 바다는 미래의 밥상을 지켜 낼 수 있다.

위기의 신호, 절반으로 줄어든 어업 생산량
한국의 어업은 지금 심각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 40년 동안 연근해 어업 생산량은 절반 가까이 줄었고, 명태와 말쥐치 같은 국민 생선은 사실상 사라졌다. 2024년 생산량은 84만 톤으로, 1980년대 151만 톤에 비하면 참담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책의 언어는 여전히 “생산 확대”와 “수출 경쟁력”이다. 이대로 괜찮은가?
뜨거워지는 바다, 무너지는 생산 기반
지난 57년간 한국 연근해 수온은 1.58℃ 상승해 지구 평균의 두 배 속도로 달아올랐다. 동해는 2℃ 넘게 치솟으며 사실상 다른 바다가 되고 있다. 바닷물의 성층이 강해지고 산소와 영양염류 공급은 줄어들며, 2024년 기초생산력은 전년 대비 21.6%나 감소했다. 이는 단순한 기후 리스크가 아니라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하는 과정이다.
양식업, 더 이상 안전망이 아니다
연근해 어업의 쇠퇴와 더불어 양식업은 대안처럼 부상했다. 1980년대 이후 네 배 넘게 성장해 현재 어업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양식업도 더 이상 안전망이 아니다. 2024년 여름 고수온 피해액은 1430억 원으로 최근 10년 최대 규모였다. 폭염과 적조, 빈산소수괴가 겹치면 양식장은 순식간에 전멸할 수 있다. 해양생태계가 흔들리면 산업적 대안도 함께 무너진다.
산업 지원에 쏠린 예산, 복원은 뒷전

정부 예산은 여전히 양식업 고도화, 어항 개발, 어업인 지원금에 집중되고 있다. 2024년에도 고수온 피해 복구와 어장 관리에 예산이 확대되었지만 이는 생태적 원인 해결보다 단기적 피해 보전 중심이었다.
최근에는 기후위기 대응의 이름으로 김 양식을 아예 육상에서 진행하는 방안까지 등장했다. 이는 인간에게는 수온 상승과 적조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김은 사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바다 생물이 의존하는 먹이이자 서식 기반이다. 김이 더 이상 바다에서 자라지 못해 육지로 옮겨간다면, 바다는 그만큼 비워지고, 먹이망은 허물어지며, 수많은 생명이 생존에 타격을 입는다. 산업적 해법이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바다를 방치하는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결국 지원의 무게가 산업적 연명책에만 쏠린다면, 바다는 더 깊은 붕괴를 겪게 된다.
세계는 이미 ‘복원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다. FAO는 ‘Blue Transformation’을 통해 단순한 생산 확대가 아니라 지속가능성 중심의 해양 관리를 요구한다. OECD는 각국이 쏟아붓는 어업 보조금의 65%가 자원 고갈을 부추긴다고 경고했고, 세계은행 보고서 The Sunken Billions는 잘못된 관리로 매년 5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분석한다. 세계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바다를 지켜 내야 어업도 유지된다.”
EU는 어획량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하지 않은 어업을 중단한 어민에게 전환 보조금을 지급해 친환경 장비와 새로운 업종으로의 전환을 돕는다. 노르웨이는 연어 양식업 지원에 폐사율 관리·항생제 사용 제한을 조건으로 걸어 산업 지원과 생태 관리가 동시에 이뤄지도록 했다. 호주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관리 기금을 통해 지역 어업인에게 생태계 보호 활동에 대한 경제 보상을 제공한다. 산업 지원을 생태 회복과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가능성을 보여 주는 ‘바다숲’

국내 대표적 복원 사례인 ‘바다숲 가꾸기’ 사업은 2009년부터 추진되어 2023년까지 315㎢ 이상이 복원됐다. 바다숲은 어류의 산란장과 서식지를 제공하고, 연간 수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어획량 회복과 어민 소득 증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사후 관리 부실과 예산 한계라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어민 단체 참여, 민간기업 협력, 블루카본 인증제 시도는 산업 지원과 생태 복원을 연결하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복원 자체가 정책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한국 해양정책이 가야 할 길은 이런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는 일이다.
지원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여전히 한국 해양정책의 큰 줄기는 산업 지원에 맞춰져 있다. 피해 보전과 지원금은 늘어나지만, 장기적 복원과 생태 회복에 투입되는 자원은 제한적이다. 이 구조에서는 기후위기의 파고를 막아 낼 수 없다. 산업 지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어민 보조금이 단순 생계 유지가 아니라 ‘생태친화적 어업 전환 지원금’이 되고, 양식업 지원이 ‘저탄소·친환경 양식’의 조건부로 전환되며, 피해 보전이 ‘기후적응형 기술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산업 지원과 복원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장기적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멸치가 던지는 경고, 그리고 소비자의 역할

국가적 정책과 산업 지원의 방향을 짚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바다의 위기를 이해하려면 소비자의 시선에서 가장 대중적인 수산물인 멸치를 통해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멸치는 상어, 고래, 다랑어, 바다표범 등 수많은 해양 생물이 먹는 먹이이자, 우리 식탁에서도 국물과 반찬으로 가장 흔히 소비되는 어종이다. 지금까지 멸치는 무한히 공급되는 ‘바닷속 화수분’처럼 여겨졌지만, 기후위기 앞에서 그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수온이 오르고 바닷속 산소가 줄어들수록 멸치는 점점 더 생존이 어려워지고,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어획량은 급감하고 있다. 이는 해양 포식자들의 연쇄적 위기로 이어지고, 인간의 양식업 역시 큰 타격을 입는다. 멸치는 연어 같은 양식 어종의 주 먹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안은 분명하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근본적 대응과 더불어, 당장의 조치로는 멸치 어획 제한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남획을 멈추고, 개체 수가 회복될 시간을 벌어 줘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소비자는 누구인가? 만약 소비자가 자신을 단순한 시장 참여자로만 본다면, 줄어드는 멸치를 보며 할 수 있는 선택은 ‘더 큰 돈을 내고 멸치를 사 먹는 것’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멸치는 상품이 아니라, 바다 공동체의 순환을 지탱하는 생명이다. 소비자가 자신을 시장 소비자가 아니라 생태 공동체의 시민으로 자각할 때, 복원과 어획 제한 같은 정책은 힘을 얻고 실제 변화를 만든다. 소비자 정체성이 와해되지 않는 한, 바다는 끝없이 착취되는 자원창고로만 남게 된다.
바다를 자원창고가 아닌 생명으로
이제는 냉정히 물어야 한다. 국내 어업, 이대로 좋은가? 산업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지원이 과거식 생산 논리에 갇혀 있다면 한국 수산업은 미래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비자가 스스로를 생태 시민으로 재정의하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 전환도 공허할 뿐이다. 산업이 아니라 생태, 성장이 아니라 회복, 숫자가 아니라 생명에 우선순위를 두는 전환 없이는, 우리의 바다는 더 이상 밥상을 책임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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