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픽션 '더 체인'ㅣ#5화. 전야
- hpiri2
- 4일 전
- 6분 분량
2025-08-08 정욱식

지난 줄거리
대만 해협의 포성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미중 함대가 동아시아로 집결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진짜 위기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수화기 너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한 순간, 그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전쟁 행위'라는 북한의 섬뜩한 선언과 함께 동해에 나타난 러시아 함대. '사라예보의 총성'이 동아시아에서 재현되면서, 일본은 80년 만에 다시 전쟁이라는 악몽과 마주하는데...
북한 김정훈 위원장은 “조중우호 관계를 과시하면서도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게 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미국은 대만 해협이 위기 상황이면 전투기, 핵항모 등 군사력의 입출입을 남한에 요구해 왔다. 최서희 대통령은 미국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분쟁에 연루되지 않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이 순간 최 대통령에게 전화 한 통이 오는데...
중국과 대만의 해상 대치 이틀째. 중국에 가까운 대만의 섬, 금문도에 있는 진먼대 류 교수는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했지만 공항은 폐쇄된다. 대만 라이창더 총통이 내린 비상명령권 발동에 대해 입법원의 승인 선거로 대만 정국은 국민당과 민진당으로 나눠져 혼란스럽다. 대만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수백 기의 드론이...
“잠시만요. 기사 배치를 크게 바꿔야겠어요.”
<한겨레> 신문 제작국장이 신문 인쇄를 막 시작하려던 윤전기 담당자에게 급히 연락했다. 당초 10월 11일자 머리기사 제목은 ”올해 10월 중순〜11월초 초대형 태풍 발생 급증 예상”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샤진대교를 진먼다오로 연결하겠다고 발표하고 대만이 실력으로 이를 저지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머리기사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초 1면 보도기사와 2면 해설기사로 작성된 기사는 2면 단신 기사로 대폭 축소되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세계기상기구(WMO)는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탄소 배출 급증과 오존층 손상이 맞물리면서 앞으로 태풍과 집중호우 등 큰 자연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서태평양 지역의 해수온 상승과 대기 불안정이 심각해지면서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예측하기 힘든 초대형 태풍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보고서에선 이러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군사 부문을 주목했다.
민간 위성뿐만 아니라 군사용 위성 발사도 급증하면서 안정세를 회복하던 오존층이 또다시 손상되고 있고,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유엔 사무총장은 ‘이것이야말로 상호확증파괴이자 집단 자살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제발 무엇이 중요한지 직시하자’고 호소했다.”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최종 편집을 마친 박희근 편집국장은 대학 친구인 이한결 국가안보실 차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어렵겠지?”
오랜 만에 술 한잔 하기로 한 약속은 취소됐다.
“나중에 통화나 하자. 시간 날 때 전화나 줘.”
‘나중에 심층기사로 다시 다뤄 봐야지.’ 박희근이 가방을 메고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한서경 기후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사무실이야?”
“응, 선배. 기사 줄여서 마감했으니 이제 나가려고.”
“저녁에 다른 일정 없으면, 나 공부나 좀 시켜줘. 오늘 내가 네 기사 물 먹였으니, 술이라도 사야지.”
“선배 돈도 아니면서. 마침 희철 선배랑 보기로 했으니 같이 보죠. 나도 군사 문제에 대해 공부 좀 하려고.”
편집국장, 기후팀장, 국방팀장이 회사 앞 술집에 앉았다. 박희근이 한서경에게 맥주를 권하면서 물었다.
“근데, 오존층이 다시 손상되고 있다는 건 무슨 말이야?”
지표면에서 10〜15㎞ 상공에 형성되어 있는 오존층은 우주에서 들어오는 자외선을 흡수해 지구 생명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에어컨과 냉장고의 냉매로 쓰이는 프레온가스 등 염화불화탄소 사용이 크게 늘면서 오존층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에 경각심을 느낀 국제사회는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해 염화불화탄소 등 오존층 파괴물질 생산과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했다. 이에 힘입어 오존층도 회복되고 있었다.
“인공위성 등 로켓 발사가 급증했기 때문이야. 몬트리올 의정서 덕분에 오존층 파괴 물질의 농도가 2023년까진 10% 정도 줄었었는데, 최근에는 다시 늘어나고 있어. 그 주된 원인이 위성발사야. 로켓 발사에 사용되는 연료는 블랙카본 등 오염물질을 내뿜고, 우주발사체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는 과정에선 알루미늄 산화물이 발생하는데 이것들이 대표적인 오존층 파괴 물질이거든.”
“음, 그럼 최근 위성 발사가 급증하면서 오존층이 다시 손상되고 있다는 뜻이군.”
“맞아. 내가 초고로 쓴 기사에도 있지만, 2019년에 연간 100회 수준이었던 위성 발사 횟수가 그후로 매년 50〜100회씩 늘어 작년에는 500회를 넘어섰지. 특히 미국이 골든 돔인가 뭔가 하면서 위성을 마구 쏘아대고 있잖아. 이로 인해 오존층의 회복 추세가 2026년부터 꺾이기 시작해 올해에는 0.2% 정도 얇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골든 돔은 타럼프 행정부가 2025년부터 시작한 사업으로, 우주에 미사일 요격체계를 구축해 적의 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겠다는 거대 군사 프로젝트다.
“그게 태풍 발생과는 무슨 관계야?”
권희철이 물었다.
“오존층이 손상되면 성층권에서 자외선 흡수량이 줄어드는데 이렇게 되면 성층권과 대류권의 온도 차이가 커지고 제트기류에도 영향을 주게 돼요. 태풍은 대류권 하층에서 발생하는데 성층권과의 온도 차이가 커지면 제트기류의 위치 등 기후 패턴에도 영향을 주겠지. 또 지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이 증가하면 해수면의 온도도 올라가고.”
“알겠네. 탄소 배출이 늘어나 복사열은 대기 중에 갇히고 오존층이 손상돼 자외선은 더 많이 들어오고. 이게 상승작용을 일으켜 태풍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뜻이네.”
권희철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세계기상기구가 이례적으로 군사 부문을 언급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이것 봐봐. 다른 부문에선 꾸준히 탄소 배출량이 줄어 왔는데 유독 군사 부문만 크게 늘어났거든. 군사용 위성 발사도 크게 늘어났고.”
권희철이 가방에서 한 보고서를 꺼내 그래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나저나 양안 사태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중국이 전쟁을 결심한 거예요?”
“부전승을 노리는 것 같아. 회색지대 전술로 말이지.”
소맥을 말던 권희철이 답했다. 한서경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권희철이 이어갔다. 그는 국방팀장을 맡기 전에 3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다.
“회색지대는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전쟁과 평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곤 하지. 그러다가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고.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대만 해협의 중간선을 넘나들며 회색지대에 대한 통제를 넓히려고 시도해 왔어. 최근에는 중간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하고 있고. 이번에 샤진대교를 진먼다오까지 연결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러한 취지라고 볼 수 있어.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라이창더가 독립이라는 금지선에 바짝 다가오자 실력 행사에 나선 거지.”
“그럼 중국은 이번에 대만을 굴복시켜 통일을 하겠다는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 중국도 당장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샤진핑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만 통일이 영영 물 건너가는 거야. 중국 인민들이 이렇게 믿게 되면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은 정면으로 도전받는다고 여기지. 경제성장도 예전만 못하고. 그런데 독립을 당 강령으로 명시하고 있는 민진당이 3번 연속 집권했고 전임자보다 더 독립 성향을 보이고 있는 라이창더가 재선에 성공하면 이런 우려는 더욱 증폭되겠지. 그래서 중국의 목표는 대만의 정권교체라고 볼 수 있어.”
“근데 중국은 왜 샤진대교를 고른 거야?”
박희근이 물었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여기저기에 물어봤는데, 대만을 압박하고 회유하는 데 안성맞춤으로 여긴 것 같아. 이번 중국 발표에도 나왔지만 샤진대교를 연결하면 양안 간 물류, 관광, 상업 교류가 활발해져 대만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 이걸 민진당 정권이 막으면 중국은 실력으로 밀어붙일 거고, 그렇게 되면 대만에서 공포심이 커지겠지. 사실 샤진대교는 국민당 집권 때 검토되었던 사업이었는데, 민진당이 강력히 반대해서 무산되었던 걸 중국이 시작한 거야.”
“그런 식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겠다, 샤진대교를 앞세워 중국과 대결을 선택할래, 교류협력을 선택할래, 양자택일하라고.”
박희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 미국은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라이창더를 미는 것 같던데.”
“이러다가 대만 총통 선거가 미중 대리전이 되는 거 아니에요?”
한서경의 말이었다.
“이번 사태를 보니까 2년 전인가 한결이가 한 말이 떠오르더군. 그 친구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뭐에 씌웠는지 앞으로 대만 해협에서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거기서 불이 나면 한반도를 포함해 동아시아 전체로 번질 수 있다고 했었지.”
박희근이 혹시 이한결의 답장이 왔는지 스마트폰을 확인하면서 말을 이었다.
“한결이가 그걸 방지하기 위해 뭐라고 해보겠다며 시민 외교에 나선다고 했었거든. 양안 간의 민간 대화라도 중재해 보겠다고 했는데, 내가 그때 한소리 했지. ‘야 남북대화도 안 되는데 무슨 양안대화냐’고. 그래도 그 친구는 중국과 대만도 부지런히 오갔고 일본에도 갔었어. 샤진대교 얘기도 그때 들었어. 한결이가 중국 샤먼에서 배 타고 진먼다오로 가는 중에 샤진대교를 샹안으로 연결하는 공사 현장을 보고, 앞으로 저 다리가 변수가 될 수도 있겠다고 했었거든.”
“저도 이번에 기사 쓰면서 그 선배가 예전이 우리 신문에 썼던 글들을 다시 찾아봤어요.”
한서경이 스마트폰으로 ‘이한결, 기후위기’를 넣어 검색해 보여주면서 말했다.
“군사 부문이 기후위기 대처에 거대한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죠. 그때는 군사 문제를 잘 모르기도 했고 해서 그냥 읽고 말았는데…”
“나도 베이징에서 이한결씨를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군.”
권희철이 말을 받았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들이 뭉쳐야 한다고 했던가. 그러면서 동아시아 각국이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쯤 됐으니, 뭐라도 해 보자며 ‘돌핀스’라는 국제 포럼을 만들고 있다고 했지. 나한테도 참가를 요청했었는데, 생각해본다고 해 놓곤 답을 주지 않았었네.”
권희철이 후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계속 속보도 올라오고 해외 특파원의 보고도 올라오고 있네.”
눈을 감고 두 사람을 말을 듣던 박희근이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면서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대만의 주권을 수호하는 데에 동맹들과 함께 나서겠다고 하네. 이거 심상치 않군.”
박희근이 가방과 계산서를 들면서 한서경과 권희철에게 일어나자고 말했다.
“난 사무실로 들어가야겠네.”
***
[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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