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훈의 도넛 ④ | 경제성장에서 경제발전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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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3일 전
2025-08-29 문태훈
국내총생산(GDP)는 높아지는데, 우리 삶은 왜 팍팍할까? 환경 질병 의료비, 감옥소, 기후변화 피해 복구비가 늘어도 GDP는 증가한다. 목재와 광물 자원을 채취해 시장에 팔면 늘고, 가사 노동이나 자원봉사활동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참발전지수(GPI)는 GDP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면 감소한다. 한국은 두 지표 간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문태훈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 캠퍼스에서 1992년 행정 및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정연구원에서 1994년 1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95년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로 부임해 2023년까지 재직했다. 정년 퇴직 후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로 대통령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UN SDSN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생태전환지원재단 이사, 환경정의 공동대표, 산과자연의 친구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지역개발학회장(2016), 한국환경정책학회장(2020), 한국시스템다이내믹스 학회장(2003), 서울시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2015), 환경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2018)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지방자치』(2022, 공저), 『시스템 사고로 본 지속가능한 도시』(2007), 『환경정책론』(1997)이 있으며, 「도시별 지속가능성 비교연구」, 「지방정부의 환경행정 역량 평가모델」, 「기후정책과 부문별 영향 분석」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정량적 분석과 시스템 사고를 바탕으로 한 환경정책 이론은 지역 정책 수립과 학술적 토대에 모두 기여하고 있다.
[편집자 주] 우리 앞에 기후위기, 좋은 일자리 감소,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사회정치적 갈등 심화, 초저출산 등 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다. 필자인 문태훈 교수는 이 문제들이 시장경제 시스템의 무한경쟁에 원인이 있으며, 이런 시장근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의 전환은 어렵다고 말한다.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을 잘 설명해 주는 도넛 경제학에서는,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 간 균형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다양한 정책이 시도될 모양이다. 이 칼럼은 정책학의 관점에서 새 정부의 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학문 성과, 사회 핫이슈, 생활 변화 등 자유롭게 글감으로 골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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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성장기가 막을 내리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각출과 관세 인상 정책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온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특히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미국 주도의 세계 무역 자유화 정책과 고도 성장기는 막을 내리고 있다.
한국은 무역자유화로 가장 큰 성과를 이룬 국가이다. 1960년 1인당 국민총소득 수준은 67 US달러에서 2024년 3만6624 US달러로 증가하였고, 총 수출입 규모는 1960년 1억3000만 달러에서 2024년 1조1700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국민소득 수준과 무역규모 면에서 세계에서 6~7위에 해당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은 성장을 “1. 사람이나 동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짐, 2. 사물의 규모나 세력 따위가 점점 커짐, 3. 생명, 생물체의 크기 무게 부피가 증가하는 일. 발육과는 구분되며, 형태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 증량을 이른다”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경제”라고 할 때 자동으로 따라 붙는 단어는 “경제성장”이다. 우리는 경제가 축소된 것도 “마이너스 성장”했다고 한다. 경제성장은 경제 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믿음과 경제 규모를 키우려는 정부의 치열한 노력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많이 듣는 이유는 가난을 벗어나고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그러면 국민소득, 무역 규모, 무역수지는 계속 커지는데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가고, 왜 사는 것이 점점 더 바쁘고, 힘들어지는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묻고 있을까?
GDP는 비용과 편익 모든 것을 더하기만 한다
경제성장은 정말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빈부격차를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사용하는 것이 국내총생산 GDP, 그리고 1인당 GDP이다. 그래서 GDP를 크게 하기 위한 정책들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GDP가 성장하면 경제가 좋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비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며 복지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GDP는 삶의 질이나 복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GDP가 높아진다고 개개인의 삶의 질이 항상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GDP는 비용과 편익 모든 것을 더하기만 해서 계산하기 때문이다.
큰 빚을 져도 경제가 성장했다고 한다
환경오염 악화로 환경 관련 질병에 의료비를 더 지출해도, 범죄가 많아져서 감옥소를 많이 지어도 GDP는 증가한다. 이상 고온과 저온 빈도의 증가, 열파와 한파, 홍수, 폭우 등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방어적 지출이 많아질수록 GDP는 늘어난다.
자연에서 목재, 광물 등 자원을 채취하여 시장에서 팔면 광물자산이나 자연자산의 감소분은 차감되지 않고 시장에서 팔린 가격만 더해져서 GDP는 오히려 증가한다. 그런가 하면 가사 노동이나 자원봉사활동 등은 GDP에 계산되지 않는다. 돈을 주고 받는 시장경제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계부로 치면 수입에서 비용을 차감한 나머지 부문으로 가정 경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과 비용을 모두 같이 합하여 큰 빚을 지더라도 가정경제가 더 커졌으니 더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GDP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참발전지수(GPI)는 감소한다
GDP의 증가는 삶의 질이 좋아지고 행복 수준이 커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이런 GDP의 한계점을 보완하여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경제발전 지표로 제안되고 있는 것이 참발전지수(GPI, Genuine Progress Indicators)이다.
미국, 네덜란드, 일본, 스웨덴, 태국, 중국, 칠레, 인도, 베트남 등 선진국과 개도국을 포함한 17개 국가들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의 증가와 1인당 참발전지수(GPI)의 변화를 비교한 연구를 보면,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인당 GDP가 계속 증가하면 초기에는 참발전지수(GPI)도 같이 증가한다. 그러다가 인당 GDP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참발전지수(GPI)는 오히려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1인당 GDP의 성장은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높이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 계속 증가할 때는 참발전지수(GPI)의 값은 오히려 감소하는 패턴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참발전지수의 값이 국민총생산과 같이 증가하다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지점을 '최적 성장점'이라 볼 수 있는데, 이를 넘어서는 국민총생산의 증가는 성장으로 인한 편익보다 비용-환경오염, 빈부격차, 사회 갈등 등이 많아지면서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 수준이 오히려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GDP와 GPI 간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인당 GDP와 참발전지수 변화 추이에 대한 연구를 보면 GDP와 GPI 증가 추세는 국가와 광역 대도시 수준 모두에서 양자 간의 격차가 점차 커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김경아, 문태훈, 2022). GDP의 성장과 GPI로 측정되는 삶의 질과의 격차가 가위가 벌어지는 것처럼 점차 더 크게 벌어지면서 경제의 양적 성장에 비교한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은 점점 더 약해지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6대 소득 수준과 무역국가로 성장하였는데 삶은 왜 자꾸 더 팍팍해지고 어려워지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아닌가 한다.
무역자유화 시대, 고도성장 시대의 종언과 더불어 이제는 양적 경제성장에서 질적 경제발전을 지향하는, 도넛의 바깥 경계 부분으로 더 가까이 발전하는 적극적 정책 전환이 중요해지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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