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릉 발 돌발 가뭄
- hpiri2
-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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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가뭄이 끝이 아니다.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기후재난을 계속 만들 것이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강원도 강릉시 가뭄이 심상치 않다.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9월 3일 기준 13.8%로 역대 최저치다.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며 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오봉저수지는 강릉 지역 생활용수 87%를 공급하고 있는 터라 더 심각하다.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6월부터 50%에서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8월 20일부터 수도계량기 50% 잠금 급수가 시행되었고, 9월 3일에는 75% 제한 급수와 시민들에게 생수 배부를 시작했다.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일상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비를 기원하는 의식인 ‘기우제’까지 지냈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황망한 장면이다.
이번 강릉시 가뭄은 동해안 인근 도시 가운데 유독 강릉 지역에 집중되고 있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웃한 속초의 대조되는 상황은 강릉 가뭄 원인에 대한 세간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대체로 정리되는 내용은 이렇다. 강릉은 상수도 공급의 87% 이상을 오봉저수지 한 곳에 의존 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상수 공급 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속초와 고성과는 달리 장마철과 국지성 호우가 빗겨가면서 올해 강수량이 평년의 3~5%에 그쳤다. 그래도 의구심은 남는다. 아무리 비가 적게 내려도 그렇지 이런 극단적인 가뭄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돌발 가뭄(Falsh drought)’은 수주 또는 수개월 짧은 기간 동안 급격히 토양수분이 말라서 발생하는 가뭄이다.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천천히 나타나는 일반 가뭄과는 달리 빠르게 진행되어서 학계에서는 ‘급성 가뭄’이라고도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 불균형과 폭염 강화가 주된 배경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최근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강릉 가뭄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 우리나라에서도 대두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2년과 2017년 제주도, 2022년 충남 서산과 태안에서 사례가 있었다. 강릉 돌발 가뭄은 국가 차원의 첫 가뭄 재난 선포 사례로, 향후 반복될 기후재난을 예견하게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인접한 속초가 가뭄 재난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지하 저류 댐’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강릉에는 지하 저류 댐이 없다. 지하 저류 댐은 땅속에 물을 저장하므로 여름철 고온에서도 물 손실이 적다. 빠져 나가는 빗물을 모아 가뭄 시기에 활용 가능하다. 광역상수도 연결이 어려운 곳에 맞춤형 소규모 공급이 가능하다. 지상 댐처럼 강을 막지 않아 생태계에 상대적으로 영향이 덜하다고 한다. 얼핏 지하 저류 댐이 혁신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정말 속초와 강릉의 운명이 지하 저류 댐에서 갈린 것일까.
일단 지하 저류 댐은 모든 곳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암반구조, 지하수 흐름, 토양 투수성 등 지역 특성을 따른다. 기반암이 많고 지하수 흐름이 빠른 곳은 물 저장 효율이 경제성 밑으로 떨어진다. 강릉 포함 동해안 지역이 그렇다. 장기간 저장된 물은 지하의 유기물로 인해 수질이 나빠진다. 정수와 관리 비용 증가를 피할 수 없다. 규모 대비 유지, 보수비용이 크게 들며 무엇보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 강의 흐름을 막는 것 못지않게 지하수 흐름을 차단하는 것도 생태계에는 무시하지 못할 위험이다. 경우에 따라 보완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지 효과나 환경 측면이나 혁신적인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후위기는 복합위기다. 복합위기에는 단일한 해법이 능사가 아니다. 돌발 가뭄에 지하 저류 댐이 만능열쇠가 아니듯 말이다. 복합적인 해법이 필요한 법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한반도는 강수 양극화 현상을 불규칙적이지만 반복적으로 보이고 있다. 상황은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장마철과 국지성 호우가 강릉이 아니라 속초를 빗겨 갔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연의 무심한 우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무기력하기도 하지만 답을 찾아 우연을 극복하는 것도 우리 인간이다.
강릉 가뭄이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서 강릉시 지방정부와 시장이 면책될 수는 없다. 재난 현장을 방문한 대통령이 던진 현안 질문에 시장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강원도지사가 대신 답변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지켜 본 주민들은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수자원 구조가 오봉저수지로 단일화되어 있었던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아니어도 동해안 지역 돌발 가뭄 가능성은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속초보다 강릉을 찾는 관광객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 시정을 맡고 있는 그들은 꿀맛만 알았지 진작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놓치고 말았다.
2021년 IPCC 제6차 보고서는 ‘지구온난화 1.5도~2도 시나리오’에서 돌발 가뭄의 빈도와 강도가 전 세계적으로 뚜렷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변화가 폭염 강화, 강수 양극화, 대기 순환 이상을 가져오고 토양 수분이 급격하게 고갈되어서 돌발 가뭄이 발생하는 건 더 이상 드문 현상이 아니다. 돌발 가뭄은 기후변화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유형의 가뭄이다. 대한민국 어디도 돌발 가뭄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다. 강릉 가뭄은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이 직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후 위험’이고 ‘기후재난’이다.
극한 폭우와 극한 가뭄, 기후 양극화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같은 하늘 아래 한 쪽은 물에 잠기고 다른 쪽은 메마른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일상을 갈라놓고 있다. 돌발 가뭄이 끝이 아니다.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기후재난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후재난의 칼끝을 피해 갈 사람은 없다. 피할 곳도 없다. 누구든 어디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너무 늦지 않으려면 남은 건 결국 온실가스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2050 탄소중립’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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