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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서울대에서 '산림 녹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심포지엄 열려

2025-11-06 최민욱 기자

2025년 11월 5일, 산림녹화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학술 심포지엄 「대한민국 산림녹화와 산림계의 재조명」이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됐다. 기조강연에 나선 배재수 서울대학교 객원교수는 1970년대 이후 진행된 산림 녹화의 주요 과정과 성과를 짚은 뒤, 향후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 체제로의 전환 필요성과 이에 따른 정책적 대응 과제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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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유네스코(UNESCO)는 대한민국의 산림 녹화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했다. 이는 나무 심기와 산림 복원이라는 물리적 성과뿐 아니라, 그 과정을 담은 기록물까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인정받은 사례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이러한 평가는 국내에서는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산림 녹화의 가치와 함의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가운데, 과거 정책의 경험과 미래 산림 정책의 방향 사이에는 실질적 단절이 존재한다. 특히 산림 황폐화와 복구의 과정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에게 산림 녹화는 단절된 과거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왼쪽부터 박원순(국립세종수목원 실장), 김숙희(국립세종수목원 본부장), 박주원(KDI국제정책대학원 박사과정), 배수호(성균관대학교 교수), 배재수(서울대학교 객원교수), 박정희(한국임업인총연합회 회장), 강정원(부산대학교 교수), 박광국(가톨릭대학교 석좌교수), 강병철(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박현(서울대학교 객원교수),  김인호(산림청장), 진선필(아시아산림협력기구 사무차장), 이경준(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진표(임우연합 회장), 김관호(산림청 과장), 강규석(서울대학교 교수), 김영환(국립산림과학원 과장), 한새롬(백년숲 사회협동조합), 김태영(동아일보 기자). 사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왼쪽부터 박원순(국립세종수목원 실장), 김숙희(국립세종수목원 본부장), 박주원(KDI국제정책대학원 박사과정), 배수호(성균관대학교 교수), 배재수(서울대학교 객원교수), 박정희(한국임업인총연합회 회장), 강정원(부산대학교 교수), 박광국(가톨릭대학교 석좌교수), 강병철(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박현(서울대학교 객원교수),  김인호(산림청장), 진선필(아시아산림협력기구 사무차장), 이경준(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진표(임우연합 회장), 김관호(산림청 과장), 강규석(서울대학교 교수), 김영환(국립산림과학원 과장), 한새롬(백년숲 사회협동조합), 김태영(동아일보 기자). 사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서울대에서 '대한민국 산림녹화와 산림계 재조명' 학술 심포지엄 열려

이번 심포지엄은 대한민국 산림 녹화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제는 「대한민국 산림녹화와 산림계의 재조명」이다. 기조강연에서는 우리나라 산림 녹화의 추진 과정과 주요 성과, 그로부터 도출된 정책적 교훈과 한계를 중심으로 과거를 돌아봤다. 이어서, 이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국가 산림 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어떻게 새롭게 설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제언 또한 이루어졌다.


김인호 산림청장이 5일 서울대학교에서 ‘대한민국 산림녹화와 산림계의 재조명’ 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_산림청
김인호 산림청장이 5일 서울대학교에서 ‘대한민국 산림녹화와 산림계의 재조명’ 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_산림청

주제발표는 산림 녹화 성공 과정에서 산림계의 역할과 한계를 역사, 행정, 임업기술 관점에서 조명했다. 발표는 △최병택 공주대학교 교수의 「일제강점기~1970년대 산림계의 역할 변화와 산림녹화」 △배수호 성균관대학교 교수의 「산림녹화에서 송계의 전통 및 산림계의 역할」 △박주원 KDI 국제정책대학원 박사과정의 「산림계 지도육성사업의 성과와 한계」 순으로 진행됐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세계산림총회의'에서 '산림 녹화' 역사와 경험, 배재수 발표


지난 2022년 4월 28일,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가 주최한 제15차 세계산림총회(World Forestry Congress)의 사전 행사에 참석해 대한민국 산림 녹화의 역사와 성과를 소개하는 발표를 진행했다. 이 행사는 총회 개막에 앞서 서울 코엑스에서 국제 언론을 대상으로 개최된 프리뷰 세션으로, 총회의 주요 의제와 한국 사례를 조명하는 자리였다.


당시 국립산림과학원 미래산림전략연구부 부장이었던 배재수 발표자는, 개발도상국의 위치에서 단기간에 산림 복구에 성공한 대한민국 사례가 국제사회에 ‘세계적 재조림 모델’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며, 산림 녹화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했다.


그는 일제강점기(1910~1945년) 동안 조선총독부가 식민재정을 확보하고, 1937년 이후 전시 물자 조달을 위해 대규모 벌채를 단행하면서 산림 기반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광복 이후에는 극심한 빈곤 속에 허가 없이 나무를 베어 생계를 유지하는 도벌(盜伐)과 산불을 내 경작지를 확보하는 화전(火田) 행위가 확산되며 산림 황폐화는 더욱 심화됐다.


이러한 파괴는 1953년 한국전쟁 직후 절정에 달해, 당시 전국 산림의 절반가량이 황폐해졌고, 나무의 총 부피를 나타내는 임목축적은 1927년 산림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3,600만㎥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1970~80년대, 한국은 강력한 산림 녹화 정책과 함께 급속한 경제성장을 겪으며 가정용 땔감 수요가 화석연료로 대체됐다. 이와 함께 도벌(盜伐)과 화전(火田) 관행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정부는 전국적인 조림사업을 추진하고, 산림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했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임목축적은 1953년 대비 약 29배 증가했다. 이 같은 회복 속도는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은 단기간에 산림 녹화에 성공한 세계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당시 발표를 맡은 배재수 전 미래산림전략연구부 부장은 “이제는 산림 녹화의 중심을 산지에서 도시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 다수가 거주하는 도시에 생활권 숲을 조성하고, 산림 휴양·치유·교육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산림 복지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림 녹화의 경험과 축적된 산림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산림 황폐화로 어려움을 겪는 개발도상국과의 지식 공유와 국제 협력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산림녹화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가지는 의미


2025년 4월, 1970~80년대 한국의 산림 녹화 추진 과정과 이를 뒷받침한 행정·공동체 관련 문서 9619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됐다. 이는 전쟁과 식량난을 겪은 개발도상국 가운데 대규모 산림 복구에 성공한 드문 사례로, 그 실체를 입증하는 1차 기록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이 등재가 단순히 “산림을 되살린 기록”을 넘어, “국가 주도의 설계와 지역 주민의 집단적 실행이 결합된 한국형 산림 거버넌스 모델이 세계 기록유산 체계에 최초로 편입된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는다.


이번 등재는 2017년의 등재 실패를 극복한 결과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중앙정부와 산림청 중심의 행정문서만으로 신청서를 구성해, 실제 현장에서 이뤄진 주민들의 참여와 공동체 활동이 기록에서 배제됐다. 이에 대해 문화재·산림학계는 “단순한 국가 지시만으로 전국적인 조림과 산지 복원이 가능했는가”라는 핵심적 의문에 답하지 못한 점이 탈락의 배경이었다고 분석한다.


관계 기관과 연구진은 등재를 앞두고 지역 산림 공동체의 실천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를 추가로 수집했다. 여기에는 조선 후기부터 이어진 산림계·송계(松契)의 자율적 산림 관리 전통, 1960~80년대 마을 단위로 작성된 계원 명부와 사업 장부, 주민들이 양묘에 참여하고 수익을 공동 분배한 문서 등이 포함됐다.


이러한 자료 보완을 통해, 단순한 중앙정부의 지시에 의존한 정책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실질적으로 계획을 실행했다는 구조가 입증됐다. 특히 정부가 수립한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1973~1982)의 성과가 주민의 조직적 참여와 실행력 위에서 가능했다는 점이 강조되며, 이번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이어졌다.


아울러 1951년 제정된 ‘산림보호임시조치법’, 1961년의 ‘산림법’과 같은 제도적 기반, 그리고 1970년대 전국적으로 확산된 국민 식수운동의 전개 과정도 하나의 기록군으로 통합되어, 행정과 공동체 실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춘 자료 체계로 평가받았다.


등재된 ‘산림녹화기록물’은 총 9619건으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구성된다. △산림청 등 중앙·지방 행정기관이 생산한 법령, 지침, 식재 실적 보고서 등 제도 관련 문서 △1970년대 국민식수기간을 중심으로 제작된 홍보 사진, 포스터, 필름 등 대중 동원 자료 △마을 단위 산림계가 작성한 계원 명부, 운영 장부, 수익 분배 내용을 기록한 ‘분수림’ 관련 문서 등 공동체 참여 기록 등이다.


이 가운데 1975년 발행된 국민식수기간 특별우표와 산림 녹화 홍보 사진 등은, 당시 조림 사업이 단순한 행정 캠페인이 아니라 국가 주도 정책과 지역 공동체 참여가 병행된 체계적 사업이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주요 근거로 평가됐다.


특히 공동체 기록이 국가의 행정 기록과 함께 하나의 기록군으로 통합 제출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례 가운데에서도 이례적인 방식으로, 거버넌스와 실행 주체 간 구조적 연계를 기록 차원에서 입증한 것이다.


1960년대 당시 전체 산림의 약 60%가 사유림이었던 상황에서, 정부는 조림을 강제하기보다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적 방식을 택했다. 이를 위해 △주민에게 양묘기술을 보급하고, △재배된 묘목을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했으며, △조림 이후 발생한 산림 수익의 최대 90%를 지역 산림계가 분배받을 수 있도록 ‘분수림 제도’를 운영했다.


이번 등재문서에는 이러한 제도들이 실제로 지역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작동했는지를 보여 주는 행정기록과 공동체 문서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등재가 갖는 첫 번째 의미는, 한국의 산림녹화가 단순히 정권 주도의 일방적 조림 정책으로만 설명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조선 후기부터 이어진 마을 공동체의 산림 관리 전통이 존재한다. 마을 주민들은 관청의 허가를 받아 산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무단 벌채를 방지하기 위해 순산(巡山)을 실시했으며, 나무를 판매해 공동기금과 교육재원을 조성하는 자율적 운영 체계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기반 위에서 20세기 후반 국가가 추진한 산림 정책이 결합되었고, 이 구조가 다양한 기록을 통해 입증되었다. 유네스코가 해당 기록을 인류 공동의 기록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한국형 민관 협력 모델을 실효성 있는 공공자원 관리 체계로 인정한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두 번째로, 이번 기록유산 등재는 1982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제시한 평가에 실질적 근거를 부여했다. 당시 FAO는 전후 대규모 산림 복구에 성공한 국가로 독일, 영국, 뉴질랜드, 한국을 지목했으며, 이 가운데 개발도상국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를 뒷받침할 일차 기록이 부족했으며, 정책 실행 주체에 대한 실증적 분석도 미비했다. 이번에 등재된 문서들은 행정주도, 공동체 실행, 인센티브 설계가 어떻게 연계됐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로,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흡수원 확대가 주요 국제의제가 된 지금, 한국이 실현한 통합형 산림 정책 모델을 국제사회에 실증 사례로 제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세 번째로, 그간 국제 공유자원(commons) 연구에서 비가시화됐던 한국의 산림계·송계 전통이 공식 기록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서구 중심의 커먼즈 논의는 주로 어업, 관개수리, 목초지 등에서 공동체가 자원을 자율적으로 관리한 사례에 집중됐으며, 한국의 산림공동체는 비서구 언어권이라는 한계와 공식 문서의 부재로 인해 논의에서 배제되어 왔다. 이번 등재는 조선 후기부터 이어진 마을 단위 산림공동체가 정부의 직접 통제 없이 자율적 규칙을 운영하고, 장기간에 걸쳐 산림자원을 보전해 온 사례가 실질적 문서로 입증됐다는 점에서, 한국형 커먼즈 모델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가시화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네스코 등재가 산림 녹화 기록의 역사성과 대표성을 모두 담아낸 ‘완성본’으로 보기에는 이르다고 평가한다. 현재 등재 기록의 중심이 1960~80년대의 행정문서와 사업자료에 집중되어 있어, 그 제도적·문화적 기초가 된 조선시대 산림계·금송계 전통이 통시적으로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조선 후기 마을 단위의 산림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당시 왕실과 양반층의 산림 점유 구조가 어떻게 민간의 자치적 자원관리로 전환됐는지에 대한 맥락이 향후 보완돼야 할 과제로 꼽힌다.


한편, 산림 분야 외에도 동일한 시기 한국에는 어촌계, 수리조합, 마을 공유지 관리 등 주민 주도의 자원관리 체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번 등재를 단일 분야의 사례로 한정하기보다, 20세기 후반 한국형 지역공동체들이 국가정책을 수용하고 현실에 맞게 조정·집행한 구조 전반을 하나의 기록유산 체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온다. 이는 향후 ‘산림계 중심의 기록’에서 ‘지역 기반 자원공동체의 제도적 대응’으로 범위를 확장하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1970~80년대와 같은 강한 마을 공동체 기반이 유지되지 않고 있다. 토지 소유 구조의 파편화, 농촌 고령화, 일상생활권의 광역화 등으로 인해 “함께 산을 가꾼다”는 감각과 실천은 점차 약화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록이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산림 녹화 성공의 기반이 되었던 사회적 조건들과, 오늘날 그 조건이 어떻게 소멸 또는 변화했는지를 함께 기록하여 향후 정책 설계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한국의 산림 녹화는 더 이상 경제개발기 중 하나의 정책 성과로만 간주되지 않는다. 수백 년간 지속된 산림공동체 문화가 20세기 후반 국가 정책과 결합하여 만들어 낸 집합적 성취라는 점에서, 산림 녹화는 하나의 사회적 시스템 변화로 재정의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서사를 일회적 성과로 고정하지 않고, 보다 깊은 역사성과 넓은 자원관리 맥락 속에서 확장해나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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