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신원섭 세계산림치유포럼 회장 | 산림치유, 의료 처방 모델로 국제적 플랫폼 탄생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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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9 최민욱 기자
한국의 산림치유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세계적 수준의 공공 복지 시스템을 구축한 지금, 더 복잡한 과제가 눈앞에 놓였다. 산림치유가 과학적으로 검증된 의료 행위이자 자생력을 갖춘 민간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전환은 두 개의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는 치유 효과를 입증할 과학적 근거이며, 다른 하나는 민간 부문의 잠재력을 끌어낼 제도적 틀이다. 2025년 세계산림치유포럼은 이 새로운 국면을 여는 중요한 이정표다. 세계산림치유포럼 국제기구 창립은, 숲을 통한 건강과 행복을 넘어, 산림의 건강 기능과 의료 처방을 연계하고 경제적 편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하며 새로운 국제적 플랫폼의 탄생을 예고한다.

세계산림치유포럼 신원섭 회장은 충북대학교에서 임학 학사를, 캐나다 뉴브런즈윅대학교에서 임학 석사를, 토론토대학교에서 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충북대학교 농과대학 산림과학부 전임강사와 조교수를 거쳐 1996년1997년 미국 아이다호대학교 방문교수, 1998년~2000년 충북대학교 농과대학 산림과학부장, 1998년 12월~1999년 2월 핀란드 국립산림과학원 방문연구원, 2001년~2003년 충북대학교 농과대학 부속연습림장, 2003년~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2013년 3월 제30대 산림청장으로 임명되어 2017년 7월까지 재임했으며, 2017년~2020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산림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산림청 임정평가위원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부회장을 지냈으며, 2017년부터 현재까지 충북대학교 농업생명환경대학 산림학과 교수 및 대학원 산림치유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숲의 가치가 물질적 생산을 넘어 비물질적 서비스로
숲의 가치가 물질적 생산 중심에서 비물질적 서비스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 산림 정책은 국토 복구와 경제 발전을 위한 목재 생산에 초점을 맞췄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헐벗은 산을 녹화하고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도시화·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숲이 제공하는 휴양·치유·심리적 안정 등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가 물질적 생존을 넘어 삶의 질을 중시하는 단계로 접어들면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다. 극심한 스트레스, 번아웃,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같은 병리적 문제가 사회 전면에 등장했고, 이는 새로운 해법을 요구했다. 물리적으로 복원된 숲은 이제 정신적 회복의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숲은 국민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며, 그 사회적 역할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산림 정책의 핵심 가치가 생산 중심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 준다.
국가 주도 산림복지 성공과 한계를 동시에 마주해
한국은 산림복지 제도화에 있어 선도적인 국가다. 2015년 「산림복지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국립 치유의 숲 등 공공 인프라를 구축했다. 의료 또는 산림 분야 학력을 갖춘 인력을 대상으로 180시간의 전문 교육과 국가 자격시험을 거쳐 ‘산림치유지도사’를 양성하는 체계도 운영 중이다. 이 국가 주도의 전문 인력 시스템은 산림치유 서비스의 질적 기준을 설정하고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적 시스템은 동시에 구조적 제약을 안고 있다. 현재 산림복지 서비스는 공공예산에 의존하는 형태로, 제공 공간 역시 국공유림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서비스의 지역 기반 확산이나 민간 참여 확대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전체 산림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사유림을 활용할 제도적 기반이 미비하다는 점은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즉, 국가가 효율적 시스템을 구축했음에도, 그 적용 범위가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산림복지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민간 영역의 참여와 사유림 활용을 전제로 한 제도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림치유, 정서적 위안에서 의료적 처방으로 전환을 준비 중
산림치유의 다음 단계는 정식 의료 시스템과의 통합이다. 단순한 건강 증진을 넘어, 특정 질환에 대한 치료적 개입을 목표로 한다. 충북대학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과 협력하여, 우울증 환자에게 약물 대신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처방하는 임상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환자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지정된 산림치유지도사에게 프로그램을 받고, 그 경과를 온라인으로 주치의에게 보고한다. 의사는 이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음 프로그램을 조정하며 치료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이처럼 진단-처방-경과 관리를 포함하는 ‘처방 시스템’은 산림치유를 체계적 의료행위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다. 의료의 언어와 절차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의료 체계 안에서 산림치유가 임상적 효능과 제도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산림치유를 국민건강보험 체계에 포함시켜, 지속가능한 재정 구조와 접근성을 갖춘 공공 의료서비스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특히 고령화로 인해 증가하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예방 중심의 국가 보건 전략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과학적 근거로 산림치유의 블랙박스를 풀어야
산림치유가 의료계에서 정식 처방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의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숲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 메커니즘이 관여하는지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왜’ 효과가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산림치유는 여전히 감각적 경험이나 직관적 인식의 범주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체계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어떤 질병에 어떤 환경적 요소를 가진 숲이 효과적인지, 얼마 만큼의 강도와 시간이 필요한지를 규명할 정량적 데이터가 필요하다. 예컨대, 특정 불안장애 환자에게는 피톤치드 농도가 높은 침엽수림에서 몇 시간의 산림 활동이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보이는지를 통계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과학적 증거가 쌓이면, 의사는 산림치유를 약물처럼 정밀하게 처방할 수 있고, 표준화된 프로토콜 개발로 이어져 복제, 검증, 상용화가 가능한 산업 기반이 구축된다. 과학적 연구는 단순한 학술 작업을 넘어, 산림치유가 제도화되고 지속가능해지기 위한 핵심 토대다.
민간 산업화를 이끌 새로운 경제 모델을 구축해야
산림치유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자생적 산업 생태계가 필요하다. 단순한 복지 개념을 넘어,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하는 경제적 산업으로 발전해야 한다. 핵심은 국토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사유림 소유주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는 무료 서비스로 인식되던 치유·휴양 등 비물질적 가치를, 임업의 수익 자원으로 정의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비가 필요하다.
해외 사례는 좋은 참고가 된다. 독일에서는 민간 협회가 공공 및 사유림을 치유의 숲으로 인증하고, 산림치유지도사들이 사용료를 지불하고 그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일본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과학적으로 인증된 숲의 건강 효과를 기반으로 지역 공동체가 치유 프로그램, 숙박, 건강 식단을 연계한 복합 관광 산업을 운영하고 있다.
자본력이 부족한 한국의 소규모 산주들에게는 대형 시설보다는 작지만 특화된 프로그램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예를 들어 학교 폭력 트라우마를 겪는 청소년, 번아웃을 겪는 직장인, 고급 웰니스를 찾는 노년층 등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이는 대형 종합병원이 아닌,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소규모 클리닉 모델에 가깝다. 국가가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민간이 다양한 수요에 맞춘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 분담은 산림치유 산업을 지속가능하게 확장하는 현실적 전략이 될 수 있다.
한국 산림치유, 글로벌 표준을 제시하다
한국은 선진적인 법률과 제도를 바탕으로 산림치유 분야에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세계산림치유포럼의 공식 파트너로 참여한 것은 이러한 위상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이제 한국은 자국의 성공 경험을 하나의 사례에 그치지 않고, 국제 기준으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2025년 포럼을 통해 출범할 예정인 새로운 국제기구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핵심 플랫폼이 될 것이다. 이 기구는 포럼의 성과를 상시적으로 이어가고, 각국의 산림치유 정책과 정보를 연계·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이 확보한 선도적 입지를 제도적 리더십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엄격한 산림치유지도사 자격제도를 국제 기준으로 제안함으로써, 자국의 제도적 성과를 글로벌 표준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성공 사례를 넘어, 한국이 산림치유 분야의 정책 방향과 운영 원칙을 제시하는 실질적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