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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 생물다양성은 인류 생존을 위한 최소한 조건

2025-09-09 김성희 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 사진 플래닛03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 사진 플래닛03

이강운 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곤충학자이자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가다. 지난 수십 년간 멸종위기종 보전과 생태계 회복을 위해 헌신해 왔다. 약 14년간 동아일보 문화기획부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농생명공학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2007)했고 곤충과 생태학자로서 곤충 서식지 관리와 보전을 위한 집대성 연구를 지속해 왔다. 1997년 홀로세생태학교를 시작했고 2005년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설립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2012~현재)으로 전국적 보전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환경인력개발원 교수로 후학 양성과 생태 전문 인력 교육과 한국응용곤충학회 홍보위원장, 세계곤충학회총회 홍보부위원장 등을 통해 해외 교류에 힘썼다. 2014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8년 국민포장을 수상했으며 조선일보 환경교육대상(2011), 강원 환경 대상(2004)을 수상했다. 그의 학문적 성과와 현장에서 이룬 보전 업적을 인정한 것이다.

생태 연구의 시작과 산속에서 보낸 30년


예전에 ‘멸종위기종을 왜 지켜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모르겠다’라는 물음을 받고 연구자로서, 사회가 납득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절실히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멸종위기종까지 지켜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에게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개와 고양이를 돌보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생물의 가치는 단순히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가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자로서 이 질문에 과학으로 답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산속에서 30년간 곤충 연구를 이어갔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길조차 없는 황무지였고, 사람이 살지 않아 곤충 애벌레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수백 종의 곤충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도로가 개설되고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풍성하던 곤충들은 점점 줄었다. 한때 수천 개체가 관찰되던 종들이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단순히 곤충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멸종위기종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품게 되었다. 그 답은 결국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세운 공간이 바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위기와 희망을 잇는 상징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 사진 플래닛03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 사진 플래닛03

‘홀로세(Holocene)’는 약 1만5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지질시대를 가리킨다. 원래라면 앞으로도 수만 년은 지속되어야 할 안정된 시기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는 급격히 흔들렸다. 학계에서는 우리가 더 이상 ‘홀로세’에 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의 활동이 지질시대를 규정짓는 새로운 시대, 즉 '인류세(Anthropocene)'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화산 폭발이나 지진 같은 자연 현상이 아닌, 화석연료 사용·플라스틱·쓰레기·종 대멸종과 같은 인간의 행위가 지구의 생태를 근본에서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 이름에 문제의식을 담았다. 홀로세라는 ‘현재’를 붙잡지 못한다면, 인류세라는 파국 시대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홀로세생태연구소는 단순한 연구 공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생태 위기를 직시하고 미래 세대와 공유하는 상징 공간이다.


홀로세생태연구소의 모습. 홀로세생태연구소는 단순한 연구 공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생태 위기를 직시하고 미래 세대와 공유하는 상징 공간이다. 사진 플래닛03
홀로세생태연구소의 모습. 홀로세생태연구소는 단순한 연구 공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생태 위기를 직시하고 미래 세대와 공유하는 상징 공간이다. 사진 플래닛03

곤충의 변화 살피기는 기후위기의 징후를 읽는 일


곤충은 변온동물이기에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그렇기에 진화의 시간을 누구보다 오래 살아낸 생명이다. 인류의 등장은 고작 백오십만 년 남짓이지만, 곤충은 3억 년 전부터 지구 위를 날고 기어 다녔다. 지금 우리가 보는 나비와 딱정벌레, 메뚜기는 3억 년 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곤충은 형태를 바꾸는 진화를 반복하기보다, 환경에 맞추어 생리적 적응을 축적하며 살아남아 온 존재다. 그런 곤충들이 현재 기온의 변화가 누적되면서 곤충의 세대 주기는 짧아지고 출현 시기는 앞당겨져 생활사는 길어지고 또 반복된다. 


수서곤충 물장군의 모습. 서식처 파괴, 환경변화 등 위협으로 개체수가 줄어들어 멸종 위기 야생동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진 이강운
수서곤충 물장군의 모습. 서식처 파괴, 환경변화 등 위협으로 개체수가 줄어들어 멸종 위기 야생동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진 이강운

그 적응의 속도는 인간이 감히 따라갈 수 없다. 모기는 기후 조건에 따라 1년에 10세대 이상 이어가며, 많게는 15세대까지 이어가며 짝짓기와 산란, 성충으로의 변화를 반복한다. 이를 인간의 수명으로 환산하면, 모기는 1년 동안 1500년의 경험을 축적하는 셈이다. 인간이 약제 하나에 적응하려면 수십 년이 걸리지만, 모기는 한두 세대 만에 약제 저항성을 획득한다. 우리가 곤충을 이기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호랑나비는 과거 1년에 두 차례만 발생하던 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 번째 세대가 나타난다. 기후변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가 직접 연구한 결과, 2010년에는 5월 초에야 나타나던 호랑나비가 10년 남짓 지나 4월 초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계절이 앞당겨진 것이다. 


모든 현상을 곧바로 기후위기 탓으로 돌리는 ‘기후환원주의’는 과학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일시적 변동과 누적된 추세를 구분하는 일이다. 한 해의 폭염이나 일시적 변동을 근거로 기후위기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기후위기는 서서히 축적되고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될 때 비로소 위기가 된다.


호랑나비의 생활사 변화는 온도의 변화와 직결되고, 기후가 바뀌면 곤충의 '세대 주기'와 '출현 시기'가 즉각 반응함을 확인했다. 이것은 단순한 곤충학적 사실이 아니라, 기후위기가 생명에게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지표다.


추상적 경고는 닿지 않는다, 인간의 문제로 보여 줘야 해


기후위기를 말할 때마다 추상적 경고로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말은 사람들에게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우리가 먹을 수 없게 되고, 우리가 죽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면, 표정이 달라진다. 기후위기를 생태계의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삶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 줘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이 이어지는 한여름에는 모기 개체 수가 줄었지만, 기온이 안정되는 9월 이후 다시 급증해 활동은 늦가을까지 이어지고, 과거보다 활동 시기가 길어져 11월까지도 모기가 관찰된다. 


이로 인해 가을철 말라리아 등 매개모기 전염병 위험이 커지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질병관리청은 ‘2025년 말라리아 관리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환자 감시와 치료, 매개 모기 방제, 접경지역 집중 관리 등을 통해 국내 토착화를 막고 해외 유입을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기후변화가 단순히 계절을 덥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전염병 위험의 시계를 늦가을까지 밀어내며 인간 사회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곤충의 변화를 읽는 일이 곧 기후위기의 징후를 읽는 일이라고 믿는다. 호랑나비의 세대 변화, 모기의 대발생은 단지 생태학적 관찰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위기가 이미 우리 곁에서 현실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사례다.


곤충은 먹이사슬의 주춧돌


곤충은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존재이자,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초다. 많은 곤충이 식물을 먹는 1차 소비자로서 에너지를 상위 영양단계로 전달하고, 또 다른 곤충은 포식자나 분해자로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한다. 건축에서 아치를 떠받치는 주춧돌이 빠지면 전체 구조가 무너지듯, 곤충이 사라지면 식물에서 시작되는 에너지의 흐름이 막히고 수많은 종들의 먹이망이 끊기면서 생태계는 순식간에 흔들린다.


금개구리의 모습. 한국 고유종으로 멸종 위기 야생동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진 이강운
금개구리의 모습. 한국 고유종으로 멸종 위기 야생동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진 이강운

곤충의 종수는 현재 알려진 것만 해도 약 350만 종을 넘는다고 추정한다. 개체 수는 그보다 훨씬 많아, 사실상 모든 생명체의 먹이가 될 수 있다. 조류의 약 85% 이상이 곤충을 먹고, 양서류와 파충류 역시 약 70% 이상이 곤충을 주요 먹이로 삼는다. 


인간이 소비하는 식량 또한 큰 타격을 받는다. 전 세계 작물의 약 75%가 곤충을 포함한 동물의 수분에 의존하고, 전체 식량 생산의 35%가 곤충 수분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곤충이 사라진다면, 이들을 먹고 사는 동물들 역시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종종 쌀은 풍매화니까 곤충의 수분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에게, 그렇다면 쌀과 밀만 먹고 살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과일과 채소, 다채로운 식단은 모두 곤충의 수분에 의존한다. 곤충이 사라진 세상은 영양적으로도, 생태적으로도 척박한 세상이다. 이 작은 존재들이 무너지면, 그 위에 얹힌 모든 생명이 함께 무너진다. 


멸종위기종, 사회적 약자와 같은 존재


최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멸종위기종 역시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와 다르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권리와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 사회의 소수자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소똥구리는 1993년 특정야생동·식물 지정되어 보호받아 왔으며, 현재 멸종 위기 야생동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진 이강운
소똥구리는 1993년 특정야생동·식물 지정되어 보호받아 왔으며, 현재 종 위기 야생동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진 이강운

멸종위기종은 내일이면 사라질 수 있는 종들인데, 정작 사회와 정부는 거의 무관심하다. 사람들은 흔히 멸종위기종 보전을 동물이나 곤충을 위한 자선 활동처럼 오해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멸종위기종은 생태계의 불균형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경고등이다. 특정 종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은 그 종을 둘러싼 먹이망과 서식지가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멸종위기종을 보전하는 일은 단순히 한 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나는 “노동자와 멸종위기종, 그리고 우리 모두는 결국 같은 레벨에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해 왔다.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와 멸종위기종을 대하는 태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생물다양성, 인류가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야 할 자원


생물다양성의 보전은 단순히 현재를 지키는 차원을 넘어, 인류가 미래에 활용할 수 있는 잠재적 자원의 보고이다. 한 종이 사라지는 순간, 그 가능성은 되돌릴 수 없이 잃게 된다. 학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이론과 자료를 만들고, 이를 저술로 공유함으로써 학문적 가치와 잠재적 의미를 드러내는 일이다.


호랑나비과의 한 종류인 붉은점모시나비의 모습이다. 1989년 특정야생동·식물 지정되어 보호받아 왔으며, 현재 멸종 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진 이강운
호랑나비과의 한 종류인 붉은점모시나비의 모습이다. 1989년 특정야생동·식물 지정되어 보호받아 왔으며, 현재 멸종 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진 이강운

내가 오랫동안 집중해 온 연구 대상은 붉은점모시나비다. 이 곤충은 한국을 대표하는 멸종위기종Ⅰ급으로, 단순히 아름다운 나비가 아니라 극한의 생리적 특성과 과학적 잠재력을 지닌 존재다. 연구 결과,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영하 35도, 알은 영하 47도까지도 얼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항동결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밝혔다. 이 수치는 곤충이 지구상에서 어떻게 극한 환경에 적응해 왔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이 곤충의 가치는 생존력에만 있지 않다. 붉은점모시나비에서 추출한 물질이 치주염이나 아토피 피부염과 같은 질환을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실제로 연구를 통해 항균성·항염성 펩타이드가 발견되었고,이 성과는 이미 국제 학술지에 보고되었다.


붉은점모시나비 복원 과정 또한 의미가 크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240마리를 강원도 삼척에 방사해 개체군을 되살린 뒤, MRR(표지–방사–재포획) 방식으로 모니터링한 결과, 2016년 1877마리, 2017년 441마리가 서식하는 것이 확인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이를 ‘매우 성공적인 복원 사례’로 평가했다.


멸종위기종을 보전하는 일이 곧 인간의 생존을 보전하는 일이라 믿는다. 이러한 연구는 쉽지 않다. 한 종의 생활사를 온전히 밝혀 내기 위해서는 수십 년에 걸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수천 개체의 알을 채집하고, 부화와 번데기 과정을 지켜보며, 미세한 생리적 변화를 기록해야 한다. AI나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오직 사람의 손과 눈으로만 가능한 노동이다. 지금도 산속에서 무한반복의 단순한 일처럼 보이는 멸종위기종 실험과 연구를 멈출 수 없다.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생물다양성 공존의 원칙과 법적 강제력이 필요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 흔히 맞서는 두 축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다. 원전은 값싼 에너지로 포장되지만, 핵폐기물 처리 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 결국 가장 비싼 에너지가 된다. 반대로 태양광과 풍력은 초기 비용이 높아 보이나 기술 발전에 따라 효율은 높아지고 단가는 낮아지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중 케이블 기술을 보유해 송전망을 지하·해저에 매설함으로써 산림을 훼손하지 않고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진정한 친환경으로 나아가려면 단순히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입지 전략이 곧 생태계 보전 전략이 되어야 한다. 국제 연구에 따르면 지붕형 태양광이 토지 점유와 탄소발자국이 가장 낮으며, 산업단지·학교·주차장 등 이미 개발된 부지에 설치하면 추가 이점도 크다. 반대로 산비탈, 습지, 하천변 같은 민감한 지역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토사 유출과 서식지 파괴로 많은 생명들, 특히 멸종위기종에 치명적 피해를 준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훼손이 아닌 공존의 원칙 위에 세워져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강제력 있는 법과 제도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최초 기후헌법소원, 기후위기 대응의 구체성과 강제성을 요구해


국제사회가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하겠다는 ‘30by30’ 목표를 합의했지만, 현실에서 이행은 더딘 이유는 구체적인 목표와 법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 보전은 시행령 수준의 규정에 머물러 있어, 지켜도 보상이 없고 지키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사업으로 취급되며,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반면 탄소중립은 국제무대에서 약속을 이행해야 하는 만큼 법률에 근거해 추진된다. 성과를 내면 인센티브가 주어지고, 실패하면 패널티가 따른다. 수출 산업은 실제로 탄소 감축 성과에 따라 관세 차별을 받는다. 이처럼 법적·경제적 구속력이 있는 정책만이 사회를 움직인다.


이를 분명히 드러낸 사례가 바로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 판결이다. 재판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만 규정하고 2031년 이후 계획을 전혀 명시하지 않은 것은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다수 의견은 ‘합헌’이었지만,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내며 “정부는 연도와 수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요구와 함께 환경단체 측 주장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비록 정족수 미달로 최종 결정은 합헌에 그쳤지만, 한국 사법사상 처음으로 기후위기 대응의 구체성과 강제성을 요구한 판례로 기록되었다.


생물다양성 보전에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률로 목표와 지표를 명확히 하고, 이행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부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과 정부, 지자체가 실제 행동에 나선다. 그렇지 않으면 30by30 같은 국제 목표도 선언에 그칠 뿐이다.


우리가 지키는 것은 곧 우리 자신


생물다양성 보전은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우리 생존을 위한 최소한 조건이다. 깨끗한 공기와 물, 안전한 먹거리는 모두 생태계의 순환에서 비롯된다. 곤충이 꽃가루를 옮기지 않는다면 과일과 곡식의 생산량은 급격히 줄어들고, 숲이 무너진다면 탄소 흡수원은 사라져 기후위기는 가속화될 것이다. 멸종위기종은 단순히 ‘희귀한 동식물’이 아니라, 생태계라는 거대한 그물망을 지탱하는 매듭이다. 매듭 하나가 끊어질 때마다 그물 전체가 흔들리고, 결국 그 위에 살아가는 인간 또한 위험에 빠진다.


자연을 지킨다는 말은 곧 '나'를 지킨다는 뜻이다. 숲을 보존하고 강을 살리며 곤충과 조류를 보호하는 일은 ‘타자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나를 위한 방패’다. 우리가 보전하지 못한 자연은 다시 인간에게 위기로 돌아오며, 반대로 우리가 지켜 낸 생태계는 우리 건강과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기반이 된다. 결국 우리가 지키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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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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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멸종위기종을 왜 보호하고 보존해야 하는 지 곱씹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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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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