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최호림 산청군의원 | 산불 트라우마에서 배운 것, '산불특별법'에 대한 '기후 정치인'의 제언
- Dhandhan Kim
- 2일 전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14시간 전
2025-10-23 김복연 기자
최호림 산청군의원은 3월 산불 당시 집 50m 앞까지 닥친 불길과 사투를 벌였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재난 정치'의 한계를 절감했다. 유실수에 대한 비현실적인 보상 기준과 피해자에게 50%의 자부담을 지우는 구조는 '재난 불평등'이다. 이념적 대립으로 특별위원회 구성까지 무산시키는 의회 정치에 대해 비판했다. '탄소중립 비용'을 산주에게 장기간 지급하는 구조로 '산불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방 도시 주민들의 높아진 기후 인식을 바탕으로 '기후위기 대응센터'와 '에너지 자립형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주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 권리를 찾아야 한다.

최호림 | 산청군의원
오랜 기간 지역 사회와 농업 분야에 헌신해 왔다. 군 제대 후 고향인 산청으로 돌아와 의용소방대에서 18년간, 방범대에서 22년간 활동하며 지역 봉사에 앞장섰다. 특히 산청의 주요 산업인 곶감 관련 농업 단체 회장을 5년 넘게 포함하여 총 16년간 농업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학문적으로는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로 재직하며 6차 산업, 기후 관련 과목 등을 강의했으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중앙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지역과 중앙을 잇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산청군의회 의원으로서 전반기에는 총무위원장, 후반기에는 산업건설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지방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산청에 입덕하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산청에서 보냈다. 군 제대 후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곶감 농업 단체 회장을 5년 넘게 맡으면서 지역 경제를 위해 뛰었다. 의용소방대, 방범대 활동을 하며 몸으로 봉사했다. 최근에는 경희대 경영대학원에서 6차 산업과 기후 관련 과목을 강의하는 겸임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나의 역사는 산청이라는 작은 공동체가 안고 있는 문제와 가능성을 겪어 낸 역사다. 산청에 ‘입덕’했다고 표현하곤 한다. 산청을 들어오는 덕산 지역의 ‘입덕문(덕산을 들어오는 문)’을 들어오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전국 어디를 다녀봐도 산청만한 곳이 없다고 확신했다. 평생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지옥의 문턱에서 산불과 벌인 사투, '재난 트라우마'로 남아
가장 아름답고 나의 삶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산청에 불이 났다. 지난 2025년 3월, 아름다운 지리산과 평화롭던 마을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봤다. 그 이후로 나에게 '정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재난 트라우마'를 겪고 나서 지방 정치가 이제 정말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기후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처음 산불이 발생했을 때는 종합 지휘소에 있었다. 마을에 불이 붙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이미 극단적이었다. 집 뒤편의 소나무 밭은 송두리째 전부 다 타버린 상태였고, 불길은 집에서 불과 50~60미터 앞에서 맹렬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차 문을 열자 사우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같은 열기가 훅 들어왔다. 나조차도 거의 패닉 상태였다. 연기가 자욱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급히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연기가 집 안 가득했다. 재와 거름도 한꺼번에 들어와 집안에 가득했다. 정신없이 비닐봉지를 찾아 재빨리 속옷 몇 개만 챙겨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마을을 들어갈 때 군데군데 보이던 산불은 불과 10분 사이에 양쪽의 산에 다 옮겨 붙었다. 열기가 엄청났다. 도망치는 길은 더 아찔했다. 연기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앞에 뭔가 부딪힐까 무서웠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이 정말 두려웠다. 살면서 그렇게 두려움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지나간 기억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온 마을이 캄캄했다. 연기가 마을을 덮어 컴컴한 저녁 같았다. 그 사이로 벌건 불기둥이 보였다.
마을 회관 가까이 오면서 정신이 조금 들었다. CCTV를 보니 불길이 조금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아, 불을 끌 수 있겠다'
공무원들이 못 올라가게 만류했다. 의용소방대를 오래 했기 때문에 집에 소화기 4개가 있었다. 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다시 올라가 소화기 4개를 가져왔다. 곶감 건조장 뒤에 있는 감밭에서 건물로 번져오는 산불을 직접 껐다. 건조장 건물에 불이 붙는 것을 막지 못했으면 집까지 모두 다 탔을 것이다.
기후변화의 목격자들, 평생 이렇게 무서운 재난은 처음
지역의 90세 가까운 어르신들도 "평생 이렇게 심한 재난은 처음 겪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말하는 핵심을 세 마디로 하면 "무섭다"다. 재난은 인간의 경험을 압도하는 충격적 사건이다.
기후 재난은 계절에 상관 없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4년전 겨울, 산청에 홍수 수준의 비가 내렸다. 이상 기후 현상을 주민들과 함께 경험했다. 1월이었는데 곶감 축제 마지막 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틀 동안 내리 비가 내렸다. 그 비로 가설교가 흔적도 없이 떠내려가 버렸다. 겨울은 강수량이 제일 적은 계절인데 비가 홍수처럼 내렸다. 어릴 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름과 겨울만 있다.
주민들이 기후를 인식하고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의정 활동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탄소중립 조례’를 만들고, 2년간 끈질기게 노력해서 플라스틱 수거 기계 3대를 산청군에 설치했다. 반응도 좋다.

이 작은 기계는 플라스틱 병을 넣으면 개당 10원씩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환경 인식 변화만이 아니라, 초고령 주민들에게 소액이지만 수익을 제공하는 '사회적 수익 모델'이다. 연세 드신 분들 앉아서 하루 500원씩이면 한 달에 1만5천 원이 되는데, 1만5천 원이면 맛있는 것을 하나 사 드실 수 있는 금액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이 늘고 있다. 지방 도시 주민들은 기후위기의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해결 할 수 있는 주체이기도 하다. 작은 실천을 통해 주민들의 인식은 높아진다.
산불 이후 남은 것은 '제도적 모순'과 '재난 불평등'
산불 이후 남은 것은 제도적 모순과 재난 불평등이었다. 가장 불합리한 것은 피해자가 모든 손해를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농업용 기계 구입 보조금이 나와도, 피해 주민은 나머지 50%를 자부담으로 해야 한다. 불이 난 것도 억울한데, 피해자가 그 손해를 왜 다 안아야 합니까?
보상 기준의 비현실성은 더 참담하다. 60년 이상된 감나무 50주가 탔는데, 보상금은 나무당 1만천 원 정도였다. 유실수와 고사리 같은 작물의 보상 기준은 달라야 한다. 그런데 현행 기준은 평방미터 내 포기 수 등으로 계산되어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법의 사각지대 문제도 심각하다. 실제로 살고 있는데 주소지가 다른 곳으로 되어 있으면 보상을 못 받는다. 농촌에 흔히 볼 수 있는 가(불법) 건물에 대한 보상 문제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다. 당장 몸만 나온 피해 주민들은 의복이나 현금 등 기본 생활을 안정시키는 지원부터 절실했다.

산청군 예비비를 쓰자고 주장했다. 예비비가 266억 원이었다. 이 중 일부만 활용해서 1가구당 매달 300만 원씩 1년 정도만 생활 안정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었다.
무엇보다 분노할 일은 의회 내부의 정쟁이었다. 실질적인 피해 복구를 위해 ‘산불재난비상대책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었다. 산청군의회는 국민의힘 의원이 8명으로 압도적이다. 민주당 의원 1명, 무소속 의원 1명이 있다. 결국 정치적 이념 차이로 위원회 구성이 무산되었다.
"당신들은 국민이 두렵지 않느냐"고 피를 토하듯 이야기했다.
의회의 존재 목적은 오직 주민의 평안이며, 이념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이것이 신념이다.
지방자치라는 이름만 쓰고 있을 뿐, 재정 자립도가 10% 미만이다.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 강남구와 산청군에 같은 잣대를 적용하면 안 된다. 지역 특성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지방자치의 한계를 느낀다.
산불을 겪으면서 산불특별법에 대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
산불을 겪으면서 산불특별법의 실행 단계에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특별법 시행은 단순히 보상에 그쳐선 안 되며, '탄소중립'과 연계되어야 한다. 산림 복구 시 산주(산림 소유주)의 수익 구조를 보장해야 한다.
정부는 단순히 나무를 심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탄소중립 수종을 심게 하고 그에 따른 비용, 즉 '탄소중립 비용'을 연수에 따라 장기간 지불하는 새로운 보상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산주가 산을 잘 지켜나갈 때마다 국가가 지속적인 수익을 보장해 주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의 핵심이다. 국유림으로 매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두번째는 피해 보상과 산림 개발에 대한 논의는 투 트랙 전략으로 별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보상은 신속하고 현실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산림 복구는 미래를 향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세번째는 법 시행 후에도 국민과 환경 단체의 목소리를 꾸준히 반영해 최소 5~6년 동안은 보완·개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법이 현실과 멀어지면 가치가 없으며, 우리 피부에 와닿는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로 필드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환경 단체는 무한 질주하는 기관차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기후 대응센터'와 '에너지 자립 마을', 기본소득 조례 만들고 싶어
주민들에게 산청의 다음 세대 100년을 위한 목표를 말한다. '기후위기 대응센터'를 설립하는 것이 첫번째다. 생태적으로 산청은 지리산을 품고 있고 덕천강, 경호강, 양천강 등 3대강이 흐르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기후를 예측하고 생물 다양성 연구를 위한 전문적인 센터가 있어야 할 곳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하다.
두번째는 '자립형 에너지 마을' 조성이다. 기업에만 RE100을 요구할 게 아니다. 생태계 교란이 없는 소규모 수력 및 풍력을 활용하는 에너지 자급자족 마을이 기후 재난 시대에 꼭 필요하다. 산청은 초고령 도시다. 65세 이상 인구가 44%로 매우 높다. 에너지 자립을 통해 얻은 수익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구조를 만들면 주민들에게 기초소득이 된다. 주민들이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되도록 해보고 싶다. 꿈이다. '기본소득 조례'를 만들려는 이유이기도 한다.

'주민정치'의 시대를 열다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시대다. 정치 역량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직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군수, 도의원, 군의원들과 ‘끝장 토론’을 매년 할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정책을 제안 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이 '어른이 아니다'라는 것을 반드시 보여드리고 싶다. 주민들을 이끌거나 가르치는 위치에 서고 싶지 않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의 평안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재난의 트라우마를 딛고, 산청이 기후 정치의 모범으로 설 수 있도록 끝까지 현장을 지키고 싸워 나갈 생각이다. 이것이 그 무서운 불더미 속에서 삶의 터전을 지켜 낸 산청군민들에게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약속이다.






![[인사이트] 한새롬 백년숲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 기후 대응 숲, 거버넌스에 성패 달려](https://static.wixstatic.com/media/c15d53_dcdfd113f73f461a83bc9591d3565930~mv2.jpg/v1/fill/w_980,h_1307,al_c,q_85,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c15d53_dcdfd113f73f461a83bc9591d3565930~mv2.jp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