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북의 '댐방류', '도발'로 말하기 전에 공동대응 모색해야
- Dhandhan Kim
-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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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1 김복연 기자
매년 반복되는 북의 댐 방류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재고하고, 북의 댐 수문 개방 문제를 기술적 한계와 기후위기 공동 대응 관점에서 바라보는 남북 간 협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해야 한다.
물줄기는 경계를 모른다. 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댐은 그 물길을 막고 풀기를 반복한다. 장마철이 다가올 때면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북한은 또 사전 통보 없이 수문을 열 것인가?" 2009년부터 이어진 이 반복은 매년 비슷한 언론 헤드라인을 낳는다. “북한, 무단 방류”, “남측 피해 우려”, “북한 도발 가능성”…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이 과연 전부일까? 댐 수문 개방이라는 기술적 행위를 일관되게 '정치적 적대 행위'로만 해석하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적절한 대응인가?
강수량이 평소의 3~5배 이상을 초과해 급격한 기상 변화가 있었던 시기와 방류 시기 겹쳐
매년 장마철이 되면 북은 황강댐의 수문을 개방한다. 때로는 남에 사전 통보 없이 이루어진다. 임진강 수위가 갑자기 상승하고, 연천 일대 주민들이 불안에 떨거나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언론은 빠르게 ‘북의 무책임한 행동’을 지적한다. 이러한 비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2009년 북의 방류로 6명의 남쪽 민간인이 사망했고 이후, 남북은 사전 통보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 통보 없이 수문이 개방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협의를 무시한 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왜 북이 반복적으로 합의를 회피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북의 기상 예측과 홍수 관리 기술력이다. 북의 기상수문국은 1946년 설립된 이후 기본적인 기상 업무를 담당해 왔지만, 1990년대 이후 사회·경제적 붕괴와 함께 기상 관측 인프라는 붕괴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북측 전역에는 약 27개의 지상 기상관측소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수동 방식이며 자동기상관측장비(AWS)는 부족하다. 위성자료를 수신하거나 레이더 기반 강우량 예측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기상 예보 자체도 정량적 수치보다 “비가 올 가능성 있음” 같은 정성적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북의 댐 운영 시스템이 정밀한 수위 조절이나 홍수 조기경보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강댐을 포함한 주요 수력시설은 수력발전과 농업용수 공급이라는 이중 목적을 갖지만 급작스러운 집중호우나 수문 오작동 시 방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실제로 북이 방류를 감행한 시점들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지역 강수량이 평소의 3~5배 이상을 초과한 급격한 기상 변화가 있었던 시기와 겹친다. 이들은 물리적 시간 여유가 없고, 경보 체계를 마련할 기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북의 반복적인 수문 개방은 ‘위협’이자 동시에 ‘도움 요청’일 수 있어
기술적 한계가 정치적 결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도발’이나 ‘의도적 무시’로만 해석하는 시각은 결과적으로 기술적 지원을 통한 구조 개선의 기회를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북의 반복적인 수문 개방은 ‘위협’이자 동시에 ‘도움 요청’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이 현상을 재난관리 프레임이 아닌 기후위기 공동 대응 프레임으로 전환해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적 관점에서도 이 사안은 북의 불안한 내부 상황을 반영한다. 장마철 대홍수는 북의 농업 생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식량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 특히 국제 제재 이후 외부로부터 지원이 차단된 상황에서 기후 재난은 내부 통치 정당성에도 직결된다. 반복되는 수문 개방은 남에 대한 도발이기보다는, 자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완전한 선택일 수 있다. 국제사회와 단절된 상태에서 댐 방류를 협의할 대화 채널도, 기술적 대안도, 정치적 여유도 없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가속화한다. 북은 최근 수년간 여름마다 대형 홍수와 산사태, 태풍 피해를 겪고 있다. 산림이 고갈된 지역에서는 빗물이 그대로 농경지와 도심으로 쏟아지고, 하천의 범람은 제방이 부족한 북의 농촌 지역을 초토화시킨다. 2020년, 2021년 연속으로 북의 노동신문은 "장마는 적이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대응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이 기후 재난이 남쪽만의 기술력으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구분하지 않으며, 남북이 공동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모두 피해자가 된다.
과거 합의한 ‘기상정보 교류’와 ‘홍수 사전 통보 체계’부터 실질화해야
실행 가능한 협력 방안은 존재한다. 남북이 과거 합의했던 ‘기상정보 교류’와 ‘홍수 사전 통보 체계’를 실질화하면 된다. 현재 남측은 고해상도 수치예보모델과 위성기반 강우량 예보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임진강 수계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 및 위성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북에 실시간 경보 시스템, 자동강우량계, 저비용 수위감지장치 등을 지원한다면, 북도 최소한의 홍수 대비력을 갖출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제3국 혹은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협력 모델을 고려할 수 있다. 세계기상기구(WMO), 아시아재난대응센터(ADRC), 유엔환경계획(UNEP) 등은 기술 비이전, 인프라 현대화, 데이터 공유를 위한 중립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유엔 산하 녹색기후기금(GCF)을 통한 ‘기후 취약국 지원’이라는 프레임을 활용한다면, 남북 기술 협력이 제재 면제의 예외로 인정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기상 재난 대응은 명백히 인도주의 영역이며, 그것이 ‘생존을 위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어느 누구도 이를 정당하게 거부할 수 없다.
또한 남북 공동 수자원 관리 협력체를 설치하여, 황강댐과 남한 하류 지역 간 ‘댐-하천 공동 관리 매뉴얼’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일본과 중국, 네팔과 인도 간에도 국경하천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경보 체계를 공유하는 사례가 이미 존재하며, 이는 남북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협력 모델이다.
‘기술 부족과 체계 부재에 따른 재난의 징후’로 해석하면 답이 보인다
전제는 기후위기를 국가 안보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시각 전환이다. 북의 댐 방류를 ‘의도된 적대 행위’로 보는 한, 우리는 매년 반복되는 재난 뉴스 앞에서 분노만 되풀이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술 부족과 체계 부재에 따른 재난의 징후’로 해석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이 열린다. 그 창은 남북이 함께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기술과 정보를 나누며, 재난을 평화의 대화로 바꾸는 기후공동체의 창이다.
물은 흘러야 한다. 경계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도 기후 재난 앞에서는 경계를 내려놓아야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수문 개방 앞에서 더 이상 분노에 그치지 말자. 오히려 그 물줄기를 따라 북의 기술적 불안, 체계의 한계, 정치적 위기를 읽고, 남의 기술적 여유와 국제적 협력 자원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평화는 조약이 아니라 ‘공유된 기술’과 ‘공유된 위험’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물의 경고는 평화로 향하는 첫 번째 신호다.
북의 예고없는 수문개방이 도움요청 일 수 있다고 보는 건 합리적 시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