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호의 AI와 기후 ⑨ | 기후위기, AI 기반 ‘시민 공론장 3.0’으로 해법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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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 3.0, 이제는 상상이 아니라 실천의 영역이다. 기술은 숙의를 대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은 더 많은 사람이, 더 깊이 숙의할 수 있도록 새로운 민주주의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AI로 기후위기를 풀어야 하는 이유다."
2025-12-12 조인호

조인호 포스트에이아이 대표이사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Telecommunication으로 석사학위를,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Communication Studies-Organization Science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부터 오피니언라이브의 공동대표로 자연어처리와 인공지능 학습데이터 구축 지원 사업을 주도했다. AX(AI Transformation)와 개인화 기반의 Virtual Persona를 지향하는 포스트에이아이를 설립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신산업융합대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의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기후위기 솔루션으로서 AI의 역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미 AI는 기상 예측, 기후재난 대응, 탄소 감축, 에너지 그리드 등 기후 관련 다양한 솔루션에 쓰이고 있다. 기후 문제는 지구 상의 모든 곳, 모든 사건에 닿아 있기에 그만큼 복잡하고 다층적이어서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AI와 시민의 협업을 개념화하고 알려 온 필자에게서 기후위기 솔루션으로서 AI를 활용한 국내외 다양한 사례들을 듣고자 한다. 인간과 AI의 차이점이 낳은 협력의 근거들을 찾아 '우일신又日新'해 보자.
지난 기사
AI 기술의 3대 역할: 공론장의 확장, 심화, 연결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류 공동의 과제이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은 에너지, 산업, 생활 방식 전반에 걸쳐 전면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환의 과정에 있어 정책의 정당성과 시민 수용성의 확보가 성공의 핵심 열쇠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해상 풍력 건설이나 RE100 산업단지 유치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지역 현안에서는 기존의 공청회나 설문조사 방식만으로는 갈등 조정이 어렵고,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광범위한 시민 참여 기반의 공론장을 구축하려는 다양한 혁신적 시도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여론조사나 투표를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기후 정책의 복잡성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숙의하며, 나아가 정책 결정의 질을 높이는 ‘AI-시민 숙의 플랫폼’의 구축을 지향한다. 그리고 이러한 플랫폼은 포용성, 숙의의 깊이, 실효성, 그리고 지속성이라는 시민 공론장이 안고 있는 고질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AI 기술은 시민 공론장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다양한 학술적 연구 성과들을 종합하면, AI는 공론장에서 다음의 세 가지 핵심 역할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의견 수렴의 확장: AI 여론조사와 합성 페르소나를 통한 다원적 대표성 확보
기존 여론조사와 숙의 방식은 표본의 수가 제한적이며, 참여 의지가 낮은 집단이나 소수 의견이 배제되기 쉽다. 또한 지속성을 담보하거나 연속적인 데이터 축적을 통한 의견의 변화 양상을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AI 에이전트 여론조사(AI Agent Polling)는 일찌감치 주목을 받고 있다.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한 이 방식은, 수십만 명에 이르는 AI 투표 페르소나(Voting Personas)를 높은 현실성을 갖고 에뮬레이션(Emulation, 다른 시스템의 기능을 흉내 내는 기술)할 수 있으며, 실제 유권자의 의사결정 패턴과 높은 일관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대체 가능성을 보여 준다.
특히 합성 페르소나(Synthetic Personas)는 인구통계 데이터와 같은 공신력 있는 통계를 기반으로 절차적으로 생성되며, 이들의 선호도는 실제 시민들의 통계적 분포와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여러 실증 연구들에서 확인되었다. 이러한 기술을 활용하면, 실제 시민 참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커뮤니티의 정서와 여론의 흐름을 조기에 감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AI는 물 소비, 공과금, 세수 영향과 같은 민감한 지역 이슈를 사전에 식별해 내는 확장 가능한 스크리닝 도구(Scalable Screening Tool)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로써 공론장의 다원적 정렬(Pluralistic Alignment)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기존 공론장들이 갖고 있던 다수 의견 편향의 구조를 넘어서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할 수 있다.
심층 숙의 환경 제공 및 정책 결정 지원
기후 정책은 기술적, 경제적, 생태적 복잡성을 동반한다. 이로 인해 시민이 충분한 정보를 습득하고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리기까지 높은 인지적 부하(Cognitive Bandwidth)가 요구된다. 이때 AI는 정책 결정 지원 도구(Decision Support Tool)로 작동하여, 숙의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핵심은 역할 연기 언어 에이전트(RPLAs, Role-Playing Language Agents)의 활용이다. 이들은 단순한 질문응답을 넘어, 특정한 사회적 배경과 가치관, 행동 이력을 반영한 페르소나를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고도의 개인화(Personalization)를 구현한다.
예컨대, 해상 풍력 발전에 반대하는 어촌 주민의 삶을 반영한 RPLA와의 대화를 통해, 일반 시민은 어획량 감소나 지역경제 위축과 같은 쟁점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시민 개개인이 정책 대안의 장단점을 더 깊이 숙고하게 만들고, 상호 이해(Mutual Understanding)와 시민 담론(Civil Discourse)의 품질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토론 결과 분석 및 실효적인 정책 의견 구조화
공론장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자유 형식 텍스트는 행정기관 입장에서는 정리·활용하기 까다로운 형태다. 하지만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이 텍스트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핵심 쟁점과 논거를 자동 식별하고 요약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정량적·정성적으로 활용 가능한 형태로 가공할 수 있다.
특히 AI는 단순히 토론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넘어서, 각 참여자의 생각과 의견을 정리된 형태로 바꿔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떤 쟁점에 어떤 이유로 찬성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행정기관이나 정책 담당자들이 시민의 의견을 훨씬 쉽게 검토하고 반영할 수 있어,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에서의 효율성과 투명성(transparency)를 제고할 수 있다.
개인 데이터 기반 AI 페르소나: 숙의 민주주의의 차세대 실험
AI 공론장의 완성은 통계적 페르소나에서 출발해, 개인의 행동 이력과 선호 데이터를 반영하는 개인 데이터 기반 페르소나로의 진화에 달려 있다. 단순히 집단의 평균값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민의 삶과 가치관을 대리하는 AI 페르소나가 실제 숙의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구조이다.
정치 성향, 과거 참여 이력, 지역사회 활동 등 다양한 개인 데이터(Personal Profile)를 기반으로 생성된 AI 페르소나는 실재하는 개인을 보다 높은 현실성으로 재현하며, 현실적으로 숙의에 참여하기 어려운 시민들—고령자, 저학력층, 정치적 무관심층—을 공론장에 대리 참여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이는 공론장의 포용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며, 연구 결과에서도 GPT-4 수준의 모델 등이 코헨의 카파(Cohen’s Kappa) 기준 0.6~0.8에 이르는 높은 역할 재현 일치율을 보이고 있어 기술적 근거 역시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페르소나 구축은 여러 윤리적·사회적 과제를 동반한다. 먼저, 사생활 보호와 데이터 투명성 확보를 위해 명확한 동의 메커니즘과 고도화된 익명화 기술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불어, AI가 개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한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제공하고, AI 페르소나에 대한 열람·수정·삭제 권한 역시 시민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LLM이 내재한 언어적·정치적·계층적 편향성(LLM Biases) 문제는 개인의 의견 재현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AI 페르소나의 의견이 실제 시민의 의견과 일관성(Consistency)을 유지하고, 선호 투표와 같은 복잡한 집단 의사결정에서도 공정성(Fairness)을 담보할 수 있도록, 기술적 검증과 사회적 합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제는 ‘실험’이 아니라 ‘실행’의 시점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시민 참여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더 많은 시민이,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더 실질적인 참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기후 정책의 수용성과 정당성을 동시에 높이는 유일한 해법이다.
AI 기술은 이러한 숙의 과정의 ‘대체재’가 아닌, 확장자이자 촉진자로 기능할 수 있다. 기술적 준비는 이미 되어 있다. 이제는 정책과 참여, 기술과 윤리가 결합된 실행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 장치들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공론장 3.0, 이제는 상상이 아니라 실천의 영역이다. 기술은 숙의를 대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은 더 많은 사람이, 더 깊이 숙의할 수 있도록 새로운 민주주의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AI로 기후위기를 풀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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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호 대표의 [시민형 AI]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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