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북ㅣ가뭇없이 사라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 hpiri2
- 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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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7 안은영
인간에 의한 생물종 멸종, 중국 작가 선푸위의 '내 이름은 도도'를 통해 인간에 의해 멸종된 도도새, 뉴펀들랜드늑대, 안경가마우지 등의 비극적 역사를 되짚으며,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로 되돌아온 인류의 무지와 폭거를 성찰한다.

안은영 작가, 책방 사이 대표
기자로 밥벌이를 했고 『여자생활백서』,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를 거쳐 강동구에 숲·생태·기후·환경 전문 독립서점 ‘책방 사이’를 운영 중이다. 지구에 조금이라도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변화의 가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무엇 때문에 지불하는지 모르고 있는 듯하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에게 간섭받은 생물종은 자연 상태로 있을 때보다 천 배나 빨리 멸종했다.’ ( 『내 이름은 도도』 중에서)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나아가 인문학적으로나 ‘멸종’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은 시시각각 강렬해지고 있다. 멸종은 시공간의 역사, 생물학적 기억으로부터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 인류라고 예외일까. 와중에 그들의 멸종에 직간접으로 간여한 가슴 아픈 개체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작가 선푸위의 ‘내 이름은 도도’(청림출판(주))다.

도도의 슬픈 전설
제목에 등장하는 도도는 짐작하다시피 지금은 멸종된 도도새를 지칭하고 있다. 천적 없이 비대한 몸과 느린 몸짓으로 모리셔스 섬을 누비다가 자연 멸종됐다고 전해지는 새다. 책은 먼저 온순하고 무방비한 새가 맞이한 인간들과 그들의 무도한 시간을 압축해 설명한다.
이름 없는 섬새였던 이 종은 1507년 포르투갈 탐험가의 첫 방문 이후 ‘도도’라는 이름을 얻는다. 포르투갈어로 ‘멍청하다’는 뜻이다. 이어 네덜란드와 프랑스, 영국인들이 가축을 배에 실어와 섬을 점령했고 도도새의 풍부한 육질은 쉼 없이 그들의 배를 불렸다. 서식지를 잃은 도도새의 개체수가 확연히 줄어갔고 1681년 마지막 도도새가 게으른 사냥꾼에 의해 모리셔스 해안에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새의 유일한 먹이였던 카라비아 나무도 멸종을 맞았다. 도도새의 배설물로 나온 씨앗이어야만 땅에서 발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하루에 멸종되는 생물종은 75종이라는 통계가 있다. 한 시간에 세 종이 사라지는 셈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앞으로는 더더욱 알지 못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생을 살아온 생명체가 이십 분에 하나씩 영원히 사라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영민하고 아름다운 늑대의 멸종
도도새의 잔인하고 무정한 최후는 시작에 불과하다. 책은 지구에서 사라진 아름다운 생물종의 대표들을 불러내 멸종에 이르게 한 인류와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멀게는 최상위포식자로의 오만함, 가깝게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점령과 학살의 맛을 본 것이 화근이었다. 18세기 야음을 틈타 뉴펀들랜드를 침략한 영국인은 섬의 원주민인 베오투크 족을 노예로 삼고 풍부한 자원으로 세를 불렸다. 내 것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베오투크 족은 나무열매와 풀잎으로 연명하다 1800년 멸종하고 말았다.
영국인의 표적은 이 지역의 토박이 종인 뉴펀들랜드늑대에게 향했다. 영민한 두뇌로 낮에는 몸을 감추고 밤에 이동하는 방식으로 하루에 2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이 늑대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영국인들이 고심 끝에 묘수를 냈다. 뉴펀들랜드늑대가 좋아하는 사슴에게 스트리크닌이라는 강력한 독극물을 주사한 다음 늑대가 이동하는 길목에 부려놓았다. 어미늑대와 새끼늑대는 물론 같은 먹이사슬에 속한 동물들까지 멸할 수 있는 치명타였다.
아름다운 털과 빠른 발, 일부일처제로 평생을 인간과 공생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늑대는 이렇게 멸종했다. 대자연이 만든 걸작으로 평가받던 뉴펀들랜드늑대가 사라진 지 일 년 뒤인 1912년 타이태닉호가 뉴펀들랜드 부근에서 좌초되는 세기의 사고가 발생한다. 작가는 “침몰사고가 발생한 뒤 사람들은 인류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면서 “세월의 비바람은 베오투크 원주민들이 대서양에 뿌린 눈물과 늑대들의 아름다운 울부짖음을 어떻게 날려버릴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안경가마우지의 저주
찰스 다윈은 저서 『종의 기원』에서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에 사랑을 쏟는 것은 인간의 고결한 특징”이라고 적은 바 있다.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복잡한 심경에 빠진다. 인간의 오만하고 무자비한 행동이 불러온 파국을 지난 수세기부터 이어온 역사가 현현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내 이름은 도도』의 나비와 호랑이, 코끼리새로 이어지는 멸종의 역사를 넘기다보면 ‘인간의 고결함’에 대한 의문은 포화상태에 이른다.
알래스카를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 베링은 검은가마우지의 멸종과 간접적인 연관성이 있다. 베링의 탐험대가 알래스카 섬에 닻을 내렸을 때 그들을 반긴 것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늘어선 검은가마우지 무리였다. 탐험에 동행한 박물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스텔러는 검은 몸에 눈가가 하얀 이 새에게 ‘안경가마우지’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는 곧 정명이 되었다.
베링은 섬에 도착한 해에 사망했고 그의 탐험정신을 기려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 사이의 해협을 베링해협이라 명명했다. 스텔러를 포함한 베링 탐험대는 안경가마우지의 멸종을 지켜본 유일한 인류였다. 섬에 들이닥친 알류트족이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난삽하게 포획하고 취식하는 면면이 스텔러의 저작물에 숨김없이 기록되었다.
온순한 검은 새를 멸종시킨 알래스카의 알류트족은 러시아에 이어 미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섬을 떠나지도 남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섬 이주 비용을 미국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경가마우지가 멸종한 지 160년이 지난 지금, 새에게서 인간에게로 운명은 잔인하게 반복되고 있다.
몇 해 전 여름, 우연한 기회로 아홉 마리 누에나방을 기른 적이 있다.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벌레의 첫인상은 작고 미비했다. 흡사 옷에서 무방비하게 삐져나온 실밥 같았다. 그 하찮은 미물들은 오로지 한 장의 뽕잎을 나눠 먹으며 몸을 불리고 고치를 만들어 번데기가 된 뒤 나방으로 날개돋이를 했다. 그것들이 젖은 날개를 말리면서 부우우웅 사자후를 내뿜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날지 못하게 퇴화한 나방, 실을 뽑기 위해 번데기 상태에서 삶아지던 누에들은 나에게서 날개를 달고 짝짓기를 하고 부여받은 유전자의 규칙에 따라 생을 마감했다. 하찮은 누에나방의 생에 경이를 표하던 나에게 한 곤충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간 때문에, 누에나방은 세상에 나가면 누구보다 빨리 멸종할 생물종이에요.”
슬프게도 그쯤은 나도 알고 있다. 어쩌면 영장류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선 최상위에 있을지 모르나 그 자체로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타자의 희생 없이는 삶을 이어나가기 힘들고 진화의 속도 또한 어처구니없게 느린 족속이다. 상처받기 쉽고 무너지기 쉬운 데다 야만을 먼저 배워버린 포유류로서의 인간은 얼마나 애처롭고 구제불능인가. 하물며 행성에 공존하던 생물종을 무참히 멸해 버린 무지와 폭거의 청구서는 기후위기며 인류세며 지구 탈출 같은 이름으로 인류에게 되돌아오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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