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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⑫ 생물다양성 | '멸종'의 가속화, 인간이 만든 '멸종'의 조건

2025-09-09 김복연 기자

동물 멸종의 두 가지 조건인 유전적 다양성 부족과 전문화된 생활양식의 취약성을 중심으로, 국제 사례(치타·판다)와 국내 사례(산양·저어새)를 통해 설명한다. 국립공원 개발과 조간대 파괴 같은 인간 활동은 종의 생존 전략을 무너뜨리며, 대규모 사업에서 관광까지 인간 활동 전반이 멸종을 가속하는 조건을 완성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라져가는 동물들


도로를 질주하는 산양. 사진 산양 이슈 리포트(2024)
도로를 질주하는 산양. 사진 산양 이슈 리포트(2024)

기후변화와 인간의 활동은 단순한 환경 교란이 아니다. 그것은 진화가 수억 년 동안 쌓아온 생명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행위다. 동물들이 멸종에 이르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유전적 다양성 부족, 다른 하나는 전문화된 생활양식의 취약성이다. 이 두 조건은 현실에서는 서로 겹치며 멸종을 가속화한다. 국제적으로 치타와 판다, 그리고 한국의 산양과 저어새는 이 조건이 어떻게 위기를 불러오는지를 잘 보여 준다.


치타, 유전적 다양성 상실의 대표적 사례


치타는 수만 년 전 빙하기에 큰 유전적 병목을 겪은 뒤, 오늘날까지도 극도로 낮은 유전자 변이성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MHC 유전자 변이성이 현저히 부족해 전염병에 집단적으로 취약하다. 연구들은 치타의 유전적 획일성이 개체군이 환경 변화에 대응할 여지를 극도로 줄이고 있다고 경고한다.


산양, 단절된 서식지와 다양성 붕괴 위험


강원도 양구 돌산령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산양. 사진 산양 이슈 리포트(2024)
강원도 양구 돌산령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산양. 사진 산양 이슈 리포트(2024)

한국의 산양(멸종 위기 야생생물 Ⅰ급, 천연기념물 제217호) 역시 같은 조건에 놓여 있다. 산악지대 절벽과 숲을 주요 서식지로 삼으며 설악산, 오대산, 소백산, 태백산 등 국립공원 지역에 분포한다. 그러나 도로, 댐, 광산 개발과 같은 인간 활동으로 서식지가 잘게 쪼개지며 작은 집단으로 고립됐다. 연구에 따르면 산양은 이미 유전적 병목 현상(genetic bottleneck)을 겪고 있으며, 다양성 상실로 인해 질병이나 기후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고 있다.


보전의 이름 아래, 국립공원에서 사라지는 산양


산양 폐사율. 이미지 산양 이슈 리포트(2024)
산양 폐사율. 이미지 산양 이슈 리포트(2024)


유전적 다양성은 집단 간 자유로운 이동과 교류가 전제될 때 유지된다. 그러나 한국의 국립공원과 DMZ 일대는 군사 철책, 도로, 방역 울타리 같은 인공 구조물이 겹겹이 들어서며 이동이 차단되고 있다. 특히 강원도 북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는 축산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됐지만, 산양의 주요 이동 경로까지 막았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의 「산양 이슈 리포트(2024)」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만 1058개체의 산양이 폐사해 최근 10년간 전체 폐사 개체(1448마리)의 73.1%를 차지했으며, 그중 48.5%는 울타리 반경 798m 이내에서 발견되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울타리가 야생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해 서식지 파편화와 대량 폐사라는 비극을 낳았다”고 결론짓는다.


판다, 대나무 숲의 단절과 생존 위기


자이언트 판다는 먹이의 99%를 대나무에 의존하는 극단적 전문화 종이다. 대나무 숲이 풍부했던 시기에는 판다의 생존이 가능했지만, 농경지 확장과 기후변화로 군락지가 파편화되면서 판다의 개체군은 급격히 줄었다. 중국의 보호 정책과 복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나무 단일 의존성은 판다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저어새, 갯벌에 특화된 생활양식


갯벌에서 어패류를 걸러 먹는 저어새. 사진 네이버
갯벌에서 어패류를 걸러 먹는 저어새. 사진 네이버

한국의 저어새는 주걱 모양 부리로 얕은 갯벌에서 작은 어패류를 걸러 먹는 생활양식을 진화시켰다. 본래 이러한 전문성은 약점이 아니었다. 지구 생태계는 오랜 세월 각 종들이 틈새를 차지하며 공존할 수 있을 만큼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갯벌을 메우고 기후를 변화시키면서 저어새의 서식 기반은 붕괴됐다.


진화의 무대였던 조간대, 개발로 흔들리는 저어새


지구 진화사에서 조간대(intertidal zone)는 단순한 해안선이 아니었다. 약 4억 년 전 고생대 데본기, 어류 일부가 산소가 부족한 얕은 물과 바짝 마른 조간대를 오가며 호흡과 이동을 시도했고, 이는 결국 지느러미가 사지가 되는 전환으로 이어졌다. 조간대는 곧 수생 생물이 최초로 육지 생물로 진출한 탄생의 장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조간대 갯벌은 탄소를 저장하는 블루카본 공간, 어류와 철새의 산란지로 기능한다. 그러나 한국 서해안의 새만금 갯벌은 1991년 간척 사업과 2010년 방조제 완공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국제 조사에 따르면, 새만금 간척으로 동아시아 철새 이동 경로(EAAF)의 핵심 기착지가 붕괴하면서 저어새 등 멸종 위기 철새 개체군이 급감했다.


현재 추진 중인 새만금 신공항 건설은 저어새의 마지막 주요 번식지인 수라갯벌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환경영향평가 검토 과정에서 멸종위기종 서식지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는 점이 지적되며, 국제적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악의 중첩 사례, 동굴 관광


더 케이브 바이 쉐프 라이언 클리프트. 사진 플래닛03
더 케이브 바이 쉐프 라이언 클리프트. 사진 플래닛03

멸종 조건은 따로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서식지가 단절되어 개체군이 줄어들면 유전적 다양성이 약화되고, 동시에 특수한 환경에 의존하는 생활양식은 쉽게 무너진다. 두 조건이 겹칠 때 멸종의 속도는 가속된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동굴 관광이다. 동굴은 빛이 없고,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며, 절대적인 정적이 유지되는 특수한 환경이다. 박쥐, 동굴어, 동굴 곤충 등은 이곳에 전문화된 생존 전략으로 적응해 왔다. 그러나 관광 개발로 조명이 설치되고, 환기와 소음, 인위적 출입이 이어지면 동굴의 안정된 환경은 근본적으로 파괴된다.


이로 인해 집단이 축소되거나 흩어지면서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고, 남은 개체들은 전문화된 생활양식 때문에 대체 서식지에 적응하지 못한다. 동굴 관광은 두 조건이 동시에 작동하는 최악의 형태로, 관광이라는 이름의 산업이 생태계 파괴의 가속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인간 활동 전반이 만드는 멸종의 조건


치타·판다 같은 국제적 사례에서 보듯, 멸종의 조건은 전 세계적으로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의 산양과 저어새 역시 같은 길 위에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은 서식지를 통째로 없애고, 개인의 만족을 위한 관광은 특수한 환경을 파괴하며, 인간 활동 전반은 생태계 파멸로 치닫고 있다.


국제연합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2019년 보고서에서 “약 100만 종의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있으며, 그 주된 원인은 토지·해양 이용 변화, 직접적 착취, 기후변화, 오염, 외래종 유입 등 인간 활동”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은 현재까지 평가된 종의 28%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유전적 다양성과 전문화된 생활양식은 수억 년 진화가 만들어 낸 생명의 전략이다. 인간은 이 전략이 발휘될 공간 자체를 없애고 있다. 멸종을 가속하는 조건을 만든 것도 인간이며, 이를 멈출 책임 역시 인간에게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발과 소비의 욕망을 줄이는 일, 그리고 서식지 복원과 생태계 연결성 회복이다. 그 선택을 미룬다면, 진화가 쌓아온 생명의 다양성은 인간 손에 의해 스스로 지워질 것이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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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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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 다양성과 전문화된 생활양식은 진화가 쌓아 온 생물의 생존 전략인데...그걸 인간이 무너뜨리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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