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시민회의’의 과제 | 일회성 공론장을 상설적 숙의 인프라로
- Dhandhan Kim
-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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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5 김복연 기자
기후위기가 사회 전환의 문제로 확장되면서,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장의 품질과 지속성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AI 기반 기후시민의회는 일회성 행사로 그쳤던 기존 시민회의의 한계를 넘어, 숙의의 전 과정을 데이터로 구조화·분석·축적하는 시스템으로 제안된다. NLP·LLM 기술을 활용해 시민 발언을 주제별로 분류·요약하고, 공론의 흐름과 합의 수준을 시각화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과 행정 연계성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기후위기가 장기전이라면 시민 숙의도 장기전이어야 하며, AI는 시민이 만든 공론을 잃지 않게 하는 민주적 인프라로 작동해야 한다.

기후위기가 ‘정책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환의 문제’로 옮겨가면서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장의 품질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시도된 기후시민의회(Climate Citizens’ Assembly·CCA)는 대체로 한시적 프로젝트에 머물렀고, 토론의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축적·관리되는지에 대한 체계도 약했다. 이번에 제안된 ‘AI 기반 기후시민의회 도입 기획안’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공론장을 한 번 열었다 닫는 방식이 아니라, AI와 자연어처리(NLP),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활용해 시민 숙의를 장기·지속적으로 운영하는 플랫폼으로 만들자는 구상이다.
시민의회의 기본 프레임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기후위기 대응은 세금과 토지 이용, 산업구조, 생활 방식까지 건드리는 ‘구조적 변화’를 요구한다. 이런 변화는 국회나 정부의 공식 의사결정만으로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중앙정부의 정책이 지방에서 이행되는 과정에서는 더 큰 저항이 생긴다. 그래서 “정책 실행력과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상설 시민 숙의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민의회는 두 가지 개념을 포괄한다. 하나는 ‘시민성’이다. 무작위 추출이나 대표성 있는 구성으로 시민을 불러내어 특정 현안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숙의’다. 단순 찬반 토론이 아니라 정보 제공–토론–의견 수렴–합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설계해 공론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야 시민의회가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게 기본 프레임이다.
경기도시민총회는 '공론조사'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공론조사는 조사에 참여하는 일반 국민이 중요한 정책 사안에 관하여 전문가가 제공하는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학습과 토론의 과정을 거친 후, 설문에 응답하는 조사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존 사례의 한계를 명확히
국내외 여러 기후시민의회·숙의형 공론장은 사례가 존재하며 공통된 약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일회적이고 행사성 운영이었다 점이다. 특정 의제, 예를 들어 탄소중립 로드맵이나 도시 교통정책 등의 논의를 위해 그때그때 조직되고 제안서가 만들어지면 끝나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논의가 다음 정책 주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참여했던 시민도 정책 참여에 대한 만족도 평가에 부정적이 된다.
두번째는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어떤 발언이 어떤 이유로 최종 권고안에 반영됐는지 궤적이 보이지 않고 숙의의 과정에 의문이 남는다. 결국 “사전에 정해진 결론을 시민참여는 포장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불신이 남았다.
세번째는 정책연계의 단절이다. 좋은 권고안을 내도 행정·입법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권고안의 이행을 추적하고 피드백을 다시 공론장으로 돌려보내는 체계가 처음부터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해소하지 않으면 시민회의는 민주적 장식물로 남을 수밖에 없다.

AI는 시민이 만든 ‘공론’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는 데 기여
숙의 과정과 AI가 ‘결합’해야 한다. 대량의 시민 발화를 구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숙의가 잘되면 잘될수록 텍스트는 기하급수로 쌓인다. 패널 토론, 소그룹 토의, 온라인 게시판에서 나온 수많은 정보가 뒤섞이면, 사람 손으로는 그 맥락을 재구성하기 어렵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인 NLP·LLM을 써서 발언을 주제별로 클러스터링하고, 주요 쟁점과 의견 스펙트럼을 자동 요약하면, ‘지금 이 공론장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실시간으로 시민들이 확인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연속 세션 간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공론의 회차가 이어질 때 어떤 논점은 어떻게 합의로 수렴되고, 어떤 쟁점은 여전히 갈등 구조에 머물러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 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새롭게 참여하는 시민도 이전 논의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행정도 “이 정도 합의가 공론장에서 형성됐다”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AI는 ‘시민 대신 판단하는 기술’이 아니라 ‘시민이 만든 공론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주는 기술’로 위치 지어진다.
기후정책을 위한 장기적·지속적 숙의 인프라가 되어야
시민회의의 목표는 “기후 정책을 위한 장기적·지속적 숙의 인프라 구축”이다. 일회성 포럼이 아니라 행정 옆에 붙어 1년 내내 돌아가는 상설 시민의회가 되려면 최소한 네 개의 모듈을 포함해야 한다.
참여 모듈은 무작위추출·열린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을 불러오는 장치다. 숙의 모듈은 자료 제공–전문가 설명–시민 토론을 단계별로 진행하는 절차다. AI 분석 모듈은 발언 텍스트 수집 → 주제 분류 → 쟁점 도출 → 세션 간 비교를 자동화하는 장치다. 피드백·공개 모듈은 분석 결과와 권고안, 그리고 행정의 수용 여부를 시민에게 투명하게 개방하는 절차다.
이 네 모듈이 돌아가면 행정은 “이번 달 시민의회에서 어떤 쟁점이 올라왔는지”, “어떤 제안이 정책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즉시 확인할 수 있고, 시민은 “내가 한 발언이 어디에 담겼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당성”이며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기술 아키텍처와 조건
AI 기반 시민회의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갖춰야 할 기술 조건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국내 기후·환경 전문 언어 자원과 LLM의 결합이 필요하다. 일반 대화형 LLM만으로는 기후·에너지·토지·산림 같은 세부 정책어를 정확히 다루기 어렵다. 따라서 관련 보고서·법령·정부계획을 말뭉치로 삼아 ‘전문 숙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두번째는 세션 단위의 데이터 파이프 라인을 갖춰야 한다. 오프라인 회의, 줌(Zoom) 회의, 온라인 게시판 등 입력 경로가 달라도 하나의 데이터 레이어로 들어오도록 표준화해야 한다. 그래야 세션 간 비교가 가능하다.
세번째는 시각화 UI다. 시민과 공무원이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의견 클러스터를 그래프나 타임 라인으로 보여 주는 인터페이스가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 편의가 아니라 ‘공론장의 변화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민주적 장치다.
마직막으로 행정 연계성이다. 권고안이 행정시스템으로 바로 넘어가 이행 여부가 찍히도록 연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좋은 말 모음집’에 그칠 수 있다. 이 네 가지가 충족돼야 AI 기반 시민의회답고 정책적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기후위기가 장기전이라면 시민 숙의도 장기전이어야
AI시민회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공론화 과정의 신뢰 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 토론 내용을 구조화·공개함으로써 “어떤 발언이 무시됐다”는 불화를 사전에 없애 주어야 한다. 정책 전환의 속도도 앞당길 수 있다. 공론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민의 학습 효과가 생기고, 핵심 쟁점만 남게 되는 시스템이므로 행정이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의 저변 확대다. 기존처럼 현장에 나와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흐름을 확인하고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참여 가능 인구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기후시민회의 근본적 한계는 AI 기술로 해소가 가능하다. 적극적으로 시스템에 반영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동안 시민참여가 ‘형식적’으로 보였던 이유는 과정이 기록되지 않고, 결과가 정책으로 환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I기술 발전은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도구다. 기후위기가 장기전이라면 시민숙의도 장기전이어야 한다. 시민 공론의 과정과 결과를 축적하고 비교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을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것이 AI기반 기후시민회의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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