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북ㅣ기후변화가 매월 보내는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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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5일
- 3분 분량
2025-08-15 박옥균 객원기자
물가처럼 기후변화를 정량화해 체감할 필요가 있다. 『1도의 가격』은 기후변화를 일상에서 정량화한다. 책은 계량경제학자의 시선으로 기후변화의 숨겨진 비용에 주목한다. 폭염이 학업 성취도나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고, 강력범죄율을 높이는 등 일상에 미치는 미묘한 영향을 데이터로 증명한다. 에어컨 구매력에 따른 건강 격차, 기후 이주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영향도 조명한다.

박옥균 리더스가이드 대표
독자의 길라잡이라는 뜻의 리더스가이드를 운영하며, 이곳에서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에서 ‘과학’과 ‘교육’을 공부했다. 중학교에서 3년 동안 과학을 가르쳤고, PC 통신 ‘하이텔’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2002년부터 ‘리더스가이드’를 창립해 도서 정보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빅데이터 관련 기술을 공부하면서 도서 7만여 종에 대해 빅데이터 작업을 진행했다. 빅데이터 관련 특허 두 건(‘도서 관리 시스템 및 도서 관리 방법’, ‘집단 지능을 이용한 상품 검증 방법’)을 등록했고, 데이터 교육과 관련한 자문과 최신 흐름에 대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전에 쓴 책으로는 『수학은 스토리다』(2023),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데이터 이야기』(2022)가 있다.
블로그 리더스가이드 / 홈페이지 www.readersguide.co.kr / 서점 알지책방
계량경제학자가 본 기후변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가늘게 내리는 가랑비는 처음엔 옷에 약간의 물기만 묻는 듯하여 털어버리면 될 듯하지만, 어느새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흠뻑 적신다. 소나기라면 비를 피하거나 막을 것을 찾았겠지만, 가랑비라고 무시했다가 소나기를 맞듯 옷을 다 적시게 된다.
기후변화도 이와 같다. 기후로 인한 재난을 대형 산불이나 홍수 등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상에 스며든 기후변화는 충분히 ‘재난’스럽다. 기후변화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일수록 기후변화를 막을 시스템의 보호막이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은 다른 사람이나 생물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 순위에서도 기후변화는 뒷전으로 밀린다. 딱히 해결할 방법도 없는 ‘인플레이션 문제’는 매일 걱정하면서도, 기후변화에는 무관심한 것이다. 전 지구적 재앙이 닥치는지 아닌지 알려 주는 선명한 붉은 선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치명적이지 않은 온난화가 초래할 일상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위험이 있다. 또한, 화염에만 집착하느라 연기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도 있다.

따라서 물가처럼 기후변화를 정량화하여 체감할 필요가 있다. 『1도의 가격』은 다른 기후 관련 책과는 달리 기후변화를 일상에서 정량화하려는 책이다. 와튼스쿨 박지성 교수는 계량경제학자의 시선으로 기후변화의 숨겨진 비용에 주목한다. 폭염이 학업 성취도나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고, 강력범죄율을 높이는 등 일상에 미치는 미묘하지만 거대한 영향을 데이터로 증명한다. 에어컨 구매력에 따른 건강 격차, 기후 이주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복합적 영향도 다각도로 조명한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숨겨진 비용
더워질수록 공부 집중력이 떨어지고 일의 능률도 저하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에서는 냉방 시설을 갖추지 못한 집에서 사는 가난한 학생들이 더위로 인해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비율이 심하다. 대부분의 저학력 노동자들은 야외 등 노출된 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더 더위에 민감하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저소득 가구는 기온이 아주 높거나 낮은 상황에서도 냉난방 기구 사용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매우 가난하다면 냉난방을 위해 식료품 비용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 최고 기온이 35도인 날이 일주일 계속되면 전기료가 월 8~10% 증가하고, 빈곤 가구는 요금 체납으로 전기가 끊길 가능성이 5~10% 높아진다.
기후 이주와 주택 가격 상승
최근 많은 나라에서 이주민을 막으려는 정당이 힘을 얻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주민이 들어오면 양질의 일자리 대신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이주를 유발한다. 농업에 종사했던 빈곤층은 기후변화로 농사짓기가 어려워지면서 해외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동기가 강해진다.
기온이 2도 올라갈 경우 옥수수, 쌀, 콩, 밀과 같은 주요 식량용 곡물의 수확량은 평균 20%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식료품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덜 받는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주택 가격이 폭등하고 도시 생활 물가도 오르게 된다. 반면, 홍수나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서는 주택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
범죄율 증가와 사회적 비용 증대
기온 상승이 강력범죄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증거도 점점 늘고 있다. 강력 범죄를 0.3% 정도 줄이기 위해서는 경찰력 규모를 1% 늘려야 한다고 분석될 만큼, 기온 상승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덥다고 해서 감옥에 간 전직 대통령을 위해 교도소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도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다.
최근 기사에서 무등산 지역이 고온과 급격한 기후 변동으로 수박 농사를 포기하는 현실을 다룬 적이 있다. 이는 곧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산청 지역에 난 불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반복될 위험성도 한 원인이 되어 새로 집을 짓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례는 기후변화가 삶의 터전을 앗아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인지 부조화와 기후변화의 가격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변화는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럼에도 당장 기후변화가 체감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지성 교수는 이를 두고 ‘빠르게 생각하기(직관)’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지하철에서 총기사고가 보도되면, 실제로는 자동차가 훨씬 위험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고 출근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느리게 생각하기(이성적 사고)’ 시스템은 통계적 사고가 필요해 잘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결국, 우리의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인지 부조화’가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기후변화의 가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무엇 때문에 지불하는지 모르고 있는 듯하다.







기후변화의 숨겨진 비용을 계량화하고 그 의미를 설명해주는 일은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