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북ㅣ한국에도 기후 난민이 있다
- hpiri2
- 1일 전
- 4분 분량
2025-05-23 박옥균 객원기자
산불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가 없다. 기후변화로 산불이 급증하고 있다. 2020년대는 1980년대보다 산불 발생이 두 배가 늘었다. 올해 벌어진 경북의 산불 피해 주민은 '기후 난민'이로 불러야 할 것이다.

박옥균 리더스가이드 대표
독자의 길라잡이라는 뜻의 리더스가이드를 운영하며, 이곳에서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에서 ‘과학’과 ‘교육’을 공부했다. 중학교에서 3년 동안 과학을 가르쳤고, PC 통신 ‘하이텔’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2002년부터 ‘리더스가이드’를 창립해 도서 정보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빅데이터 관련 기술을 공부하면서 도서 7만여 종에 대해 빅데이터 작업을 진행했다. 빅데이터 관련 특허 두 건(‘도서 관리 시스템 및 도서 관리 방법’, ‘집단 지능을 이용한 상품 검증 방법’)을 등록했고, 데이터 교육과 관련한 자문과 최신 흐름에 대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전에 쓴 책으로는 『수학은 스토리다』(2023),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데이터 이야기』(2022)가 있다.
블로그 리더스가이드 / 홈페이지 www.readersguide.co.kr / 서점 알지책방
불이 났을 때, 강 건너에 있으면 안전할까?
세상에 제일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두고 불구경, 싸움 구경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구경이 재미있으려면 싸움이나 불에서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그래서인지 이 구경들이 재미있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과거의 싸움은 두 사람 혹은 관련된 사람들끼리만 싸웠다. 굳이 제3자에게 넓혀지는 경우는 오지랖을 내세우며 싸움을 말릴 때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묻지마 폭력의 등장으로 구경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불구경은 어떨까? 네로처럼 폭군이 아닌 다음에야 불구경을 재미있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불이 난 곳에서 거리가 있거나 강을 사이에 둔다면 구경하고 싶기는 할 것이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속담이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보면 ‘다행히 나는 안전하다’는 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과연 불이 났을 때 강 건너에 있으면 안전할까? 2016년 캐나다의 포트맥머리에는 1㎞가 넘는 호수를 넘어서 불씨가 날아가 불이 난 일이 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불똥이 상승 기류를 만나면 2㎞ 정도는 쉽게 날아간다. 강 건너면 안전하다는 믿음은 숲이 아니라 집에서 난 불이나 모닥불만 봐서 생각되는 오류일 수 있다. 포트맥머리는 추운 기후인 한대에 가까운 아한대 기후에 해당한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야 할 5월 초인데도 도시가 불타고 100억 불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며 1년 4개월 동안 불탔다. 이 기간에 실제 과정을 취재한 존 베일런트는 『파이어 웨더』(곰출판)를 통해 기후변화 시대에 불의 위협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책은 포트맥머리 화재의 발생 원인, 진행 양상, 그리고 석유 산업과 얽힌 역사를 분석하며, 온실가스 배출과 건조화 현상이 대형 화재를 부추기는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보통 사람들은 비화(飛火)를 볼 수 없다
포트맥머리 불은 자연 발화했다. 우리말로 임야화재로 번역되는 ‘wildfire’는 사람들이 실수로 낸 경우도 있지만 자연에서 불이 나기도 한다. 특히 온도가 높고 건조한 기후라면 가능하다. 습도가 낮으면 더욱 가능하다. 습도가 낮을수록 가연성 물질(예: 나무, 종이, 낙엽)의 수분 함량이 줄어든다. 마찰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예: 마른 낙엽, 나무 사이)에서 마찰열이 발생하면 자연 발화가 일어날 수 있다. 2025년 현재 한국에서도 건조한 날씨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이 중 자연 발화로 인한 산불도 보고되고 있다. 이렇게 발생한 불은 발화점에서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훈소(薰燒), 불이 침엽수림의 나무꼭대기를 타고 올라가는 ‘수관 화재’, 그리고 높은 나무에 있던 불씨가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 먼 지역 나무까지 태우는 ‘비화’(飛火)로까지 확대된다.
보통 사람들은 비화(飛火)를 볼 수 없다. 만약에 봤다면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니 빨리 그 장소를 피해야 한다. 소방관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산불은 모닥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곳에서만 타고, 통처럼 주위에 번지지 않게 하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큰불이 나면 나무가 폭탄처럼 터져 불길이 솟아오르거나 날아갈 수 있다. 불이 붙으면 산소를 위와 아래에서 모두 빨아들이므로 열기가 또 다른 바람이 된다. 바람은 불을 자유롭게 만들고 더 큰 힘을 불어넣는다. 보통 밤이 되면 공기가 차가워지고 가라앉기 때문에 불기운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뜨겁고 매우 건조한 상태에서 난 불은 밤에도 기운을 잃지 않고 더 잘 타기도 한다. 바람을 타고 밤에도 수십 킬로미터까지 확산하기도 한다.
1980년대 238건, 2020년대 580건
해가 갈수록 대형 산불의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1980년대 연평균 238건이었던 산불이 2020년대 들어 연평균 580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횟수는 두 배에 가깝지만 불에 타는 면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불끄기가 잘 되기를 바라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에서 온다는 것을 잘 모른다.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태평양 열대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한반도에 봄인데도 높은 기온이 나타난다. 또 겨울에 충분한 눈이 오지 않아 땅과 숲은 매우 건조한 상태가 된다. 이 상황에서 불이 발생한다면 몇 시간 만에 대형 산불이 된다. 대형 산불이 된다면 도시의 소방대가 모두 출동해도 비가 오거나 바람이 줄어드는 ‘변화’가 없다면 불이 번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올해 경북 산불 피해자들은 '기후 난민'
2025년 경북 산불로 4200채의 주택이 불에 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졸지에 집을 잃은 사람들이 되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피난민’이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기후 재난으로 인한 ‘기후 난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불은 더는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재난의 ‘칼’이 될 수도 있다. 혹자는 불로 인한 기후 재난의 시대를 두고 ‘불의 시대’라고 표현하자고 한다. 포트맥머리 화재에는 불에 잘 타는 숲만큼 주택도 불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주로 목재로 지어진 집이기도 하거니와 온갖 석유제품들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특히 석유가 나는 도시였기에 정유시설은 불길을 더 키웠다.
어쩌면 일상이 되어버릴 수 있는 ‘기후 난민’의 시대에 우리는 작은 것부터 대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경북지역은 강원도보다 대형 산불이 많이 날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경상북도 지역이다. 소나무는 침엽수라 불에 잘 타고 기름에 가까운 송진으로 불길을 더 키운다. 침엽수는 낙엽이 땅을 덮지 못해 물이 빨리 증발해서 땅이 건조하다. 그래서 활엽수를 심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2022년 울진 산불로 20년 키운 소나무들이 모조리 타 죽었지만 활엽수는 거센 불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례도 있다. 산의 나무를 불에 잘 안타는 활엽수로 바꾸고, 산 주변 주택에 방화시설을 갖추는 것이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모색도 필요하다. 포트맥머리의 일부 업체들이 석유 정제 사업을 포기한 사례는 큰 피해로부터 얻은 교훈을 보여 준다. 석유, 석탄, 가스를 “더는 태울 수 없는 자원”으로 만드는 조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제대로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와 북미 석유산업의 얽히고설킨 역사를 소개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한다. 저자는 인류가 만든 연소 에너지(석유)가 역설적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안일한 대처를 비판한다. 더 나아가, 현대의 화재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며, 인류는 스스로 만든 '불'을 다루는 대신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할 때임을 강조한다.
더는 강 건너 불구경한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일이다.
Комментари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