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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발제 | 신하림 | 저자 |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

최종 수정일: 2시간 전

2025-06-25 김성희 기자

대형 산불은 이재민들의 삶과 공동체, 기억까지 지워 버리는 복합 재난이다. 산불 피해 이후 이재민들은 경제적·심리적·사회적 회복에 어려움을 겪지만,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한계가 많고 장기적 대안은 부족하다. 산불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재민의 일상 회복을 돕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들의 이야기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의 저자 신하림. 사진 플래닛03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의 저자 신하림. 사진 플래닛03

작은 불씨가 바꿔 놓은 마을의 역사


1989년 3월 19일,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마을 뒷산에서 번진 불길을 끄기 위해 산에 오른 여섯 명의 청년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의 화재는 마을 주민이 영농 부산물을 태우다 남긴 불씨에서 시작됐고, 그 불씨는 곧바로 숲을 삼키며 치명적인 비극을 불러왔다. 그날 이후, 모곡리는 매년 같은 날 합동 위령제를 올린다. 유일한 생존자는 이제 팔순을 넘긴 노인이 되었고, 당시 숨진 서른 살 청년의 열 개월 된 딸은 어느덧 서른일곱의 나이가 되어, 아버지의 묘 앞에 술을 올린다. “그때도 마을 사람이 태운 불씨가 원인이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그런 이유로 산불이 난다고 하니, 참 허망하죠.”라는 그녀의 말은 반복되는 재난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한다.

올해 3월 19일에 열린 홍천군 서면 모곡1리 산불 희생자 위령제에서 희생자의 딸이 술잔을 올리고 있다. 사진 신하림
올해 3월 19일에 열린 홍천군 서면 모곡1리 산불 희생자 위령제에서 희생자의 딸이 술잔을 올리고 있다. 사진 신하림

2019년 고성 산불 직후 방문한 토성면 인흥리의 한 오리고깃집은 실내까지 잿더미로 가득했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4년 뒤인 2023년 가을, 같은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도 죽은 소나무들이 여전히 사방에 널려 있었다. 사유림 소유주들은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정 증거로 나무들은 지금까지도 방치된 채 남아 있다. 이는 단순한 풍경의 변화가 아니라, 산불이 남긴 상처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강원도 산불은 단지 자연재해가 아니다. 최근 30년간 강원 지역에서만 30건 넘는 대형 산불이 반복됐고, 대부분의 원인은 실화나 인위적 요인, 즉 인간의 부주의였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작은 불씨가 남긴 고통은 결코 작지 않았다. 반복되는 재난 앞에서 우리는 이재민의 회복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재난 뒤에 남은 건, 빚뿐이었다

경포 산불로 피해를 입기 전,  강릉 난곡동에 위치한 럭셔리 풀빌라의 모습. 사진 신하림
경포 산불로 피해를 입기 전, 강릉 난곡동에 위치한 럭셔리 풀빌라의 모습. 사진 신하림

2023년 봄, 강릉 경포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주택과 펜션, 사업장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7~8개월이 지나고 다시 찾은 현장은 여전히 폐허였다. 이재민들은 하나같이 “우린 땅 망가진 거지가 될 것 같아요.”라는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아무 잘못 없이 산불을 겪은 사람들이 자신을 ‘거지’라고 말한다면,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는 진지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


산불로 인해 전소된 럭셔리 풀빌라의 피해 현장. 기존에 10억원 대출금을 갖고 있던 50대 이재민은 영업 재개를 위해 추가로 15억원을 대출받았다. 국민 성금과 재난지원금은 1억 6,000만원 정도였다. 10대 시절부터 경포 일대에서 김치 장사 등을 하며 세운 재산을 하루아침에 산불로 잃어버렸다. 사진 신하림
산불로 인해 전소된 럭셔리 풀빌라의 피해 현장. 기존에 10억원 대출금을 갖고 있던 50대 이재민은 영업 재개를 위해 추가로 15억원을 대출받았다. 국민 성금과 재난지원금은 1억 6,000만원 정도였다. 10대 시절부터 경포 일대에서 김치 장사 등을 하며 세운 재산을 하루아침에 산불로 잃어버렸다. 사진 신하림

산불의 피해를 입은 117세대 중 실제로 복구를 마친 경우는 지금까지 53%, 62세대에 불과하다. 여전히 절반의 세대는 임시 조립주택에 머물고 있으며, 이제는 임시 조립 주택을 나와야 하지만, 자부담 없이 새로 집을 짓는 일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건물 피해가 수억 원에 달해도 지원금은 최대 1억6천만 원 선에 그쳤다. 정부의 직접 지원금은 4천만 원 안팎이고, 나머지는 국민성금으로 마련되는 구조다. 재난별 지원액 편차를 크게 두기 어렵다는 이유로 획일화된 지원 정책이 유지되면서, 지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결국 대부분은 대출을 받아야 했고, 이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문제는 복구를 위해 진 빚을 상환할 여력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자잿값의 상승과 금리의 인상으로 상환의 부담을 커졌고,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낼 수밖에 없다”라는 이재민들의 호소는, 산불 복구의 현실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 준다. 2019년 산불 당시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받았던 소상공인 207명은 5년 거치가 끝나면서 상환 시점이 도래했지만 실제 상환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전체의 16%에 불과했다. 결국 중기부는 서류가 정비된 65%에 대해 상환 기간을 10년으로 유예했다. 산불은 단순한 화재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들에게 ‘사유 재산 복구’는 또 다른 재난이 될 수 있다.


다시는 송이를 캘 수 없게 된 사람들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 산불 발생 후 하얗게 전소된 나무의 모습. 사진 신하림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 산불 발생 후 하얗게 전소된 나무의 모습. 사진 신하림

2019년과 2022년, 두 차례 대형 산불의 시작점이었던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의 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 이장은 조용히 불에 탄 뒷산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불에 타버린 소나무와 엄나무, 밤나무, 감나무들이 밑동만 남아 있었고, 어린 묘목 몇 그루가 간신히 심겨 있었다.  농가 수입은 도시 근로자의 월급의 한두 달 치에 불과하다. 봄의 개두릅, 가을의 송이처럼 계절을 타는 임산물이 생계의 수단이지만, 산이 불타고, 나무가 죽으면서 계절의 수입이 사라졌다. 한 달 30만원 남짓한 공공근로사업이 주어졌지만, 이들은 살아생전에 다시는 송이를 캘 일은 없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산림청은 울진 산불을 계기로 송이를 대체할 작물 재배를 지원하는 사업을 내놓았고, 강원 삼척시 사곡리의 주민 6명은 각자 받은 지원금 3억 원을 마을 재산으로 모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1에 7만원을 호가하는 꽃송이 버섯을 재배하는 스마트 팜을 세웠지만 유통과 마케팅 실패로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작물을 해야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은 옳았지만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었으며, 결국 시설은 지금도 텅 비어 있다.


숲은 나무만 있는 공간이 아니며, 농민들의 삶터이자 생계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있었어도 이후를 책임질 사후 관리는 없었다. 복구는 복구되지 않았고, 주민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분야에 던져진 채 또 한 번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숲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자연의 손실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생존 방식을 잃는 일이기도 하다.


재난보다 더 깊은 상처, 갈라진 공동체


2019년 고성·속초 산불 이후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같은 피해를 입고도 갈라진 이재민들의 공동체였다. 고성 산불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특고압 전선에서 불꽃이 튀는 장면이 남아, 피해 보상 주체가 한국전력공사로 분명했다. 한전은 곧바로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 협의에 나섰고, 손해 사정액의 60%를 기준으로 피해자들과 협상을 시작했다.


고성 지역의 다수 이재민들(약 900명)은 빠르게 합의했지만, 속초 지역 일부 이재민(약 100명)은 100% 보상을 주장하며 민사 소송에 돌입했다. 그 순간부터, 누군가는 합의한 사람을 “한전 앞잡이”라고 불렀고, 소송을 택한 이들을 “마을을 분열시키는 자”라는 비난이 오갔고, 고소와 고발로 이어진 갈등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정부의 구상권 소송 방침에 반발하며 고성 산불 이재민들이 강원도청 앞에서 벌인 트랙터 시위 현장. 사진 신하림
정부의 구상권 소송 방침에 반발하며 고성 산불 이재민들이 강원도청 앞에서 벌인 트랙터 시위 현장. 사진 신하림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의 원인 제공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고성 산불은 그 첫 사례가 되었다. 구상권 소송은 최소 수 년이 걸리고, 마무리가 되어야 최종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재민들과 한전은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보상 문제의 1심 결과는 사건 발생 4년 뒤인 2023년에야 나왔다.


피해 조사 과정에서도 갈등은 반복되었다. 전파, 반파, 소파라는 지원금 기준은 파벌처럼 작동했고, 판정 기준이 모호한 경우도 많았다. 단열재가 녹고 내부 전소로 철거된 집이 소파로 분류되거나, 반파가 전파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판정이 번복되면 기준이 흔들리기 때문에 이의 신청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도심형 산불이 증가하고, 콘크리트 건물 피해가 잦아지는 현재, 피해 분류 기준의 유효를 되물어야 한다.


나무가 사라진 자리, 불안으로 잠 못 드는 밤


고성 산불 이후, 사방 사업을 마친 고성군 토성면의 이재민 사업장은 2023년 8월 극한 호우로 인해 다시 붕괴되었다. 사진 신하림
고성 산불 이후, 사방 사업을 마친 고성군 토성면의 이재민 사업장은 2023년 8월 극한 호우로 인해 다시 붕괴되었다. 사진 신하림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잿더미만이 아니다. 마을 뒷산의 사라진 나무들을 마주한 이재민들은 비가 오기만 하면 산사태에 대한 불안으로 잠을 설친다. 나무가 없는 산은 흙을 잡지 못하고 여름 장마와 극한 호우가 이어지는 요즘 기후에서는 사방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주민들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하지만 복구공사는 그해 겨울쯤에 마무리된다. 게다가 모든 피해 지역이 사방사업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복구가 이뤄지지 못한 곳에서는 공포는 일상이 된다.


삼척시 고포마을의 70대 이장은 산불로 주택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뒷산을 바라보며 산사태와 눈사태에 대한 불안으로 스트레스를 겪었고 결국 암이 재발했다. 태풍 ‘힌남노’가 상륙했던 2022년 여름에는 파출소에 순찰을 요청할 정도로 불안에 떨었다.


2023년 8월, 고성 토성면 인흥리에서는 사방공사를 완료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극한 호우가 쏟아진 날, 대나무 숲이 뿌리를 붙잡지 못한 채 산사태가 발생했다. 순식간에 쏟아져 내린 흙더미는 식당 바로 앞까지 밀려들었고, 수억 원의 빚을 내어 겨우 식당을 복구하고 영업을 재개한 주인은 또다시 토사를 치우는 밤을 보내야 했다. “산불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의 말처럼, 산불은 한 번의 화재가 아니라 이어지는 재난의 서막이었다.


이재민이 바라는 건 보상보다 ‘회복’


산불 이후의 삶은 단지 “복구”의 문제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상실과 다시 일어나야 하는 생존의 간극에서 매일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수억 원의 사유 재산 피해를 입고, 정부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하며, 남는 것은 결국 빚뿐인 현실 속에서 이재민들이 말하는 건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이재민들이 집을 다시 짓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수단은 농촌주택개량사업을 통한 저리 대출 정도였다. 강원도가 일부 한도와 이자율을 조정했지만, 전 재산을 잃은 이들에게 그것조차 결국은 ‘빚’일 뿐이었다. 산불 피해에 특화된 전담 지원 체계가 부재한 현실은 이재민들에게 깊은 절망과 함께, 오랫동안 분노와 억울함으로 남았다. 그렇기에 경제적 회복을 위한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두 번째는 심리 회복을 포함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많은 이재민들은 가장 큰 상실로 ‘사진첩’을 꼽는다. 회복은 경제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마음의 회복이 함께 따라야만 진짜 복구가 시작된다. 성청리에서 열린 웃음치료현장에서 만난 이재민은 “수억 원의 빚을 지고도 웃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말했지만, 산불 이야기에 곧바로 얼굴이 굳었다.


또 다른 이재민은 회복 캠프에 다녀온 뒤, 정말 좋았다고 말한다.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알아 주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험,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그에겐 회복이었을 것이다. 재난 속에서도 다시 함께 웃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일이 공동체 회복의 시작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희생이 잊히지 않는 것이다. 2023년 강원 토성면 인흥리에서 열린 ‘세계산림엑스포’에서 산불재난의 아픔을 기억하는 공간은 작은 전시장 하나뿐이었고, 이재민들은 행사에 초청조차 받지 못했다. 우리는 이들을 단지 불운한 사람들로 남게 할 것인가, 아니면 재난을 통해 더 안전한 사회를 설계할 것인가. 그 질문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이다.


‘일상 회복’을 통해 예방으로 가는 길


이재민의 ‘일상 복구’를 돕는 것이 가장 확실한 산불 예방책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무심코 낸 작은 불씨 하나가 한 사람의 삶, 한 마을, 한 숲을 얼마나 무너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회복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지를 아는 것. 그 인식이야말로, 불씨를 조심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다.


물론 정부와 지자체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재민의 회복 과정을 꼼꼼히 살피고, 그 내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유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모두가 어려운 시대에 이재민들의 이야기는 때로 불편한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함에 관심을 갖는 일이 재난 속 약자에게 다가가는 첫 걸음이며, 우리가 이 재난을 더 정확히 이해하고 극복의 실마리를 찾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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