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부 시대 ⑧ㅣ발권이득(시뇨리지)의 주인은 누구인가…무부채화폐가 여는 공유부의 전망
- 2월 27일
- 6분 분량
2026-02-27 금민, 유승경
현대 화폐는 부채를 동반하는 체제지만, 국가의 법적 권능으로 무부채 화폐 발행이 가능하다. 화폐 창조 이득인 시뇨리지는 민간 은행의 이윤이 아닌 공유부로서 공동체에 배당되어야 한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게오르그아우구스트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운영위원장,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를 역임했고, 현재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다. 최근 디지털 자본주의, 에너지 전환, 기본소득, 공유부 기금 등이 관심사이며,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기본소득의의 의의를 끌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Financing Basic Income-An Exploratory Study of the Korean Case(공저, 2022), 『모두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다』(공저, 2021),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공저, 2021),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 쉽게 읽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본소득』(공저,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2020), 『진짜 민주주의』(2012), 『사회적 공화주의』(2007) 등이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 대안을 묻다 [유튜브]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화폐 및 금융 관련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MMT 논쟁』(2021), 번역한 책으로는 『주권화폐–준비금 은행제도를 넘어서』(2023), 『기본소득과 주권화폐–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2021), 『경제 위기는 반드시 온다–금융 위기 200년사를 통한 경제 위기 예측과 대처법』(2020),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2020), 『우주의 거장들–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2019), 『세계화의 종말–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2012_)이 있다. 연구보고서는 『탄소세 도입 정책동향과 경기도 시사점』(책임연구)이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화폐는 ‘부채 기반 화폐’다. 부채 기반 화폐란 화폐가 새로 공급되는 순간 그에 대응하는 채무가 동시에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창조되는 화폐다. 누군가에게 지급수단이 자산으로 늘어나는 만큼, 시스템의 다른 위치에는 대응하는 부채가 함께 늘고, 그 부채의 상환·소멸은 화폐의 회수·소멸과 연결된다. 이 정의는 단지 “화폐는 신용이다”라는 관념적 진술이 아니다. 현대 통화제도의 구체적 작동원리를 가리킨다.
‘정상적 작동’이 부채를 전제하는 체제
현대 경제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크게 본원통화와 예금화폐로 나뉜다. 본원통화는 현금과 은행의 중앙은행 예치금 등으로 구성되고, 예금화폐는 은행 계좌의 예금잔고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문제는 둘 다 공급 경로에서 “화폐가 늘어나는 만큼 대응 부채가 늘어나는” 공통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예금화폐부터 보자. 예금화폐는 상업은행의 대출을 통해 창조된다. 대출이 실행되면 차주의 예금이 늘어난다(차주의 자산 증가). 동시에 차주의 대출채무가 늘어난다(차주의 부채 증가). 이 예금은 계좌이체나 지급을 통해 사회적으로 유통되지만, 상환되기 전까지 경제 전체에는 그 유통 규모만큼의 민간 부채가 ‘깔린다’. 즉 예금화폐의 확대는 민간 부채의 확대와 결합한다.
본원통화는 통상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을 통해 공급된다. 특히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운영이 일반적이어서, 정부의 국채 발행(정부의 부채)과 중앙은행의 통화 발행(본원통화 증가)이 함께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현실의 제도 운영에서는 “본원통화의 증가는 국채 증가를 수반한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요컨대 현대 화폐증가는 예금화폐에서는 민간 부채, 본원통화에서는 공공 부채와 결합하는 성향을 띤다.
여기에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 조건이 맞물린다. 생산이 이윤 추구의 논리로 조직되는 체제에서 거래의 확대와 가치 실현이 지속되려면 유통수단인 화폐가 일정하게(또는 성장률에 맞춰) 증가해야 한다. 화폐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유동성 부족과 이윤 실현 차질이 연쇄적으로 나타나고, 채무불이행·파산·실업 등으로 ‘정상적 작동’이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1) 현대의 제도적 화폐 공급 경로가 부채를 동반하고, (2) 자본주의적 정상 작동이 통화량 증가를 요구한다면, 결론은 간명해진다. 경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민간 및 공공 부채의 수반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것이 화폐의 ‘자연적 본성’일까, 아니면 특정한 ‘제도 선택’의 결과일까?
‘부채 없는 화폐’는 가능한가: 법령화폐의 법적 성격
부채 없는 화폐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금속 주화는 대표적이다. 주화의 발행은 원칙적으로 누군가의 채무 설정을 전제하지 않는다. 주권자가 주조해 유통시키면 된다. 다만 금속 주화는 금·은 생산량과 주조 능력에 의해 물량 제약을 받는다. 산업·거래가 빠르게 확대되는 경제에서 금속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면, 주화만으로 안정적 유통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렇게 바뀐다. “부채 없이, 금속의 양적 제약 없이” 화폐를 공급할 수 있느냐? 이를 위해서는 화폐를 ‘소재’가 아니라 ‘제도’로 재정의해야 한다. 국가화폐론(차털리즘)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하다. 화폐의 결정적 조건은 ‘발행 주체’나 소재 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무엇을 조세 등 공적 납부에서 수납하는가에 있다. 국가가 어떤 증표를 조세 납부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법적으로 채권·채무의 최종 결제수단으로 인정하며, 그 사용을 강제·유도할 수 있다면, 그 증표는 금속이든 종이든 디지털이든 화폐로 기능한다.
이 관점에서 법령화폐(fiat money)는 “금으로 태환되지 않는 화폐”라는 소극적 정의를 넘어선다. 법령화폐란 국가의 법적 권능에 의해 납부·결제에서 통용되도록 구성된 화폐다. 따라서 법령화폐는 금속의 물량 제약에 본질적으로 묶일 이유가 없다. 핵심은 “국가가 수납하고 결제에서 최종성을 부여하는가”라는 제도적 조건이다. 이 조건이 충족된다면, 부채 없는 화폐공급은 원리적으로 가능해진다.
부채 기반 화폐는 ‘필연’이 아니라 ‘은행 교리’다
부채 기반 화폐 옹호론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화폐는 누군가의 부채여야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수납이 화폐의 지위를 규정한다면, 화폐의 신뢰는 ‘상환 약속’ 자체가 아니라 ‘납부·결제에서의 수요’에서 발생한다. 즉 “화폐가 반드시 신용·부채와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는 명제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특정 제도—특히 은행 중심의 신용창조 체제—가 만들어 낸 교리일 수 있다.
여기서 제도 선택의 두 갈래가 선명해진다.
‘부채 기반 경로’로서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은 이를 매입해 본원통화를 공급하며, 민간에서는 은행 대출로 예금화폐가 늘어난다. 통화 팽창은 공공·민간 부채 팽창을 동반한다.
‘무부채 경로’로서 국가는 자산(국채 등)을 매입하는 우회로가 아니라 ‘직접 지출’로 새 화폐를 발행하고, 그 화폐를 조세 납부 및 결제수단으로 받아들인다. 신규 화폐는 ‘대출’이 아니라 ‘지출’로 유통에 들어가므로 부채를 동반하지 않는다.
이때 흔히 제기되는 반론이 있다. “재무부가 지출로 화폐를 공급하면 결국 국가가 빚 없이 돈을 찍는 것 아니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행 제도 안에서도 ‘부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부채가 아닌’ 영역이 이미 존재한다.
재무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메커니즘은, 미국의 대공황기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지적했듯이 국가기관 내부에서 상계처리될 수 있다. 정부의 한 팔이 발행한 채무를 정부의 다른 팔이 보유하는 경우, 통합된 국가(재무부+중앙은행)의 관점에서 그것은 민간에 대한 순채무라기보다 내부 계정의 이동에 가깝다. 바로 이 점이 “이 시스템 안에서도 정부 화폐는 사실상 부채가 아닐 수 있다”는 직관을 제공한다.
그 직관은 제2차 세계대전기 전비 조달에서도 드러난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각국은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했고,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은 사실상 전비 조달과 결합했다. 전쟁 수행은 “먼저 지출하고 나중에 조세로 정리한다”는 국가 재정의 원형을 보여 주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채’라는 형식이 붙어 있어도 국가 내부에서 그 부담이 어떤 방식으로 흡수·재배치될 수 있느냐다. 결국 핵심은 국채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통화공급과 재정지출을 설계하는 제도적 선택이다.
시뇨리지: 사적 이윤이 아니라 공유부여야 한다
시뇨리지는 현대에 들어서 화폐의 명목가치와 발행 비용의 차이를 뜻한다. 문제는 그 이득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다. 현 체제에서 예금화폐의 대다수는 상업은행의 대출로 창조된다. 그 결과 통화 창조에서 발생하는 이익—이자수익의 기반, 결제 인프라 지배, 화폐공급의 분배적 편향—이 민간 금융부문으로 사유화되는 경향을 갖는다.
반면 공공화폐론자들이 제기하는 쟁점은 단순하다. “새 화폐를 만드는 이득(시뇨리지)은 더 이상 민간 은행 이윤으로 귀속돼서는 안 되고, 공적 재정으로 귀속돼야 한다.”
왜 시뇨리지는 공유부인가?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 화폐는 사회 전체의 결제·계산·납부를 가능케 하는 공동 인프라다.
· 그 인프라를 강제·정의하는 권한—조세 수납, 결제의 최종성—은 국가의 공적 권능에서 나온다.
· 그렇다면 화폐 창조에서 발생하는 초과이득은 특정 민간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 질서에 참여하는 공동체 전체의 몫으로 귀속되는 것이 정합적이다.
이 지점에서 ‘공유부의 사용 방식’이 쟁점이 된다. 공유부로서의 시뇨리지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 가장 직관적이면서 규범적으로 강력한 방식은 동등 배당이다. 새로 창조된 화폐를 모든 공동체 성원에게 균등하게 배당하고, 각자가 그것을 지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구상은 공유부의 성격—모두의 몫—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동시에 통화 창조 이득의 사유화를 차단하고, 발권의 정당성을 공동체 전체로 환원한다.
역사적 실마리: 정부화폐는 ‘이미’ 존재해 왔다
‘정부가 지출로써 화폐를 공급한다’는 발상은 공상이 아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주화가 재무부에 의해 발행되고 지출로써 유통에 공급되는 관행이 남아 있다. 현대 주화의 소재가치는 미미하지만, 그 주화는 여전히 결제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는 “부채를 설정하지 않고도” 국가가 지급수단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작지만 분명한 선례다.
또한 전시 재정에서 국가가 직접 법정지폐를 발행하거나,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이 전비 조달과 결합했던 사례는 반복돼 왔다. 물론 전시는 평시 제도의 규범을 그대로 옮기기 어렵다. 그러나 전쟁이 보여주는 것은 “돈이 무엇인가”에 대한 교훈이다.
국가가 생존을 걸고 지출을 조직할 때, 화폐는 금속이 아니라 제도이며, ‘먼저 지출하고’ ‘나중에 정산한다’는 구조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사실은 무부채 법령화폐의 가능성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한다.

결론: 무부채화폐의 시뇨리지는 공유부이며, 배당은 그 직접적 구현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의 부채 기반 화폐체제는 경제 정상 작동을 위해 화폐량 증가를 요구하면서도, 그 증가를 공공·민간 부채 증가로 매개하는 경향을 갖는다. 둘째, 그러나 화폐는 국가가 수납하는 결제수단이라는 점에서 법적·제도적 구성물이며, 법령화폐는 금속의 물량 제약에 본질적으로 묶이지 않는다. 셋째, 따라서 국가는 자산 매입(국채 매입)이라는 우회 경로가 아니라 직접 지출과 수납(조세) 구조를 통해 무부채 법령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 넷째, 이때 새 화폐 창조에서 발생하는 시뇨리지는 공동체의 결제질서와 공적 권능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공유부로 귀속돼야 한다. 다섯째, 공유부의 가장 정합적인 사용은 공동체 성원에게의 동등 배당이며, 이는 통화 창조 이득의 사유화를 차단하고 통화 발행의 정당성을 공동체 전체로 환원한다.
반론에 대한 최소 응답
인플레이션 우려는 정당하지만, 논점은 “무제한 발권”이 아니라 “부채를 동반하지 않는 공급 경로의 가능성”이다. 무부채 발행도 총수요·공급 능력과 물가 안정 목표라는 제약 아래 운영돼야 한다.
정부 남용 우려 역시 중요하다. 다만 현재 체제도 은행의 신용창조라는 형태로 강력한 발권 기능이 민간에 위임돼 있고, 그 결과가 버블·부채 누증·분배편향으로 나타나곤 한다. 문제는 발권권의 존재가 아니라, 누가 어떤 규칙으로, 어떤 귀속 구조로 행사하느냐다.
마지막으로 “배당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 대해, 배당은 공유부의 성격을 투명하게 구현하는 한 방식일 뿐 유일한 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귀속 원칙이다. 시뇨리지가 공유부라면, 그 사용은 세입 편입·부채 상환·사회투자·배당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비교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택하든 출발점은 같다. 화폐 창조 이득은 사적 이윤이 아니라 공동체의 몫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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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누구나 기본소득을 말한다. 그리고 걱정한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공유부(Common Wealth)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출발한 듯하다. 하지만 공유부의 역사는 깊고 넓다. 공유부는 공기와 바다, 토지와 광물이라는 자연 자원을 넘어, 일테면 탄소배출권, 인공지능의 바탕이 된 데이터, 화폐와 금융시스템, 행정·사법·의회제도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적 인프라들로 확장한다. 그야말로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고, 사회적 협력으로 발전시켜 온 문명의 기반이 바로 공유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유부는 누구의 것인가?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필자들은 [공유부 시대] 연재를 통해 불평등과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 언어로서 ‘공유부'의 철학과 역사를 살펴보고 경제학의 언어로, 사회 정의의 언어로 전진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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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과거 기사들 - [기후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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