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부 시대 ①ㅣ왜 ‘공유부’인가 ― 불평등의 시대, 새로운 부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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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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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6일 전
2025-10-31 금민, 유승경
[편집자 주] 누구나 기본소득을 말한다. 그리고 걱정한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공유부(Common Wealth)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출발한 듯하다. 하지만 공유부의 역사는 깊고 넓다. 공유부는 공기와 바다, 토지와 광물이라는 자연 자원을 넘어, 일테면 탄소배출권, 인공지능의 바탕이 된 데이터, 화폐와 금융시스템, 행정·사법·의회제도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적 인프라들로 확장한다. 그야말로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고, 사회적 협력으로 발전시켜 온 문명의 기반이 바로 공유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유부는 누구의 것인가?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필자들은 [공유부 시대] 연재를 통해 불평등과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 언어로서 ‘공유부'의 철학과 역사를 살펴보고 경제학의 언어로, 사회 정의의 언어로 전진시키고자 한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게오르그아우구스트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운영위원장,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를 역임했고, 현재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다. 최근 디지털 자본주의, 에너지 전환, 기본소득, 공유부 기금 등이 관심사이며,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기본소득의의 의의를 끌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Financing Basic Income-An Exploratory Study of the Korean Case(공저, 2022), 『모두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다』(공저, 2021),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공저, 2021),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 쉽게 읽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본소득』(공저,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2020), 『진짜 민주주의』(2012), 『사회적 공화주의』(2007) 등이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 대안을 묻다 [유튜브]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화폐 및 금융 관련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MMT 논쟁』(2021), 번역한 책으로는 『주권화폐–준비금 은행제도를 넘어서』(2023), 『기본소득과 주권화폐–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2021), 『경제 위기는 반드시 온다–금융 위기 200년사를 통한 경제 위기 예측과 대처법』(2020),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2020), 『우주의 거장들–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2019), 『세계화의 종말–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2012_)이 있다. 연구보고서는 『탄소세 도입 정책동향과 경기도 시사점』(책임연구)이 있다.
공유부란 무엇인가
21세기의 가장 거대한 사회적 도전 과제는 불평등 위기와 생태위기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생산하면서도, 그 열매는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있다. 세계 상위 1%가 전체 부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는 통계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러나 이 불평등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탐욕이나 정책 실패로 돌릴 수는 없다.
인류가 협력적으로 형성해 온 ‘공유 기반 부(commons-based wealth)’가 소수에게 독점되면서 공공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와 바다, 토지와 광물, 그리고 오늘날의 데이터와 화폐까지 — 사회 전체가 만들어 낸 자산이 일부 집단의 전유물로 전환되는 이 과정은, 현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불균형의 핵심이다.
‘공유부(common wealth)’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공공재나 복지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다. 공유부는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고, 사회적 협력을 통해 발전시켜 온 문명의 기반이다. 자연이 준 토양과 하늘, 바람과 물, 선대의 지식과 기술, 제도와 인프라, 그리고 사회적 신뢰와 통화 체계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자산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상속받은 부이며, 그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공유부는 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축적한 ‘공유 자본(common capital)’이며,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은 모두의 몫이며 모두에게 배당으로 환류되어야 한다.
지구라는 공유부, 기후위기의 거울
오늘날 지구는 이 공유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기후위기란 단지 탄소 배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구라는 거대한 공유 자산의 파괴이자, ‘공유의 정의’가 무너진 결과다. 산업화 이후 인류는 자연의 자원을 무상으로 사용해 부를 쌓아왔지만, 그 부의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하늘은 배출권으로 거래되고, 숲은 탄소 흡수량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그러나 이런 시장적 교환만으로는 파괴된 생태 균형을 회복할 수 없다. 자연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동으로 소유한 ‘지구적 공유부(common wealth of Earth)’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해결한다는 것은 곧, 자연의 부를 다시 ‘공유의 원리’ 속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 연재가 ‘공유부의 시대’를 말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유부는 단지 환경정책의 범주를 넘어, 경제 시스템 전체를 새롭게 설계하는 사유의 틀이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부의 형성’ 그 자체가 불평등하게 제도화된 결과이므로, 단순한 사후적 재분배 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복지로 불평등을 부분적으로 개선할 수는 있지만, 소유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정의는 회복되지 않는다.
공유부의 역사와 제도 ― 정의를 복원하는 경제학
공유부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이 연재는 세 가지 축을 따라 전개된다.
첫째, 역사적 기반이다. 제2회에서는 토머스 페인의 『토지 정의』를 다루며, 토지를 인류 전체의 유산으로 본 사상적 전환을 짚는다. “모든 사람은 대지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페인의 선언은 오늘날 공유부 논의의 출발점이다. 이어지는 제3회에서는 헨리 조지의 단일세 사상과 현대 기본소득론의 계보를 살핀다. ‘배당’이란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서의 배당, 즉 사회가 함께 만든 부의 몫을 되돌려 받는 정의의 회복임을 밝힌다.
둘째, 경험적 사례이다. 제4회에서는 알래스카 영구기금의 시민배당 제도를 분석한다. 석유 수익을 주 전체 주민에게 나눠 주는 이 제도는, 자연 자원을 공유부로 전환한 실험이다. 이어 제5회에서는 탄소 배당과 생태 전환의 경제학을 다루며, 피터 반즈의 ‘하늘 신탁(Sky Trust)’ 구상과 제임스 한센의 ‘수수료-배당제’처럼, 기후위기 대응이 곧 공유부 정의의 실천임을 보여 준다. 제6회는 이를 한국의 조건에 맞게 확장하여, 해상풍력과 같은 자연력 지분 모델을 통해 바다와 바람을 국민의 배당 자산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셋째, 제도적 확장이다. 제7회에서는 데이터와 디지털 공유부를 다루며, 인공지능 혁명과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공공 자산을 모색한다. 구글, 메타,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들이 축적한 데이터는 사실상 사회 전체가 만들어 낸 정보 자본이므로, 그 수익의 일부는 사회적 환원 구조를 통해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제8회와 제9회에서는 공유부의 범위를 ‘화폐’로 확장한다. 화폐발행이익(시뇨리지)을 사회 전체의 공유부로 보고, 정부가 직접 법정화폐를 발행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이는 단순한 재정정책이 아니라, 경제의 토대를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화폐 민주주의의 실험이다.
제10회와 제11회는 산업정책과 국민공유부기금(Social Wealth Fund)으로 나아간다. 산업정책은 미래 생산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 행위이며, 공공이 감수한 위험에 상응하는 성과는 국민 모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이 원리를 제도화한 것이 바로 국민공유부기금이다. 산업의 성과를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성장과 정의는 비로소 조화를 이룬다.
마지막 제12회에서는 이러한 모든 논의를 통합해 ‘공유부 공화국’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토지와 자연, 화폐와 데이터, 산업 성과를 포괄하는 통합적 국민배당체계, 즉 모두의 부에서 발생한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되돌려 줌으로써 모두의 자유를 실현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모색할 것이다.
근대의 유산, 노동가치의 진보와 한계
공유부 사상의 철학적 토대를 이해하려면, 근대 경제질서의 탄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근대 이전, 토지와 생산수단은 신의 것이자 왕의 것이었다. 인간은 그 앞에서 종속된 존재였다. 그런 질서에 맞서 근대 사상가들이 제시한 것이 노동가치론이었다. 노동은 인간이 자연을 변형시키고 스스로의 삶을 창조하는 행위이며, 바로 그 노동을 통해 인간은 신의 권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노동가치의 강조는 가부장적인 신분제적 소유질서에 대한 근대적 해방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 진보는 동시에 새로운 제약을 낳았다. 노동의 성과가 개인의 소유로 절대화되면서, 사회 전체의 협력과 공공의 기반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장은 사적 소유권을 절대화함으로써 부를 창출했지만, 그 과정에서 부를 가능케 한 공동의 기반 — 자연, 사회적 신뢰, 제도적 인프라 — 를 무상으로 사용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은 이를 ‘외부효과’라 불렀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 문명의 내부적 토대였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와 불평등은, 이 ‘공동의 기반’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다.

모두의 부로써 모두의 자유를
공유부 사상은 근대 경제의 틀을 거꾸로 뒤집는다. 생산의 출발점을 개인의 노동이 아니라 공동의 기반, 즉 사회적·자연적 협력의 총합에서 찾는다. 인간의 창조적 노동도, 자본의 투자도, 제도의 설계도 결국 사회가 이미 제공한 공공의 토대 위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정의로운 분배란, 개인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 낸 몫을 다시 사회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유부 배당은 복지 정책이 아니라 공동의 권리 회복이다. 브렌트 라날리가 『공유부 배당Common Wealth Dividends』에서 강조하듯, “공유부 배당은 복지의 언어가 아니라 정의의 언어”다.
공유부의 철학은 인간의 자유를 새롭게 정의한다. 자유는 더 이상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공동의 자산에 대한 평등한 접근’이다. 토지와 자연, 화폐와 데이터가 특정 세력의 배타적 소유물이 될 때, 개인의 자유는 구조적으로 제약된다. 반대로, 사회가 공동의 부를 모두에게 공정하게 분배할 때, 모든 사람의 기초적 소득이 튼튼해지며 사람들은 생존의 불안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모두의 부로써 모두의 자유를 실현한다”는 문장이 뜻하는 바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공유부’는 단지 하나의 경제 사조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새로운 생존 언어다. 우리가 하늘을 더럽히면 누구의 하늘이 되는가? 바다가 산성화되면 누구의 바다가 남는가? 공기는 국가의 국경으로 나뉘지 않고, 탄소는 자본의 소유권을 가리지 않는다. 그 어떤 시장도, 그 어떤 개인도, 이 지구의 대기권을 혼자 관리할 수 없다. 이제는 경제학의 언어로 정의를 다시 써야 할 때다. 공유부는 그 첫 문장이다.
이 연재는 그 문장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토지와 자원에서 화폐와 산업, 데이터와 기후까지 — 부의 원천을 다시 사회적 정의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다. 우리가 향후 다룰 모든 주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공유부란 무엇이며,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이, 불평등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사회계약의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글쓴이의 과거 기사들 - [기후와 경제]







열독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