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와 경제ㅣ녹색 전환을 위해, '금융'을 바꿔야 한다
- hpiri2
- 10월 3일
- 5분 분량
2025-10-03 금민, 유승경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제조업 공장을 떠올리지만, 금융이 이를 지원해 가속화하고 있다. 금융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기도 억제하기도 한다. 현대 금융 시스템은 은행 대출을 통한 신용 창출 즉 부채를 전제하고 있고, 단기적 수익 회수에 집중하고 있다. ‘공공(주권)화폐’ 제도를 통해 생태적 목적에 맞게 금융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게오르그아우구스트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운영위원장,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를 역임했고, 현재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다. 최근 디지털 자본주의, 에너지 전환, 기본소득, 공유부 기금 등이 관심사이며,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기본소득의의 의의를 끌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Financing Basic Income-An Exploratory Study of the Korean Case(공저, 2022), 『모두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다』(공저, 2021),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공저, 2021),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 쉽게 읽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본소득』(공저,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2020), 『진짜 민주주의』(2012), 『사회적 공화주의』(2007) 등이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https://alternative.house/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화폐 및 금융 관련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MMT 논쟁』(2021), 번역한 책으로는 『주권화폐–준비금 은행제도를 넘어서』(2023), 『기본소득과 주권화폐–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2021), 『경제 위기는 반드시 온다–금융 위기 200년사를 통한 경제 위기 예측과 대처법』(2020),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2020), 『우주의 거장들–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2019), 『세계화의 종말–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2012_)이 있다. 연구보고서는 『탄소세 도입 정책동향과 경기도 시사점』(책임연구)이 있다.
유승경의 ‘화폐, 금융, 경제 이야기’ https://alternative.house/category/economy-story/
지난 기사
기후위기의 보이지 않는 주범
기후위기의 주범은 누구인가? 이 질문이 던져질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석탄화력발전소, 철강업, 시멘트 산업 그리고 화석연료에 깊이 의존한 전통적 제조업이다. 이른바 굴뚝산업은 지난 세기 동안 지구 대기권을 온실가스로 가득 채운 대표적 배출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을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언뜻 보면 기후위기와 무관해 보이는 첨단 산업들, 즉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혁명 또한 이미 생태적 위기의 씨앗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산업과 기후위기 대가속 시대
반도체 생산을 떠올려 보자. 리튬을 비롯한 희토류 채굴 없이는 불가능한 산업이다. 그런데 희토류 1톤을 정제하기 위해 무려 20만 리터의 물이 소모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거대한 환경 비용을 동반하는 채굴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또한 데이터센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인공지능 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될수록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재생에너지 전환 없이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2050년에는 관련 산업에서만 전 지구 탄소 배출량의 40%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750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240년 동안 누적된 탄소 배출량보다, 불과 1990년부터 2019년까지 30년간의 배출량이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은 이 ‘기후위기 대가속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의 책임을 묻는다면, 전통 제조업은 물론 디지털 산업까지 모든 산업이 기후위기의 공범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금융은 기후위기 가속화의 또 다른 동력
그러나 여기서도 여전히 중요한 한 축이 빠져 있다. 바로 금융이다. 우리는 금융제도를 흔히 경제의 중립적 기반으로 이해하기 쉽다. 대출과 투자가 단순히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돕는 기술적 장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금융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금이 흘러가는 경로를 통해 어떤 산업이 성장하고 어떤 산업이 쇠퇴할지를 결정짓는다. 자본이 화석연료 산업에 머무는가, 아니면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이동하는가는 금융이 내리는 선택에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금융제도는 기후위기를 억제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보듯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해 왔다.
은행 신용창출과 탄소 잠김의 구조
현행 금융 시스템은 은행 대출을 통한 신용 창출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민간은행은 보유한 준비금보다 훨씬 많은 신용화폐를 대출을 통해 창출할 수 있으며, 이는 부분지급준비금 제도의 구조 덕분이다. 이러한 신용창출 메커니즘은 자본주의 성장과 축적을 가속해 왔지만 동시에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도 작동해 왔다. 탄소 배출의 규모와 경로는 어떤 산업에 대출이 집중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특히 고탄소 자산에 과도하게 자금이 배분되면 탄소 잠김(carbon lock-in) 현상이 고착되어 탈탄소 전환을 지연시키고 기후위기를 악화시킨다.
기후금융이라는 응답과 그 한계
이런 맥락에서 자금 흐름의 경로를 바꾸어 보자는 시도가 등장했다. 화석연료 투자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개선 투자로 흐름을 전환한다면, 현행 제도 안에서도 금융이 기후위기의 주범이 아니라 전환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다. 이를 배경으로 기후금융(climate finance)의 구상이 제시된다. 기후금융은 “탈탄소 포트폴리오” 구축과 “기후 리스크 관리”를 금융기관의 핵심 과제로 제안하고, 중앙은행과 개발은행의 ‘녹색 양적완화(Green QE)’, 중앙은행에 ‘기후 안정성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 신용창출을 기후 목표와 연계시키자는 발상, 녹색채권, 지속가능성 연계 대출, ESG 투자 등 다양한 도구들을 동원하려 한다.
물론 이러한 제안들은 의미 있는 전환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자금의 흐름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돌리는 것은 기후 대응을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 이런 논의들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기후위기의 가속화는 멈추지 않는가? 단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 금융 시스템 자체가 내포한 구조적 한계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단기주의 금융과 기후 전환의 불일치
현행 제도에서 화폐 공급은 본질적으로 부채를 전제로 이루어진다. 은행 대출은 반드시 이자를 동반하고, 시스템이 안정되려면 끊임없는 신용 팽창과 성장, 그리고 이윤 축적이 요구된다. 이는 금융기관이 장기적이고 불확실성이 큰 기후 대응 투자보다 단기간에 수익을 회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자금을 집중시키는 구조적 유인을 만들어 낸다. 탄소집약적 성장 경로는 바로 이 단기주의(short-terminism)의 산물이자, 화폐가 부채와 함께 공급되는 구조적 결과다.
따라서 금융의 흐름을 생태적 목적에 맞게 재조정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그러나 대출 기반 신용화폐 체제라는 뼈대를 그대로 둔 채 이뤄지는 개혁은 근본적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기후금융이 아무리 다양한 도구와 제안을 내놓는다 해도, 화폐 공급이 부채에 종속된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금융은 여전히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힘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모두를 위한 지구 경제학: 금융 개혁의 현실과 한계
로마클럽이 2022년에 펴낸 『모두를 위한 지구(Earth for All): 인류 생존을 위한 가이드』는 이러한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다. 보고서는 현행 금융시스템이 단기 이윤을 중심으로 작동하여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불평등을 가속화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금융 개혁은 단순히 녹색 금융상품의 도입이 아니라, 금융시스템 자체를 경제 전체와 인류 복지, 그리고 자연의 건강과 조화롭게 작동하도록 재구성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제시된 두 가지 핵심 정책은 첫째, 금융규제를 통해 투자 흐름을 생태적 전환의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 둘째, 국가가 생태 전환을 목적으로 한 채권 발행에 대해 불필요한 제약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는 흔히 ‘돈을 창출하는 나무’를 바꾸는 일로 표현된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재생적 금융 시스템(regenerative financial system)’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접근은 여전히 대출을 통한 화폐 창출이라는 뼈대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모두를 위한 지구’ 경제학은 빈곤 종식, 불평등 완화, 여성 권한 강화, 생태와 인간을 위한 건강한 식량 시스템 조성, 청정에너지 전환이라는 다섯 가지 목표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탄소세와 탄소배당, 공유지에서 발생하는 부의 배당 등 새로운 분배체계를 강조한다는 점은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적 금융 시스템을 향한 개혁은 공공(주권)화폐 제도로의 전환을 통해서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 남는다.

공공(주권)화폐론의 사상적 뿌리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영국의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과 벤 다이슨(Ben Dyson)은 Modernising Money(2012)에서, 독일의 조셉 후버(Joseph Huber)와 영국의 제임스 로버트슨(James Robertson)은 Creating New Money(2000)에서, 미국의 경제사가 스티븐 자를렌가(Stephen Zarlenga)는 The Lost Science of Money(2002)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다. 화폐 발행이 사적 은행의 신용 창출에 맡겨져서는 사회적·생태적 과제를 수행할 수 없으며, 발행권이 공공의 손에 주권적으로 돌아올 때만이 화폐가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주권)화폐 제도는 단순한 금융 안정 대책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불평등 시대에 필요한 실질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제도 아래에서 정부는 발행한 화폐를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생태 복원 등 기후 대응에 직접 투입할 수 있으며, 기후채권과 결합해 국민 모두에게 ‘기후배당’을 환원하는 구상도 가능하다.
기후위기와 화폐의 미래
결국 문제는 화폐 제도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화폐가 민간은행의 이윤 논리에 종속된 채로 남아야 하는가, 아니면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공공적 도구로 재구성되어야 하는가? 로마클럽의 제안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기후위기의 시계를 고려할 때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 분명하다.
공공(주권)화폐 제도로의 전환은 금융 질서 전체를 새롭게 짜는 일이다. 이는 결코 단순하지 않지만, 지금과 같은 부채 기반 금융 구조 속에서는 산업 차원의 혁신만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이 충분하지 않다. 녹색 전환은 산업 정책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금융 제도의 문제이며, 그 둘은 뗄 수 없는 관계다.
따라서 금융 개혁 없이는 산업 전환도 제 궤도에 오르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개혁의 방향은 공공화폐 제도라는 급진적 상상력 속에서만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선택의 시간이 길지 않은 지금, 화폐를 어떻게 정의하고 누구의 손에 맡길 것인가는 단순한 제도 설계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다.







금융이 중립적이지 않고 기후위기를 촉진 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군요. 기후금융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