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⑩ 양수발전 | 7년의 시간, 홍천군 풍천리 주민에게 배우는 '양수발전'
- planetssong03
-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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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일 전
2025-08-28 김성희 기자
국책사업이 ‘효율’과 ‘국가적 필요’라는 명분 아래 추진될 때, 민주적 절차와 생태적 가치가 무너지고 공동체와 주민의 삶까지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앞으로의 개발이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사람과 자연, 민주주의의 존립을 함께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양수발전소 지정, 100년 잣나무숲과 생태계를 위협하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 가리산 자락에 자리한 이 산촌은 ‘100년 잣나무’의 고장으로 불린다. 국내 최대 규모(1800ha)의 잣나무 숲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2023년에는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으로 지정되었다. 주민의 80%가 잣을 채취하고 가공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곳, 전국 잣 생산량의 70%가 이 마을에서 나온다. 잣은 단순한 산림 자원이 아니라 풍천리 주민들에게 쌀독과도 같은 존재다.

풍천리가 갖고 있는 숲은 천연기념물 산양과 멸종위기종 수달, 하늘다람쥐, 삵 등이 터전을 잡고 사는 생태 보고였다. 풍천천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줄기에는 꺽지, 둑중개, 미꾸리 같은 토종 물고기들이 살고, 숲에는 참매와 까막딱따구리 같은 희귀 조류가 둥지를 튼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며 오랫동안 지켜온 이 산림 생태계는 그들의 삶의 근거지였다.
가리산을 품은 풍천리가 2019년 한국수력원자력의 양수발전소 후보지로 지정되면서 이 명품숲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국 최대의 잣나무 숲이 통째로 잘려 나가고, 계곡은 물에 잠기는 일이 머지않았다.
1조5천억 원, 12년 공사…풍천리에 들어서는 초대형 국책사업
풍천리에 들어설 양수발전소는 설비용량 600MW(300MW×2기) 규모로, 상부댐은 화촌면 풍천리·야시대리, 하부댐은 풍천리에 들어선다. 총 사업비는 1조5천억 원, 공사 기간만 12년에 이르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양수발전소는 흔히 ‘물 배터리’라 불린다. 밤에는 남는 전기를 써서 하부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끌어올리고, 낮에는 그 물을 떨어뜨려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그러나 100을 써서 물을 끌어올려도 다시 얻는 전기는 70 남짓이다. 매년 수천억 원의 적자를 내는 ‘마이너스 발전소’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실제로 2014~2019년 전국 양수발전소의 적자는 7700억 원을 넘었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수원은 이 시설을 “심야 전력을 저장하는 천연 축전지”라 부른다. 원자력·화력발전소처럼 한번 가동하면 멈추기 어려운 기저부하 발전소의 잉여 전력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즉, 풍천리에 세워지는 양수발전소는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장치라기보다, 오히려 원전과 화력에 의존하는 낡은 전력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런 시설이 반드시 산 정상부와 깊은 계곡에 들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낙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산림을 대규모로 깎아 내고, 계곡은 물에 잠기며, 주민 공동체가 수몰되는 일이 불가피하다.
반복되는 자연생태도 1등급 하향, 제도의 허망한 현실
풍천리 양수발전소 예정 부지는 원래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었다. 환경부가 지정한 1등급은 멸종위기종 서식지, 우수한 산림생태계 등으로 보존 가치가 높아 개발이 원천적으로 제한되는 지역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홍천군은 “이 지역은 보존 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며 2019년 8월 이의 신청을 통해 국립생태원의 현지조사를 거쳤고, 같은 해 12월 국민 열람과 환경부 수시고시를 통해 기존 1등급 지역을 2·3등급으로 낮췄다. 변경 사유는 식생보전등급 하락이었다.

뜻밖에도 2차 변경 과정에서 상부댐 예정 부지는 오히려 1등급으로 상향되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부지 밖 1등급 지역은 하락하면서 결국 한수원은 댐 부지를 옮길 빌미를 얻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상부댐 예정지는 개발 불가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등급 조정이 개발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작동했다.

영동군 역시 비슷했다. 2019년 같은 절차를 밟아 상촌면 고자리 일대 1등급 지역이 2·3등급으로 낮아졌다. 이유도 홍천과 동일하게 식생보전등급 하락이었다. 보전이 원칙인 1등급 지역이 ‘개발 부지’라는 이유로 손쉽게 변경되는 구조가 그대로 반복된 것이다.
이는 풍천리만의 사례가 아니다. 최근 5년간 전국적으로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의 하향 조정이 잦아졌다. 강원, 충남, 경북 곳곳에서 등급 하락을 근거로 풍력단지, 케이블카, 골프장 같은 대규모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결국 생태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개발을 정당화하는 절차적 장치로 전락했다. 풍천리 주민들은 산양, 수달, 하늘다람쥐 등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실제 서식한다는 사진과 동영상 자료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존해야 할 숲’은 ‘개발 가능한 숲’으로 변해버렸다.
공공성의 이름으로 무너진 절차와 규제
풍천리 하부댐 예정지는 국도 56호선과 마을이 수몰되는 구간이다. 정부 승인이 나지 않았음에도 2024년부터 이설도로 공사가 시작됐다. 한수원은 국유림 10.96ha와 잣나무 2256본을 수의계약으로 매입해 629억 원을 투입, 도로 3.14㎞와 교량 5개를 신설 중이다. 강원특별자치도는 “사업비와 민원 책임을 한수원이 진다”며 허가를 내줬지만, 이는 승인 전 사업을 기정사실화한 행정 특혜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한수원은 홍천·영동에서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았다며 공공성을 강조했지만, 예천 사업은 예타조차 생략했다. 동시에 산자부·산림청과 협력해 산지관리법의 평균경사도, 입목축적, 개발면적 제한 등 기준을 예외 적용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결과적으로 ‘공공성’은 개발 편의를 가리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민주주의 없는 국책사업, 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다

양수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은 철저히 형식에 그쳤다. 풍천리 주민들은 가장 직접 피해를 보는 당사자임에도 공청회에서는 배제되거나 들러리에 불과했다. 지난 8월 1일 기자회견에서 한 주민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우리 몸에 각인된 단어는 ‘무시’뿐이었다”고 토로했다.
홍천군은 두 차례나 주민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2019년 군수는 “주민이 원치 않으면 유치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으나 불과 한 달 뒤 설명회를 강행했고, 군의회조차 반대 의견을 수용했다는 공문을 냈음에도 사업을 밀어붙였다. 설명회 과정에서는 ‘가구당 7500만 원 보상’ 같은 유언비어가 퍼졌고, 보상이 시세보다 3~4배 많다는 주장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애초 언급조차 없던 송전탑·고압선 계획이 뒤늦게 밝혀지며 주민 반발은 커졌다.
환경영향평가 초안 역시 주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면사무소에 두꺼운 책자만 비치해 “노인네들이 어떻게 그걸 읽냐”는 불만이 나왔지만, 요약 안내나 마을 공지 같은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었다. 구례의 경우에도 지역 단체를 동원해 찬성 플래카드가 도배됐고, 주민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창구는 철저히 닫혔다. 군수와의 직접 대화 시도는 경찰 투입으로 막히며 “우리는 만나고 싶었을 뿐인데 끌려 나갔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주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절차적 정의가 실종된 국책사업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주민을 갈등의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공리주의 수사, 실상은 국가주의적 효율주의
정부와 사업자는 늘 ‘국가적 필요’와 ‘효율성’을 앞세운다. 양수발전소는 원전과 화력발전의 남는 전력을 저장하는 ‘물 배터리’라는 논리로 포장했지만, 반면 주민 피해는 ‘국가 전체를 위한 불가피한 비용’으로 치부되었다. 그냥 보기에 공리주의적 수사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국가주의적 효율주의, 기술관료적 합리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소수 지역 주민은 침묵을 강요당한다. 이 효율주의는 결코 중립이 아니다. 법과 제도를 고쳐가며 규제를 완화하고, 형식적인 공청회로 절차를 덮는 방식은 민주적 정당성을 파괴하는 권력의 작동이다. 풍천리 주민들의 7년간의 싸움은 바로 이 점을 고발한다. 개발을 위한 효율성 논리 뒤에는 언제나 희생되는 누군가의 터전과, 부정당한 절차로 민주주의가 무너졌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7년을 버텨 온 바램, 살던 그 모습대로 살고 싶다
풍천리 주민들의 싸움은 단순한 개발 반대가 아니었다. 7년 넘게 이어진 농성과 집회 속에서 주민들은 스스로 싸움의 방식을 배워갔고,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이 땅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절박함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힘이 되었다. 주민들은 시민사회와 종교계, 노동계와 손을 잡으면서도 끝내 책임은 스스로 지겠다는 태도를 놓치지 않았다.


군청 앞 농성과 토론회는 지역의 갈등을 전국적 의제로 확산시켰지만, 경찰과의 충돌이나 법정에서 겪은 굴욕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일부 공무원들조차 달라진 눈빛으로 주민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배우며 성장하는 주체로 서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싸움을 버티게 한 것은 삶의 터전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풍천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잣나무 숲을 품은 마을이다. ‘100년 잣나무’가 빚은 명품 잣은 단순한 소득원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정체성이었고, 주민들에게는 “동네의 쌀독”과도 같았다. 한 해 수십억 원의 수익은 노인 세대의 생활을 지탱했고, 젊은 세대에게는 이어가야 할 자산이었다.
7년의 갈등은 공동체에 깊은 상처도 남겼다. 마을은 찬성과 반대, 무관심으로 갈라졌고, 전통적인 유대와 자부심은 흔들렸다. 그럼에도 끝내 주민들이 투쟁을 이어온 이유는 “그냥 살던 대로 살고 싶다.”였다. 이 단순하지만 절실한 바람이 풍천리 주민들을 7년 동안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
주민이 주체가 될 때, '갈등'은 '협의'로 바뀐다
풍천리의 지난 7년은 국책사업이 어떻게 민주적 정당성 없이 강행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만약 절차가 제대로 보장되었다면, 갈등의 양상은 전혀 달라질 수 있었다.
풀씨 연구회에서 진행한 보고서는 구례 계족산 양수발전소를 둘러싼 갈등을 주민 스스로가 연구자가 되어 기록한 드문 사례다. 연구팀은 찬성과 반대, 중립을 아우른 14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하고, 정부와 중부발전, 구례군이 내놓은 각종 자료와 현수막, 언론보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주민 다수가 동의서에 서명한 이유는 ‘나라 사업’이라는 압도적 힘이나 경제적 보상 때문이 아니라,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어쩌꺼인가”라는 말처럼 공동체에서 고립되지 않으려는 정동적 애착에서 비롯되었음이 드러났다. 반면 반대 주민들은 대나무밭이 수몰되면 죽염 생산이 무너지고, 계곡과 반딧불이, 유년의 기억 같은 ‘장소’가 사라진다는 점을 들어 끝내 서명을 거부했다.
보고서는 이렇게 드러난 갈등이 혈연·도덕적 압박과 형식적 절차 속에서 ‘찬성 다수’로 포장된 과정을 비판하며, 만약 제대로 된 민주적 절차와 토론의 장이 있었다면 주민들의 선택은 단순한 찬반 대립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과정으로 달라질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결국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기술이 아니라, 누구의 삶을 존중하고 어떤 민주주의로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풍천리 사례는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민주적 절차가 부재한 채, 공청회는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생태자연도 등급은 개발 논리에 맞게 하향 조정되며, 국가는 규제완화를 통해 ‘절차’를 무력화했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주민들의 불신, 공동체 분열, 그리고 7년째 이어지는 고통뿐이다.
민주적 절차와 주민 자율성 보장이야말로 갈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풍천리에서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가장 깊이 성찰해야 할 교훈이다.
사람과 자연, 민주주의 존립이 함께 움직여야
풍천리의 이야기는 단순한 지역 개발 논란을 넘어, 국책사업이 민주적 절차를 외면할 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보여 준다. 잣나무 숲과 맑은 계곡, 그리고 세대를 이어 살아온 마을은 ‘효율’과 ‘국가적 필요’라는 이름 아래 희생되었다. 주민들은 배제와 무시 속에서도 7년 동안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는 고통과 분열을 겪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싸움은 주민 스스로가 주체로 서고, 외부와 연대하며, 끝내 자기 터전에 대한 자부심으로 버텨낸 기록이기도 하다. 풍천리가 남긴 7년, 개발은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 그리고 민주주의의 존립을 함께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풍천리가 남긴 7년, 개발은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 그리고 민주주의의 존립을 함께 지켜야 나가며 해야 함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