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⑩ 양수발전 | 국가적 '필요'와 공동체의 '희생'
- planetssong03
- 8월 29일
- 6분 분량
2025-08-28 김성희 기자
한국의 국책 에너지 사업은 언제나 “국가적 필요”라는 명분 아래 추진되지만, 그 비용은 지방 주민과 공동체의 희생으로 전가되어 왔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정의로운 전환은 분배와 참여, 절차적 정의를 핵심으로 하며, 특정 지역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결국 한국이 기후위기 시대의 전환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방식민지적 희생 구조를 넘어, 지역이 전환의 주체이자 수혜자가 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국가적 필요’라는 당위의 언어

“국가적 필요”라는 말은 늘 당위처럼 들린다. 원자력, 석탄, 송전망, 그리고 최근의 재생에너지 확대까지, 정부는 늘 에너지 전환을 국가 전체의 미래와 직결된 절대적 과제로 규정해 왔다. 하지만 이 담론의 그림자에는 언제나 특정 지역과 주민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숨어 있다.
한국의 전력 체계는 수도권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방의 땅과 숲, 바다를 끊임없이 점유해 왔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새로운 명분이 등장했지만,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송전망은 여전히 전력이 많이 필요한 수도권을 향해 뻗어가고,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은 삶의 터전과 생태계를 내줘야 했다.
민주적 절차는 종종 형식적으로만 거쳐지거나 아예 생략되었고, 보상은 공동체를 갈라놓는 방식으로 지급되었다. 결과적으로 전환의 속도는 빨라질 수 있지만, 그 속도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진행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전환이 단순한 ‘감축’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방식으로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국가적 필요'라는 명분에 가려진 지방 공동체의 희생
강원도 홍천 풍천리의 양수발전소 계획은 100년 잣나무 숲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며 큰 반발을 불러왔다. 하지만 국책사업이라는 명분 앞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는 쉽게 묻혔다. “국가 전력 안보”와 “친환경 에너지 저장”이라는 수사는 결국 지방 공동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리로 작동했다.

이 구조는 홍천만의 일이 아니었다. 밀양에서는 신고리 원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하기 위한 765kV 초고압 송전탑 건설이 추진되면서, 농촌 고령 주민들이 “왜 수도권 전기를 위해 우리 마을이 희생해야 하느냐”고 맞섰다. 갈등은 사망 사건으로까지 이어졌고, 국책사업이 지역 주민의 삶과 생명을 위협하는 극단적 현실을 보여주었다.
충주와 동해안 송전선로 건설, 서해안 해상풍력 송전탑 추진도 마찬가지였다. 환경 훼손과 생활권 침해에 대한 우려 속에서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사업은 “국가적 필요”라는 이름 아래 밀어붙여졌다.
결국 한국의 국책사업과 대규모 인프라 건설은 농촌과 지방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력망 확충과 에너지 전환은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이지만, 그 과정에서 지방 주민들이 끊임없이 “국가 전체를 위한 불가피한 비용”으로만 취급된다면 정의로운 전환은 불가능하다.
중앙의 빛, 지방의 그늘: ‘지방 식민지’라는 이름의 현실

‘지방 식민지’라는 표현은 남미 종속이론에서 파생된 ‘내부 식민지’(internal colony)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 내부에서도 특정 지역이 정치·경제적 권력의 중심에 종속돼 자원은 빼앗기고, 의사결정에서는 배제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단어는 한국에서 수도권-비수도권 불균형을 설명하는 은유로 확산시켰다. 과격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현실의 수치들은 이 비유가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증명한다.

2024년 전력 판매량 통계에 따르면, 경기도는 1억 4330억kWh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기를 소비했고, 서울(5035억kWh)과 인천(2596억kWh) 역시 수도권의 거대한 전력 수요를 보여준다. 이들 지역은 주거·업무 중심의 소비가 뚜렷하고, 특히 경기도는 대규모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산업용 전력 비중도 크다. 반면 충남(5004억kWh), 경북(4373억kWh), 울산(3192억kWh), 전남(3358억 kWh) 등은 전체 소비량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지방은 제조업 중심의 전력 구조를 드러낸다.

생산 측면에서 보면 불균형은 선명히 나타난다. 전국 발전량은 꾸준히 늘었지만, 경북·충남·전남·강원 등 지방이 원자력·화력·가스발전소를 떠안아 사실상 ‘공급지’ 역할을 맡아왔다. 반대로 대도시는 발전량이 미미해 외부 의존도가 높다.
재생에너지 통계는 또 다른 층위의 ‘내부 식민지화’를 드러낸다. 2023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에서 전북(1만205GWh), 충남(8601GWh), 전남(8248GWh), 강원(6511GWh), 경북(5805GWh) 등 지방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전력 소비의 중심인 수도권은 경기만이 5672GWh로 높은 수치를 보였을 뿐, 서울(755GWh)과 인천(1966GWh)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즉, 지방은 발전소와 송전망을 떠안아 전력을 생산하지만, 그 전기의 혜택은 주로 수도권이 누리는 구조다. 이는 자원은 제공하되, 이익과 결정권은 중앙이 가져가는 식민지적 배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 식민지’라는 개념은 단순히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수치로 드러나는 불균형 구조이다. 이 담론은 지방분권 강화, 재정권한 이양, 에너지 이익 공유 체계 같은 제도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결국 “지방은 식민지가 아니다”라는 선언은, 더 많은 권한과 자원을 지역이 스스로 다루도록 하는 민주적 개혁의 요구로 읽힌다.
국가적 필요 논리가 만든 전력망 특별법
정부와 전력당국은 늘 전력망 확충을 “국가적 필요”와 “효율성”의 언어로 포장해 왔다. 전력망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산업 성장, 수도권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특히 최근 제정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이런 논리를 제도화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법은 345kV 이상 초고압 송전망을 신속하게 건설하기 위해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주민 보상과 지원을 확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문제는 ‘확충’의 당위성만 강조될 뿐, 재생에너지 전환과 분산형 에너지 체계라는 본질적 방향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전력망 확충이 목표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시스템 전환이 핵심이어야 하지만, 법은 여전히 전통적 발전원 중심의 구조를 유지한 채 송전선을 늘리는 데 집중한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인허가 의제 처리 같은 조항은 속도만 보장할 뿐, 주민 참여와 환경 보전은 뒷전으로 미뤄졌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과거 밀양 송전탑 사태, 최근의 산지태양광 갈등은 전력망 사업이 단순한 ‘보상 문제’가 아니라, 정보 공개와 주민 참여 부재가 불러온 구조적 갈등임을 보여 준다. 하지만 특별법은 여전히 공청회 절차를 최소화하거나 형식화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주민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갈등은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전력망 확대 논리는 국가적 필요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사회의 목소리를 압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전력망 특별법이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된다면, 그것은 에너지 전환의 길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지방 희생의 제도화’일 뿐이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정의로운 전환, 한국은 왜 멀리 있는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국제노동기구(ILO)가 2015년 「정의로운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본격적으로 개념화한 개념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사회·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고 “복지·형평·정의”의 원칙에 따라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ILO는 특히 고용 불안과 지역경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대화와 절차적 정의를 필수 조건으로 제시했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역시 정의로운 전환을 단순한 환경 의제가 아니라 불평등과 사회적 형평의 문제로 규정하며, 정책·기술 격차와 지역 갈등, 허위정보가 전환의 주요 장애임을 지적했다. OECD 또한 농촌이나 특정 산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충격이 크고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공정한 분배와 지역 맞춤형 지원, 참여적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국제 기준과 거리가 멀다. 수도권과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지방의 토지와 자원이 동원되고, 주민 참여와 합의는 형식적 절차로 축소된다. 홍천 양수발전, 밀양 송전탑, 동해안 송전선로 갈등 사례는 농촌 주민의 희생이 ‘국가적 필요’라는 명분으로 당연시되는 구조를 보여 주며,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인 형평성과 절차적 정의가 부재한 한국적 상황을 드러낸다.
유럽은 수용성을 높이고, 한국은 갈등을 억누른다
유럽은 송전망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ESTEEM 매뉴얼(Engage Stakeholders through a Systematic Toolbox to Manage Energy Projects)이다. 이 매뉴얼은 EU 지원 연구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개발된 갈등 관리 도구로, 풍력·송전망 같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부터 지역 주민, 지자체, 환경단체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총 6단계로 구성된 프로세스는 사업 배경 분석, 이해관계자 기대 파악, 대안 검토, 합의 도출까지 이어지며, 사회적 맥락 속에서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잠재 갈등을 미리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독일은 이러한 원칙을 제도화한 대표 사례다. 2016년 설립된 자연보호·에너지전환 역량강화 센터(KNE)는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만 정부 산하가 아닌 독립 기구로 운영되며,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을 중재하는 전문 기관이다. KNE는 갈등이 발생하면 중립적인 조정자를 파견해 모든 이해당사자가 동등하게 발언할 수 있는 협의 구조를 마련하고, 생태계 영향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완화책까지 제시한다. UNESCO 세계문화유산 지역 인근 풍력발전 사업, 조류 충돌 저감 기술 검토 등 구체적인 갈등 현장에서 실질적 중재를 수행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유럽의 사례는 전력망 확충이나 재생에너지 확대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공청회 생략, 인허가 간소화, 보상 차등화 같은 방식으로 갈등을 관리한다. 이는 갈등을 예방하기보다 심화시키고, 주민들을 보상 대상으로만 취급하며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결국 민주적 절차와 실질적인 주민 참여 없이는 전력망 확충도, 에너지 전환도 성공할 수 없다.
정의로운 전환은 분배와 참여에서 시작된다
국책사업이 늘 지역의 희생을 전제로 추진되었다면, 앞으로의 전환은 그 구조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전환의 본질은 분산형 에너지 체계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이 가깝고, 지역이 스스로 자급할 구조가 되어야 불필요한 장거리 송전과 지역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은 이미 분산형 전력체계와 지역 분권을 제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에너지협동조합(Energiegenossenschaften)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태양광·풍력 발전에 투자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을 확산시켰다. 덴마크 역시 풍력 발전 초기부터 지분 공유제를 도입해, 지역 주민이 발전기의 공동 소유자가 되도록 했다. 이런 모델은 단순한 보상 차원이 아니라, 주민이 전환의 주체이자 수혜자가 되도록 만드는 장치다.
한국도 최근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제정하며 첫걸음을 뗐지만, 여전히 수도권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송전망 확충 중심의 정책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호남·제주에서 재생에너지가 넘쳐나도 수도권 중심의 전력 구조 탓에 계통 접속이 막히고, 결국 지역의 재생에너지 투자는 중단되거나 지연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전환의 비용과 이익을 어떻게 나누고, 누가 결정에 참여하는지가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지방식민지를 넘어서는 것
국책사업은 언제나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된다. 하지만 그 이익은 수도권과 대규모 산업단지가 누리고, 피해는 농촌과 산촌 주민이 감당한다.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은 서울과 수도권인데, 숲과 강, 마을은 지방에서 끊임없이 희생된다. 이 구조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방식민지라고 불리울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이 식민지 구조를 넘어서는 데 있다. 지역 주민이 단순 피해자가 아니라 결정 과정의 주체가 되고, 에너지 생산의 이익을 지역이 함께 공유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재생에너지라는 새로운 간판 아래에서도, 과거와 똑같은 희생의 구조가 되풀이될 뿐이다.
지방의 희생으로 수도권의 불빛을 밝히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에너지 전환의 성공 여부는 기술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력망 사업이 단순한 ‘보상 문제’가 아니라, 정보 공개와 주민 참여 부재가 불러온 구조적 갈등...계속 반복되는 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