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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④ 폭염(2) | 기후재난이 현실로, 밥상 위협하는 기후플레이션

최종 수정일: 7월 18일

2025-07-17 김성희 기자

기후위기가 만든 이상기후는 농축수산물 가격의 급등을 반복시키며 국민의 체감 물가를 흔들고 있다. 이 위기는 단지 날씨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취약한 유통 시스템, 낮은 자급률, 기후 적응력이 부족한 식량 체제가 함께 만들어 낸 결과다. 임시 대책이 아니라, 기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식량 시스템으로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에 흔들리는 밥상 위 물가 

서울 시내 한 마트의 수박 1통의 가격이 3만 원을 훌쩍 넘겼다. 사진 플래닛03
서울 시내 한 마트의 수박 1통의 가격이 3만 원을 훌쩍 넘겼다. 사진 플래닛03

올여름, 장을 보러 간 마트 한가운데 시원한 제철 과일인 수박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수박 한 통에 3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상품을 들었다 놨다 하며 한숨짓는다. 고온과 가뭄 속에 자란 농작물의 ‘값’이 더위보다 먼저 체감되는 순간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중순, 수박 가격은 평년보다 36.5%나 비싸졌고, 배추 가격은 일주일 만에 27% 넘게 급등했다. ‘금배추’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된 지 이미 오래다. 여기에 우럭, 광어, 오징어 등 수산물 가격도 동반 상승하면서 국민 밥상은 이중삼중의 부담으로 휘청이고 있다.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은 이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열을 뜻하는 ‘히트(heat)’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폭염과 같은 기후 이상 현상이 식량 수급 불안을 초래해 물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장바구니 안에, 밥상 위에, 현실로 다가왔다.


기온 1℃의 위협, 본격화된 ‘히트플레이션’


기온이 기온이 1년간 지속적으로 1℃ 상승하는 경우 물가수준의 반응 함수를 나타낸 도표이다. 사진 한국은행
기온이 기온이 1년간 지속적으로 1℃ 상승하는 경우 물가수준의 반응 함수를 나타낸 도표이다. 사진 한국은행

기후변화가 단순한 환경 이슈를 넘어 물가 구조 전반을 흔드는 경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기온이 평년 대비 1℃ 상승할 경우,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률이 최대 0.3%포인트,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07%포인트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충격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1년 이상 지속되는 구조적 압력이라고 한다. 폭염이나 이상고온이 발생할 경우, 그 영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약 0.3%포인트, 소비자물가는 약 0.06%포인트까지 상승하며, 특히 과일, 채소 등 기후 민감도가 높은 품목은 최대 0.5%포인트까지 가격이 뛰고, 그 여파는 평균 6개월 동안 이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이와 달리 공업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은 이상기후에 유의미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기후발 인플레이션의 주요 진원지는 명백히 농산물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연평균 기온이 1℃ 상승할 경우, 농산물 가격은 2%, 석유류는 1.6%, 가공식품은 0.4% 상승하고, 결과적으로 전체 소비자물가는 0.7%포인트 높아지는 장기적인 구조적 상승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농산물과 에너지처럼 가계 소비에서 비중이 크고 체감도가 높은 항목이 물가 상승을 이끌게 되면, 국민 체감물가의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된다.


미래 전망은 더 암울하다. 탄소중립이 지연될 경우 2040년까지 농산물 가격은 최대 1.1%, 전체 소비자물가는 0.6%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반대로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면 누적 상승 폭은 0.5% 미만에 그친다고 예측했다. 기후 대응 강도가 곧 물가 안정의 열쇠가 되는 셈이다. ‘기온 1℃의 변화’는 수확량을 줄이고, 유통을 지연시키며, 체감물가를 끌어올리는 경제적 충격으로, 이제 히트플레이션은 계절적 이슈가 아닌 구조적 리스크로 다뤄져야 할 시점이다.


장바구니에서 체감하는 새로운 물가리스크 ‘기후플레이션’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현상이 자주 나타나면서 농산물의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상황을 반복하게 만들고 있다. 농산물은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자주 사는 품목이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크게 뛴다. 실제로 물가가 안정돼 있어도, ‘요즘 장보기 너무 무섭다’는 불안감이 빠르게 퍼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가장 관심이 많았던 농식품 이슈를 묻는 문항에 농업인들은 ‘기후변화’(56.6%)와 ‘자연재해’(29.4%)를 가장 큰 이슈로 꼽으며, 반복되는 이상기후로 생존 기반이 위협받고 있음을 반영한 반면, 도시민은 ‘농산물 가격 안정’(43.3%)과 ‘농산물 물가’(33.9%)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며, 장바구니 물가 상승을 통해 기후위기를 간접적으로 체감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가 생산자에겐 생존의 문제로, 소비자에겐 생활비 부담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불안감은 단순한 소비자 인식에 그치지 않고, '기대인플레이션'에도 영향을 준다.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른다’는 심리가 커지면, 실제 물가 상승을 더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가격이 크게 움직이기에, 이상기후가 반복되면 매번 소비 심리를 자극하게 된다. 더 걱정스러운 건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충격이 아니라, 점점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기온이 해마다 조금씩 오르면, 전반적인 물가 수준도 서서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날씨가 나빠서 물가가 일시적으로 오르는 게 아니라, 기후 자체가 물가를 끌어올리는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있다.


기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이상기후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고, 에너지와 유통 비용이 함께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압박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비자뿐 아니라 정부도 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있어 기후 대응이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기후플레이션에 기름 붓는 유통 구조


기후플레이션은 단지 폭염과 가뭄 같은 외부 기후 충격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생산과 소비를 잇는 내부 구조의 취약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곧장 소비자 물가로 전이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대표적으로 공영도매시장을 중심으로 한 농산물 유통 시스템을 들 수 있다. 현재의 도매시장 구조는 경매 방식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어, 출하 농민은 자신의 생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할 주체로서 기능하지 못한 채,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의 손에 가격 결정권을 넘겨 준다. 정가·수의매매나 시장도매인 제도 등 다양한 거래 방식이 실질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어, 기후로 인한 생산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산자는 제값을 받지 못하고, 중간 유통 과정에서는 과도한 마진이 붙는다. 


소비자들 역시 물가 상승의 이면에 왜곡된 유통 구조와 마진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농촌경제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도시민들은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기상재해’(35.1%), ‘유통 구조와 마진’(28.6%), ‘정부 수급 조절 미흡’(15.9%)을 지목했다. 특히 대응 방안으로도 ‘유통 구조 개선’(44.4%) 요구가 가장 컸고, ‘정부 비축 확대’(13.8%)와 ‘가격 모니터링’(13.2%)도 뒤를 이었다. 이는 단순한 체감이 아닌, 기후위기와 제도적 구조 문제를 함께 바라보는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이처럼 공영도매시장이 기준 가격을 형성하고 공공성을 실현해야 할 핵심 인프라임에도, 법인의 사유화와 거래 불투명성, 유통단계 집중 등 구조적 문제들이 방치되고 있다. 기후플레이션은 단지 일시적인 이상기후의 결과가 아니라, 한국 농업과 유통 시스템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고도 개방에도 물가 불안, 해법은 자급 구조로의 전환


일각에서 농산물 시장을 더욱 개방해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국의 농업 부문은 이미 고도 개방 상태로, 2022년 기준 농업 무역개방도는 전체 산업의 두 배 이상인 반면, 주요 곡물 자급률은 2000년 30.1%에서 2022년 19.9%로 하락했다. 개방 확대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안정시키지 못한다는 점은 여러 OECD 국가에서도 확인된다. 한국 역시 개방이 늘었음에도 농산물 물가는 오히려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유는 기후변화, 생산비 상승, 국제 운송비, 환율, 유통 구조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리며 가격을 복합적으로 밀어올리는 구조 때문이다.

국내 주요 품목 자급률 변화를 나타낸 도표이다. 자급률이 점점 낮아지는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국내 주요 품목 자급률 변화를 나타낸 도표이다. 자급률이 점점 낮아지는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현재 한국은 21건의 FTA를 체결해 농업 분야 관세 철폐율이 60~98%에 달하며, 향후 중남미·중동과의 추가 협상도 예고돼 있다. 농산물은 수출국 몇 나라에 집중돼 있고, 고환율, 검역 기준, 공급망 불안 등 외생적 리스크를 고려할 때, 한 나라만 수출을 중단해도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 시장 개방만으로는 물가 안정이라는 해법에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자급률이 낮을수록 가격이 더 불안정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국내 생산 기반을 지키는 것이 물가 안정에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후플레이션 시대에는 ‘더 많이 수입하면 싸진다’는 단순한 공식은 통하지 않는다. 외부 충격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내 생산력 강화와 수입 리스크 분산을 동시에 갖춘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식량 시스템 구축 필요해 


기후위기와 국제 식량시장 불안이 심화되면서, 농업인들은 농업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으로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농업인의 66.6%는 현재 농업·농촌의 핵심 역할로 ‘식량 공급’을 꼽았고, 미래에도 49.0%가 같은 응답을 내놓았다. 흥미롭게도 ‘식품 안전성 향상’과 ‘지역 활성화’에 대한 인식도 동시에 증가했다. 이는 농업인들이 단지 물리적인 식량 생산만이 아니라,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먹거리 제공과 지역 경제 기반 유지까지 농업의 핵심 기능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의 위기가 환경 차원을 넘어 먹거리 체계 전반과 식량안보 문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농업인 스스로가 농업의 핵심 가치를 ‘환경 보전’에서 ‘식량 공급’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농정 역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산 기반 강화와 식량안보 중심의 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시사한다.


이를 위해 기후 대응력을 높이는 방향이 중요하다. 고온에 강한 품종 개발과 스마트팜 도입 같은 기후적응형 기술이 확산되어야 하며, 어업 분야 역시 고수온 생존 품종 개발과 설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더불어 기후 충격이 가격 급등으로 곧장 연결되지 않도록, 유통 구조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가·수의매매 확대, 시장도매인 제도 도입, 공정한 대금 정산 체계 정비 등을 통해 가격 왜곡을 줄이고, 공영도매시장의 기능을 공익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디지털 기반 수급 예측 시스템과 정부의 비축 물량 확대도 시장의 불안정성을 완화하는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다.


기후에 흔들리지 않는 공급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자체 자급률을 높이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안정 구조가 필요하다. 스마트농업 확대, 유휴농지 활용, AI 기반 농업용수 관리 등 기후탄력적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일도 핵심 과제다. 정부는 현재 전략작물직불제 도입, 공공비축 확대, R&D 투자, 영농형 태양광, 탄소 감축형 영농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6년 설립 예정인 농식품기후변화대응센터가 이 전환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기후 시대, 물가는 준비된 시스템에서 나온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물가 불안은 단지 날씨 때문이 아니다. 생산 기반의 재설계, 유통 구조의 공공성 강화, 수급 예측과 비축 시스템, 탄소 감축까지 아우르는 종합 전략이 부재한 구조의 문제다. 이제 식량은 단순한 농업의 영역을 넘어, 국민의 먹거리 안전과 국가 물가 안정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다뤄져야 한다.


기후가 흔들고, 시장이 요동치는 시대에 식량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기반 위에 놓여야 한다. 변화에 따른 가격은 오를 수 있으나, 국민의 식생활 불안까지 함께 오르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기후가 만든 새로운 물가 위기에, 제도와 정책이 함께 준비하고 응답한다면 불안은 위기가 아니라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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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7월 21일

극심해지는 기후변동은 밥싱위에 오르는 먹거리에도 복잡하고 다층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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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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