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2024. 09. 12.
“이모, 올 추석에 송이 나와요?”
“올해는 안 나와. 날씨가 너무 더워. 온도가 한 17도 정도까지는 내려가고, 비도 좀 와야 해. 좀 늦게는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추석 때는 안 나와.”
경주에 살고 계시는 이모님의 목소리가 무겁습니다. 시중에 거래되는 모든 송이버섯은 소나무 숲의 바닥에서 채취한 자연산 송이버섯입니다. 송이버섯은 인공재배가 되지 않는 버섯입니다. 산주 또는 채취 허가를 얻은 산촌 주민이 허가된 지역에서만 야생 송이버섯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가격도 굉장히 비쌉니다. 형태가 훌륭한 송이버섯의 경우 입찰가가 kg당 50~60만원 선이며, 2017년에는 강원도 양양 송이버섯의 입찰가가 100만원을 넘기도 했습니다. 물론 소비자가는 입찰가보다 훨씬 비쌉니다. 추석을 앞둔 산촌마을에서 송이버섯은 아주 중요한 소득원입니다. 하지만 올해 추석은 송이도 없고, 송이 판 돈도 없을 예정입니다. 겨울이 빨리 찾아오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송이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 양은 극히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송이버섯들은 막 채취한 국내산 송이버섯이 아니라 작년에 채취해서 냉동해 둔 송이버섯이거나, 외국산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역대 가장 더운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송이버섯은 왜 이렇게 비싼 걸까요? 우리가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버섯들은 모두 농가에서 재배된 버섯들입니다. 잘 만들어진 배지를 고온고압에서 멸균하고, 그 배지에 버섯의 종균을 접종한 뒤, 종균이 자랄 수 있는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고 기다립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접종한 종균은 배지 전체에 퍼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배지에서 버섯이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농가에서는 이 버섯을 수확해서 판매합니다. 수확기에 접어들면 배양실 안에 빽빽하게 들어찬 배지 안에서 계속 버섯이 생산되기 때문에 우리는 저렴하게 버섯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마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팽이버섯이나 표고버섯은 톱밥이나 참나무 줄기처럼 죽은 식물의 조직을 분해하면서 성장하는 버섯입니다. 배지의 가격이 저렴하고, 통제된 배양실에서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생산단가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이러한 방식으로는 생산할 수 없습니다. 송이버섯은 살아있는 소나무의 뿌리와 공생하며 살아가는 버섯입니다. 송이버섯을 키우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소나무가 필요한데, 배양실에 넣기에 살아있는 소나무는 너무 큽니다. 배양실에 넣을 수 없으니 버섯 생산을 위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없고, 야생의 숲에서 송이가 버섯을 틔우는 가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인공적으로 송이버섯을 키우는 방식은 대체로 어린 소나무의 뿌리에 송이버섯 종균을 접종하고, 그 소나무를 산에 심어서 기른 다음에 잘 자란 소나무 묘목의 뿌리에서 송이버섯이 올라오게 하는 방식입니다. 접종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숲의 토양에 있던 송이버섯의 종균이 자연스럽게 옮겨붙은 게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송이버섯이 생산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 또한 숲에서 소나무를 키우는 방식이므로 가을까지 기다려야 송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배양실에서 송이를 키워내기까지는 극복해야 할 기술적인 한계들이 많습니다.
송이버섯은 매년 비슷한 자리에서 자라납니다. 버섯을 채취한 뒤 균사체가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낙엽으로 덮어 두면 며칠 뒤에 다시 그 곳에서 송이버섯이 자랍니다. 송이버섯이 자라는 자리는 보통 낙엽으로 덮여있어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송이밭은 자식에게도 알려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송이 밭은 자식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려 줘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에 가깝습니다. 길도 없는 숲의 바닥을 유심히 살피며 온 산천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 송이 채취입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오래 걸어야 하며, 낙엽 아래 숨어 있는 송이버섯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눈썰미도 좋아야 합니다. 넓은 산에서 송이버섯이 올라온 지점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지점까지 찾아갈 수 있을 만큼 길눈도 밝아야 합니다. 송이버섯의 가격이 비싼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소나무를 사랑합니다. 추운 겨울에도 초록빛을 지키는 소나무는 시련 속에서 절개를 지키는 선비를 상징하는 나무로 일컬어졌습니다. 소나무 숲의 바닥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은 산촌 주민들에게 알토란 같은 소득을 안겨주는 임산물입니다. 소나무 숲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소나무 숲과 송이버섯의 미래는 밝지 않아 보입니다. 송이버섯은 1985년까지 연간 1300톤 가량이 생산되었지만 현재는 연간 200여 톤이 생산됩니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었고, 사람들의 생활은 윤택해졌습니다. 송이버섯을 구매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송이버섯의 가격도 많이 올랐지만 송이버섯의 생산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송이버섯은 살아있는 소나무의 뿌리와 공생하는 버섯입니다. 소나무는 잎에서 광합성을 통해 만든 달콤한 탄수화물을 뿌리까지 보내 송이버섯에게 나눠 주고, 송이버섯은 균사체를 뻗어 물과 무기양분을 흡수해 소나무 뿌리에 전해 줍니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며 소나무와 송이버섯은 함께 자랍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숲의 환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소나무들만 간신히 자라던 척박한 숲은 비옥해지고 울창해졌습니다. 소나무와 송이버섯이 서로 도와야 살아남을 수 있던 숲의 토양이 비옥해지면서 공생의 필요성은 줄어들었습니다. 소나무들은 나이를 먹었고 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고 있습니다. 소나무 숲의 면적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송이버섯의 생산량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숲이 더워지면서 우리나라의 소나무의 분포적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소나무재선충병 또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덥고 건조해진 소나무 숲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형 산불입니다.
불타버린 소나무 숲을 송이버섯이 생산되는 건강한 소나무 숲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를 다시 심는다는 것은 아주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소나무 숲 곁에서 살아왔던 산촌 주민들의 입장에서 적지 않은 소득을 제공하는 송이버섯을 생산할 수 있는 숲은 아주 소중한 자산입니다. 산불이 지나간 민둥산에 어떤 나무를 심을지 주민들에게 물어본다면 소나무를 심자는 의견이 많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여전히 소나무입니다. 하지만 불이난 숲에 지금 당장 소나무를 심어도 송이버섯을 생산할 수 있는 숲이 되려면 2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소나무 숲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20년 뒤에 자식들에게 송이버섯 채취를 알려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불확실성의 봉우리를 넘어야 합니다. 산불 피해가 주로 발생하는 강원, 경북 지방의 대부분은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 소멸 위험 지역입니다. 20년 뒤에는 송이버섯을 채취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년 뒤의 숲은 지금보다 더 덥고 건조해질 예정입니다. 송이버섯을 둘러싼 많은 환경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소나무 숲과의 이별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시간은 무겁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형화되고 잦아지는 산불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합니다. 기상과 지형, 식생을 고려해 산불의 위험도를 평가하고, 산불 위험이 큰 지역은 산불을 빠르게 발견하고 진화할 수 있는 준비를 합니다. 이와 함께 산불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소나무 숲을 산불에 강한 활엽수 숲으로 천천히 바꿔나갑니다. 소방차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임도를 정비하고, 소방헬기를 비롯해 산불 진화를 위한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점검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직접적인 노력과 별개로 송이버섯의 인공재배 연구가 산불 예방의 해답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송이버섯을 농가의 배양실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송이버섯 생산에 대면적의 소나무 숲이 필요 없어진다면, 불확실한 소득을 기대하면서 산불 피해지에 다시 소나무를 심어 달라는 주민의 요구가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송이버섯의 향은 정말 훌륭합니다.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송이버섯의 향이 테이블에 퍼져나가면 송이버섯 이야기로만 그 시간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소나무를 심었고, 소나무 숲은 송이버섯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송이버섯이 소나무 숲을 만듭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소나무와 이별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완전한 이별을 맞이하지는 않겠지만 소나무의 분포는 줄어들고, 사람들과 소나무의 거리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대신 그 자리는 조금 더 크고 복잡한 구조의 숲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송이버섯과도 이별하게 될까요? 아니면 새로운 기술의 영역에서 해답을 찾아내게 될까요? 송이버섯이 없는 추석을 준비하는 마음이 복잡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은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