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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탄소세'와 '탄소 기본소득'

2025-05-08 이담인 기자

탄소 감축은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시민의 실천과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때 지속 가능하다. 탄소세 수익을 모든 시민에게 공정하게 나누는 ‘탄소 기본소득’은 기후 정책의 수용성과 정의를 높이는 유력한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탄소 감축은 정부와 기업의 몫으로만 여겨져 왔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기업이 만든 제품을 실제 사용하는 주체도, 정부가 만든 정책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도 모두 시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탄소 정책은 거대한 인프라나 시장 중심으로 설계되어 시민의 역할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고, 정책의 효과도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시민이 빠진 탄소 감축 전략은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탄소 기본소득, 개인 탄소예산제, 생활 속 실천에 보상을 주는 제도처럼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정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탄소세의 한계를 보완하는 해법으로 떠오르는 '탄소 기본소득'


탄소세는 기후위기 시대를 돌파할 경제정책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탄소세란 석유, 석탄 같은 화석연료 사용에 일정한 가격을 매겨 사람들이 덜 쓰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즉,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 소비에 ‘비용’을 붙이는 대표적인 규제 수단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탄소세가 현재 운영 중인 배출권거래제와 함께 병행될 수 있으며, 산업마다 온실가스 감축에 드는 비용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세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탄소세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부담으로만 느껴진다면 제도에 대한 지지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특히 소득이 낮은 사람일수록 에너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배경에서 탄소세로 걷은 돈을 다시 시민에게 나누어주는 ‘탄소 기본소득’이 중요한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모두의 자원을 모두가 나누는 '공유부 배당' 원칙


탄소 기본소득이란 탄소세로 걷힌 세수를 국가가 임의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동일하게,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되돌려주는 제도를 말한다. 단순 보상이나 복지가 아닌 ‘모두가 함께 소유한 자원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자’는 철학, 즉 ‘공유부 배당’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이 개념을 “공유부는 누구의 노력이나 성과로만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개인에게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모두에게 차별 없이, 조건 없이 나눠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탄소는 대표적인 공유자원이다. 누구도 일부러 온실가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데다, 그로 인한 기후위기의 피해는 사회 전체가 겪는다. 따라서 탄소세는 ‘지구를 사용하는 데 따른 책임’이자 ‘모두의 자원을 모두에게 다시 돌려주는 일’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탄소세는 정부가 일반 재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직접 되돌려줘야 한다. 탄소를 많이 쓰는 사람에게는 경고가 되고, 아껴 쓰는 사람에게는 보상이 되는 공정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많이 내고 똑같이 받는' 구조가 보여 주는 스위스 성공 사례


스위스가 탄소세와 탄소 기본소득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다. 스위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1톤당 약 100~120프랑의 탄소세를 부과하고, 그중 약 3분의 2를 전 국민에게 현금으로 똑같이 되돌려준다. 고소득층일수록 에너지 소비가 많아 더 많은 세금을 내지만, 환급 금액은 모두 같기 때문에 저소득층이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다. ‘많이 쓰는 사람이 더 내고, 모두가 공평하게 받는’ 구조 덕분에 스위스 국민들은 탄소세를 공정하다고 평가하며 높은 수용도를 보이고 있다.



장혜영 전 의원이 제시한 탄소세법. 사진 장혜영 의원실 보도자료
장혜영 전 의원이 제시한 탄소세법. 사진 장혜영 의원실 보도자료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향의 입법 시도가 있었다. 2021년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탄소세 전액을 ‘탄소배당’이라는 이름으로 국민 모두에게 나눠주자는 내용의 '기본소득 탄소세법'을 발의했다. 정의당 장혜영 전 의원도 탄소세 수입 일부를 취약계층에게 환급하는 법안을 제시한 바 있다. 법안의 공통점은 탄소 감축의 책임을 특정 집단에 떠넘기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부담하고 함께 돌려받는 구조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명확한 사용 목적'이 있고 모두에게 '공정한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 설계가 핵심


탄소세를 반대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일부 법학자들은 탄소세가 본래 규제를 목적으로 한 세금인 만큼 그 세수를 다시 시민에게 환급하는 방식은 정책의 근본 취지를 흐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세금이 오히려 감축 인센티브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스위스와 캐나다의 사례를 보면, 탄소세 수입을 국민에게 환급하는 '탄소배당' 방식이 제도에 대한 수용성과 지속가능성을 오히려 높이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탄소세가 도입되더라도 ‘그 돈이 다시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제도에 대한 지지율 역시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처럼, 탄소세 정책을 설계할 때 시민 참여와 충분한 정보 제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준다.

탄소세 수용성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데이터는 또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탄소세 수입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 주는 방식보다, 녹색산업에 투자하거나 세금 감면에 활용하는 방안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시민들이 현금 지급보다 탄소세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목적과 방향이 분명할 때 더 높은 수용성을 보인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에 적합한 탄소 기본소득 설계 방식으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조세기반 공유부 배당 구조를 제안했다. 탄소세로 걷은 세금을 일반 재정에 섞지 않고, 특별회계로 따로 관리한 뒤 법률에 따라 자동으로 시민에게 균등 분배하는 방식이다. 이때 정부는 이 세금의 사용처를 자의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배당을 집행하는 단순 전달자 역할만 맡는다. 이 방식은 조세 정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탄소라는 공유 자원에서 발생한 수익을 시민 모두에게 정당하게 되돌려주는 새로운 분배 원칙을 제시하는 것이다.


'감시 받는 납세자'가 아닌 '기후 정책에 기여하는 시민'으로의 전환


탄소세를 도입 중인 국가 현황. 사진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탄소세를 도입 중인 국가 현황. 사진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탄소세는 현재 전 세계 30여 개 국가에서 시행 중이나 한국은 아직 이 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계의 반발, 물가상승 우려와 더불어 탄소세로 모은 세수를 누구에게,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다는 점이 도입을 지연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탄소세는 제도를 넘어 사회적 자원의 분배 방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아무리 좋은 제도여도 시민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시민의 탄소세에 대한 수용성은 ‘세수 활용 방안’, 즉 탄소세로 걷은 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 탄소세 수입 전액을 모든 시민에게 똑같이 현금으로 나눠주는 ‘탄소 기본소득’ 방식은 세금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행정연구원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세금을 내더라도 다시 돌려받는다”는 구조를 이해한 응답자들은 탄소세에 대해 훨씬 더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 수용성’이라는 정치사회적 자본이다. 기후 정책이 기술이나 규제로만 이뤄진다면, 시민은 감시의 대상 또는 비용 부담자로 전락하게 된다. 기후정책의 성패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실천에서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제도가 ‘참여할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른바 생활형 인센티브, 시민의 실천을 제도화하고 보상하는 방식이다.


시민의 권리와 주체성을 중심에 둔 '탄소 기본소득'의 메시지


국내에서도 가능성이 관찰된다. 서울시 ‘에코마일리지’ 제도, 환경부 ‘탄소중립포인트제’ 등은 에너지 절약, 대중교통 이용, 다회용기 사용 등 친환경 활동을 포인트로 환산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들은 참여율이 낮고, 보상 수준이 적절치 않으며,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연계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는 인센티브가 정책의 ‘주요 수단’이 아니라 ‘보조적 캠페인’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탄소 기본소득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설계를 요구한다. 단순한 인센티브가 아니라 ‘누구나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도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다. 여기서부터 기후 정책이 엘리트 정책이 아닌 시민정책으로 바뀌게 되는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탄소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시민은 매월 자신의 소비와 환경영향을 수치화된 기준으로 체감하게 되고, 개인의 감축 노력이 실질적 보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더욱 원활하게 마련할 수 있다.


개인 탄소예산제와 탄소 기본소득의 결합이 이끌어 내는 시민 중심 정책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개념은 ‘개인 탄소예산제’다. 일정 기간 동안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정해두고, 이를 초과하거나 절감했을 때 그 결과에 따라 시장에서 거래하거나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영국에서 시범 프로그램이 운영된 바 있으며, 최근에는 ICT 기술(정보기술과 통신기술을 결합한 기술)을 활용해 개인 소비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그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개인 탄소예산제가 탄소 기본소득과 결합되면, 기후 정책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정보 제공→행동 변화→재정 보상’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기후위기 대응이 국가의 명령이 아닌 시민의 참여로 이뤄지는 ‘사회적 계약’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체계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물론, 정책 신뢰와 공동체적 연대까지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탄소 감축, 시민의 참여와 공정한 분배가 열쇠


기후위기의 해결 여부는 정부가 어떤 정책 방향을 잡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기업에만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가능하지 않다. 기후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탄소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 기여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며 정당하게 보상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시민 없는 탄소중립’은 허상에 불과하다. 지속가능한 탄소 감축은 참여와 분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구조의 문제다. 그 구조의 중심에는 ‘모든 시민이 기여하고, 그 기여가 공정하게 보상받는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결국 시민이 기후행동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가 바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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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May 11

탄소기본소득은 사회기본소득을 비전으로 두고 설계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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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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