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부 시대 ④ㅣ알래스카, 공유부 사상이 최초로 실현된 땅
- hpiri2
- 2시간 전
- 6분 분량
2025-12-12 금민, 유승경
석유에서 시민배당으로, 공동의 부를 공동의 권리로 만든 기념비적 사건. 알래스카가 석유 수익을 시민 모두에게 배당하는 영구기금 제도를 통해 공유부 사상을 세계 최초로 실현한 과정과, 이것이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분석한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게오르그아우구스트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운영위원장,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를 역임했고, 현재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다. 최근 디지털 자본주의, 에너지 전환, 기본소득, 공유부 기금 등이 관심사이며,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기본소득의의 의의를 끌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Financing Basic Income-An Exploratory Study of the Korean Case(공저, 2022), 『모두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다』(공저, 2021),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공저, 2021),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 쉽게 읽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본소득』(공저,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2020), 『진짜 민주주의』(2012), 『사회적 공화주의』(2007) 등이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 대안을 묻다 [유튜브]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화폐 및 금융 관련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MMT 논쟁』(2021), 번역한 책으로는 『주권화폐–준비금 은행제도를 넘어서』(2023), 『기본소득과 주권화폐–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2021), 『경제 위기는 반드시 온다–금융 위기 200년사를 통한 경제 위기 예측과 대처법』(2020),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2020), 『우주의 거장들–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2019), 『세계화의 종말–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2012_)이 있다. 연구보고서는 『탄소세 도입 정책동향과 경기도 시사점』(책임연구)이 있다.
20세기 후반, 지구의 가장 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알래스카는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 왔던 사상을 처음으로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공유부(common wealth)’라는 개념, 즉 자연과 사회가 축적해 온 부는 소수가 아닌 공동체 전체에 귀속된다는 정치철학적 명제를 현실의 제도로 끌어올린 사건이었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상가가 이 원리를 이야기해 왔지만, 실제로 법적 장치와 행정 제도로 구현한 사례는 없었다.
기존 세계의 질서는 달랐다. 국가는 자원을 명목상 공공의 소유라고 선언했지만, 실제 개발과 이익 실현의 주체는 대부분 민간 기업이었다. 국가는 조세나 사용료를 통해 간접적 수익을 얻을 뿐이었고, 국민 역시 성장의 효과를 일부 공유하는 데 그쳤다. 이익이 민간에 집중되고 국민은 주변부에 머무는 구조는 오랫동안 ‘자연스러운’ 질서처럼 여겨져 왔다.
알래스카는 이 오래된 관성을 뒤집었다. 이들은 자원의 가치는 그 땅에 사는 모든 주민 전체의 것이며, 그 수익 역시 시민 각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헌법과 제도 속에 명확히 새겨 넣었다. “공유부의 실현”이라는 추상적 이상을 구체적 제도로 구현한 최초의 사례가 바로 알래스카이기에, 이 실험은 단순한 지역정책이 아니라 사상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자원의 발견이 던진 질문 ― 누구의 부인가?
1968년 프루도만(Prudhoe Bay) 유전의 발견은 알래스카를 순식간에 세계의 주목 대상으로 만들었다. “북극의 사우디아라비아”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고, 그 잠재적 가치 역시 천문학적이었다. 그러나 알래스카 내부에서 제기된 질문은 단순한 경제적 계산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다. “이 막대한 부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그 부를 어떻게 관리해야 세대 간 정의와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많은 자원 부국처럼 즉각적 재정 확대로 소비를 확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알래스카는 자원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격 변동성, 고갈의 불확실성, 정치적 쏠림―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석유 수익을 단기예산으로 흡수하는 방식은 미래 세대를 희생시키는 선택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익이 기업이나 정치권력에 집중되면 사회적 불평등과 부패가 확대될 것이 분명했다.
이때 등장한 사고방식이 바로 ‘공유부’였다. 자연자원은 특정 기업이나 정권의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모든 시민이 태어날 때부터 공유하는 공동 재산이라는 인식이었다. 그 재산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 역시 시민 모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기존 재정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이었다. 알래스카는 이 원칙을 선언이 아니라 제도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알래스카 영구기금의 탄생 ― 공유부를 제도화하는 순간
1976년, 주민투표와 헌법 개정을 통해 '알래스카 영구기금(APF)'이 설립되었다. 이 기금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세 가지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 석유 수익의 최소 25%를 매년 기금 원금으로 적립하도록 헌법에 명시했다. 원금은 정치권력이 손댈 수 없도록 보호되며, 기금의 성장 기반은 장기 투자에 의해 마련된다.
둘째, 기금 운용 수익은 주민 개개인에게 직접 배당된다. 이는 복지나 빈곤정책이 아니라, 시민이 공유부의 지분을 가진 ‘소유자’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설계다.
셋째, 기금 운용은 정치로부터 독립된 기구가 담당한다. 석유 가격 변동성과 정치적 사이클이 기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단단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APF는 자원이라는 일시적·불안정한 부를 시민 전체가 가진 금융자산으로 전환하고, 그 자산이 만들어 내는 지속적 수익을 시민에게 되돌려주는 체계다. 알래스카는 이를 통해 공유부의 원리를 사상적 주장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대 국가 재정 구조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배당의 구조 ― 복지를 넘어선 ‘권리’의 형태
'알래스카 시민배당(PFD)'은 1982년 처음 지급되었고, 이후 꾸준히 이어졌다. 기금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배당금도 함께 증가했고, 몇몇 해에는 3000달러를 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배당을 둘러싼 시민의 인식이다. 알래스카 주민에게 PFD는 ‘지원금’도, ‘시혜’도 아니다. 그것은 명백히 자신이 공동자산의 소유자로서 받는 ‘정당한 배당’이다.
배당의 보편성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소득, 직업, 신분, 세금 납부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주민이 동일한 금액을 받는다. 이는 공유부가 모든 시민에게 균등하게 귀속된다는 헌법적 원칙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 때문에 시민배당은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고, 세대와 정파, 지역을 넘어 꾸준한 지지를 받는 제도가 되었다.
사회적 효과 ― 불평등 완화, 지역경제 안정, 시민 정체성의 재편
알래스카 시민배당의 사회적 효과는 매우 폭넓다. 우선 불평등 완화 효과가 확연하다. 아동 빈곤율이 낮은 것은 배당의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 또한 배당은 계절적 변동이 큰 알래스카 경제에 일정한 소비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지역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효과는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나타난다. 시민들은 자신을 “공동자산의 지분을 소유한 구성원”으로 인식한다. 국가는 자원을 독점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민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trustee)’로 재정의된다.
이 인식의 전환은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까지 바꾸어 놓는다. 공공정책의 정당성은 ‘조세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앞서 ‘공유부의 수익을 어떻게 함께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알래스카는 공유부의 철학을 제도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시민성과 국가 역할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자원의 저주를 뒤집다 ― 알래스카 모델의 정치경제학
자원 부국이 흔히 겪는 ‘자원의 저주’는 부패, 불평등, 재정 불안정, 산업 구조의 취약성 등 다양한 문제를 동반한다. 알래스카는 공유부 제도를 통해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자원 수익을 정부가 독점하는 대신, 시민이 1차적 권리를 갖고 그 이후에 공공정책을 논의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알래스카 모델의 핵심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공유부는 모두의 것이며, 따라서 그 수익도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 원리는 자원의 흐름뿐 아니라 정부와 시민의 관계, 재정과 책임성의 구조까지 다시 작성하게 만드는 정치경제적 힘을 지닌다.
한국에 주는 함의 ― 공유부는 석유에만 있는가?
한국에는 대규모 유전이 없다. 그러나 공유부는 자연자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파 주파수, 데이터와 디지털 인프라, 도시의 공공 공간, 해상 풍력과 같은 자연력, 온실가스 배출권, 중앙은행 발권력에서 비롯되는 발행수익 등은 모두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현대적 공유부다.
이 지점에서 흔히 제기되는 반론이 있다. “시민에게 배당을 나누기보다, 그 재원을 모아 도로·철도·에너지·교육 등 대규모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이 더 미래 지향적이지 않겠는가?” 일리 있는 주장이다. 인프라 투자는 분명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장기 성장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이 빠져 있다. 바로 그 재정의 원천이 누구의 것이며, 어떤 사회적 절차를 거쳐 집행되느냐는 문제이다. 인프라 투자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재원이 시민의 동의를 거친 ‘사회계약적 재정’인가 여부가 핵심이다.
공유부 배당은 이 점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먼저 자원의 경제적 권리가 시민에게 귀속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고, 그 위에서 과세와 예산을 통해 필요한 공공투자를 결정하게 만든다. 이는 재정 지출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과정이다. 배당은 과세의 대상이 되고, 조세는 공공투자의 재원이 되며, 그 모든 과정에 시민의 감시가 작동한다. 즉, 공유부 배당은 재정을 민주주의의 테이블 위로 끌어올리는 장치다.
반면 자원 수익을 처음부터 일반 재정에 흡수해 버릴 경우, 그 재원이 원래 누구의 몫이었는지에 대한 감각은 희미해지고, 재정 배분은 관료제와 정권의 영향력 속에서 불투명하게 흐를 위험이 있다. 공유부 배당은 바로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헌법적·정치적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알래스카 모델은 배당과 인프라 투자를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배당을 통해 시민의 권리를 먼저 확인하고, 그 위에서 조세를 통해 공공투자를 논의하는 것이 재정민주주의의 올바른 순서임을 보여 준다.
공유부 시대의 시민경제 ― 알래스카가 열어 준 미래
알래스카의 실험은 단순한 지역적 성공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자원뿐 아니라 데이터·디지털 인프라·지식·기술 등 새로운 형태의 공유부가 등장하는 21세기 정치경제 질서를 조망하는 출발점이다. 알래스카는 공유부를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가 결합된 제도로 만들어 냈다.
공유부는 더 이상 추상적 사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계약의 구조를 재편하고, 자원의 분배와 재정의 정당성을 다시 설계하는 원리다. 알래스카는 이를 통해 더 평등하고, 더 안정적이며, 더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
공유부는 미래의 경제질서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새로운 시민경제의 토대이다. 알래스카는 그 첫 번째 실험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곳이며, 이제 그 다음 장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
[편집자 주]
누구나 기본소득을 말한다. 그리고 걱정한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공유부(Common Wealth)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출발한 듯하다. 하지만 공유부의 역사는 깊고 넓다. 공유부는 공기와 바다, 토지와 광물이라는 자연 자원을 넘어, 일테면 탄소배출권, 인공지능의 바탕이 된 데이터, 화폐와 금융시스템, 행정·사법·의회제도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적 인프라들로 확장한다. 그야말로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고, 사회적 협력으로 발전시켜 온 문명의 기반이 바로 공유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유부는 누구의 것인가?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필자들은 [공유부 시대] 연재를 통해 불평등과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 언어로서 ‘공유부'의 철학과 역사를 살펴보고 경제학의 언어로, 사회 정의의 언어로 전진시키고자 한다.
*
글쓴이의 과거 기사들 - [기후와 경제]


![[사설] ‘공유지의 비극’과 ‘공유부(富) 배당’](https://static.wixstatic.com/media/c15d53_dce9cd16d9254ed39b05ddae1dfe76eb~mv2.jpg/v1/fill/w_559,h_363,al_c,q_80,enc_avif,quality_auto/c15d53_dce9cd16d9254ed39b05ddae1dfe76eb~mv2.jp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