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동북아 공해(公海), 국제 협력으로 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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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1 최민욱 기자
한반도는 국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남한, 북한, 러시아, 중국, 일본 등 5개 연안국이 접하고 있다. 이 지역은 좁은 해역에 반폐쇄적인 해양 구조를 지닌 특수한 환경을 이루고 있다. 공해(公海)는 어느 나라의 주권에도 속하지 않으며,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바다를 말한다. 관리 주체가 불분명하여 해양오염에 특히 취약하다. 올해 6월 유엔 해양 회의를 앞두고, 한국은 지난 3월 동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해양생물다양성협약(BBNJ)을 비준했다. 해역의 절반 이상 반폐쇄해라는 지리적 특성을 지닌 한국이 국제 해양보호 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동아시아 공해 보호 협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

공해 해양생물다양성 협정의 퍼스트 무버 대한민국
2025년 3월, 한국이 동아시아 최초로 공해 해양생물다양성 협정(BBNJ)의 비준국이 되었다. 2023년 6월 채택된 BBNJ의 정식 명칭은 “국가 관할권 이원지역의 해양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가능 이용에 관한 협정”으로, 유엔 해양법협약(UNCLOS)을 보완하는 새로운 국제법 체계다. 국제사회는 BBNJ를 통해 공해에서 이뤄지는 인간 활동에 환경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국제적인 절차를 통해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고 한다. 생물다양성협약(CBD)의 ‘30by30’ 목표 달성하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인 기반이다. 협정은 60번째 비준서를 기탁한 날로부터 120일 후에 협정이 정식 발효되며 앞으로 39개 국가의 비준이 남아 있다.
BBNJ의 핵심 내용으로는 △해양유전자원의 유전자원 접근권과 이익의 공정한 공유, △해양보호구역을 포함한 지역기반관리수단(Area-based management tools, ABMT), △공해에서 이루어지는 어업, 해양광물 채굴, △해저 케이블 설치 등 각종 인간 활동에 대한 사전 환경영향평가(EIA) 의무화, △개발도상국이 공해 보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재원 지원, 기술 이전, 인력 양성 등 역량 강화 조치 등이 있다.
기존 연안 해역에서의 협력은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다. 동북아 해양보호구역 네트워크(NEAMPAN)는 2013년 출범 이후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참여해 각국의 해양보호구역(MPA)을 연계하고 공동 모니터링 체계를 운영해 왔다. 동아시아 해양환경관리협력기구(PEMSEA)는 연안 오염 저감, 지속가능한 해양 이용을 위한 통합 연안관리 체계를 구축하며 동아시아 11개국 간 협력을 이끌어 왔다. 이들은 모두 국가 관할권 내 연안 생태계 보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일정 수준의 거버넌스를 형성해 왔으나 국제법적 구속력은 없는 한계가 있었다.
한반도 주변 공해 관리의 현실과 과제, 지리적 특수성
한반도 주변 해역은 반폐쇄해라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인접한 연안국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동해와 황해, 동중국해 등은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여러 연안국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며 바다의 폭도 상대적으로 좁다. 이러한 반폐쇄해에서는 해양 환경과 자원이 인접국 사이에 상호 밀접히 연결되므로 긴밀한 협력이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해역은 역사적, 정치적 이유로 해양 협력이 원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일부 해역의 관할이 불분명하고 연안국 간 해양 경계 획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북한 간에는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 이남·이북 해역에 대한 이견이 있고, 한·중 간에도 황해 EEZ 경계가 확정되지 않아 어업 협정만 잠정 조치로만 체결되어 있다. 한·일 간에도 동해상의 경계 획정이 되지 않았다.
현재 해양환경 관리는 다양한 국제협약을 통해 부분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를 중심으로 선박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MARPOL 협약, 폐기물 투기를 제한하는 런던협약 등이 한반도 주변국 모두에 적용된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유엔환경계획(UNEP)의 '북서태평양 지역해 프로그램(NOWPAP)'에도 참여하여 해양오염 모니터링, 기름 유출 사고 공동 대응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연안국 간 양자 협력으로 일부 관리 공백을 보완하고는 있다. 한·중 어업협정을 통해 서해에서 일정 수역을 공동관리수역으로 설정하고 상대국 어선의 입어를 허용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한·일 어업협정 역시 동해 및 대한해협 일부 해역에 서로의 어선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양자 협정들은 어업 분쟁을 완화하고 자원 관리를 협의하기 위한 틀을 제공하지만, 공해 내 해양생물다양성 보전과는 거리가 있다.
동북아 공해 협력체계의 새로운 규범이 필요해
역내 국가들의 협력 의지 강화와 신뢰 구축이 동북아 공해 관리 개선의 첫 단계다. 이를 위해 정례적인 다자 대화 채널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중·일 3국 환경장관회의(TEMM)나 93년 한국의 주도로 출범한 동북아환경협력계획(NEASPEC) 등 포럼이 존재하지만, 해양 분야 협력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존 협의체 내에 해양생태계 보전 작업반을 신설하거나, 별도의 동북아 해양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해양생물다양성의 체계적 보전을 위해 공동 조사와 정보 공유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연구기관들이 협력하여 동해·서해의 어족자원량, 미세플라스틱 분포, 해양오염 상태 등을 공동 조사하고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각국이 과학적 토대에서 해양보호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의 불법어업 단속과 자원관리 협력 강화는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한 필수 조치다. 한국과 중국은 불법어선 단속을 위한 협력을 일부 진행하고 있다. BBNJ에 근거하여 이를 공해까지 확대하면 공동 순찰이나 정보 교환 체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BBNJ라는 새로운 국제 규범이 공해 보전 노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협정이 발효되면 한반도 주변국들은 이 협정의 틀 안에서 공해 보전 조치를 함께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해나 서해 인근 공해에 생태적으로 중요한 해역을 공동으로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동북아 공해 관리의 한계와 협력 과제
성공적인 동북아 공해 관리에는 연안국들과의 밀접한 협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유럽연합(EU)과 같은 초국경적 협력 기구나 강력한 다자 협의체의 부재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긴밀한 협력을 어렵게 한다. 또한 러시아, 중국 등 정치 체제와 이해관계가 크게 다른 것 또한 공동의 제도 형성과 협력의 걸림돌이다. 냉전과 분단의 영향으로 상호 불신이 깊으며, 영유권 분쟁과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어 환경 협력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쉬운 환경이다.
각국의 해양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와 입장이 서로 다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원양어업 선단을 보유하고 해양 개발에 적극적인 반면, 일본은 해양환경 보호에 비교적 관심을 가지면서도 자국 어업 이익을 중시한다. 한국은 해운·조선 등 바다 이용 산업이 발달하여 해양 이용과 보전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해양 환경관리 역량이 부족하고 국제 협력에도 소극적이다. 이런 상이한 상황 탓에 동북아 국가들이 해양 문제에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환경 문제 자체의 특성도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과학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차이가 생기고, 단기적으로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이익을 얻는지에 대한 견해 차이가 크다. 한 연구는 동북아 환경협력이 제도화되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과학 지식의 불확실성’, ‘국가 간 이해득실 차이’, ‘재정 확보와 비용 분담 문제’, ‘기술적 난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각국 의지의 결여’를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미세먼지나 해양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놓고도 각국은 책임과 대책을 두고 이견을 보여 왔다. 중국과 한국은 대기오염·황사 문제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을 표출했고, 일본과 한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싸고 과학적 평가에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합의가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동북아 지역 해양 거버넌스의 또 다른 약점은 북한의 참여 부재다. 북한은 1982년 유엔 해양법협약에 서명했지만 아직 비준하지 않았고, 지역의 다자 환경 협력에도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동해나 서해 같은 반폐쇄해에서 협력 체계를 구축하려 해도 모든 연안국을 포괄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북한 해역에서 발생하는 오염이나 남획 문제를 주변국이 직접 다루기 어려우며 정보 접근도 제한된다. 이렇듯 역내 특수한 정치 상황과 경제적 이해관계의 분절성 때문에 동북아에서는 유럽 등에 비해 환경 다자협약의 체결이나 이행이 지체되어 왔다. 공해 보호 협력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추진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공해 보호 거버넌스
남북 환경협력, 남북아 공해 보호 협력의 마지막 열쇠
북한은 대북 제재 하에서 외화를 벌기 위해 중국 어선에 자국 수역을 내어주었다. 그 결과 자국 연안 어족자원 고갈과 자국 어민 피해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또한 하천을 통한 생활쓰레기와 플라스틱이 서해로 유입되어 남한 해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이렇듯 환경 문제는 분단을 넘어 한반도 전체에 걸쳐 파급되지만, 현재 남북 간에는 이를 함께 다룰 협의 메커니즘이 없다.
북한 또한 여러 국제 환경협약에 명목상 가입해 있지만(예: 생물다양성협약, 파리기후협정 등), 국제 제재와 외교 고립 때문에 실질적인 기술 지원이나 투자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북한 스스로도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장애요인이다. 북한 역시 환경 분야에서 국제 협력이 필요한 처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 협력은 북한이 국제 협력에 나올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환경은 전통적인 정치·군사 의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분야이므로, 남북한이 협력의 돌파구를 마련하기에 적합한 영역이라는 평가있다. 실제로 환경협력은 남북 모두에 실질적 이익을 주면서도 이념 대립을 비교적 피할 수 있는 주제라는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남북 환경협력이 구조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다. 북한과의 어떠한 공동 사업에도 자금과 물자 제공에 한계가 있다. 또한 북한 측의 협력 의지도 불확실하다. 과거 남북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환경 분야 논의 역시 중단되었고, 북한은 이를 정치적 지렛대로 다루는 양상을 보였다. 환경협력이 근본적으로 정치·군사적 상위 의제에 종속되어 지속성이 떨어지는 구조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북한 당국이 환경협력의 실질적 이익에 눈을 돌리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국제 사회 역시 인도주의적 차원의 환경 지원에 대해 제재의 유연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기후변화나 자연재해 대응은 제재 예외로 다룰 여지가 있다. 이를 지렛대로 일부 협력을 시작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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