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농업 | 아열대 작물 재배 면적, 5년 사이에 30배 증가, 기후 충격에 적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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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4 최민욱 기자
기후변화로 인해 한반도 농경지가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농업 현장에는 아열대 과일과 작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과거 기후 조건을 전제로 구축된 관행 농업 방식은 잦아진 이상기후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 변화를 미룰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기후 변동성을 억지로 통제하려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변화된 환경에 맞춰가는 ‘적응’ 전략이 한국 농업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급격한 농경지 남방화에 대응해 한국 농업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열대 작물 재배 면적, 5년 사이에 30배 증가
한국에서 아열대 작물 재배는 이제 낯선 현상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남부 지역 농경지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재배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 해안의 노지에서는 올리브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제주와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망고와 파파야 같은 열대 과일이 수확되고 있다. 전라남도의 아열대 작물 재배 면적은 2025년 약 1900ha로 전국의 62%를 차지한다. 이는 불과 5년 사이 재배 면적이 30배 확대된 것으로, 재배 농가도 900곳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한반도 기후대가 실질적으로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전남의 연평균 기온은 100년 전보다 1.6℃ 상승했으며, 2022년 평균기온은 15.9℃로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농촌진흥청은 2060년에는 국내 경지의 약 26%, 2080년에는 60% 이상이 아열대 기후권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이 아열대 농업 전환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과거 기후 데이터를 근거로 한 '관행 농업'에서 벗어나야
한국 농업은 오랜 기간 과거의 평균적 기후 패턴을 기준으로 관행농업을 실시해 왔다. 파종 시기, 품종 선택, 방제 일정 등은 수십 년간 축적된 기후 자료에 기반해 체계화됐지만, 최근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 변동 속에서는 이러한 경험칙이 맞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겨울철 이상고온과 조기 개화, 늦서리로 인해 과수의 개화·결실 주기가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여름철 반복되는 폭염과 열대야는 벼의 등숙률(벼알이 여무는 비율)을 떨어뜨려 수확량과 품질에 영향을 준다. 벼의 출수 후 약 40일간 평균기온이 24℃를 넘으면 수확량이 5% 이상 감소하고 등숙률이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정해진 날짜에 맞춰 모내기하고 관행대로 관리하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병해충 발생 양상도 달라지면서, 온난화와 함께 확산하는 배추무름병 등 병충해가 주요 채소 농가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후 리스크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과거 세대의 경험치만으로 농사를 지속하는 것은 위험이 커지고 있다.
기후 충격에 드러난 '통제' 전략의 한계

농업 현장에서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환경 제어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 과수 농가들은 강한 일사를 막기 위한 차광막을 설치하고, 미세 물분무로 과실 온도를 낮추는 냉각 시스템 도입하기도 한다. 경북 거창의 한 사과 농장은 농촌진흥청 공모 사업으로 스마트팜 시설을 지원받아 자동 차양막을 설치했다. 이는 폭염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설비로, 센서가 일사량을 감지해 그늘막을 자동으로 펼치는 방식이다. 해당 농장은 자동 차양막 설치 후 과수원 온도가 3~5℃ 낮아지면서 생육과 착색이 개선된 것으로 보고했다.
군위군농업기술센터는, 차광망을 적용한 과수원의 경우 과실 표면 온도가 최대 2~4℃ 낮고, 일소 피해율이 기존 5~10%에서 1% 안팎으로 감소했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하였다.이러한 기술적 조치는 일정 수준의 기후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가 확인된 사례들이다. 그러나 영세 농가 비중이 높은 국내 농업 구조에서 기후 대응형 스마트팜 시설의 보급은 제한적이다. 첨단 설비 구축에는 상당한 투자와 유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창 지역의 스마트 과수원 역시 정부 지원으로 도입된 사례지만 표준화된 과원 형태를 갖춘 극히 일부 농가만 참여했다. 현재 운영 농가는 3곳에 그친다. 대부분의 과수원은 지형과 재배 형태가 달라 대규모 환경 제어 설비를 적용하기 어렵고, 고령 농가일수록 새로운 기술 수용에도 제약이 있다. 이처럼 기후를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대응은 일부 시범 사례에 머물고 있어, 다수 농가가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확장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후 '대응'이 아닌, '적응' 중심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해
기후변화가 되돌릴 수 없는 추세로 자리 잡은 지금, 농업에서도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변해 버린 기후를 과거로 돌릴 수 없고 완전히 막아낼 수도 없다면, 환경에 맞게 농업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전략이 불가피하다. 적응 전략의 핵심은 기후에 맞는 작물과 품종을 선택하고 재배 방식을 조정하는 데 있다.
과거 사과 주산지였던 대구·경북 지역은 기온 상승으로 생산량이 줄고 품질 변동성이 커졌다. 이 때문에 사과의 재배지가 강원도 고랭지로 옮겨가고 있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해발고도가 더 높은 지대로 과원을 옮기거나 새로 조성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즉, 사과 재배는 단순히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기온을 확보할 수 있는 고도로 옮겨가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사과 재배지가 북상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는 절반만 사실이다. 현재 북한의 사과 생산량은 남한의 두 배에 이른다. 사과 재배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한에서 널리 재배되던 특정 품종의 문제가 더 크다. 국내 사과 생산을 주도해온 ‘후지’(부사) 품종이 온난화된 남부 기후에서 안정적으로 착과·착색하지 못하면서 어려움이 커진 것이다. 적절한 품종을 도입하면 남부에서도 사과 재배는 가능하다는 의미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북상한 것은 사과가 아니라 후지 품종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제 농업의 우선 전략은 기후 적응형 품종 육성과 품종 다변화로 이동하고 있다. 정부와 연구기관은 고온에 견디는 과수 품종, 재배 기간이 짧은 벼 품종, 새로운 채소 품종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 이러한 품종 전환과 기술 보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농민들은 반복되는 재해와 보상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농업의 지속성도 위협받게 된다.
고령화·영세화로 취약해진 식량 생산 기반
한국 농업 인구는 급속히 고령화되었고 경지 규모는 영세하다. 이는 적응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넘어야 할 구조적 장벽이다.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은 55.8%로 절반을 넘고, 농가 경영주의 약 40%는 70세 이상이다.
농가 수는 100만 가구 아래로 줄어든 뒤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전체 농가의 절반 이상(52.9%)은 경지 규모 0.5ha 미만의 극소규모 농가이며, 5ha 이상 대농은 3.4%에 그친다. 이런 구조에서는 시설 투자나 품종 전환의 여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한 과수원에 수천만 원을 들여 냉방·차광 시설을 설치하거나 새로운 품종으로 과원을 재조성하는 일은 영세 고령 농가에게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이다.
휴경지도 늘고 있다. 2020년대 들어 경지 면적 대비 휴경지 비율은 4% 안팎까지 높아졌으며, 이는 단순한 인구 통계가 아니라 국가 식량 생산 기반 약화를 의미한다. 농가 규모가 작고 분산되어 있으면 기술 도입, 품종 교체, 재배지 이전, 기반 시설 구축 같은 대응을 실행할 주체도 부족해진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기후위기 상황에서 위험을 더욱 키운다. 과수 농가 상당수가 고령 소농이다 보니, 최근 반복되는 사과 일소 피해에 대응해 차광막을 설치하거나 관수 설비를 갖추는 농가는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거창의 스마트팜 사례처럼 기술적 해법이 있어도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농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많은 농민은 주어진 여건에서 날씨와 운에 의존한 채 버티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를 개선하지 못하면 기후 충격에 대한 집단적 대응 능력은 더욱 떨어진다. 작은 농가가 개별적으로 적응하기 어렵다면 생산 조직을 규모화하거나 협동화해 대응력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젊은 인력이 농촌에 진입해 기술을 습득하고 적용하는 구조도 중요하지만, 농업의 경제적·사회적 매력도를 높이지 못하면 세대 교체 역시 쉽지 않다.
기후 적응, 품종 다양성과 작목 전환이 해법인가
기후 적응 해법 가운데 가장 강조되는 것은 품종의 다양성 확보다. 한 지역이나 국가의 농업이 소수 품종과 작목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기후 변동성에 극도로 취약해진다. 반면 다양한 품종과 새로운 작목을 도입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할 여지가 커진다. 앞서 본 것처럼 한국 사과 재배는 후지 품종에 편중돼 있어 한 번 기상이변이 발생하면 전체 생산이 흔들릴 수 있다.
정부는 뒤늦게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과수산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농식품부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스마트 과수원 특화단지’ 60곳을 조성하고 재해예방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기술과 조직을 갖춘 과수 집적단지를 통해 기후위기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과일을 생산하려는 전략이다.
농촌진흥청은 아열대 유망 작목 20여 종을 선발해 재배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파파야와 바나나 시험재배로 높은 소득을 올린 농가도 등장했고, 전북 일부 지역에서는 아열대 작물 재배 교육과 견학을 통해 작목 전환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다.
물론 모든 작목을 아열대 종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작물에서도 내열성 품종을 도입하거나 재배 시기를 조절해 적응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전환 속도다. 기후변화가 빠른데 품종과 작목 전환이 더디면 그 공백과 피해는 결국 농가와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민간 노력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투자, 신품종 보급 체계, 유통망 정비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농업정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기후 적응을 위한 변화가 시급하지만, 이를 가로막는 인식과 정책의 문제도 짚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농업 정책은 농민 보호와 소득 보전에 무게를 두어 왔다.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할 때마다 유통 구조 개선이나 재해 보상 논의는 반복되지만, 정작 농업을 국가 식량 안보의 산업 기반으로 강화하는 논의는 뒤로 밀렸다.
이로 인해 구조적 문제 파악이 늦어졌고 정책 목표는 생계 지원에 머무르면서, 산업으로서의 농업 기반 구축은 후순위로 밀려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심화된 지금 이런 접근의 한계는 분명하다. 농업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아 왔다면 이제는 국가 생존을 위한 전략 산업으로 전환해 인식해야 한다.
식량 안보는 비축량이나 수입선 다변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사지을 사람, 활용 가능한 경지, 기술 인프라, 품종·종자 공급 체계, 민간 기업의 농업 참여, 일정 수준 이상의 국내 생산 기반이 유지되어야 식량 안보 체계가 작동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약해지면 대외 충격이나 기후 충격에 취약해진다. 지금 한국 농업 기반이 바로 그런 취약 상태다. 고령화와 영세화로 생산 주체와 토지 구조가 약해진 상황에서 기후 충격이 누적되자 조정 능력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반복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농업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기후변화 시대에 맞는 장기 전략 없이 땜질식 지원만 이어가면 다음 세대의 식량 시스템을 지킬 수 없다. 이제는 기후 적응을 중심에 놓고 농업 구조 개혁과 산업적 설계를 추진해야 한다. 작은 농가가 개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기후 리스크에 맞서기 위해 협동조합 강화나 지역 단위 생산 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청년 농업인을 육성하며, 민간 기술 기업의 농업 투자 여건을 확충하는 등의 다층적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농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라”고 말하지만, 세계 식량시장 분석이나 품종 개발 전략은 농민이 떠맡을 수 없는 영역이다. 미래를 대비할 책임은 정책 입안자와 전문가에게 있다. 정책은 눈앞의 피해 보전에 그치지 말고, 기후변화 시대에 어떤 농업 구조와 작목 구성이 지속가능한지를 제시해야 한다.
지금 준비하지 못하면 더 큰 위기에 대응할 여력조차 없을 수 있다. 한국 농업은 이제 기후와의 싸움에서 버티는 단계를 넘어 능동적 적응 단계로의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더 늦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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